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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우약(友若), 호는 묵촌(黙村). 조선 초기의 문신인 강숙경(姜叔卿)[1428~1481]의 후손이다. 성품이 효성스러워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부모가 병들었을 때는 그 똥을 맛보았으며 부모의 치유를 위해 하늘에 기도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상복을 벗지 않고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3년 동안 하였다. 아우인 강달지(姜達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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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위수(渭叟), 호는 만락재(晩樂齋).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1560~1627]의 증손이다. 성품이 고결하여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동약(洞約: 조선시대 마을 단위로 운영되던 향약(鄕約))을 수정하여 풍속을 교정하였다. 만년에는 월배(月拜)[현재의 대구 달서구, 월배(月背)라고도 함]의 도원동에 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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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아버지가 종기를 앓았는데 의원이 두꺼비를 달인 것이 좋다고 하였다. 계절이 한겨울이라서 두꺼비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갖은 노력을 다해 두꺼비를 구해 드리니, 아버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그 효행이 기록되어 있다. 행적이 조정에 알려져서 정표(旌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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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병을 고치고자 하였다. 여덟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70살에 추상(追喪)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그 행적이 기록되었다. 효종 때에 정려(旌閭)를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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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자는 상능(尙能), 호는 지지당(遲遲堂).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매우 추운 겨울날씨에도 베짜기를 멈추지 않는 것을 보고는 “이는 무엇을 하기 위함입니까”라고 물었다. 어머니가 “너의 옷을 만들려고 한다”라고 대답하니, “자식이 되어서 어머니로 하여금 수고스럽게 하는 것을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울면서 날실을 잘랐다. 어머니가 이를 보고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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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내경(乃敬), 호는 일소헌(一笑軒).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성재(誠齋) 강응태(姜應台)[1493~1552]의 후손이다. 강석무는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을 극진히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매우 슬퍼하며 삼년상을 치렀다. 나라의 변고가 있은 뒤로는 스스로 문을 닫아걸고 원통해 하였다. 주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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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주려(周呂), 호는 매호(梅湖). 아버지는 설림(雪林) 강성조(姜聖祚)이다. 어려서부터 어버이께 효도하고 아우 강주행(姜珠杏)과 강우송(姜玗松)에게 우애가 있었다. 아버지가 병이 걸리자 아우인 강주행(姜珠杏)과 더불어 여러 달 동안 시중을 들었는데 밤에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매우 슬퍼하였다. 천성이 단아하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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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진(子眞), 호는 매고(梅皐). 아버지는 지우당(至愚堂) 강내운(姜來運)이다.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6세손이다. 학문이 뛰어났고, 품성이 곱고 청결하였다. 재주가 있고 가슴에 뜻을 품었으나 벼슬은 하지 않고 은사(隱士)로 생을 마치니,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유집이 있다고 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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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부. 강세진(姜世軫)의 아내이다.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때에 왜군에게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맞서 싸우다 죽었다. 조정에 그 일이 알려져서 마을에 정문(旌門)을 내려주었으며,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그 행적이 기록되었다.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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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성오(成五). 아버지는 장령(掌令)을 지낸 강성희(姜聖喜)이다. 아버지 강성희가 병으로 누워 있을 때 형인 강영호(姜泳鎬)와 더불어 밤낮으로 병 수발을 하였다. 한 모금의 물과 한 번의 소변이라도 공손히 시중하여 아버지를 매우 편안하게 하였다고 한다. 상을 당해서는 몹시 슬퍼하며 삼년상을 마쳤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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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원회(源會), 호는 설악(雪嶽). 매오(梅塢) 강건(姜鍵)의 손자이고,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후손이다. 성품이 온화하고 조용하였다. 이만구(李晩求)와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 한말의 유학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저서로 『주역연의(周易演義)』, 『중범가의(中範家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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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아버지는 강순(姜淳)이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에 산으로 피난하였다. 그러나 적이 발견하고는 욕보이려고 하자, 정절을 지키기 위해 항거하다가 결국 피살당하였다. 선조 대에 조정에 알려져서 마을에 정문(旌門)을 내려주었다. 