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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마을-역사와 언어-지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5005
한자 義新面 斜上마을-歷史와 言語-地名
이칭/별칭 비끼내,빗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금연

[지명]

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사상마을지』를 기본 자료로 하여 작성하였고, 이희춘(남, 사상마을 새마을지도자) 씨의 도움을 받았다.

(골 / 굴)

개락굴 사하리에서 사상리로 가는 중간쯤의 우측 산이다. 옛날에 어린이가 죽으면 이곳에 돌(독)담 장사를 지냈다.

거친들고랑 봉화골 입구 산길 북측 주변을 일컫는다.

굴등 사구지재 올라가는 주변을 말한다.

귀(기)생기골 의신천의 발원지인 덕신산 남쪽 계곡으로부터 사상저수지에 이르는 계곡으로 수림이 좋아 낮에도 어둑어둑하다.

나근태골 작골에서 논수동 ‘땅골재’로 넘는 고랑을 말한다.

도적골 기생기 전나무고랑 밑에 고랑, 옛날에는 도적들이 살았다 하며 도적바위가 있다.

먹바위골 돈님재 위에 먹바위가 있는 고랑이다.

멍골 멍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사상 저수지 위 전답 주변 고랑이다.

버퉁골 사상 저수지 위 옛날 새 절터 뒤편, 사상저수지 위 화장터 주변을 버퉁골이라고 했다.

복(벅)수굴 쌍계교 다리에서 200m 아래 위치하며, 벅수가 세워졌던 곳이라고도 하고(박병창 씨 증언), 첨찰산 양쪽 골짜기의 물이 여기서 만나 겹치는 곳이라 하여 복수굴이라 불렸다고 한다(박경석 씨 증언). 최근에는 빗기내 다리 근처, 운림산방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의 다리 좌측에 수십 종의 벅수가 세워져 있다. 2005년 이후에 이를 복원하여 장승을 세웠다.

봉화(애)골 첨찰산으로 봉화골로 오르면서 우측 건너편의 큰 고랑을 말한다.

부지등 팽팽 바위 아래 사록으로 부도(정견당, 월하당)가 있는 산등이라는 뜻으로 추정된다.

사고지골 사고지재, 즉 옥대로 넘는 고개 고랑을 말한다.

사들이[드래]고랑 당산나무 건너편 동근 뫼 서편 고랑으로 고랑이 있는 전답이 사다리 모양이다. 옥대 중리사람들이 절에 오면서 들락날락하였다 하여 사(寺)들이라 했다고도 한다.

삼성안골 절고랑의 위쪽 고랑으로 삼선암터가 있던 주변을 말한다.

새생기 서당골 건너 돈님재와 용철이 있는 작은 고랑 산 밑이다.

샘축굴 당산 위 하천 주변으로 한천변에 마을 샘이 있었다. 이곳에 연좌 방앗간이 있었는데, 현재 연좌방아는 박경석 씨가 보관하고 있다. 샘물이 마르지 않고 쭈욱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당골 옛날 마을의 서당인 관란제터가 있는 곳이다.

시금골 정삼이 절터 아랫고랑의 이름이다.

싹박골 마을회관 뒷산 동편 고랑으로 싹이 많이 살았다.

웃사고지골 웃사고지재 자근당으로 넘는 고랑이다.

유박굴마을 앞 큰 돌 건너편 산록을 말한다.

작굴 작약(芍藥)동 작골이라 불리며, 현재 사천 관광농원이 있는 고랑이다.

작은개양골 마을회관 뒤에서 돈님재 사이 고랑이다.

작은 탁골 첨찰산을 봉화골로 오르면 우측 건너편에 보이는 작은 고랑을 일컫는다.

절고랑 쌍계사위에서 삼선암에 이르는 계곡으로 주변에 상록수림이 가득하다.

절재골 옛날 유복산 씨 집에서 절재로 넘는 고랑을 말한다.

청석골 쌍계사에서 400여m 오르면 있는 우측 산의 큰 골짜기를 말한다.

큰개양골 서당골에서 절재골 사이에 있다.

큰탁골 첨찰산을 봉화골로 오르면 있는 우측 건너편의 큰 고랑이다.

(동네)

냇가 돔바지 회관이 있는 윗마을 하천변에 있는 촌락을 일컫는다.

무등(동)마을 입구에 위치한 작은 동네로 어린애가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하여 무동이라 했다고 한다.

서당골 아랫마을 뒷산 아래 마을 서당 관란제가 있었던 곳이다.

아랫동네 사상마을의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 회관 아래쪽 마을을 말한다.

웃동네 사상마을 위쪽에 위치한 마을. 회관 위쪽 마을을 말한다.

작골 작약골이라고도 하며, 산에 작약이 많았다고 전한다.

(내[川], 방)

사상소류지 1968년 한해(旱害) 이후 정부의 지원과 마을민의 노동력으로 1972년 12월 31일 준공하였다. 현재는 농업기반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포강터 쌍계사 앞에 일제시대에 소류지가 있었으나 큰물에 유실되었다.

큰돌 사상 저수지 밑 100m 지점의 보에서 물을 대는 마을 앞 큰 들 수로를 말한다.

항(項)냇가마을 입구 다리가 있는 하천으로, 의신천의 우항천에서 따온 이름이다.

(들)

가리시돌 당산나무 앞에서 물 대는 들.

개올 사다리 고랑 올라가는 입구 주변.

큰들, 구로시 마을 앞 들판의 중심부로 큰돌 주변으로 물 대기가 가장 좋은 곳이다. 일 년 열두 달 물이 구렁구렁하게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옛날에는 상(上) 옥답이었다.

