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에서 가마타기놀이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 1993년 10월 17일 백곡면 구수리에 사는 방종길[여, 85세]이 부른 것을 서영숙이 채록하여 『진천군지』에 수록하였다. 1행 4음보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창 또는 합창으로 부른다. 진천 지역에서 전해 오는 「가마타기 노래」는 여자아이들이 그리는 혼인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는 유희요이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가암(佳岩)의 ‘가(佳)’자와 산정(山井)의 ‘산(山)’자를 따서 가산리(佳山里)라 하였다. 산정은 갬절이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에 있는 우물’을 뜻하는 한자 지명이다. 산 밑에 큰 우물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도 우물이 남아 있다. 조선 말기 진천군 월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시대 산성.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위치하고 있는 갈월산성(葛月山城)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안성인·홍계남이 의병 수천 명을 모집하여 이 성을 중심으로 싸워 왜군을 대파하였다. 조정에서 이 소식을 듣고 홍계남을 수원부사로 임명했다는 설이 있다. 갈월산성의 건립경위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월(葛月)이라는 지명은 대부분 갈대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갈월은 갈울에 대한 한자 지명으로, 갈울의 ‘갈’은 한자 ‘갈(葛)’을, ‘울’은 ‘월(月)’을 음차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기 진천군 백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노산리·신평리·흑석리·중로리·상로리·서수리를 병합하여...
-
조선시대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한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가사 문학의 대가로 국문학 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성산별곡(星山別曲)」 등의 가사 작품과 시조를 남겼다. 문집으로는 『송강집(松江集)』,...
-
유전을 시조로 하고, 유신주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강릉유씨(江陵劉氏)의 시조 유전(劉荃)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40세손이다. 중국 송나라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참소를 입어 1082년(문종 36)에 동료 학사 7명과 고려에 들어와 경주 기계현(杞溪縣)에 정착하였다. 유전의 세 아들이 각기 본관을 달리한다. 첫째 유견규(劉堅規)의...
-
함제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강릉함씨(江陵咸氏)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익찬개국공신(翊贊開國功臣)에 책록되고 광평시랑평장사(廣平侍郞平章事)를 역임한 함규(咸規)로 알려져 있다. 선계(先系)에 대해서는 중국 한나라에서 왔다는 설과 토착 세력으로 마한(馬韓)의 부족장이었다는 설이 있다. 이후 함규의 후손 함제(咸濟)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峰)·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 증조할아버지는 강인(姜璘)이고,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다. 아버지는 강주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응서(金應瑞)의 딸이다. 부인은 김광수(金光燧)의 딸로 안동김씨이다. 아들은 강선(姜銑)과 강현(姜鋧)을 두었다. 강백년(姜栢年)[1603...
-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서화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광지(光之), 호는 첨재(添齋)·표옹(豹翁)·노죽(路竹)·산향재(山響齋)·표암(豹菴), 시호는 헌정(憲靖). 1713년(숙종 39) 한양에서 태어나 1791년(정조 15) 세상을 떠났다. 시(詩)·서(書)·화(畵)의 삼절로 불렸으며, 식견과 안목이 뛰어난 사대부 화가였다.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고 풍속화와 인물화를 유행시켰으며...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강세황의 신도비. 강세황[1712~1791]은 1772년(영조 48) 61세의 나이로 영릉참봉이 되었고, 그 뒤 한성부판관·남양부사·병조판서 등의 관직을 거쳐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1784년(정조 8)에 천추부사로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정헌대부에 올랐다. 강세황은 79세인 1791년(정조 15)...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 강주(降州)는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을 말하는 것으로, 고려 초기 제정된 이름이다. 995년(성종 14)에 지방관으로 자사(刺史)를 파견하였고, 1005년(목종 8)에 그것이 폐지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청주목에 소속되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1, 청주목(淸州牧)조에 ‘고구려의 금물노군(今...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충비(忠婢). 개덕은 문백면 파재에 살던 유의직 집안의 종이었다. 유의직이 태어나기 5개월 전에 유의직의 아버지가 죽고, 또한 유의직이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어머니 최씨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개덕은 젖먹이 자식에게는 미음을 먹이고 유의직에게는 자신의 젖을 먹여 키웠다. 그 후 개덕은 유의직이 성장하자 채지홍(蔡之洪)에게 학문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되어 활동 중인 그리스도교의 분파. 개신교는 1517년 루터(Luther)의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天主敎, 舊敎]에서 분리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교파를 말한다. 이를 ‘예배당’, ‘기독교’ 등이라고도 한다. 개신교는 처음부터 각각 독자적인 교회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교파로 형성되어 오늘날에는 300...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신리 안골마을에 있는 들. 갱치들은 갱치와 들로 나뉘고, 갱치는 다시 갱과 치로 나뉜다. 치(峙)는 고개를 뜻하나, 갱의 뜻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갱은 갱이를 비롯하여 갱개·갱거리·갱고개·갱고지·갱골·갱기·갱길·갱다리·갱들·갱말·갱재·갱지·갱터·갱티 등 전부 요소로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갱골의 사례를 살펴 갱의 어...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 막골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장송리 산리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거멈고개는 거멈과 고개로 나뉜다. 전부 요소 거멈이 쓰인 지명은 찾아볼 수 없고, 비슷한 어형인 거멍·거메·거무·거문 등이 쓰인 예는 수없이 많다. 거먹바위·거멍독배기·거멍바우·거멍산·거멍터·거메섬·거무내·거무들·거무섬·거무산·거문들·거문배·거문소 등이 그 예이다....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포도. 포도는 유럽종·미국종·교배종 등으로 구분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추위와 병충해에 강한 미국종과 교배종을 재배하며, 대부분은 교배종의 대표 품종인 거봉포도이다. 거봉포도는 4배체 품종으로 포도송이가 크고 씨가 적으며 포도 알은 긴 타원형이다. 무게는 15~18g이며, 육질이 부드럽고 과즙이 많으며 당도가 18~20Brix로 높아 생식용 포...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에서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 때 거북놀이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 1993년 10월 29일 덕산읍 구산리에 사는 이식[여, 59세]이 부른 것을 서영숙이 채록하여 『진천군지』에 수록하였다. 채록된 내용이 매우 단편적이어서 구성 및 형식을 확실하게 짐작하기는 어렵다. 단 2구절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요들이 1행 4음보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죽현리 사동부락에서 거북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여송(李如松)[?~1598]은 명나라 장수로 자는 자무(子茂), 호는 앙성(仰城)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4만 명의 원군을 이끌고 조선에 와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일본군을 격파하여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벽제관(碧蹄館)...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두건리(斗建里)의 ‘건(建)’자와 일송리(一松里)의 ‘송(松)’자를 따서 건송리(建松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행정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건리·하일송리·상일송리를 병합하여 건송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1973년...
-
충청북도 진천군의 건물, 구조물 등을 쌓아 만드는 일 또는 사람이나 물품 등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 인간이 태어나서 평생을 머물다 마지막에 임하는 행위 모두가 건축물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인간 대부분은 평생을 낮에는 사무실에서 밤에는 주택에서 머문다. 이 모든 곳이 건축물이다. 예부터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불리는 진천은 충청북도 중부에 자리 잡고 있다. 고구려시대에...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에 있는 경주정씨의 위패를 모신 사당. 경모사(景募祠)는 경주정씨 정방광(鄭邦絖)과 그 증손 정봉남(鄭鳳男)·정황남(鄭凰男)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정봉남·정황남 형제는 임진왜란 때 모친을 해치려는 왜병을 물리쳐 위기에서 구했다. 특히 정봉남은 부모님의 병환이 위급할 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연명하게 하고 변을 맛보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경제산업은 경제와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제는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산업은 이러한 활동 중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이나 활동 영역으로서 대체로 농업, 공업, 수산업, 임업, 광업 등 유형...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낙계리(洛溪里)의 ‘계(溪)’자와 산직리(山直里)의 ‘산(山)’자를 따서 계산리(溪山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백락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직리·낙계리·신리를 병합하여 계산리라 하고 문백면에 편입하였다. 환희산(歡喜山)[402m]과 국사봉(國師...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 교육 및 기초적인 전문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수업 연한은 3년이다. 고등학교는 일반계 고등학교와 전문계 고등학교로 분류되는데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중등의 보통 교육을 실시하고 전문계 고등학교에서는 기초적인 전문 교육을 실시한다. 진천...
-
918년부터 1392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는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고려는 건국 후 후백제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특히 고려와 후백제와의 대결은 양국의 접경지대인 보은·회인·문의·청주·제천·충주 일대의 충청북도 지역과 상주·김천·성주 등지의 경상북...
-
충청북도 진천군의 공적 이익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공공기관은 국가 행정 기관, 지방자치 단체, 기타 공공 단체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관으로서 「초·중등교육법」 및 「고등교육법」이나 기타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각 급 학교, 「정부투자기본관리법」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정부 투자 기관,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특...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연구 또는 개발되고 있는 과학과 기술의 총칭.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으로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의미하나 좁은 뜻으로는 자연과학을 지칭한다. 그리고 기술은 과학의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자연의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은 상호 밀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과학이...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 아버지는 둔곡(遯谷) 곽세익(郭世翼)이다. 곽휘지(郭徽之)는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가 병환에 시달리자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자기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이었고, 상을 당하자 시묘를 살았다. 어머니 상을 당하여서도 역시 묘소를 잘 지켰다. 상을 마친 뒤에는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한수재(寒水齋)...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충청북도 진천군은 상산팔경·평사팔경 등과 같은 산수가 어우러진 명승지, 만뢰산·두타산·덕성산·환희산 등의 명산, 백곡호·초평호 등과 같은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호수, 농원과 같은 휴식 공간, 골프장과 같은 운동 및 휴식 공간, 각종 불교·유교 문화재, 박물관 등 풍부한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토...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유용 광물의 채취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 광업의 역사는 사람이 돌, 찰흙 및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말할 수 있으며 피라미드, 사원, 궁전 및 성곽 등의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업은 19세기 조선말까지 광물의 채굴 방법과 생산 규모에 있어 지극히 빈약한 원시적 형태로 유지해 왔다. 그러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일본의 원료 공급 및 군수품...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민족을 사랑하며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국민 의식을 지닌 자주인, 창의적 사고로 소질을 계발하며 세계화에 대처할 탐구력과 창의력을 지닌 창조인, 기초 학력 배양에 힘쓰고 배운 바를 성실히 실천하는 능력을 지닌 실력인, 과학·기술교육에 충실하고 정보화 시대에 걸 맞는 자질을 지닌 기능인, 건전한 생...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모임과 미사 및 공동체 묵상을 통해 하느님의 교리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2년 5월 31일 진천천주교회의 공소로 광혜원공소가 설립되었고 1967년에 5월에 경당이 낙성되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2000년 11월에 만들어졌다. 대지면적 8,611㎡...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 있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소속 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는 프로테스탄트 오순절계의 한 교파로 보통 순복음교회라고도 한다. 1914년 미국에서 조직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박성산(朴聖山)·배부근(裵富根) 목사가 일본에서 돌아와 오순절 신앙 운동을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1945년 광복 이후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체스넛 선교...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여행자의 편의를 돕는 광혜원(廣惠院)이 있던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역(驛)과 역 사이에 두어 공무를 보는 벼슬아치가 묵던 공공 여관이다. 조선 말기 진천군 만승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파궁리·상리·중리·금천리, 충청북도 음성군 사다면 중동, 경기...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서 뱃사공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광혜원리 뱃사공 이야기」는 충청도[현 충청북도]와 경기도의 접경지대인 강을 사이에 두고 생겼던 신임 관찰사와 예절 바르고 마음씨 착한 어느 뱃사공에 대한 교훈담이다. 이를 「어느 뱃사공의 이야기」라고도 한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행정구역. 조선시대에 여행자의 편의를 돕는 광혜원(廣惠院)이 있던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역(驛)과 역 사이에 두어 공무를 보는 벼슬아치가 묵던 공공 여관이다. 조선 말기 만승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 죽산군(竹山郡) 남면(南面) 일부를 편입하여 광혜원리·실원리(實院里)·구암리(鳩岩里)·...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 있는 광혜원면 관할 행정 기관. 광혜원면사무소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광혜원면은 본래 진천군의 지역으로 만디의 이름을 따서 만승면(萬升面)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기도 죽산면 남면 일부를 편입하여 광혜원(廣惠院...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서 매월 3일과 8일에 개시되는 오일장. 2008년 12월 31일 기준 광혜원장터에서 마을 지명이 유래된 장기1리에는 123가구에 총인구 269명[남 129, 여 140], 장기2리에는 125가구에 총인구 252명[남 137, 여 115] 등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는 조선시대 여행자들의 편...