진주 금산리에 살았으며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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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미중(美仲), 호는 소은(素隱). 조선 중기의 무신인 강덕룡(姜德龍)의 6대손이고, 아버지는 매은(梅隱) 강흥운(姜興運)이다. 어머니는 인재(忍齋) 하윤관(河潤寬)의 딸이다. 1734년 진주시 대곡면 설매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자질이 남달라 6~7세에 문리를 알았으며 효성 또한 뛰어났다. 한말 선비 이도묵은 강식준의 학문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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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대함(大函).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조선시대 종6품의 품계] 강오수(姜鰲壽)이고, 어머니는 진양정씨(晋陽鄭氏)로 생원(生員) 정이량(鄭以良)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했으며 자라서는 기량이 뛰어났으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마을 사람들이 애석하게 생각했다. 1522년[중종 17]에 어풍정에서 태어나 만년에 설매마을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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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군보(君保). 아버지는 지평(持平: 정5품 문신)을 지낸 강전(姜詮)이고, 할아버지는 강석정(姜碩貞)이다. 효성스럽고 형제 간에 우애가 있었다. 형인 진사(進士) 강여평(姜汝平)이 중한 병이 들자 친히 약을 달이고 백방으로 병구완하여 병이 낫게 하였다. 형이 죽자 1년 동안 묘를 지키며 시묘살이를 하였다. 『진양지(晋陽誌)』권3「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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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군기(軍器)다. 조선 중기 진주 출신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손자다. 조선 시대 진주 지역의 선비인 묵재(黙齋) 조석규(趙錫圭)에게 학문을 배웠다. 대의(大義)를 통달하고, 또 지략과 뜻이 커서 작은 일에는 구애받지 않았다. 사람들이 재상감이라고 기대하였으나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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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진주 소촌역의 향리였던 강용(姜龍)의 아내이다. 『진양지(晋陽誌)』에는 ‘제조이[諸召史]’로 기록되어 있는데, 제조이는 ‘제씨 성을 가진 여성’을 뜻하는 말이다. 조이[召史]는 양반이 아닌 평민 출신의 과부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남편이 죽자 장사에 예를 극진히 하였고, 옷을 모두 고쳐 상복으로 만들어 입었으며, 아침저녁으로 제물을 올리고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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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규지(奎之). 아버지는 학생(學生) 강막대(姜莫大)이다. 1528년(중종 23)에 진사시에 3등으로 합격하였다. 일찍부터 문명이 있었고, 고을 사람 진사(進士) 유백온(兪伯溫), 진사(進士) 윤령(尹寧)과 더불어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성균관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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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의숙(宜叔). 아버지는 생원(生員) 강호(姜灝)이고, 할아버지는 훈도(訓導) 강세련(姜世連)이다. 맑은 얼음과 같은 지조와 가을 하늘과도 같은 기상을 지녔다고 한다. 악한 것을 미워하여 악취처럼 여기고, 옳은 것이 아니면 겨자 한 알도 취하지 않았다. 일찍 세상을 떠나니 많은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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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찬지(贊智). 강회백(姜淮伯)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다음과 같이 강의회의 효행이 기록되어 있다. 성품이 매우 효성스러워서 부모를 섬길 때 뜻을 받들고 몸을 편안하게 하였다. 부모가 병드니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고 똥을 맛보아 병세를 살폈으며, 허벅지를 잘라 피를 내어 약에 섞기도 하였다. 고종(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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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사인(士人) 강민효(姜敏孝)의 아들이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실려 있다. 아버지가 중병이 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바치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진주 수곡에 살았으며,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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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참의(叅議: 조선시대의 정3품직)를 지낸 강우(姜佑)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한 자질이 있어서 지방 사람들이 유림의 재목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자라서는 글 솜씨와 행동거지로 널리 명성을 떨쳤다. 당대에 높은 학문적 식견으로 이름을 날리던 설창(雪牕) 하철(河澈)[1635~1704]이 영특하고 곧으며 빼어난 인재라고 하면서 경탄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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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자유(子由).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성재(誠齋) 강응태(姜應台)[1493~1552]의 현손(玄孫)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당암(戇菴) 강익문(姜翼文)[1568~1647]의 제자이다. 재주가 뛰어났으며, 장중하고 과묵하였다. 스스로 삼가고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았다. 죽오(竹塢) 하범운(河範運)에게서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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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부장(部將) 강추국(姜秋國)의 딸이다. 효행이 뛰어나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바쳐 병이 낫게 하였다고 한다. 진주 금산리(琴山里)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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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조선 초기의 문신인 수헌(守軒) 강숙경(姜叔卿)[1428~1481]의 후손이다. 