동계들 운림동 앞들을 말한다.

뒷들 사다리 고랑 올라가는 주변을 말한다.

득부(得富)들마을 앞 당산 앞들. 복수굴 보(洑)에서 물대는 들판을 말한다.

못태 쌍계사 앞 병풍바위 밑의 논으로, 지금은 일부에가 주택이 건립되었다.

새 돌 항냇가 보(洑)에서 물을 대기 위하여 새로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항냇가 다리 위에 보가 만들어져 물 대기가 좋고 물이 풍부하다.

석질 항냇가 건너 남쪽 들이다.

수부장 쌍계사 입구 쌍계교 다리 밑에서 물을 대는 전답으로 물이 가장 부자라는 뜻이다.

이(외)야등 진모시 뜰의 물과 윗 사구지재의 물을 받아 농사를 짓는 큰돌 남쪽 들을 일컫는다.

절앞들 쌍계사 앞의 밭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진모시 청기남에서부터 이야등까지 산 밑으로 길게 늘어진 논을 일컫는다.

청기남 옛날 청련암이라는 암자가 운림산방 건너편 산록에 있어 산 밑의 전답을 청기남이라 부른다.

화장터들 사상 저수지 유지와 아리랑 비 앞들, 옛날 화장터였다.

(바위)

먹바위, 앞먹바위 돈님재에서 수리봉으로 오르면 논이 있는데 이곳을 앞먹바위, 그 뒤를 먹바위라 부른다.

벼락바위, 비행기바위 쌍계사에서 절고랑을 올라가면 200m 정도의 지점에 있다. 이곳에는 1950년대 200여 평 넓은 공간에 삼판 일을 하는 데 밥을 해주는 집이 있었는데, 하루는 비행기가 절고랑 위를 지나갔고 그와 때를 같이해 우측 산위의 큰 바위가 오랜 풍화작용에 의해 온 마을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굴러 내렸다. 온 마을 사람들은 비행기가 떨어졌다고 놀라 올라가보니 거대한 바위가 내려와 있었다. 이후 이 바위를 벼락바위 또는 비행기바위라 하게 되었다.

병풍바위, 팽팽바위 쌍계사 앞 오른편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이다. 윗면이 깎은 듯이 평평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옆에서나 아래에서 보면 병풍을 펼친 듯하다.

삼성(선)암 절고랑 중간쯤에 샘이 있는 주변을 말한다.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민대사의 수행처이다.

싹바위 돈님재 위쪽 싹박굴에 있는데 바위 밑에는 싹이 살던 굴이 있으며, 바위 위에서 싹이 놀았다 하여 불린 이름이다.

얹힌바위 절 뒷산 정상에 있는 큰 바위를 말한다. 산 아래에서 보면 바위 위에 살짝 얹힌 듯하여 금방이라도 굴러 내려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탕건바위 먹바위 위쪽에 있는데 탕건 모양을 하였다 하여 탕건바위라 한다.

(산(山), 봉(峯))

가래봉 갈매봉 사상 마을 앞산(높이, 250m)으로 의신면 옥대와 경계를 이루고 비가 오지 않으면 온 마을민이 시초를 가지고 이 산에 올라 기우제와 함께 불을 피웠다.

덕신산 기생기 안고랑과 두목재 사이의 사천리에서 보면 문필봉이다. 고군면 향동리 주산으로 높이는 401m이다.

북묏등, 동근뫼 갈매봉 아래 둥그스름한 산을 북 묏등, 그 아래를 동근뫼라 한다.

수리봉 첨찰산 북서방에 위치하며 진도읍고군면의신면의 경계를 이룬다. 높이는 450m이다.

용철 돈님재 위쪽의 산을 용철이라고 하는데, 지질에 철분이 많아 용철이라 했다는 설이 전한다.

절 뒷산 쌍계사 뒷산을 이렇게 부른다.

첨찰산 점찰산(占察山) 또는 첨철산(尖凸山) 또는 봉화(애)산이라고도 하며, 높이는 485.2m이다. 점찰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국여지지에 기록되어 조선 중기까지는 점찰산이라 불린 것으로 보이며 『여지도서』진도군에는 첨찰산이라고 기록되어 조선 중기 이후로는 첨찰산으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첨철산은 산의 형태가 뾰쪽하여 그 형태에 따라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진도군의 최고봉으로 산 정상 둘레에 첨찰산성이 있고 동천암, 서천암이 있다.

(고개[재, 峙])

고성재 고군면 고성에서 절고랑으로 넘는 산길이다.

돈짐[님]재 마을회관 뒤편에서 절재로 가는 중간 지점을 돈님재라 한다.

두목재, 두무굴재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고군면 향동, 가계, 모사 마을 주민들이 이 재를 넘어 기생기 고랑과 사상마을을 거쳐 진도읍으로 통했다.

사고(구)지재마을 앞들에서 옥대리로 넘는 재이다.

웃사고(구)지재마을 앞들에서 의신면 청룡리 자근당으로 넘는 재를 말한다.

첫절재, 공알재, 망중절재 진도읍으로 넘어가는 옛길의 첫 번째 재를 첫절재, 가운데 재를 공알재, 진도읍 성죽굴이 보이는 재를 망중절재라 한다.

초상재 옛날 귀생기 고랑을 거쳐 의신면 초상마을로 통하는 산길이다. 비끼내와 초사리가 혼인을 많이 했기에 많이 이용하던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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