-
피위종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진천군지(鎭川郡誌)』에 따르면, 괴산피씨(槐山皮氏)는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고려에 안렴사로 왔다가 귀화한 피위종(皮謂宗)을 시조로 하며, 홍천(洪川)·단산(丹山)·충주(忠州)·괴산·청안(淸安)으로 갈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정미보(丁未譜)』에는 금자광록대부 신경위 대장(金紫光祿大夫神慶衛大將)으로 공민왕...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진천군 남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동(校洞)·탑동(塔洞)·학당리(学堂里)를 병합하여 교성리(校成里)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1973년 진천면이 진천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진천읍 교성리가 되었다. 문안산(文案山)[415m]...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삼국시대의 진천 지역은 삼국이 접경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 영역 속에서 삼국의 교육 제도와 문화적 영향을 받았으리라 보여 진다. 고구려는 각 지방에 사립 학교인 경당을 세워 평민의 미혼 자녀들에게 독서와 궁술을 익히게 하였으므로 고구려의...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 수단 및 관련 시설. 충청북도 진천군은 중부고속국도 진천인터체인지를 통하여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등과 연결되고 특히 중부고속도로를 통하여 서울 및 수도권, 청주·대전 등의 대도시와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진천군 발전에 기폭제가 되었다. 한편 진천군에는 철도는 통과되고 있지 않으나 인접한 증평군에는 충북...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신앙 공동체. 교회는 주로 기독교의 경우에 사용되며 예배당·성전이라는 용어도 쓰이나 이때는 건물 자체만을 뜻한다. 특히 천주교에서는 건물에 대한 호칭일 경우 성당 혹은 본당이라는 용어를 통용했기 때문에 흔히 교회는 개신교의 집회 장소에 한정해서 쓰였으나 최근에는 가톨릭에서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교회의 의미는 ‘주님께 속한 것...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3개 마을을 병합하고 굴티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굴티 또는 구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문방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구리·외구리, 덕문면 차상리 일부를 병합하여 구곡리라 하고 문방면과 백락면의 이름을 딴 문백면에 편입하였다. 남서쪽으로 양천산(凉泉山)...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에 있는 상산임씨 세거지. 구곡리(九谷里)는 원래 구산동(龜山洞)으로 불린 곳으로 구곡리에서 평산리로 넘어가는 굴고개[일명 굴티]를 기준으로 내구와 외구로 나뉜다. 구산동이란 지명도 굴고개에서 유래하였다고 여겨진다. 상산임씨(常山林氏) 시조 임희(林曦)는 신라 말 진천 지역의 호족으로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마을 명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곡리 전설」은 왜구들이 거북선을 활용한 전법으로 이순신 장군에게 참패한 임진왜란 당시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지우려고 일제강점기에 구산동(龜山洞)이라는 마을 명칭을 거북 구(龜)에서 아홉 구(九)로 바꾸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천군지』에 수록...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구전되어 오는 구비문학. 구비전승(口碑傳承)은 진천 지역에서 일반 민중에 의해 글로 기록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문학이다. 이를 구비문학·구전문학·구비전승문학·민속문학 등으로도 부른다. 구비문학은 말로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한 원시시대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문학이다. 진천의 구비문학 역시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 온...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진천군 산정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개미실 또는 구산이라 불렀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구리·상구리·동산리·도장리를 병합하여 구산리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알랑산[209m] 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어 있고, 한천천(閑川川)이 남북으로 흐른다. 나지막한 구릉지가 많은 편이며, 기후가 온난하고...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곡초등학교 뒤쪽에 있는 마을을 구수골 또는 구수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삼국시대 김유신(金庾信) 장군이 군사 훈련을 하면서 말에게 먹이는 죽 그릇을 아홉 군데에 설치하였다 하여 구슬 또는 구실이라 하였다가 구수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구수는 구유의 방언형으로 중세 국어 ‘구’로 소급된...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며 생긴 지명으로, 구암리(鳩岩里)는 구항리(鳩項里)의 구(鳩)자와 중암리(中岩)의 암(岩)자를 따서 생긴 지명이다. 구암리는 본래 만승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구항리·무수리·중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구암리라 하였다. 2000년 1월 1일 만승면이 광혜원면으...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구암리 덕성산에서 발원하여 이월면 내촌리 남쪽에서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구암천(鳩岩川)이 흐르는 구암리는 본래 진천군 만승면(萬升面)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구항리(鳩項里)·무수리(無愁里)·중암리(中岩里) 일부를 병합하여 구항의 ‘구’자와 중암의 ‘암’자를 따서 구암리라 하고 만승면에 편입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진암리 사곡마을에 있는 벼랑. 구정벼루는 구정과 벼루로 나뉜다. 구정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은데, 구정벼루를 비롯하여 구정골·구정들·구정목·구정봉 등에서 보듯 지명의 전부 요소로 비교적 적극적으로 쓰인다. 뜻은 대체로 아홉 개의 샘[九井], 아홉 개의 정자[九亭], 구정[좌우 양쪽에 폭이 넓은 줄을 걸고 한쪽에 열여덟 사람씩 두 줄로 메는...
-
이상설(李相卨)은 1870년 음력 12월 7일,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아버지 이행우(李行雨)와 어머니 벽진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순오(舜五), 호는 부재(溥齋)이다. 고려 말 대학자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23대손이다. 이상설은 1876년 6세 때 승정원동부승지 이용우(李龍雨)의 양자가 되어 서울...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경계에 있는 산. 국사봉(國師峰)[360m]은 국사(國師)와 봉(峰)으로 나뉜다. 국사는 보통 국사당(國師堂)을 가리킨다. 국사당은 곧 서낭당으로 서낭에게 제사하기 위한 제단인데, 지방에 따라 조금씩 명칭이 다르다 성황당(城隍堂)으로 불리거나, 전라남도에서는 할미당, 경상북도에서는 천황당(天隍堂), 평안도에...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명암리는 백곡면 면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모두가 한 마을이지만 윗마을을 명심, 중간 마을을 양달말, 아랫마을을 동암말이라고 한다. 또한 골짜기가 매우 깊고 항시 맑은 물이 흘러 바위가 깨끗하였기 때문에 명암(明岩)이라 불렀다 한다. 국사봉산신제는 마...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한국 역사에서 시대구분의 기준은 시간적 의미에서 보면, 고려 이전을 고대, 고려를 중세, 조선을 근세, 문호개방 이후 일제강점기를 근대, 그리고 해방 이후를 현대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자 한다. 물론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라는 용어는 단순한 시간의 전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회발전 즉 고...
-
조선 후기 이후연이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있던 금계양유에서 관찰사를 맞이하며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만오(晩梧) 이후연(李厚淵)[1798~1863]은 광평대군(廣平大君)의 14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의수(李義守)이다. 그는 학자로서도 명망이 있었지만, 특히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효행이 지극하였다고 전해진다. 유고집으로 『만오집(晩梧集)』이 전한다. 만승면[현...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금곡(金谷)의 ‘금(金)’자와 각곡(角谷)의 ‘곡(谷)’자를 따서 금곡(金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만승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각곡리·점촌리·마차리·용소리·내금천리·외금천리를 병합하여 금곡리라 하고 만승면에 편입하였다. 2000년 1월 1일 만승면이...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금한리(琴閑里)의 ‘금(琴)’자와 이곡리(栭谷里)의 ‘곡(谷)’자를 따서 금곡리(琴谷里)라 하였다. 금한은 서원말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마을로, 마을 지형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모습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또는 뒷산 줄기가 거문고 줄처럼 내려와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곡은 서원말 정북쪽에 있...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종교적·도덕적인 이유로 사용을 금지하거나 꺼리는 표현. 어느 사회든 인간의 관계 속에서 입으로 내기에 꺼리는 말이나 기피하는 행동이 있게 마련이다. 금기어는 좁은 의미로는 언어 표현에만 국한되지만, 넓은 의미로는 기피하는 현상이나 행동을 표현하는 말까지 포함한다. 좁은 의미로서의 금기어 중 가장 일반적인 유형은 불쾌한 것을 연상시키는...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금성리(錦城里)의 ‘금(錦)’자와 주암리(株岩里)의 ‘암(岩)’자를 따서 금암리(錦岩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서암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성리·휴암리·주암리를 병합하여 금암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197...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금융 기관 및 금융 현황. 금융은 경제상 자금의 수요·공급 관계, 즉 가치 이전의 수단으로서 통화(通貨)의 순환에서 발생되는 자금의 유통을 말한다. 즉 가계, 기업, 정부 등의 경제 주체가 자금 모집을 통하여 자금을 배합하고 사용하여 생산하는 자금 유통 모두를 일컬어 금융이라고 한다. 그리고 경제 주체 사이에 금융이 이루어지는 채권 및 채무 관계의...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서 허적의 별장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금천 전설」은 허적(許積)[1610~1680]이 별장을 지을 때 우물을 파면서 다른 우물들처럼 돌로 만들지 않고 쇠[金]를 이용하였다고 붙여진 지명유래담이다. 금천(金泉)은 당시에 귀했던 쇠를 사용해서 우물을 만들었으니 호화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의미를 담고 있다. 1994년 진천군지편...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기지리(機池里)의 ‘기(機)’자와 화전리(花田里)의 ‘전(田)’자를 따서 기전리(機田里)라 하였다. 기지는 선옥 남쪽에 있는 마을로, 1914년 이전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틈미실 또는 트미실로 나오며, 기지(機池)라는 한자 지명이 대응되어 있다. 마을이 마치 베틀 모양과 같고,...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정 기간의 평균 기상 상태. 우리나라 중부 내륙에 자리 잡고 있는 진천군의 연평균 기온은 중부 지방의 평균 기온 10℃와 비슷하다. 1971~1990년까지 20년 동안의 최고 기온 극치는 1984년 8월의 36.7℃, 최저 기온 극치는 -24.7℃로 기온의 교차는 무려 59.8℃에 이른다. 기온의 교차가 가장 작은 수치는 1...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서 김유신 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길상사 이야기」는 김유신 장군 위패와 영정을 모신 진천 길상사 터와 사당에 관한 유래담이다. 진천 길상사는 진천 도당산에 있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한 흥무대왕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으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1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신라시대부터 김유신...
-
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순흥(順興). 남편은 김녕김씨(金寧金氏) 김경세(金景世)[?~1636]로 인조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주박(主薄)의 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남한산성 방어군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하였다. 김경세 처 순흥안씨는 병자호란으로 남편이 전장에 나가게 되자 당나라에서 나는 삼중으로 된 붉은 실로 남편의 옷섶을 꿰매어 표시를 하였다. 남편이 전쟁에서 패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일제강점기 유학자 김긍현의 불망비. 김긍현(金肯鉉)은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금한에서 출생한 유학자로, 1923년 초평초등학교 설립 당시 4,000평의 부지를 기부하여 학교 설립에 공이 큰 인물이다. 김긍현 불망비는 초평초등학교 설립 당시 부지가 확보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전답을 희사한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2...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김기선(金基先)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머니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여든 살이 된 어머니가 실명하여 거동이 불편해지자 수레를 만들어 매일처럼 태우고 다니며 운동을 시켜 드렸다. 또한 날마다 천신께 어머니의 건강을 빌어 어머니가 아흔까지 장수하도록 하였다. 어머니가 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상촌 김자수(金自粹)의 8세손이고, 전라·충청·경상·해서 관찰사를 지낸 공평공(恭平公) 김영유(金永濡)의 6세손이다. 고조는 김홍필(金洪弼)이고, 증조는 숭의전참봉을 지낸 김자(金磁)이다. 할아버지는 경상도병마절제사를 지낸 김연경(金延慶)이고, 아버지는 장예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였던 김립(金岦)이다. 김내현(金...
-
충청북도 진천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자수(字修), 호는 모암(慕庵). 아버지는 김천익(金天益)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김덕숭(金德崇)[1373~1448]은 지금의 황해도 개성[옛 송도]에서 태어났다. 고려가 망하자 송도판윤으로 있던 아버지를 따라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 추자(楸子)마을에 정착하였다. 1393년(태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수은(樹隠) 김중한(金中漢)의 13세손이다. 김두석(金斗錫)은 평생 동안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자신의 나이가 예순이 넘은 노인이 되어서도 겨울이면 아버지의 옷을 따뜻하게 입혀 드렸고, 아버지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면서 간호를 하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 김두석의 효성을 관찰사에게 알렸다....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료인. 본관은 김해(金海). 고조는 김집(金鏶)이고, 증조는 김달한(金達漢)이며, 할아버지는 김상일(金相一), 아버지는 김태로(金泰魯)이다. 어머니는 전주유씨 유일양(柳逸養)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권씨 권종우(權種雨)의 딸이다. 김만희(金萬熙)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독실하였으며, 김혁신(金赫信)의 문하에서 경사를 공부하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백승(伯承). 아버지는 문천군수 김학민(金学敏)이다. 김병구(金秉九)[1809~1871]는 1840년(헌종 6) 성균진사에 장원급제하였다. 아버지가 여러 달 동안 병이 위중하여 입맛을 잃고 먹지 못하다가, 2월 한겨울 어느 날 살구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김병구는 살구를 구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살구...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김사눌(金師訥)은 부모님이 병중에 있을 때 변을 맛보며 치료했으며,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먹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이후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6년간 시묘를 했다. 고을 원님이 김사눌의 효행을 널리 알리고자 표창을 하려고 했으나 극구 사양하였다. 그러자 원님은 “산 아래 있는 사람이 산 위에 올라가 말하기를 자기가 제일 높다고...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문울(文蔚), 호는 절정. 아버지는 고려 후기의 무신 총랑 김광갑이다. 김사혁(金斯革)은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피난하는 등 위기에 처하였을 때 이들을 막은 공으로 이등공신이 되었다. 부모와 처에게 봉작하고 아들에게 7품 관직을 주었으며,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였다. 1376년 왜구가 부여를...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에 있는 고려 후기 강릉김씨 진천 입향조 김사혁을 기리는 비. 김사혁(金斯革)[1320~1385]은 강릉김씨 진천 입향조로, 호는 절정(節亭)이다. 1345년(충목왕 1) 음서로 대관서승(大官署丞)이 되어 관계에 입문한 이래 병부낭시중과 계금위 등을 거쳐 동북면행영절제부사로 홍건적을 물리쳤고, 이어서 전라도원수와 양광도병마대원수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鑛山). 아버지는 전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지낸 김질원(金質元)이다. 김상하(金尙夏)가 활동하던 시기는 광해군 대로 정치적으로 혼탁한 시대였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중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적장자가 아니고, 명의 책봉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세자를 바꾸자는 논의가 척신과 소북 세력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에 이이첨(李爾瞻...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按廉使) 김사렴(金士廉)의 13세손이다. 김상환(金相煥)은 부모님이 병들자 변을 맛보며 병의 경중을 살폈고, 병세가 위중하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이에 주위의 선비들이 영읍(営邑)에 김상환의 효행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
삼국시대 만노군(萬弩郡) 태수를 역임한 신라의 귀족. 본관은 김해(金海). 일명 김소연(金消衍).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12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주군주(新州軍主)를 역임했던 김무력(金武力)이며, 아내는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손녀인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아들은 삼국 통일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김유신(金庾信)이고, 딸 문희(文姬)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비가 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의 열녀. 김업복(金業福) 처 이씨는 20세에 결혼하여 가난한 시집 형편에도 시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시아버지 김순악(金巡岳)이 괴질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하루를 더 연명하게 하였다. 그러나 끝내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너무나 슬퍼하여 주위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 남편 김업복 마저 갑자기 병이 났는데...
