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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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召爾津 |
영어공식명칭 | Soijin Doc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정민 |
폐지 시기/일시 | 1939년 6월 - 소이진, 용포교 가설로 기능 상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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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 지역 | 소이진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
성격 | 나루 |
[정의]
조선 시대 무주 지역을 지나는 주요 수상 교통로에 설치된 나루.
[개설]
교통 시설과 수단이 발달되지 않은 전통 시대에는 배를 이용하여 강을 건넜고, 강을 건너는 양쪽 지점에는 나루터가 생겼다. 나루는 그 규모에 따라 도(渡)와 진(津)으로 구분된다. 진도(津渡)의 설치는 고려 시대부터 제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조선 시대에도 그대로 운영되었다. 나루는 일반 백성들의 교통 시설로서 중요시되었으며, 국가에서도 인구 동태를 파악하고 위험 인물을 단속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었다. 이에 따라 도의 책임자로 별감(別監)을 파견하였는데, 이후 도승(渡丞)으로 바뀌었다. 도승을 보좌하여 진리(津吏)가 사무를 처리하였고, 진부(津夫)[뱃사공]가 나룻배를 담당하였다.
[형성 및 변천]
소이진(召爾津)은 무주군과 금산군의 경계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지역의 주요 교통로로 활용되어 왔다. 광해군(光海君) 대에 설치된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와 연결되는 나루였기 때문에 중앙에서 내려오는 사관(史官)의 행렬과 공무를 처리하기 위한 관리들의 행차가 잦았다. 특히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 시설·편의 시설로서 소이원(召爾院)과 함께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고, 규모가 커지면서 마을의 이름을 ‘대촌(大村)’이라 칭하게 되었다.
또한 현재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서쪽에 위치한 소이진은 마을을 휘어 감고 흐르는 강물이 주변의 경치와 어우러져 주변에 망풍루(望風樓) 외에도 집승정(集勝亭), 둔세정(遁世亭), 분의정(分宜亭), 비암정(秘巖亭) 등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에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당시 시인(詩人)과 묵객(墨客)들이 누정에 머물면서 소요(消遙)하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철도와 도로가 개설되면서, 전라북도에는 1907년(순종 1)부터 전주(全州)~군산(群山) 간 신작로가 개설되기 시작하였다. 1971년에 편찬된 『전북도사(全北道史)』를 보면, 1924년에 영동(永同)~전주 간 2등 도로 1개 노선이 진안 지역과 무주 지역을 경유하도록 되었으며, 금산~무주~거창(居昌), 남원(南原)~무주선 등 3등 도로 5개 노선이 연결되어 무주 지역은 교통의 요충지로 이용되었다.
무주 지역에서 금산 지역으로 가는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소이진은 무주와 금산을 왕래하는 버스나 차량을 배에 싣고 나르는 중요한 나루로서 구실하였다. 그러나 1939년 6월에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 늘목에 용포교(龍浦橋)가 가설되면서 소이진은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현재 소이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나, 소이진이 있던 서면 나루를 중심으로 무주군으로 귀촌한 예술가들의 재능 기부로 이루어진 연주회를 비롯하여 공원 조성이 계획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복지 증진과 생활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소이진은 무주현(茂朱縣)에서 서쪽으로 5.5㎞[14리]에 위치하였으며, 현재 행정 구역상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서면에 해당된다. 금산과 경계를 이루던 곳에 있던 나루로 금산 대로(錦山大路)와 통하였다. 또한 금산의 제원찰방역(濟原察訪驛)에 속하는 소천역(所川驛)과 연결되어 있어 무주 지역의 교통 요충지였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소이진 주변 풍경에 대한 기록이 있다. 『대동지지』에서는 "나루 하류에는 15개의 여울이 있는데, 모두 급한 물살이 험하게 돌고 돌아 굽이치고, 끊어진 언덕이 있으며, 궁벽하고 우뚝하여서 기괴한 형상을 다 말할 수 없다"고 하여, 소이진 일대의 물살이 상당히 세고 물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산군 산천조(山川條)에서는 "금산군의 동남쪽 48리[18.85㎞]에 있으며, 그 근원은 네 가지이다. 하나는 진안(鎭安) 마이산(馬耳山)에서 나오고, 하나는 용담(龍潭) 주줄산(珠崒山)에서 나오며, 하나는 무주 상산(裳山)과 대덕산(大德山) 등에서 나오고, 하나는 장수에서 나온다. [금산]군의 동남쪽에서 합쳐져 소이진이 되고, [금산]군의 동쪽으로 흘러 지대진(只大津)이 되며, 북쪽으로 흘러 충청도 옥천(沃川)에서 호진(虎津)이 된다"고 하여 소이진이 진안, 장수, 용담에서 나온 물이 무주에서 나온 물과 합쳐져서 흐르고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같은 기록에 "겨울에는 다리로 건너고 여름에는 배로 건넌다"고 하여 소이진이 우기(雨期)에는 나루로서 배를 띄웠고 물이 적은 겨울에는 다리를 놓아 행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