출사 관련 구체적인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진양속지』에 임진왜란 시 예빈주부(禮賓注簿, 조선시대 정6품 관직)로 선조의 의주 몽진(蒙塵)에 함께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공으로 원종공신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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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극명(極明), 호는 우재(愚齋).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관인인 강회백(姜淮伯)[1357~1402]의 후손이다.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바치고, 변을 맛보아 그 병든 정도를 헤아렸다. 어머니가 중풍을 앓아 수족을 쓸 수가 없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곁에서 숟가락을 들어 식사 시중을 들었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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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미백(美伯). 조선 중기의 무신인 강덕룡(姜德龍)[1560~1627]의 6대손으로 아버지는 강흥운(姜興雲)이다. 어머니는 인재(忍齋 ) 하윤관(河潤寬)의 딸이다. 순박하고 온후하였으며, 행실을 지극히 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저서『겸재집(謙齋集)』의 내용 중에 하홍도가 북인인 정인홍(鄭仁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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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자(字)는 찬익(贊翼)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몸소 품팔이를 하여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여 부모를 공양하였다. 부모가 병이 나면 자신도 먹지 않았다. 아버지의 묘가 집에서 멀었는데도 날마다 가서 살폈고,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묘소로 달려가서 상복을 벗어 봉분을 덮어주기도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효자라고 일컬었으며,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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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호(士浩), 호는 목계(木溪)·동고(東皐). 강우덕(姜友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집의(執議) 강숙경(姜叔卿)이고, 아버지는 정략장군(政略將軍) 강인범(姜仁範)이다. 어머니는 성주인(星州人) 여씨(呂氏)로 호군(護軍) 여인보(呂仁甫)의 딸이다. 부인은 삭령최씨로 예조참판(禮曹參判) 웅(雄)의 딸이다. 강혼(姜渾)은 연산군과 중종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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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 반야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강혼의 묘. 강혼(姜渾)[1464~1519]은 조선 중기의 이름난 문장가로 김일손(金馹孫)과 더불어 당대에 이름을 날렸다.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였고, 시로써 연산군에게 아부하여 사림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 반야동의 진주 강씨 선영에 위치해 있다. 배위(配位) 정경부인 박씨 묘와 더불어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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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문거(文擧), 호는 매은(梅隱). 조선 중기의 무신인 강덕룡(姜德龍)의 5세손으로, 부인은 인재(忍齋) 하윤관(河潤寬)의 딸이다. 평소에 가난한 사람을 도와 명망이 높았으며, 고장 사람들이 모두 신의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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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충신. 본관은 진주(晋州).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인 강회백(姜淮伯)[1357~1402]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아들인 강기원(姜起源)과 더불어 임진왜란에 참가하여 전공(戰功)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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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이나 부모 등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김대용(金大鎔)이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적병을 만나자 정절을 지키고 죽었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이름이 올랐다. 선조 조에 열행이 알려져 조정에서 마을에 정려(旌閭)을 내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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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진주 백곡(栢谷)에 살았던 인물로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올라 있다. 유학(幼學)이며 효자로 명성이 있었다. 성품이 크고 담대하였다. 어버이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바쳐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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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개인에게 소속된 노비인 사노(私奴)이다. 부모와 형제에게 지극하여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부모들이 토지를 그 아우에게 모두 물려주었는데도, “나는 처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있으니 살아갈 수 있다”라고 하며 조금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노비가 재산을 소유했고, 여자도 상속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진주 시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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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첨사(僉使: 조선시대 일선 진영(鎭營)을 관장하던 무관직) 김진(金震)의 아내로 진주 가좌촌에 살았다. 