-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국가유공자. 본관은 안동(安東),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서 김규원(金圭源)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1951년에 사망하였다. 김영국은 어릴 때부터 문리에 통하였고 특히 전쟁놀이를 좋아했다. 지금의 삼수초등학교 전신인 신명학원에 다녔다. 가정이 극히 빈곤하여 짚신이 아까워 맨발로 뛰어서 학교를 다니는 근면하고 착실한 학생이었다. 194...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김용발(金龍發)은 아버지가 병환 중에 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추운 겨울 얼음을 깨고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아 끓여 드시게 하니 차도가 있었다. 또한 아버지의 변을 맛보며 병의 경중을 살폈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게 하였다. 유림들이 여러 차례 영읍(営邑)에 김용발의 효행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의 효부. 본관은 정선(旌善). 승정원좌승지에 증직이 된 김우(金瑀)의 부인이다. 정선전씨(旌善全氏)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잘 지켜 부모를 효로 대하고, 여필종부(女必從夫)로 집안의 화목에 힘써 인근의 본보기가 되었다. 부모님의 말씀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고,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드리는 일을 거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갑자기 병...
-
충청북도 진천 출신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끈 장수. 본관은 김해(金海). 가야국 김수로왕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만로군 태수 김서현(金舒玄)이고, 어머니는 입종 갈문왕인 숙흘종(粛訖宗)의 딸 만명부인(万明夫人)이다. 김유신(金庾信)[595~673]은 609년(진평왕 31)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리면서 화랑정신을 수양하였다. 629년(진평왕...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치중(致中), 호는 효운(曉雲). 상촌 김자수(金自守)의 17세손이다. 김윤제(金潤濟)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총명하여 경사(經史)에 두루 능통하였다. 고종 때 궁내부에 들어가서 벼슬을 하였다. 하지만 서양 열강들의 이권 침탈이 격화되고 일제의 침략 의도가 노골화되자 사직한 뒤 고향인 진천군 문백면 사양...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김의조(金義祚)는 어머니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병의 경중을 살폈고, 병이 위중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되살아나게 하였다. 또한 어머니의 병환에 동삼(童蔘)이 좋다고 했는데도 구할 길이 없어 울면서 안타까움을 호소하자 동삼이 생겼고, 물고기를 구할 때는 잉어가 냇가로 뛰쳐나와 효행에 보답하였다. 이렇게 구한 동삼과 잉어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후(而厚). 김익견(金益堅)[1599~1668]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에서 태어났다. 1624년(인조 2)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 이괄이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정치적 무고에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괄의 군대가 한양을 점령하자 인조는 공주로 피난하였는데, 이때 김익견이 임금을 호...
-
조선 후기의 열녀. 최씨는 천성이 조용하고 정숙하였고, 10세 전부터 문밖출입을 삼가하며 오로지 부모를 섬기는 일에만 정성을 다했다. 12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슬퍼하며 상례를 치르는 행동이 어른과 같았다. 18세에 김인진(金鱗鎭)과 혼인하여 김씨 집안으로 출가한 후에는 부도(婦道)를 다하여 남편과 시부모를 받들었다. 수년 후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슬픔 속에서...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김장열·박명섭의 반공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 1945년 해방 후 미·소 양군의 주둔으로 우리나라는 38선을 경계로 분단되었고, 신탁통치 문제로 반탁(反託)과 찬탁(贊託)으로 양분되면서 우익 진영과 좌익 진영이 대립하게 되었다. 진천 지역에서도 양 진영으로 갈라져 사상적 대립을 하게 되었다. 1946년 5월, 가산리 폭동사건이...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의 열녀. 김재룡(金再龍) 부부는 어느 해 여름 큰비가 내려 장마가 지고 마을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 물난리를 피하지 못하고 모두 물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부인 밀양박씨(密陽朴氏)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저는 죽어도 좋지만 군자만큼은 살도록 도와주소서!”라며 침착하게 천지신명께 빌었다. 그러자 물이 곧바로 빠지기 시작하여 김재룡 부부는 살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우천(牛川). 안찰사(按察使) 김사렴(金士廉)의 7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철(金轍)이고, 할아버지는 김석명(金碩鳴)이며, 아버지는 김효건(金孝騫)이다. 외조부는 이박(李璞)이며, 장인은 우희보(禹熙輔)이다. 김적(金適)[1564~?]은 1610년(광해군 2) 치러진 별시 을과에 1등으로 급제한 뒤 이조...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김정길(金廷佶)[1581~?]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12세의 나이로 왜병에게 사로잡혔다. 포로가 된 그가 사흘 밤낮을 울자, 왜병의 장수가 사유를 물었다. 이에 김정길은 고향에 살고 계신 부모님 때문이라고 답변하였는데, 왜병 장수가 글을 아느냐고 묻...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영조 때 진천 출신의 이름난 효자인 모암(慕庵) 김덕숭(金德崇)[1373~1448]의 후손이다. 김종철(金宗喆)[1755~1817]은 타고난 재주와 슬기가 뛰어나고 성격이 엄정했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평상시에도 부모가 즐거워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고, 항시 부모 곁을 지켰으며, 절에 들어가 공부할 때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12세손이며, 판서 김유(金濡)의 10세손이다. 김창덕(金昌德)은 부모님이 병환이 나자 변을 맛보며 간병을 했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인근에서 하늘이 낸 효자라며 칭송이 자자했다. 이에 군내 유림들이 감사에게 김창덕의 효행을 알리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안동(安東). 김사렴(金士廉)의 10세손이며, 형은 김천주(金天柱)이다. 아들로 김성옥을 두었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가 주동이 되어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 탄(坦)을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무신란이 일어났다. 이인좌가 이끄는 반군은 청주성을 함락하고 신천영을 충청병사로 삼은 뒤 북진하여 진천에 이르렀다. 당시 진천현...
-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김태원(金泰元)이다. 김태원 처 이씨는 남편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에 피를 내어 약에 타서 먹이었고, 북두칠성에 지성을 다하여 기도를 올렸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에 군(郡)에서 포상하고, 군의 유림들이 감사에게 진정서를 올렸다....
-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본관은 전의(全義). 남편은 경주김씨(慶州金氏) 김태정(金台鼎)이다. 시아버지가 선천적으로 병이 있었는데 매우 심하여 백약이 무효하자,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달여 먹여 소생케 하였다. 여러 차례 지방 장관에게 추천되었으며, 암행어사로부터 상(賞)으로 비단옷을 받았다. 유림들이 글을 내어 감사(監司)의 포제(襃題)를 받았다....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내촌리에 있는 김현필을 기리는 비. 김현필(金賢必)은 이월면 내촌리 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금구초등학교 설립 당시, 대지를 마련하지 못해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자 그동안 근검절약하여 모은 토지를 선뜻 희사하여 농촌 지역에 배움의 전당을 마련할 수 있도록 덕을 베푼 인물이다. 이에 금구초등학교 설립 후 김현필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김...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6세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지휘하는 왜적은 빠르게 북상하면서 여주와 양근을 거쳐 남한강을 따라 서울로 진격하였다. 한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왜군은 죽산과 용인을 거쳐 서울로 올라왔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5월 2일 동대문에 주둔하였고,...
-
충청북도 진천군의 군조(郡鳥). 진천군의 군조로 지정되어 있는 까치는 즐거운 소식을 알려 주는 길조(吉鳥)로 서로 돕고 살아가는 사랑 어린 군민상을 상징하며, 무리 지어 살아가는 협동심은 군민이 서로 화합하여 내 고장의 발전에 노력하는 군민성을 나타낸다. 군조로 지정된 해는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으며, 1989년 진천군 『통계연보』에 처음 보인다. 몸길이는...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임진왜란 때 채씨의 조상인 박당골이 꿈에서 이곳으로 피난하라는 현몽을 받아 터를 잡아 정착하였다고 하여 꿈마을[몽촌]이라 하였다. 꾸말·구말이라고도 한다. 또는 마을 안에 강습소가 있어 인근 학동들에게 초등교육을 실시하여 문맹을 퇴치함에 따라 몽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 선비가 용왕의 아들이 현...
-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달성(達成). 남편은 의령남씨(宜寧南氏) 남병덕(南秉德)이다. 남병덕 처 달성서씨는 남편이 직업 때문에 수백 리 밖에 나가 있음에도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마을 사람들이 감탄하였다. 하루는 서씨가 일찍 일어나서 시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어젯밤 꿈에 군자(君子)가 새 옷을 입고 문을 나서면서 나를 보고 말하기를 ‘내 지금...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수백(壽伯). 남연년(南延年)[1653~1728]은 1653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과 고부군수를 역임하였으며, 한때 당파 싸움에 휘말려 파직되기도 했다. 다시 벼슬길에 올라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과 황해도우후(黃海道虞候)로 있다가 이산군수·박천군수·안동부진영장(安東府鎭營將)을 역임하...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남연년의 신도비. 남연년[1653~1728]은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박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는데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영장(淸州營將)으로 반란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 일로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으며, 1729년(영조 5)에 숭선군(崇善君)으로 추봉되고...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영의정 충경공 남재(南在)이며, 아버지는 병조의랑을 지낸 남문경(南文景)이다. 아들로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남윤(南倫), 손자로 남흔(南忻)과 남칭(南稱)을 두었다. 남지(南智)[1400~1452]는 17세인 1425년(세종 7) 음보로 사헌부감찰이 되었으며, 그 후 경상도관찰부 경...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말’이라는 마을이 당골 동쪽에 있었다. ‘안말’은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한자화한 지명이 ‘내촌(內村)’이라고도 하는데 ‘안말’에 대한 한자 지명으로 추청된다. 내촌리는 본래 만승면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근어리·구암리·내당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내촌리라 하였다. 19...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가산리에서 용비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노비의 이야기. 「노비가 만들었다는 용비석」은 이대감의 병간호를 지극정성으로 하던 젊은 노비 부부가 주인과 같이 순장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용비석을 만들었으나 대감의 욕심으로 인하여 죽음을 모면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노곡리(老谷里)의 ‘노(老)’자와 서원리(書院里)의 ‘원(院)’자를 따서 노원리(老院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노곡리·서원상리·서원하리·관동과 신흥리 일부를 병합하여 노원리라 하고 이곡면과 월촌면의 이름을 딴 이월면에 편입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노곡마을에 있는 평산신씨 세거지. 이월면은 조선 말기 이곡면(梨谷面) 지역으로 25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촌면(月村面)의 26개리, 만승면(萬升面)의 8개리, 방동면(方洞面)의 매산리(梅山里), 덕문면(德文面)의 중가리(中加里), 음성군 대조면의 미곡리, 사다면의 사산리를 병합하고 이곡의 ‘이’자와...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잡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신잡(申磼)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의 형이다. 1583년(선조 16) 문과에 급제한 뒤 정언(正言)을 거쳐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 한성부윤(漢城府尹),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거쳐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 2등에 평천부원군(平川府院君)으로 봉해...
-
조선 후기 신정기가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논실마을에 있던 노은정 주변의 아름다움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논실마을은 1606년 개성유수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이 머물던 곳이다. 그 경치가 얼마나 빼어났던지 신잡은 이 마을 뒷산에 고색창연한 사당을 지어 노은영당(老隱影堂)이라 칭하고, 그 주변에 노은정(老隱亭)을...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노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노은정의 터. 노은정은 충청북도 진천의 평산신씨 입향조인 신잡(申磼)[1541~1609]의 후손 정묵재(靜黙齋) 신협(申俠)이 건립한 정자이다. 모정 또는 모정골이라고도 한다. 신협은 노은정 앞에 조그마한 연못을 판 후 시냇물을 끌어들여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이후 노은정은 신협의 후손인 신현복(申鉉福)...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와 문백면 구곡리·계산리에서 논매기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 지역에 따라 「논뜯는 소리」, 「논매기 소리」로도 불리는 「논매는 소리」는 논의 잡초를 호미로 매거나 손으로 뜯으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의 하나로, 소리의 종류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사설도 풍부하여 흔히 노동요의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논매기는 지질과 기후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농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농다리 전설」은 고려시대 임연이 효녀를 위해 일시에 농다리를 만들었다는 전설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 그리고 1995년 경기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에서 출간한 『한국문학연구』 제4집에 실린 이영옥...
