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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45년까지 시기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역사. 밀양군은 경상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시대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였으나 1895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대구부 밀양군이 되었다. 1896년 경상남도 밀양군으로 되었고, 1906년 월경지 정리에 따라 비입지(飛入地)인 고미면이 경상북도 청도군으로 이관되었다. 1914년 일제의 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밀양군은 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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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시기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역사. 밀양군은 경상남도 북동부에 자리한 지역이며, 조선시대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였으나, 1895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대구부 밀양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남도 밀양군으로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따라 비입지(飛入地)인 고미면이 경상북도 청도군으로 이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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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22일 일제 강점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전까지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역사. 1914년 일제는 부군 행정구역 개편, 부제(府制) 실시 등 대대적인 지방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에 따라 밀양군은 부내면(府內面) 등 13개 면으로 재편되었다. 1918년 부내면은 밀양면(密陽面)으로, 천화산내면(穿火山內面)은 산내면(山內面)으로, 천화산외면(穿火山外面)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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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일어난 강제 인력 수탈.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어난 아시아 태평양 전쟁기를 거치면서 전쟁 수행을 위한 인적·물적·정신적·문화적 자원의 총동원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총동원 정책은 조선을 비롯한 남사할린, 대만, 만주, 그 밖의 점령지 등 제국 일본의 영역에 포함된 다양한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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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에 있었던 여성운동과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한 단체. 근우회 밀양지회는 1928년 4월 3일 밀양여자청년회의 주도로 발기인대회를 개최하고, 4월 28일 신간회 밀양지회 회관에서 창립되었다. 활동 부서로 서무부, 교양부, 선전조직부, 조사부, 재무부를 두었다. 일상적인 사무인 회원 관리와 선전 및 재정 관련 업무 이외에, 봉건적인 구습과 미신을 타파하기 위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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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활동한 소년운동 단체. 밀양소년회는 일제강점기 밀양에서 활동하였던 대표적인 소년운동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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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청년운동을 전개한 사회단체들의 연합체. 밀양청년연맹은 일제강점기 밀양 청년운동의 연합 기관으로, 밀양 읍내 청년운동을 넘어 군 전체를 아우르는 대중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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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었던 신간회 지회. 신간회 밀양지회는 신간회에 대한 지지와 후원을 표명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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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한 의열투쟁 단체.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김원봉, 윤세주, 김상윤 등 밀양 출신 인사들은 만주의 지린[길림(吉林)]에서 민족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맹세를 하며 의열단을 발족하였다. 의열단은 김원봉을 의백, 즉 단장으로 추대하고 조선 독립과 세계 평등을 위하여 조선 총독 이하 고관 등을 ‘7가살(可殺)’ 암살...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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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3일 전홍표의 지도 하에 윤세주 등이 주도하여 밀양 읍내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윤세주와 윤치형은 고종의 장례에 참가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밀양으로 내려와 동화학교 교장 전홍표를 찾아가 밀양에서의 시위를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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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3일부터 4월 초까지 밀양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1일 경성 파고다공원에서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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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일제의 강제적 차관 제공에 저항하며 일어난 국권회복운동.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통감부가 설치되자 일제는 강제로 차관을 들이며 한국의 경제권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1907년 국민의 힘으로 일본의 차관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밀양의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5월 19일 뜻있는 인사들이 유림들의 모임 장소인 연계소(蓮桂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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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식민 지배에 저항한 경상남도 밀양 지역민들의 항일운동. 일제강점기 밀양 지역사회에서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극복하고 민족 자주성을 회복하며,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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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0월 밀양의 농민군들이 참여한 농민운동. 동학은 19세기 후반 최제우가 창립한 반봉건과 반침략의 성격을 띠고 있는 민중 종교이다. 지배층의 수탈로 민중들의 저항이 전국적으로 계속 발생하던 시기에 경상남도 밀양에서는 1862년(철종 13) 환곡 운영의 폐단에 저항하는 농민들이 봉기하였고, 1890년 전후 밀양의 동학농민군이 조직되었다. 1890년대 들어 동학교도들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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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 조선 민족의 경제권을 수호할 목적으로 전개된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경제 자립 운동. 물산장려운동은 1920년 평양에서 조만식(曺晩植)[1883~1950] 등 평양의 유지들이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를 조직하면서 시작된 것이며,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경제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운동이었다. 민족주의 운동가들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물산장려운동은 국산품 장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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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근대 학교 설립과 근대 교육 증진으로 국권 회복을 도모한 민족 운동. 개항기·일제강점기의 자강 운동은 자본주의적 근대화 실현을 위한 식산흥업과 함께 또 다른 축인 ‘근대 교육 증진’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근대 학교의 건학 이념은 애국심 고양, 인재 양성, 민지 개발, 문명 발달, 국권 회복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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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2월 27일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경찰에 부상을 입히고 시설을 파괴한 사건. 1920년 12월 27일 의열단원 최수봉은 밀양경찰서에 두 차례의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경찰에게 부상을 입히고 경찰서의 집기를 파손하였다. 1920년 초부터 잇따른 의열단의 암살 파괴 투쟁의 일환인 의거였다.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를 주도한 것은 최수봉, 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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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929년 경상남도 밀양군청을 이전하는 데 반대하여 밀양 군민들이 전개한 주민운동. 1927년 밀양역전에 이권을 가지고 있던 일본인과 조선인 지주들은 경상남도 도지사의 동조 아래, 내일동에 있던 밀양군청을 가곡동의 밀양역 앞으로 이전하려 하였다. 이에 격분한 군민들은 선전 삐라를 살포하고 집회와 시위를 벌이는 한편, 경남도청과 조선총독부에 수 차례 대표를 보내 면담과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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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개항기 동안 국권 수호와 근대적 변화를 위하여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벌인 운동. 개항 이후 일제의 조선 침략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밀양이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부터였다. 개항장·개시장에 거점을 두었던 일본인들은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자 철도를 따라 내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는데, 밀양 역시 일본인들의 주요한 진출 대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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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지역 소작농이 소작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전개한 생존권 확보 투쟁. 1920년대 들어 밀양 지역의 농민들은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소작동맹과 소작인회 결성, 소작인 대회와 진정서 제출 등의 방법으로 지주나 마름을 상대로 소작료 인하 및 소작권 이동 반대 등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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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부터 1910년까지 동안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경상남도 밀양에서 전개된 실력 양성 운동.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되자 조선 내에서 이에 대한 저항이 각계 각층에서 일어났다. 애국계몽운동은 조선의 ‘힘’과 ‘실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으로, ‘교육’과 ‘식산’의 진흥을 통하여 국권을 회복하자는 운동이었다. 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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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밀양 지역 청년 단체들이 벌인 민족운동. 1925년 11월 23일 밀양군 내 6개 단체가 참여한 청년 단체 연합회인 밀양청년연맹이 결성되었다. 밀양청년연맹은 1927년 4월 이후 발생한 국농소 소작쟁의에 밀양청년연맹 집행위원인 정광호를 매개로 관여하였으나, 소작인 사이의 분쟁으로 복잡하게 전개된 쟁의를 제대로 지도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