『진양지(晋陽誌)』 권3「열녀조(烈女條)」에서 그 행적을 확인할 수 있다. 1593년(선조 26년) 임진왜란 중에 왜적으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죽었으며, 중종 때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서 마을에 정문(旌門)을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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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이나 가계사항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강조이[姜召史]’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 남편은 보인(保人: 조선시대 군역을 지는 정군(正軍)에게 딸린 경제적 보조자)인 김축(金軸)이다. 남편이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주어 목숨을 구하였다. 진주 자매곡(自梅谷)에 살았다. 조이[召史]는 양반이 아닌 신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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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字)는 중준(仲遵), 호는 이계(伊溪). 아버지는 신촌(新村) 남해준(南海準)[1598~1667]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 권지(權誌)의 딸이다. 처는 아주신씨(鵝州申氏)로 신지의(申之義)의 딸이다. 효종과 숙종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다. 1620년(광해군 12)에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동 월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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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선무랑(宣武郞, 조선시대 종6품의 문관 품계) 남정소(南廷召)의 부인이다. 진주 원당촌에 살았다. 지조가 뛰어나 마을에는 정문(旌門)을 내려주었으며,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이름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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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가계나 활동사항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이름과 효행만이 기록되어 있다. 어머니가 병들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바치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진주 비라곡리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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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황수장(黃壽長)의 아내로, 사비(私婢)였다. 스무 살에 남편을 잃었는데, 상복을 벗지 않고 매우 애통해 해서 몸이 상할 정도였다. 아버지가 불쌍히 여겨서 개가(改嫁) 시키려 하였지만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진주 청원리에 살았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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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각 지방 군현의 촌락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 사창은 중국에서 각 지방 행정단위인 ‘사(社)’에 창고를 세워 기근에 대비한 의창(義倉)과 남송의 주희(朱熹)가 실시한 사창법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제도들을 본받아 고구려 때는 진대법(賑貸法)을, 고려시대에는 의창·상평창 제도를 실시하였으며, 조선시대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사창제도를 실시하였다. 사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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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종교전례를 위한 건물. 1784년에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 신교의 자유가 획득된 1882년까지는 박해시기로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성당은 건립되지 못하고 교인들의 사가나 서당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종교의 자유가 획득되자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들은 박해시대 때 교회와 인연이 깊었던 곳이나 그 인근지역을 구입하여 성당을 건축하였다. 이 때 건축된 성당의 특이한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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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이선(而善)·흡여(翕如), 호는 매죽헌(梅竹軒). 아버지는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이다. 1571년(선조 4)에 성여신의 장남으로 태어나 진주 대여촌에 살았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모촌(茅村) 이정(李瀞)[1541~1613]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아버지와 스승은 모두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들이다. 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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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덕여(德輿). 아버지는 성우(成祐)이고, 어머니는 진주강씨로 강소산(姜小山)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성자량(成自諒), 증조할아버지는 성만용(成萬庸)이다. 부인은 진주하씨로 하충(河漴)의 딸이다. 1469년(예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92년(성종 2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이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 조선시대의 종5품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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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언겸(彦謙). 아버지는 생원(生員)인 오곡(梧谷) 손수령(孫壽齡)이고, 어머니는 진주하씨로 김해부사(金海府使)를 지낸 하경리(河敬履)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사헌감찰(司憲監察) 손억(孫億)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의령현감(宜寧縣監)을 지낸 손약수(孫若水)이다. 1438년(세종 20)에 태어나 진주 이하리(離下里)에 살았다. 음서로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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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군필(君弼), 호는 무송(撫松). 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손광후(孫光後)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다. 