-
조선 후기 한원진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농다리 위에 쌓인 설경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한원진(韓元震)[1682~1751]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덕소(德昭), 호는 남당(南塘)이다. 송시열(宋時烈)과 권상하(權尙夏)의 학통을 이어 정통 주자학의 입장을 충실히 계승·발전시켰으며, 권상하 문하의 강문8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사람으로 호락논쟁(湖洛論爭)...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경제 활동. 농업은 토지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사육하여 의식주에 필요한 자재를 생산하는 인간의 경제 활동 중 가장 기본이 되는 1차 산업으로 토지와 기후 등 자연 조건에 크게 좌우되며 따라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충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자연마을. 능(陵)처럼 생긴 곽씨의 묘가 있어 능골[陵골]이라 하였다고 전해 온다.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능동이라고도 한다.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의 옥산저수지로 흘러드는 서북쪽의 계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산간 계곡의 작은 분지 지형에 능골이 자리하고 있다. 능골 남쪽에 있는 오미[일명 옥산] 서쪽에는 초...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담배. 담배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알려져 있으며, 멕시코의 마야족이 최초로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605년 나가사키에서 처음으로 담배를 재배하였다고 하며, 우리나라에는 1616년(광해군 8) 일본에서 들어왔다. 당시 일본에서 들어온 담배를 남초(南草)·왜초(倭草)라 하였고, 중국 베이징이나 기독교인들이 들어온 담배를 서초(...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대문리(大門里)는 대삼리(大三里)와 수문리(水門里)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대문리는 본래 진천군 백곡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대삼리와 수문리를 병합하여 대문리라 명명하였다. 북쪽의 장군산[436m]과 남쪽의 만뢰산[612m] 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에 있는 자연마을. 문봉리 용소매기마을 서북쪽 800m 지점에 있는 마을로, 큰 태령산(胎靈山)[421m] 밑에 있다고 하여 대산(大山)이라 하였다. 대산마을이 있는 문봉리는 조선 말기 진천군 서암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문성리·의곡리·율목리·봉평리·용소리를 병합하여 문성과 봉평의 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대한노인회 산하 진천 지역 지회. 대한노인회 진천군지회는 진천 지역 노인의 권익 신장과 복지 향상을 위해 설립되었다. 1968년 5월에 진천경노당을 설치하고 1977년 2월에 대한노인회 진천군지회로 개칭하였다. 그후 1981년 6월에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진천군지부로 개칭하였다가 1989년 4월에 정관 개정에 따라 진천군지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대한성공회 소속 교회. 성공회는 16세기 영국에서 종교개혁의 결과 성립되어 세계 전역에 퍼진 국가별 독립·자치 교회들의 교단으로 영국교회·앵글리컨처치·영국성공회·잉글랜드교회라고도 한다. 선임 주교이자 명목상의 지도자인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다 같이 충성하고 「성공회 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가 규정하는 교리와 의...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대한성공회 소속의 교회. 진천 지역의 성공회는 1907년 영국인 신부 김우일이 진천읍 내리에 한국성공회 진천교회를 창립하고 선교 활동을 전개하면서 시작되었다. 진천성공회는 진천군 각 면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뿐만 아니라 부설 교육 및 의료 시설을 갖추고 인재 양성과 사회 복지 등 문화 활동을 적극 전개하면서 발전을 거듭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대흥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가 폐쇄된 후 중창되었는데, 『상산지(常山誌)』 신편에 따르면 찬의 조중우가 충청북도 진천으로 내려와 머물렀을 때 절을 건축하여 영은사로 일컫고 승도 수인을 두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광무 11년, 즉 1907년(순종 1)조창호가 중건하였다고 하는데 그 관계는 알 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가산리 가암마을에서 효자 덕온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더니바위 전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어머니가 몸져눕게 되자 스님에게 간청한 끝에 약초를 구해 왔지만 이미 임종하신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슬픔에 겨워 바위로 변했다는 효행담이다. 이를 「바위가 된 효자 덕온」이라고도 한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서 덕문이 방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덕문이 방죽 이야기」는 진천군 덕산읍 방골마을의 덕문이 방죽에 얽힌 장자못 전설이다. 덕문이 방죽은 조선시대 역적으로 몰린 임꺽정의 집터를 방죽으로 조성하였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의 방골마을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에 있는 들. 덕문이들은 덕문이마을 앞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덕문이마을은 방죽동네 정남쪽에 있는 마을로 구동네·흔동네·아랫덕문이·아랫마을·하덕(下德)으로도 불린다. 마을 사람들은 덕문(德文)을 글을 배운 사람은 덕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설명한다. 덕문이는 덕문에 접미사 ‘-이’를 붙인 어형이다. 구동네의 구는 한자로 옛...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1945년 일제강점기의 핍박과 위기에서 광복을 맞은 이후 1949년 대한예수교장로회가 복구되었다가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교회는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당하였다. 이 와중에 장로교단이 1951년부터 1953년 6월까지 대한예수교장로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로 분열되었고 이후 많은 교파가 잇달아 분립되었다...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과 음성군 맹동면 일부 지역에 천주교의 복음을 전달하고 미사 집전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덕산성당은 진천성당이 관할하던 덕산공소였다가 2005년 1월 20일에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원래 덕산공소는 1938년 설립되었다가 1960년 8월에 새롭게 설립되었으며 1...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한천리·합목리·인산리에 걸쳐 있는 들. 덕산들은 덕산과 들로 나뉘며, 여기서 덕산은 덕산읍(德山邑)을 가리킨다. 덕산읍은 본래 덕문면(德文面)이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방동면(方洞面)·소답면(所畓面)·산정면(山井面)·북변면(北邊面)·남변면(南邊面) 각 일부와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孟洞面) 일부를 병합하여 덕문면의 ‘덕’자와...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덕문면의 ‘덕(徳)’자와 산정면의 ‘산(山)’자를 따서 덕산면(德山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덕문면 지역으로, 상덕리·차상리·차하리·중리·장척리·신직리·상가리·석탄리·중가리·하가리·두득리·신대리·우리 등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방동면의 매산리·인산리·습지리·고척리·중방리·하방리...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덕산읍 관할 행정 기관. 덕산읍 행정복지센터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은 1914년 이전 13개 리로 구성되어 덕문면으로 칭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방동면, 소답면, 산정면, 북변면, 남변면, 음성군...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서 매월 4일과 9일에 개시되는 오일장. 덕산읍 행정복지센터 부근에는 면소골이라는 자연부락이 있고, 대소면·맹동면·진천읍 등으로 가는 용몽리의 삼거리에는 삼거리 소시장말[일명 우시장말]이라는 자연부락이 있다. 한천장(閑川場)은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한천리 구시울 서남쪽 1㎞ 지점의 구말장터에 있었던 정기시장이다. 한천...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구암리, 안성시 죽산면에 걸쳐 있는 산. ‘비들목’ 뒤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서 기왓장, 토용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산을 경계로 신라와 백제가 대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산 아래 ‘무술’과 ‘비들목’에 신라군이 주둔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고지도나 지리지에서 이 지명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진천군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
-
이돈수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신유보(辛酉報)』에 따르면, 덕수이씨(德水李氏)는 고려 때 신호위중랑장(神虎衛中郞將)을 지낸 이돈수(李敦守)를 시조로 한다. 이돈수의 아들 이양준(李陽俊)은 조산대부(朝散大夫)로 흥위위 보승장군(興威衛保勝將軍)을 지냈다. 이돈수·이양준 부자를 시조로 하는 두 계통의 전승이 있었으나 현재는 이돈수를 시조로 하고...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와 천안시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 진천군의 남서쪽, 환희산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덕유산과 만뢰산 사이에 천안시로 넘어가는 고개들이 위치하고 있다. 천안시와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천안으로 넘어가는 여러 개의 고개가 인접하여 있다....
-
삼덕리는 1구 하덕마을, 2구 옹암마을, 3구 상덕마을, 이렇게 세 개의 자연마을을 통칭하는 행정구역상의 이름이다. 여기서 하덕과 상덕을 지칭하는 덕문이란 이름은, 항상 덕을 쌓고 배움에 끝이 없다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글을 배우고 익히면서 사는 마을이란 뜻이다. 큰 덕(德)자에 글월 문(文)자를 쓰는 덕문이는 마을을 찾아온 손님들이 “아, 이 동네는 글 읽는 소리가 끊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있는 산. 어떤 사람이 제비 명당에다 묘를 써서 집안에 8명의 정승이 나왔는데, 8명이 정승 벼슬을 했어도 산소에 석물을 1개도 세우지 않았다. 하루는 이곳을 지나가던 한 지관(地官)이 산소 자리는 제비 명당이므로 장군석, 촛대석, 비석 따위의 석물을 두어야 제비가 날아가지 않고 계속 정승이 나올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집안사람들이 지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비선골마을에 있는 산. 도덕봉(道德峰)은 도덕과 봉으로 나뉜다. 전국적으로 도덕을 전부 요소로 쓰는 지명 가운데 특히 도덕골이 많다. 도덕골은 도둑골·도독골과 섞여 쓰이면서 여러 가지 유래담이 관련되어 있다. 특히 도둑골은 도둑과 관련하여 ‘도둑이 숨기에 좋을 만큼 후미진 골짜기’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도둑골이 도둑과 관련되...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하도장리(道長里)의 ‘도(道)’자와 하대음리(下大陰里)의 ‘하(下)’자를 따서 도하리(道下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백락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대음리·도장리·판량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하리라 하고 문백면에 편입하였다. 동쪽의 환희산(歡喜山)[402m] 능...
-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이거나 진천 지역에서 벌인 항일 민족 독립운동. 1894년 7월 청일전쟁 전후 일제의 군사적 침략으로 조선이 반식민지가 되자 한민족의 국권 회복 운동은 항일 의병전으로 시작되었고, 1904~1905년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실력 양성을 위한 구국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진천의 의병전쟁은 전기 의병기[1894~1896]에는 소극적인 항일...
-
구한말·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이거나, 진천 지역에서 국가의 독립을 위해 활동한 사람들. 진천은 한반도 중부권의 교통 요지로 구한말 국권 회복 운동으로부터 일제강점기에 3·1운동과 그 후의 무장 독립 전쟁, 그리고 문화 운동 등 다양한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노골화되자 진천 지역에서도 무장 항일 투쟁이 전개되었다. 의병 투쟁 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에 천연적으로 생긴 항아리 모양의 바위인 독바위가 있어 붙인 이름이다. 마을에서 오씨가 번성했을 때는 오독바위라 하였다. 마을의 지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아주 오랜 옛날 마을에 할아버지·할머니·아들·며느리·손자·손자며느리 등 여섯 식구가 다정하게 살았는데, 인심이 무척 후하여 진천을 찾는 행인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에서 독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독바위 전설」은 후덕한 마음씨의 착한 가족이 거지에게 은혜를 베풀고, 그 공덕으로 인하여 우연히 얻은 독바위가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항아리처럼 생겼다는 암석전설이다. 이를 「삼덕리 옹암(瓮岩) 전설」이라고도 한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천군지』와 2004년 충북학...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 칡목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봉항리 돌목이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돌목이고개는 돌목이와 고개로 나뉜다. 돌목이는 돌목에 접미사 ‘-이’가 붙은 어형이고, 돌목은 ‘돌’과 ‘목’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돌은 여러 가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첫째, 돌[石]로 풀이할 수 있다. 돌은 지명의 전부 요소로 빈번히 사용되어, 전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만뢰산 동쪽에 있는 봉우리. 동망태는 진천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만뢰산(萬賴山)[612m]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만뢰산은 본래 만노산(萬弩山, 萬奴山)이었는데 만인의 힘을 입었다 하여 일만 ‘만(萬)’자, 힘입을 ‘뢰(賴)’자를 써서 만뢰산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만뢰산 정상에는 신라시대에 변방을 지키기 위하여 쌓은 만노...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의 모든 종류. 우리나라의 동물구는 구북구(Palaesartic Region) 중에서 동아세아구(East Asian Region)에 속해 있다. 동아세아구는 다시 개마고원 이동의 지역인 북동구(North Eastern Region)와 이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인 주부구(主部區)로 나뉘는데, 진천군을 포함한 충청북도는 주부구에 속한다...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동곡리(東谷里)의 ‘동(東)’자와 성평리(城坪里)의 ‘성(城)’자를 따서 동성리(東城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곡리·자래리·성평리·산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성리라 하고 이곡면과 월촌면의 이름을 딴 이월면에 편입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는 조선시대 원 터. 원(院)은 고려·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을 수 있도록 역과 역 사이에 설치했던 공공 여관이다. 동주원(東注院)은 조선시대 죽산현 관할의 원으로서, 원래는 경기도 죽산군 남면 동주원리에 있었다. 동주원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실원리에 소속되었다. 동주원 터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는 알 수...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에서 어린아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놀면서 부르던 노래. 「두꺼비 노래」는 모래밭에서 모래를 가지고 두꺼비집짓기 놀이를 할 때에 부르던 아동유희요이다. 「두꺼비 노래」는 덕산읍 구산리에서 채집되었지만 인근 지역에서도 볼 수 있으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을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 두꺼비집짓기 놀이는 혼자서 하는 경우는 드물고, 여러...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진천군 산정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대리·두중리·내동상리·내동하리·선옥리·내동신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두촌리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이후 덕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현재 덕산읍에 속한다. 알랑산[209m]과 함박산[339m]이 북동 방향으로 뻗어 있고, 앞쪽으로 아...
