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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365
한자 李享齡
영어음역 Yi Hyangryeong
이칭/별칭 익성군,수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친
성별
본관 전주
대표관직 가덕

[정의]

조선 중기의 종친.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원. 할아버지는 중종이며, 아버지는 선조의 형인 하원군, 어머니는 영의정 홍섬의 딸인 남양홍씨이다. 군수 소수의 딸 진주소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활동사항]

13세 때 익성정을 배수하고 그 뒤에 도정으로 승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에 파천되어 북방으로부터 하원군을 모시고 여러 달 만에 행재소에 다다르니 선조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596년 정의대부를 가하고 익성군에 봉하였으며 승헌에 승진하였다.

1610년 광해군이 계직을 가덕으로 승진시켰다. 선조의 세자 순화군이 후사가 죽자, 선조익성군의 3자 진릉군을 후사로 삼았다. 1612년에 김재직의 옥사가 일어났는데, 이이첨진릉군을 추대하였다고 무고하여 진릉군은 제주로 귀양 가다가 사사되었고, 익성군을 비롯해 익성군의 아들들은 모두 귀양을 갔다. 익성군은 거제로 귀양 갔다가 3년 만에 병으로 죽으니 향년 49세였다.

[묘소]

익성군이 죽었을 때 아들들이 죄적에 있어서 장사할 수 없었다. 이에 임시로 전라북도 익산에 묘소를 설치하였다가 인조이향령과 아들들의 벼슬이 회복되어 1643년에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는데, 왕이 이 일을 듣고 유사에게 명하여 예를 갖추어 장사지내게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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