오곡(梧谷) 손수령(孫壽齡)의 후손이다. 1531년(중종 26)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 이하리(離下里)에 살았다. 남명(南明)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고 처사(處士)로 지내면서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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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효심이 깊어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사노(私奴)였던 승남은 궁노장(弓弩匠: 활과 쇠뇌를 만드는 장인)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쇠뇌[노(弩)]를 묻어놓은 곳에 갔다가 호랑이가 아버지를 물어갔다. 동행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피하여 달아났지만, 홀로 호랑이와 맞서 싸워 아버지를 구했다. 진주 시천리(矢川里)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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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원래 순창(淳昌)의 사인(士人)이다. 호남에서 옮겨와 진주 덕산(德山)에서 살았다. 사람됨이 기개가 크고 효성스러웠다. 아버지 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 죽만 먹었으며, 밤낮으로 슬퍼하였다.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서 마을에 정문(旌門)을 내려주었으며, 그 효행이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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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종(咸從). 자(字)는 자유(子游), 호는 관포(灌圃)·혼돈산인(渾沌山人). 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지낸 어문손(魚文孫)이다. 할아버지는 별장(別將) 어효원(魚孝源), 증조할아버지는 교도(敎導) 어변질(魚變質)이다. 처는 진주강씨 강인범(姜仁範)의 딸과, 나빈(羅彬)의 딸인 나주나씨가 있다. 1470년(성종 1)에 태어났다. 1492년에 진사시에 합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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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사노(私奴)였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그 행적이 전한다. 아우인 여상(汝祥)을 대신하여 북쪽으로 군역을 수행하러 떠났는데, 이는 아버지가 아우를 가장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대신 군역을 짊어져 아버지를 편안하게 하고자 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정성을 다하여 상을 치렀으며, 아우도 극진히 보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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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아버지 쪽 가계는 알 수 없고, 어머니는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보이는 박인(朴氤)의 천첩 후손이다. 사노비(私奴婢)였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매우 슬퍼하면서, 육식을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먹기를 권하면 형도 먹지 않는데 내가 어찌 먹겠냐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3년 동안 그 생활을 유지하였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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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중촌리 출신으로 병인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 본관은 진양(晋陽). 1822년 10월 13일 아버지 정서곤과 어머니 울산 김씨(金氏)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세례명은 안토니오이다. 1822년 진주 허유고개 중촌(현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중촌리)의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정찬문은 강한 절개와 지조 있는 인품을 지닌 인물로 전해진다. 정찬문은 천주교 신자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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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사노(私奴)였다. 어머니가 나이 들자 봉양하는데 효성을 다하였고, 돌아가시자 장사에 정성을 다하였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는 사죽리(沙竹里)에 살았다고 되어 있으나, 현재의 위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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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소문리에 있는 성당. 1899년 진주에 최초의 성당인 진주본당이 세워졌을 당시 진주에는 24개의 공소가 있었다. 그 중에서 신자들이 가장 많았던 곳이 소촌공소였다. 소촌공소는 1905년 5월 소촌본당으로 승격되었고, 뒤에 지금의 진주 문산성당이 되었다. 초대 주임신부였던 줄리앙 신부가 1907년 조선시대 감찰방이 있던 부지 2,400여 평을 매입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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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사비(私婢)로, 사노(私奴)인 개동(介同)의 부인이다. 남편이 죽은 뒤에 다른 사람이 정조를 뺏으려 하였으나, 굳게 지켰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는 사죽리(沙竹里)에 살았다고 되어 있으나, 현재의 위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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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진주(晋州). 사인(士人) 하약(河瀹)의 부인이다. 일찍 남편을 잃고 평생토록 머리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 집안이 가난하여 품팔이를 하였으나 제사에는 음식을 풍성히 하였다.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다가,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풍성히 하였다. 또한 염습과 의복을 모두 스스로 지었다. 진주 신당리(新塘里)에 살았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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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녀. 허진(許眞)의 부인이다. 임진왜란 때 아버지가 적에게 해를 당하자 아버지와 더불어 같이 죽었다. 조이[召史]는 양반이 아닌 계층의 부인을 일컫는 말이다. 선조 때 조정에 알려져서 마을에 정문(旌門)을 내려주었다. 『진양지(晋陽誌)』권3「열녀조(烈女條)」에 그 효행이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