-
조선 후기 김득신이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있는 두타산을 배경으로 읊은 오언절구의 한시.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두타산(頭陀山)」은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과 괴산군 도안면의 경계에 있는 두타산의 다양한 모습과 나그네의 현재의 지친 마음을 그리고 있다. 가도가도 길은 한량이 없는데[行行路不盡] 이물 저...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괴산군 도안면, 증평군에 걸쳐 있는 산. 단군(檀君)이 팽우(彭虞)에게 높은 산과 냇물 등 산천을 다스리게 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려 온 산천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되자 팽우가 이 산으로 피해 머물게 되었다. 이때 산꼭대기가 섬처럼 조금 남아 있었다고 하여 머리 ‘두(頭)’자와 섬 ‘타(陀)’자를 써서 두타산(頭陀山)이라...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 산직말마을과 막골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막골고개는 막골과 고개로 나뉜다. 전국적으로 막골이나 먹골이라는 지명이 매우 많으며, 여기서 먹은 막의 변화형으로 볼 수 있다. ‘막’은 한자 ‘막(幕)’으로 보아 ‘전에 산막이 있던 골짜기’, ‘어떤 사람이 움막을 짓고 살던 골짜기’, ‘막을 치고 도둑을 막은 골짜기’, ‘선비 한 사람이...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강당마을에 있는 조감의 위패를 모신 사당. 병자호란 당시 의병장인 조감(趙瑊)은 만노성에서 유창국(柳昌國)과 더불어 통솔자가 없어 방황하는 수천 명의 피난민을 이끌고 만노성에 침입한 외적을 물리친 공을 세웠다. 조감은 사후에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올랐다. 만뢰사(萬賴祠)에 조감의 위패를 모셔 놓고 그 공적을 후손이 기리도록 하고 있다....
-
조선 후기 이운해(李運海)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에 있는 만뢰산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만뢰산(萬賴山)은 진천군의 주봉(主峰)으로, 백곡면 대문리와 진천읍 연곡리를 경계로 하여 진천군 내 하천 분포의 일대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신라시대 김유신(金庾信)의 아버지인 김서현(金舒玄)이 만노군의 태수로서 북쪽으로는 고구려군과 또...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와 진천읍 연곡리 경계에 있는 산. 만뢰산(萬賴山)[611.7m]은 만노산(萬弩山)·금노산(今奴山)·금노산(今弩山)·금물노산(今勿奴山)으로도 불리는데, 고구려시대의 지명을 따서 그대로 붙인 이름이라고 전해 온다. 본래 고구려 땅이었던 진천 지역이 신라 땅이 된 뒤 김유신(金庾信)의 아버지 김서현(金舒玄)이 만노태수로 부임하였는데 북...
-
조선시대 남동희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만암폭포를 보고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만암폭포(蔓巖瀑布)는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양천산(凉泉山)을 중심으로 골짜기마다 흐르는 99곡수(谷水)가 동쪽으로 흘러서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아픈 사람이 이 폭포에서 목욕을 하면 병이 나았다고 전해져 약수탕이란 별칭까지 붙었다고 한다. 하당(荷糖) 남동희는 이러한 전설과 장...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에서 말머리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말머리마을 이야기」는 공연한 내기를 하여 애마를 죽였다는 장사에 관한 전설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 말머리마을[마두마을]에 이방조와...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와 음성군 맹동면을 연결하는 고개. 말이장[말이場]은 구말장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추정된다. 구말장은 덕산장의 다른 이름으로, 덕산읍 용몽리 몽촌(夢村)[구말]과 관련이 있다. 몽촌은 조선 광해군 때 문신 채진형(蔡震亨)이 현몽하여 잡은 자리라 하여 붙은 이름으로, 뜻을 풀어 꿈말이라 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구말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정효창(鄭孝昌)이다. 말즐비(末즐非)[끝비]는 남편 정효창이 수군으로 있다가 사망하자 6년 동안 한결같이 상복을 입고 슬퍼하면서, 음식을 갖추어 시어머니에게 올린 뒤 남편 제사를 지냈다. 1527년(중종 22) 정려가 내려졌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서식하는 비둘기과에 속하는 조류. 몸길이 33㎝, 날개길이 19~20㎝, 부리 1.5~2㎝, 꼬리 12~15㎝ 정도이다. 암컷과 수컷 모두 이마와 머리꼭대기가 잿빛이며, 목과 뒷머리는 잿빛 갈색이다. 양쪽 목옆에는 잿빛 쥐색의 얼룩점으로 이루어진 몇 개의 가로띠가 있다. 어깨깃과 등은 시멘트 색을 띤 검은색이며, 각 깃털의 가장자리는 녹슨 듯한 붉...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 돌여울마을에서 명관 이범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관 이범조 이야기」는 간부와 짜고 본부를 모살한 살인 사건을 명관 이범조가 기지로 해결하였다는 공안담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진천현감 이범조가 민정 시찰차...
-
조선 전기 김안국이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진천향교 명륜당에서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명륜당(明倫堂)」은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이 지은 한시로, 진천향교의 명륜당에 기록되어 있는 『소학(小學)』의 뜻을 새겨 올바른 유자(儒者)로서 태평성대를 이룩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천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건된 교육기관으로,...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인해 생긴 지명으로, 명암리(明岩里)는 명심(明心)과 동암(東岩)의 이름을 따서 생긴 지명이다. 명암리는 본래 진천군 행정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명심과 동암을 병합하여 명암리라 명명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가 1930년 3월 1일 백곡면에 편입하...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명절에 즐겨 먹던 다양한 음식.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명절에 다양한 음식을 해 먹던 풍습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명절음식을 즐기던 풍습은 현대에 오면서 많이 축소되었으며, 지금까지 전승되는 대표적인 명절로는 설날·정월 대보름·단오·추석·동지 등이 있다. 진천 지역의 설날 음식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떡국이 주요 음식이다...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 문백면 계산리, 광혜원면 실원리에서 모를 심으면서 부르던 노래. 「모심는 소리」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공동 작업에서 일의 보조를 맞추고 힘겨움을 덜기 위하여 부르는 농업노동요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모를 심는 작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기능적 측면과 모가 튼튼하게 뿌리내려 잘 자라기를 바라는 기원적 측면을 함께 지니고 있는...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와 문백면 계산리에서 모를 찌며 부르는 노래. 「모찌는 소리」는 덕산읍과 문백면 일대에서 모를 심기 전 모판에 있는 모를 뽑아 모를 심기 좋게 단으로 묶으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이다. 이를 「모찌기 노래」, 「모찌는 노래」 등이라고도 한다. 한 사람이 앞소리를 하면 여러 사람이 뒷소리를 받는 ‘뭉치세 정치세’류의 노래를 부른다. 19...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서 몽촌 방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몽촌 방죽 이야기」는 용왕에게 벌을 받아 3년간 유배된 용왕 아들이 한 선비의 꿈에 나타나 3개월 안에 방죽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선비는 그 부탁대로 방죽과 마을을 조성하여 복을 받고 선비가 조성한 마을에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는 보은담이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음악에 맞추어 율동적인 동작으로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분야. 무용은 인간이 취락 집단을 형성하면서부터 자연에 대한 외경(畏敬)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종교 의식이나 무속 행사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후 왕권 정치가 확립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무용 본래의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궁중에서는 전문 무용가를 두고 궁궐의 연례(宴禮)에...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노원리와 백곡면 성대리·명암리에 걸쳐 있는 산. 무제봉(武帝峰)[574m]은 무제(武帝)와 봉(峰)으로 나뉜다. 무제는 무제골·무제당터·무제동·무제둠벙·무제들·무제바위·무제봉·무제산·무제터 등 지명에 많이 나타나는 전부 요소이다. 여기서 무제는 무우제(舞雩祭)를 가리킨다. 무우제는 기우제(祈雨祭)와 같은 말이다. 즉 ‘하지가 지나...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문방면(文方面)의 ‘문(文)’자와 동덕리(東德里)의 ‘덕(德)’자를 따서 문덕리(文德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문방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미래리·동덕리·창대리·원암리를 병합하여 문덕리라 하고 문방면과 백락면의 이름을 딴 문백면에 편입하였다. 남서쪽에 양천...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6년 7월 18일 전도사 민병억·박봉규·여정철·박영규 등이 문백면 계산리에서 처음 집회를 가졌고 1958년 1월 8일 봉죽리 바사리로 집회 장소를 옮겨 예배를 보다가 1959년 4월 9일 봉죽리 1-2번지로 예배 장소를...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문방면(文方面)의 ‘문(文)’자와 백락면(白洛面)의 ‘백(白)’자를 따서 문백면(文白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문방면 지역으로 22개 통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락면의 상반(上泮)·下泮(하반)·大陰(대음)·석복·분사(分士)·어은(漁隱)·봉암(鳳岩)·산직(山直)·낙계(洛溪)·신리(新里)·하대음...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문백면 관할 행정 기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은 진천군의 남서쪽 약 11㎞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서쪽으로 진천읍, 동쪽으로 초평면, 서쪽으로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남쪽으로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과 접하고 있다. 문백면사무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문성리(文城里)의 ‘문(文)’자와 봉평리(鳳坪里)의 ‘봉(鳳)’자를 따서 문봉리(文鳳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서암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문성리·의곡리·율목리·봉평리·용소리를 병합하여 문봉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지역 사회에 하나님의 뜻을 펼치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4년 12월 4일 진천교회 여선교회의 요청으로 교회를 개척했으며 정상문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당시 이상순의 가정에서 부인 이명희 집사를 비롯하여 윤정숙 집사와 이순예 집사 등의 가정 예배를 시작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어...
-
조선시대 이완수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있는 문안산에 올라가 주변 풍경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문안산(文案山)은 진천읍 행정리에 있는 잣고개의 서편에 있는 산으로, 제(帝)자 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전(茶田) 이완수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꽃은 동쪽에 만발하더니 술은 서편에 있었구나[花俄百陌酒西隣] 깎아지른 듯한 산봉에 올라가니 한계가 새롭구나[及到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와 사석리, 행정리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 산의 모양이 노적가림처럼 생겼다 하여 노적봉이라고도 하나 이 산의 맞은 편 산인 봉화산(烽火山)의 안에 있다하여 문안산이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안산(文案山)으로 쓰고 있고, 또문한산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진천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서쪽의 태령산, 동쪽의 봉화산으...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하는 예술 및 그 작품. 충청북도는 한국 근대문학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작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괴산의 홍명희, 옥천의 정지용, 청원군 남이면의 김팔봉, 보은군 회인면의 오장환, 음성의 이무영, 그리고 진천 지역에서는 조명희(趙明熙)[1894~1938]와 조벽암(趙碧巖)[1908~1985]을...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의 분야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활동 또는 그 작품. 진천군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 활동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그럼에도 지역민들을 위한 연극·영화·공연들이 행해지고 있으며, 관광객을 모으고 지역을 알리기 위한 생거진천문화축제가 개최되고 있어 점차 활성화되어 가고 있다. 진천군에서 이루어지는 연극과 영...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에서 물레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물레질 소리」는 백곡면 일대에서 물레질을 하면서 부르는 길쌈노동요이다. 이를 「물레질 노래」, 「물레 노래」, 「물레 소리」, 「명잣는 소리」, 「명잣는 노래」 등이라고도 한다. 물레질은 실을 자아내기 위해 손으로 물레를 돌리는 작업으로, 일정한 동작을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하기 때문에 일의 고...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물푸레나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활엽 관목. 미선나무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식물로 조선육도목(朝鮮六道木), 원편목(圓扁木), 시과육도목(翅果六道木), 단편목(團扁木)이라고도 한다. 미선나무의 학명 아벨리오필럼 디스티쿰(Abeliophyllum distichum)에서 아벨리오필럼은 댕강나무 잎을 닮아서 유래되었으며, 디...
-
충청북도 진천군의 세계상과 인간상을 미적·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 한반도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오면서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미술 문화가 전개되었으며, 이는 남겨진 유물이나 문헌 자료로 확인되고 있다. 진천군의 경우, 통일신라시대까지는 미술 활동의 흔적이 드물지만 고려시대부터는 불교 미술이나 공예 면에서 중요한 자취들을 남겼다. 삼국시대 이후 고분에서...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미역수마을에서 백련암과 빈대에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미역수 절과 빈대」는 빈대 때문에 백련암이 망하였다는 전설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초기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미역수마을 뒷산에 절이 있었으니, 이...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며 생긴 지명으로, 미잠리(美蚕里)는 미곡리(美谷里)의 미(美)와 잠두리(蚕頭里)의 잠(蚕)을 따서 생긴 지명이다. 미잠리는 본래 월촌면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미곡리·쌍호리·잠두리 및 음성군 대조면 미곡리, 사다면 사신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미잠리...
-
충청북도 진천군의 미호천과 백곡천 등지에서 서식하는 미꾸리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미호종개는 극히 적은 개체가 서식하고 있는 취약종으로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미호종개처럼 종개로 이름이 끝나는 민물고기에는 참종개, 기름종개가 있다. 몸길이는 6~7㎝이며, 몸은 가늘고 길며 꼬리자루의 뒤쪽이 앞쪽보다 더 옆으로 납작하다. 눈 밑에 끝이 둘로 갈라진...
-
충청북도 음성군 부용산에서 발원하여 진천군 이월면·덕산면·초평면을 거쳐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미호천(美湖川)은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호수를 이루면서 흐르는 내’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미호천은 충청북도 음성군 부용산(芙蓉山)[644m] 남쪽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삼성면의 중심부를 지나 대소면에 이르러 본대천(本垈川)...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져 온 신앙. 민간신앙은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종교적 또는 주술적 믿음 체계를 말하는데, 일반 종교처럼 교리나 교단이 체계화된 것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 예전부터 전승되어 오는 자연적 신앙을 의미한다. 자연적 종교란 인간 본연의 종교적 욕구에서 발생하여 민간에서 일상적으로 믿어 온 신앙의 질서와 체...
-
충청북도 진천 지역 주민의 생활인 동시에 생활의 계속, 또는 반복에서 이룩되어 전승되는 민간 공동의 습속. 민속(民俗)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마다 고유하게 전해 내려오는 생활양식이나 풍습·미신·속담·민담·전설·신화 등을 포함한 구전문학, 그리고 음악·무용 등의 문화 양식을 한데 묶어 이르는 말이다. 사회 집단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다른 사회집단, 더 나아가 집단이 속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민중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전해 내려오는 노래. 진천군은 충청북도의 서북부에 위치하면서 동쪽은 음성과 괴산, 서쪽은 충남의 천안, 남쪽은 청원, 북쪽은 경기도 안성군에 접하고 있다. 동부와 남부에는 미호천과 그 지류인 회죽천, 백곡천, 초평천 유역에 넓고 비옥한 평야가 발달되어 있어 도내의 유수한 쌀 생산지로 꼽힌다. ‘생거진천(生居...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여흥(驪興). 영의정을 역임한 여흥부원군 묵헌공 민청(閔清)의 14세손이다. 민진동(閔鎭東)[1660~?]은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영조의 즉위를 두고 소론을 중심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반란을 모의하자, 영조가 반란 모의 세력을 색출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에 이인좌 등이 1728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낙진당(樂真堂),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은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1642년(인조 20)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682년(숙종 8) 참봉 벼슬을 내렸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언제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도덕을 실천하며 학문을 연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부모님 공양...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반남(潘南). 좌의정 박은(朴訔)의 후손이다. 박건양(朴建陽)[1891~1948]은 어려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탓에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장사로 생계를 꾸려 나가면서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폈다. 만년에 연로하신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자리에 눕자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병수발...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평양조씨(平壤趙氏)로 충청병사(忠淸兵使)를 지낸 조맹손(趙孟孫)의 후손 조한승(趙漢昇)이다. 박금년(朴今年)은 시어머니의 병이 위중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였고,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은 시아버지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시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극진하게 3년 상을 치렀다. 박금면의...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일본 유학 시절 항일운동을 하고, 1931년 상해로 망명하여 무정부주의 운동을 하였다.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광복군이 되어 해방될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박기성(朴基成)[1907~1991]은 1924년 일본 동경에서 개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정찬진(丁贊鎭)·홍영유(洪永裕) 등과 함께 자유청년연맹(自由靑...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0년 11월 18일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에서 출생하였다. 청주농업학교 학생으로서 1919년 3월 진천의 만세시위를 준비하다 발각되어 옥고를 치르고 퇴학당하였다. 박승하(朴勝夏)[1924~1973]는 청주농업학교 재학 중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청주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모의하였다. 그러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박윤갑(朴潤甲)은 태어날 때부터 지극한 효심이 있었다. 열 살 되던 해 할머니가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의원이 뱀 기름이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겨울철이라 뱀을 구할 길이 막막했다. 박윤갑이 안타까운 마음에 울면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홀연 커다란 뱀이 나타나, 이를 잡아 달여서 먹이니 할머니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할머니가...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密陽). 1897년(고종 34) 1월 29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7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유학시절 항일운동을 하였고, 졸업 후 『시대일보』·『동아일보』·『조선농민』의 기자, 이사, 간행자로서 항일문화운동을 하였다. 박찬희(朴瓚熙)[1897~1972]는 일본 동경 조도전대학 정경학과에 재학 중이던 1...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박형원(朴逈源)은 본관이 반남(潘南)으로, 타고날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려서도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었으며, 무슨 일이든 부모의 허락을 기다린 후에 행하였다. 부모님의 병환 중에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좋은 약을 구하는 데 힘을 쏟았으며, 병수발을 할 때는 잠시도 곁을 비우지 않고 정성을 다...
-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규와 박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반남박씨(潘南朴氏)의 세계(世系)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潘南縣) 호장(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에서 시작된다. 그는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이지만, 상계가 실전(失傳)되어 혈연 계보와 분적의 연원을 밝히지 못한다. 그래서 반남박씨는 그를 시조라 하지 않고 선조(先...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 방송(放送)은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公衆)에게 전기통신 설비를 이용하여 송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26년 11월에 처음 방송국이 설치되었다. 체신국 청사 방을 빌려 사단법인 경성방송국을 조직한 것이 그 시초이며 이듬해인 1927년 2월 16...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에서 디딜방아를 찧으며 부르던 노래. 「방아 찧는 소리」는 노동요 중 제분노동요에 속한다. 디딜방아는 여러 사람이 함께 보조를 맞추며 곡식을 찧어야 하기 때문에 노래가 필요했다. 디딜방아를 찧는 작업은 주로 여성들의 일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의 삶에 대한 애환이 솔직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93년 10월 17일 백곡면 구수...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에서 밭을 갈며 부르는 노래. 「밭가는 소리」는 덕산읍 일대에서 밭을 갈 때 소를 몰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이다. 이를 「소모는 소리」, 「소모는 노래」 등이라고도 한다. 씨를 뿌려 곡식과 채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해야 할 작업이 굳어진 밭을 뒤엎어 가는 일이다. 이 작업은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소를 이용한다. 그러...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에서 밭을 매며 부르던 노래. 「밭매는 소리」는 밭의 잡초나 돌 등을 호미로 골라내고 농작물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흙을 북돋워주는 작업을 하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로, 지역에 따라 「밭매기 소리」 또는 「밭매는 노래」라고도 부른다. 「밭매는 소리」는 흔히 혼자 밭을 매며 나지막한 소리로 읊조리며 부르므로 가락보다는 사설이 풍부하다....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배티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상촌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배티고개는 조선시대 반역의 뜻을 품은 신천영(申天永)의 무리와 북병사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의 의병이 싸운 고개인데, 신천영이 패하자 그 고개를 ‘패한 고개’라 하여 패티[敗티]라 하였고, 음이 변하여 배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은 믿을 수 없고,...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에 있는 청주교구 진천성당 소속 공소. 백곡공소는 진천군 백곡면 지역에 천주교의 복음을 전달하고 미사를 집전하며,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1년 설립되었으며, 지금의 백곡공소는 1974년 4월 배티공소가 폐소되면서 배티공소가 관할하던 지역을 통합하였다.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 오후 8시에 미사...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장관리와 백곡면 석현리에 걸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백곡천(栢谷川)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서쪽 서운산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용덕리를 지나 석현리에 이르러 서쪽 엽둔재에서 오는 물을 합하고, 계속 동남쪽으로 흘러 진천읍 건송리에 이르러 백곡저수지(栢谷貯水池)를 이룬다. 백곡천은 다시 동쪽으로 꺾여 진천읍을 지...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행정구역. 조선 말기 진천군 백곡면 지역으로 두주리(斗酒里)·유곡리(儒谷里)·노동리(盧洞里)·수문리(水門里)·개죽리(介竹里)·석현리(石峴里)·용암리(龍岩里)·용진리(龍津里)·백학리(白鶴里)·서수리(西水里)·와조리(瓦鳥里)·대삼리(大三里)·신개죽리(新介竹里)·노신리(盧新里)·신평리(新坪里)·흑석리(黑石里)·중노리(中盧里)·상노리(上盧里)·개평리(開坪...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에 있는 백곡면 관할 행정 기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은 진천군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진천군 이월면, 서쪽으로는 충청남도 천안시, 남쪽으로는 진천군 진천읍, 북쪽으로는 경기도 안성시와 각각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백곡면사무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에서 매월 2일과 7일에 열렸던 시장. 백곡장(百谷場)은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에서 열린 장터라 하여 석현장(石峴場)이라고도 불렀다.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돌고개[石峴]의 소금장은 유명하였다. 충청남도 아산만 일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사기 위해 충청 내륙 지방인 괴산·증평·음성 등지에서 돌고개로 몰려들었다. 지금도 백곡면 석현...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서운산에서 발원하여 문백면 은탄리 갈궁저리마을에서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백곡천(栢谷川)이 흐르는 백곡면은 진천군의 서북부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으로 이월면, 서쪽으로 충청남도 천안시, 남쪽으로 진천읍, 북쪽으로 경기도 안성시와 이웃하고 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행정면(杏井面) 명암리(明岩里)를, 1930년 3월...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용덕리·성대리에 걸쳐 있는 산. 백석봉(白石峰)[468m]은 백석과 봉으로 나뉜다. 전국적으로 백석봉·백석골 또는 백송골[白松골, 栢松골] 등은 그 예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한자로 미루어 백석봉·백석골은 ‘흰 돌이 있는 봉우리’나 ‘흰 돌이 있는 마을’, 백송골은 ‘흰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나 ‘잣나무와 소나무가 많은 마을’과...
-
조선 후기 이후연이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던 백원서원에 대해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백원서원(百源書院)은 1606년 개성유수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이 낙향한 뒤 세종 대의 효자 김덕숭(金德崇)과 이여·이부(李阜)를 제향하기 위해 1608년에 세운 서원이다.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으며, 현재는 사적비만이 남아서 서원...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원서원의 터. 백원서원 터에는 현재 사적비가 세워져 있는데, 사적비에 따르면 조선 후기 문신 신잡(申磼)의 주도로 진천에서 학문과 효행이 높았던 인재(麟齋) 이종학(李鐘學), 모암(慕庵) 김덕숭(金德崇), 행원(杏園) 이부(李阜), 송애(松厓) 이여(李畬)의 4위를 모시는 서원을 건립하여 1699년(숙종 25)...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강당마을에서 두 마을의 원한지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뱀재 이야기」는 백곡면에 있던 두 마을이 깊은 원한 관계에 있었는데, 박산의와 성거사라는 두 노인이 이를 풀기 위해 마을 사이의 고개에서 배례(拜禮)를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마을 사람들도 배례를 하게 되어 결국에는 두 마을이 화해했다는 이야기이다. 「뱀재 이야기...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와 백곡면 구수리에서 베를 짜며 부르던 노래. 진천 지역에서 여자들이 베틀을 이용해 베를 짜며 부르는 길쌈노동요의 하나이다. 「베짜는 노래」, 「베짜기 노래」, 「베틀 노래」, 「베틀 소리」 라고도 한다. 삼국 시대에 신라 부녀자들이 길쌈 내기를 한 후 불렀다는 「회소곡」 에서 길쌈노동요의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베짜는 소리」는 오랜 시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벽오(碧梧)와 수암(秀岩)의 이름을 따 벽암리(碧岩里)라 명명하였다. 본래 벽암리는 진천군 북변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수암리와 상리, 사랑리의 각 일부와 남변면 벽오리, 적현리를 병합하여 벽암리라 명명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이...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병조판서 변준(卞儁)의 후손이다. 변영우(卞榮禑)는 어려서부터 행동이 의젓하였고, 효성을 다하여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병중에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꿩을 구하기 어려워 울고 있자 꿩이 집안으로 날아들었다. 이 꿩을 잡아서 먹인 후 어머니의 병이 차츰 나아졌다. 서너 달이 지난 뒤 어머니가 다시 아픈데...
-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과 사리면의 보강산에서 발원하여 진천군 초평면을 지나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보강천(寶崗川)은 보강산(寶崗山)에서 발원하기에 붙은 이름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과 사리면의 보강산(寶崗山)에서 발원하여 증평을 지나 청원군 북이면과 진천군 초평면과의 경계를 이루며 서류하다가 청원군 오창읍 여천리(呂川里) 동쪽에서 미호천(美湖...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서 정월 열 나흗날에 오곡밥을 나누어 먹으며 그 해의 풍년을 비는 풍속. 보름밥 나누어 먹기는 대보름 전날인 음력 1월 14일에 오곡(五穀)[쌀·보리·조·콩·팥] 이상의 잡곡을 혼합하여 지은 오곡밥을 집집마다 나누어 먹으며 그 해 농사가 잘 되기를 비는 세시풍속이다. 이를 대보름밥 훔쳐먹기, 보름밥 훔쳐먹기라고도 한다. 특히 다른 성(姓)을...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입춘에 보리 뿌리의 성장 상황을 보아 미리 보리 수확을 점치는 농사점. 보리뿌리점치기는 양력 2월 초순경 입춘을 전후하여 보리 뿌리의 생장 생태를 살펴보고 그 해 보리농사의 흉풍(凶風)을 점쳐 보는 풍속이다. 이를 맥근점(麥根占), 보리뿌리점, 보리뿌리보기라고도 부른다. 보리뿌리점치기는 보리농사를 짓는 중부와 남부 지방에서 입춘을 전후하...
-
조선 후기 채지홍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을 예찬한 칠언율시의 한시. 봉암(鳳巖) 채지홍(蔡之洪)[1683~1741]은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여 8세에 이미 한시를 지어 세인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성리학적 소양이 높았다. 한때 충청도사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당시의 당파 싸움에 혐오를 느껴 관직에서...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터. 봉암 향현사(鄕賢祠)는 조선 후기 진천의 대표적인 처사인 채지홍(蔡之洪)[1683~1741]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채지홍은 본관이 인천으로, 호는 삼환재(三患齋) 또는 봉암(鳳岩)이다. 16세 때에 송시열의 제자인 수암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 되어 문장과 성리학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당시...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진천군 백락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어은리·봉암리·대상리·석보리·옥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봉죽리(鳳竹里)라 하고, 문방면과 백락면의 이름을 딴 문백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의 환희산(歡喜山)[402m]과 서쪽의 양천산(凉泉山)[350m] 사이에 형성된 골짜기로 성암천(聖岩川)이 흐르고,...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던 산이라고 하여 봉화산, 봉화뚝으로 불리운다. 소나무가 무성한 솔산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이는 지명으로 소을산(所乙山), 소인산(所仁山), 소을산(蔬乙山), 소월산(所月山) 등이 있다. 진천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문안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남쪽으로는 미호천을 둘러싼...
-
임팔급을 도시조로 하고 임계미를 중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도시조 임팔급(林八及)은 당나라에서 용도각 한림학사·행병부상서를 지내다가 참소를 당하자 동료들과 함께 신라로 망명하여 평택현 용포리에 정착하였다. 적병이 침범하자 의병을 일으켜 이를 격파하였고, 그 공으로 평택군(平澤君)에 봉해졌다. 중시조 임계미(林季美)는 고려 현종 때 금자광록대부 평장사(金紫...
-
「진천 영수사 영산회괘불탱(鎭川 靈水寺 靈山會掛佛幀)」은 본래 진천읍 상계리에 있던 백련암(白蓮庵)에서 1653년(효종 4)에 제작되었다가 백련암이 폐사되면서 지금의 영수사로 옮겨 왔다. 초파일 등의 중요한 행사 때 절 마당에 걸어 두고 많은 신도들이 한꺼번에 예불할 수 있도록 사용한다. 진천 지역 유일한 조선시대의 괘불탱으로 삼베에 채색으로 그렸으며 길이 8...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금암리에서 부흥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여송이 한 이인의 말을 듣고 부흥산을 파다가 낭패하였다는 전설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부흥산은 충청북도 진천에서 충청남도 천안 방면으로 6㎞ 정도에 자리 잡고 있는...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불교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敎祖)로 삼고 그가 설(說)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교이다. 부처의 가르침을 법(法)이라고 하므로 불교를 ‘불법(佛法)’이라고도 하고,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뜻에서 ‘불도(佛道)’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의 내용은 교조인 석가모니가 35세에 보리수 아래에서 달마(...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은탄리와 청원군 오창읍 원리에 걸쳐있는 산. ‘불당(佛堂)’은 ‘부처님을 모신 신당’이라는 뜻이고, 이 신당이 있던 산이라 하여불당산이라 불린다. 만뢰산의 지맥이 서부로 이어져 양천산, 불당산을 이룬다. 불당산의 서쪽으로는 국도 17호선이 이어지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미호천이 흐르고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사지(沙池)의 ‘사(沙)’자와 이곡(梨谷) ‘곡(谷)’자를 따서 사곡(沙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평리·반지리·상사지리·중사지리·하사지리·신흥리·도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사곡리라 하고 이곡면과 월촌면의 이름을 딴 이월면에...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사곡리 절터에 관한 문헌 기록은 없지만, 신라의 명장 김유신(金庾信)[595~673]이 어린 시절 이곳에서 수도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중악의 석굴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김유신이 진천에서 태어났다고 하여도 어린 시절부터 경주에서 생활하고 성장하였으므로 이곳을 김유신의 수도처로 보는 데는 무...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며 생긴 지명으로, 사당리(沙堂里)는 사산(沙山)과 당촌(堂村)의 이름을 따서 생긴 지명이다. 사당리는 본래 만승면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당촌리·외당리·산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사당리라 하였다. 1983년 만승면 사당리가 이월면으로 편입되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사석리(士石里)는 여사(如士)와 석박[石磚]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본래 사석리는 진천군 서암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서암리·여사리·석박리를 병합하여 사석리라 명명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이 진천면으로 개칭되었고, 1973...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사정리(沙亭里)의 ‘사(沙)’자와 상송리(上松里)의 ‘송(松)’자를 따서 사송리(沙松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행정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송리·사정리·지구리와 백곡면 두주리 일부를 병합하여 사송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이 진천면으...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사육되는 사슴. 1971년 금곡리의 한 농가에서 부업으로 꽃사슴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 사슴 사육의 계기가 되었다. 진천군의 연도별 사슴의 사육 호수와 사육 두수는 1981년 15호 84두, 1985년 36호 294두, 1990년 122호 951두, 1995년 163호 1,554두, 2000년 226호 2,369두, 2005년 184호 1,947두이다....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 있는 이공승의 영정을 모신 영당. 사양영당(思陽影堂)은 고려 후기 명종 때의 문신인 이공승(李公升)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이공승은 청주 출생으로 첫째가 나랏일이고, 둘째가 개인의 일이라는 신념으로 공과 사를 분명히 가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의종 때에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받은 크고 작은 선물을 모두 물리칠 만큼...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사암리(思岩里)의 ‘사(思)’자와 양암리(陽岩里)의 ‘양(陽)’자를 따서 사양리(思陽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문방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추동·사암리·맹동·율계리·호암리·소가리·양암리·내동을 병합하여 사양리라 하고 문방면과 백락면의 이름을 딴 문백면에 편...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문화유산 보존회. 사우보존회는 1995년 각 문중의 대표 및 총무, 지역 인사들이 뜻을 모아 충청북도 진천군 내의 각 문중과 관련된 문화유산들을 보존하고 각종 제악(祭樂)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사우보존회는 진천군 관내에 있는 사당, 영당, 충신·효자·열녀·효부 등의 정려문 등 24개에 달하는 사당과 비들을 보존 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남산골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관성리 사자골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사자골고개는 사자골과 고개로 나뉘고, 사자골은 다시 사자와 골로 나뉜다. 여기서 사자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 사직(社稷)의 변화형이다. 사직에서 ‘ㄱ’이 탈락하여 사지가 되고, 2음절 모음 ‘ㅣ’가 1음절 모음 ‘ㅏ’로 인해 사자가 된 것이다. 최초의...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빛을 매체로 하여 물체의 상을 감광성 기록 재료 위에 기록하는 방법 또는 그 방법으로 얻은 화상. 진천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진천지부 회원 14명, 대한사진예술가협회 진천지회 회원 24명, 디지털 카메라[수디카] 회원들이 진천의 사진 예술 발전을 위해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각 동아리 단체들은 연중 전시회를 개최하여 진천군민의 예술적...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분포하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진천군에는 만뢰산(萬賴山)[611m]·두타산(頭陀山)[598m]·덕성산(德城山)[519m]·환희산(歡喜山)[402m] 등이 솟아 있고, 백곡천(栢谷川)과 초평천(草坪川) 등의 지류들이 남류하여 미호천(美湖川)으로 흘러든다. 진천군은 예로부터 살기 좋다는 뜻에서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불려...
-
조선 전기 문신 이승소가 진천현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이승소(李承召)[1442~1484]는 조선 성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문신이자 학자로,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펴내기도 하였다. 「산 형세 돌고 돌아」는 이승소가 진천현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지은 한시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수록되어 있다. 혼자서 책상...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매산리(梅山里)의 ‘산(山)’자와 고수리(古水里) ‘수(水)’자를 따서 산수리(山水里)라 하였다. 매산은 중방 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의 모양이 매화와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고수는 중방 안에 있는 마을로, 고수의 어원에 대하여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고수를 고수(鼓手)로 보아 북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산직리(山直里)의 ‘산(山)’자와 장척리(長尺里)의 ‘척(尺)’자를 따서 산척리(山尺里)라 하였다. 산직은 장자울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경주이씨 산지기가 살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장척은 산직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고려 때 임연(林衍) 장군이 살던 곳이라 한다. 학문과 덕망이 높은 장자(長者)가 덕문이방죽 가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행정리에 있는 자연마을. 살구나무 밑에 있는 우물을 ‘살구우물’ 또는 ‘살구물’로 부르던 것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한자로는 행정(杏井)으로 표기한다. 살구우물 지명 유래에서 보듯이 법정리인 행정리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을의 지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마을 입구에 큰 살구나무가 있고 살구나무 아래에는 우물이 있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행정리에서 살구우물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살구우물 이야기」는 길손에게 선행을 베푼 근강할아범과 근강할멈으로 인해 이 부부가 보호하던 우물이 그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거나 과거에 급제하는 명당이 되었다는 명당획득담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덕리·차상리, 북변면의 지석리·분암리, 남변면의 신정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삼덕리(三德里)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천읍에 편입되었다. 차령산맥(車嶺山脈) 줄기가 서쪽으로 무이산[462m]에서 만뢰산(萬賴山)[612m], 남쪽으로 문안산(文案山)[4...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 삼덕리 고분은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산3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산 정상부의 평탄한 지형에 입지하고 있는데, 북서쪽으로는 진천 대모산성(大母山城)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백곡천(栢谷川)이 범람하여 형성한 넓은 들판이 형성되어 있다. 삼덕리 고분과 같은 백제시기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은...
-
조선 후기 박제형이 진천현의 관아인 삼수헌을 소재로 하여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삼수헌(三秀軒)은 진천현감의 손님맞이 응접실인 내동헌(內東軒)을 가리킨다. 작가인 판교(板橋) 박제형(朴齊珩)은 「삼수헌」을 통해 공사간의 분망한 삶 속에서도 삼수헌을 들렀던 인연들과의 정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공사간의 일로 모두가 바쁘기만 한데[公私緣業兩粉忙] 행장에 마음은 바로 잡히...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암리(龍岩里)·상룡리(上龍里)·하룡리(下龍里) 세 마을의 ‘용(龍)’자를 따서 삼용리(三龍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흥리·용암리·하장리·상룡리·하룡리·상원리 일부를 병합하여 삼용리라 하고 이곡면과 월촌면의 이름을 딴 이월면에...
-
1919년 3월부터 4월 초까지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충청북도 진천은 구한말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지역으로, 반제국주의 항일 의식이 국치 이후에도 잠재하고 있었다. 일제의 한국 강점과 무단 통치에 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과 독립만세운동이 서울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진천 출신 조명희[중앙고보]와 홍순복[경...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상목리(上沐里)의 ‘상(上)’자와 계양리(桂陽里)의 ‘계(桂)’자를 따서 상계리(上桂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서암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계양리·하목리·상목리·내산리를 병합하여 상계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
고려 성종 때 별호로 제정된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옛 이름. 신라 말에 진천 지방의 유명한 산으로 상산(常山)이 있었고, 이 산에 세워진 사찰이 상산사였다. 진천의 명칭이 통일신라 이래로 자주 바뀌었고, 특히 후삼국시대에 들어서도 두 차례나 바뀌었음을 볼 때 당시 진천의 명산인 상산이 이 지역의 명칭으로 병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말부터 불려오던 ‘상산’이라는 지명...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향토사 연구 단체. 상산고적회(常山古跡會)는 진천군 향토사를 조사·발굴·연구하여 전승함으로써 진천군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높이고, 민족 문화의 선양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85년 12월 20일 30여 명의 회원으로 발족하였다. 향토사 연구·발굴 및 보급을 위한 공동 활동, 향토사 자료 및 학술 연구 정보의 상호...
-
조선 전기 이황이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던 상산관에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상산관(常山館)」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수의(繡衣)[어사또]로서 이곳을 지날 때, 진천의 옛 지명인 상산(常山)의 객사(客舍)에 들러 이 고장 백성의 삶과 목민관으로서 위정자의 자세에 대하여 경구하는 의미로 지은 뒤 게판(揭板)한 한시이다. 상산관(常山館)은 현재의 진천읍...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있는 진천송씨 선대의 위패를 모신 사당. 송인(宋仁)[?~1126]은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서 태어났으며, 벼슬이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난 때 인종을 호위하다가 척준경(拓俊京)이 이끄는 난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난이 평정된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추증되고 상산백(常山伯)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상가의 ‘상(上)’자와 신대의 ‘신(新)’자를 따서 상신리(上新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덕문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가리·상가리·신대리, 그리고 방동면 인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상신리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진천...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상업은 넓은 의미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화의 사회적 유통 활동을 지칭한다. 따라서 사회적 유통 활동을 촉진·조성하는 금융업, 운송업, 보험업, 창고업 등도 넓은 의미로는 상업에 포함된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상업은 단지 상인의 영리 목적에 의해서 행하여지는 재화의 매매 활동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에 있는 자연마을. 입장골 서북쪽에 있는 자연마을로, 비옥한 전답을 중심으로 새로 형성된 마을이므로 새말 또는 신리(新里)라 하였다. 새말은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연곡제에서 남동류하는 성암천(聖岩川)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뒤쪽에 망월산이 솟아 있고, 서쪽에 새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북쪽에는 햇빛이 가장 먼저 비치는...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새터 또는 신대(新垈)라 하였다. 성석리는 백곡천(栢谷川) 유역의 퇴적 평야에 자리 잡고 있다. 새터에서 서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소의 길마처럼 생긴 질매기들이 펼쳐져 있다. 2008년 12월 3l일 현재 새터에는 총 75가구에 193명[남자 100명, 여자 93명]의 주민이 살고 있...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1970년대에 진천감리교회가 성장하면서 지역 선교로 결실된 것이 문백면의 문상교회와 이월면의 샘물교회이다. 진천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서로 사랑하고 웃고 배우고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5년 12월 10일 설립되었으며 1999년...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샘 주위를 돌며 비를 내리게 해 달라고 지내던 마을 제사. 샘제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가뭄이 들어 곡식의 피해가 심할 때 공동 우물에서 지내는 의식으로, 샘이 마르지 않고 물이 잘 솟도록 축원을 하고 비가 내리게 해 달라는 일종의 기우제이다. 이를 정주제(井主祭), 샘고사, 천제(泉祭), 용왕제(龍王祭)라고도 한다. 진천 지역의 샘제는 마...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금곡리에서 생거진천(生居鎭川)의 유래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와 1997년 서원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서 출간한 『진천의 민속』에 수록되어 있다. ‘생거진천, 죽어서는 용인으로 가거라’라는 뜻인데,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충청북도 진천에 사는 허주부의 딸이 용인으로...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마을을 지켜 주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神堂). 서낭당은 진천군 일대에서 마을 입구나 고개에 위치한 큰 나무 밑에 돌무더기를 쌓거나 위패를 모신 건물을 지어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소원을 비는 장소이다. 이를 성황당(城隍堂)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올리는 제사를 서낭제 또는 성황제(城隍祭)라고 한다. 그러나 성황(城隍)은 중국에서 성(城)을 보호...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에 걸쳐 있는 산. 서운산(瑞雲山)[547m]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과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에 걸쳐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충청남도 천안시와 경계를 이룬다. 산세가 그리 가파르지 않고 바위도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4월 초에는 계곡과 능선에 진달래가 피고, 5월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서운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서한순(徐翰淳)[1848~1909]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예의 바르며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뛰어났다. 집안이 가난하여 끼니마저 거르는 때가 많았으나 부모에 대한 봉양을 정성껏 하였다. 부모님을 모시는데 겨울에는 방을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하였으며,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는 일에도 시간이 어긋나지 않았다. 장성한 후...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하석리(下石里)의 ‘석(石)’자와 장암리(帳岩里)의 ‘장(幛)’자를 따서 석장리(石帳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산정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암리와 음성군 맹동면 하석리·두서리·대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석장리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이후 덕산면이...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현리는 본래 백곡면 지역으로, 돌이 많은 고개가 있어서 ‘돌고개’ 또는 ‘석현’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개평리·용암리·저동리·백곡리·석현리·와조동을 병합하여 석현리라 명명하였다. 서쪽의 만뢰산[612m]과 장군산[436m], 동쪽의 백석봉[468m], 옥녀봉[455m]이...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의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 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 기관의 선임에만 한정된...
-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선사는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로서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이른다. 현재 진천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은 발견되지 않아서 당시의 구체적인 문화상을 가늠해 볼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유적은 미호천 주변의 초평면 연담리에서 빗살무늬토기편 1점이 발견됨으로써 신석기인이 이곳에 거주하였을 가...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는 ‘이야기’의 학술적 용어이며, 민화(民話)·석화(昔話)·민간서사문학 등으로도 통용된다. 설화는 말로 구연된다는 점에서 어느 한 개인에 의해 글로 지어진 소설과는 구별된다. 서사문학이라는 점에서 주관적 정감을 노래한 서정민요나 교훈적 의미가 주가 되는 속담과는 다르고, 산문문학이라는 점에서 노래로 불리는 민요나...
-
충청북도 진천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국교회. 성공회는 16세기 영국에서 종교 개혁의 결과 성립 및 발전하여 세계 전역에 퍼진 국가별 독립·자치 교회들의 교단으로 영국교회·앵글리컨처치·영국성공회·잉글랜드교회라고도 한다. 성공회라는 명칭은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적인 교회’라는 교회에 관한 신앙 고백 가운데 성(聖)과 공(公) 두 자에서 유래한 것이...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인해 생긴 지명으로, 성대리(城大里)는 성대(城垈)와 대명(大明)의 이름을 따서 생긴 지명이다. 성대리는 본래 진천군 백곡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성대리·상봉리·대명동·모리와 행정면의 명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성대리라 명명하였다. 동쪽에 서운산[5...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성대리 성터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던 마을 제사. 성대리 산신제는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성터마을에서 산짐승 피해가 많이 발생하자 이를 막아 달라는 의미와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매년 정월 초사흗날 밤에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이를 산제(山祭), 산고사(山告祀), 동산제(洞山祭)라고도 부른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성평리(聖坪里)의 ‘성(聖)’자와 지석리(支石里)의 ‘석(石)’자를 따서 성석리(聖石里)라 하였다. 성평(聖坪)은 지금의 진천중학교 앞으로 흐르던 냇가 주변에 형성된 들이다. 1444년(세종 26) 세종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하여 청주 초정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있던 냇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이후로 당시 지명이던 북평...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만뢰산에서 발원하여 청원군 오창읍 도암리에서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성암천(聖岩川)이란 이름의 유래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진천읍 사석3리 성암마을[聖岩마을]을 지나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세조가 지금의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에 왔다가 성암마을 만뢰산(萬賴山)[611.7m]과 양천산(凉泉山)에 진을 치...
-
조선 전기 세종대왕이 행차하다 유숙하였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고을 이름.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청주의 초정(椒井)에 행차하다가 하룻밤을 머물다가 갔다고 하여, 북평(北平)을 성평(聖平)이라고 하였다. 1444년(세종 26)에 세종이 안질을 치료하고자 물이 좋다는 청주 내수의 초정에 행차하기 위하여 서울을 떠났다. 세종은 죽산을 거쳐 진천을 지나다가 진천읍내의...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전승적·반복적·의례적으로 거행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주기에 반복하여 거행하는 주기전승(週期傳承)의 의례적인 행위이다. 이를 세시(歲時), 월령(月令), 세절(歲節)이라고도 한다. 일 년 혹은 수년을 단위로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주기전승 의례이기에 시계성과...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서 세종대왕과 성평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하러 초정에 행차할 때 쉬어갔다는 성평의 지명유래담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성평마을은 충청북도 진천에서 서울 방향으로 가면 나오는 진천...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정초에 세화(歲畵)를 붙이는 액막이 풍속. 세화는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매·호랑이 등을 그린 그림이다. 이를 문배(門排)·문화(門畵)라고도 일컫는다. 세화붙이기는 정초에 잡귀를 쫓기 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불공(佛供)을 드리고 받아온 그림을 집안의 벽이나 대문에 붙이는 행위이다. 이는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예방하고 한...
-
조선 후기 정해필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있는 소두머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정해필(鄭海弼)[1831~1887]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경기(景箕), 호는 조암(照庵)이다. 1885년(고종 22) 추천에 의해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을 지냈고, 후에 송달수(宋達洙)의 문인이 되었다. 저서로 『조암집(照庵集)』이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은탄리와 초평면 연담리 사이에 자리한 소두머니[牛潭]에서 매년 10월 용신(龍神)에게 올리는 의례. 소두머니 용신제는 무당들이 소두머니에서 용신굿을 하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이 농악을 앞세우고 농기구로 소박하게 거북을 만들어 마을의 안녕과 소원을 빌었다고 전해지는 데서 전래된 놀이이다. 이를 용신굿이라고도 한다. 어느 지역이든 물속에는...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알기 쉬운 격언이나 잠언. 속담(俗談)은 민중의 일상생활 공간에서 체득된 삶의 지혜나 예지가 비유적으로 서술된 비교적 짤막한 길이의 이야기로서 교훈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혹은 풍자의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관용적 표현물을 말한다. 속담은 교훈과 풍자를 장황하게 전개하지 않고 짧은 문장으로 간결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딱딱하거나 무겁게 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손세업(孫世業)이다. 이씨는 남편 손세업이 죽자 슬프게 곡을 하다가 상여를 보낸 지 3일째 되는 날 밤에 자결하였다.충청도와 진천군에서 포상을 하고, 왕에게 추천을 하여 1883년(고종 20) 정려가 내려져 정문이 세워졌다....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7세손이며, 아버지는 송소(宋玿)이다. 송광도(宋匡度)는 정용낭장(精勇郎將)을 지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따르면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어찌나 지극했던지 중국 황제에게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는 본래 진천군 산정촌의 묘 아래 있었으나 1636년(인조 14)...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의 7세손이며, 할아버지는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송지백(宋之伯)이고, 아버지는 평리(評理)를 지낸 송소(宋玿)이다. 형제로는 전서(典書) 벼슬을 지낸 송광우(宋匡祐), 낭장(郎將)이었던 송광도(宋匡度)가 있다. 송광보가 안성군(安城君)에 봉해지고, 그 후손들은 안성공파로 분파하였다...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를 지낸 송원겸(宋元謙)이다. 형제는 평장사 송순(宋恂)과 전리판서 송희(宋憘)가 있다. 송국첨(宋國瞻)[?~1250]은 1212년인 강종 즉위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직사관(直司館)이 되었다. 1226년(고종 13)...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서 송덕불상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송덕불상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 북진하던 왜병이 덕문이들 앞에서 용화사에 있는 3m 높이의 송덕불상이 움직이는 모습에 위세가 꺾여 파진하였다는 신이담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세증(宋世曾)이고, 할아버지는 송찬(宋贊)이며, 아버지는 사섬시봉사(司贍寺奉事)를 지낸 송응일(宋應一)이다. 외할아버지는 박응현(朴應賢)이다. 아들로 송섬(宋暹), 손자로 송정필(宋廷弼)을 두었다. 송도남(宋圖南)[1576~1627]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사송(四松)의 ‘송(松)’자와 내두(內斗)의 ‘두(斗)’자를 따서 송두리(松斗里)라 하였다. 사송은 사묵의 중간에 있는 마을로, 네 그루의 소나무가 있던 마을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내두는 읍내리 동북쪽 1.5㎞ 지점에 있는 마을로, 텃골과 방말을 합쳐 송두리의 안쪽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조선 말기 진천군 월촌면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생활 유적지. 송두리 유적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시행한 진천-진천IC 도로 확장 및 포장공사 구간 내 구석기 유적에 대한 구제발굴[도로나 댐건설 등 유적파괴 사유 발생시 행하는 발굴]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송두리 유적의 발굴 조사 결과 모두 2개의 구석기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그 가운데 기반암 풍화층 바로 위에...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있는 다리. 진천군의 군도 교량은 26개소로서 총연장은 1.33㎞인데, 이중 이월면의 군도 교량은 5개소로서 총연장은 289m이다. 송림리는 진천군 이월면의 면소재지로서 주민자치센터, 치안센터, 우체국, 시장, 학교 등이 있다. 송림교(松林橋)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군도 교...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송현리(松峴里)의 ‘송(松)’자와 향림리(香林里)의 ‘임(林)’자를 따서 송림리(松林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탄리·향림리·학동·송현리와 만승면 구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림리라 하고 이곡면과 월촌면의 이름을 딴 이월면에 편입하...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송인(宋仁)의 8세손이고, 아버지는 예부상서를 지낸 송광보(宋匡輔)이다. 5촌 당숙인 송면(宋勉)의 양자로 들어갔다. 장인은 김유량(金有良)이다. 송반(宋盤)[1416~?]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영리하였으며 문장과 시에 능숙하였다. 17세 때인 1432년(세종 14) 생원과에 합격하고, 1434년(세종 16)...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증조할아버지는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이고, 할아버지는 송원겸(宋元謙)이며, 아버지는 중서시랑(中書侍郞)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송순(宋恂)이다. 아우인 송언상(宋彦祥)은 대장군으로 몽고침입 때 귀주성과 죽주성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인물이다. 이때 진천 출신으로 무인 집정의 최고 자리에 오른 임연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대한불교 삼보조계종 소속 사찰. 송왕사는 2008년 법진 법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송왕사는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목조기와집으로 된 대웅전과 콘크리트로 지은 단층의 요사채 1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현재 주지는 김점동으로 법명은 법산이다. 진천군상하수도사업소 진입부 인근에 위치하며, 창건된 지가 얼마...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진천송씨의 시조로, 송인(宋仁)이 상산백(常山伯)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상산으로 하였다. 상산이 후에 진천으로 바뀌면서 진천송씨가 되었다. 아들로 송원겸(宋元謙), 손자로 송순(宋恂)·송희(宋憘)·송국첨(宋國瞻)을 두었다. 송인(宋仁)[?~1126]은 지금의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 두루지마을에서 태어났다. 고려 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진천(鎭川). 송인(宋仁)의 17세손이며, 송광보(宋匡補)의 10세손이다. 송재태(宋載泰)는 숙종이 죽음에 임박하여 병약한 경종의 왕위가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하여 노론의 영수 이이명과 독대하여 연잉군[훗날 영조]을 세제에 책봉되도록 하였다. 경종이 승하하자 영조가 노론의 뒷받침으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소론은 정치적 주도권...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진천송씨의 시조인 상산백(常山伯) 송인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송광도(宋匡度)이다. 아들로 송석동(宋石同), 손자로 송일창(宋日昌)과 송일녕(宋日寧)·송일안(宋日安)을 두었다. 송저(宋儲)[?~1445]는 문과에 급제하고 1417년(태종 17) 홍천현감이 되었다가 1422년(세종 4)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4...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할아버지는 송응국(宋應國)이고,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송원(宋瑗)이다. 아들로 송하년(宋河年)을 두었다. 송주빈(宋周賓)[1551~1592]은 1583년(선조 16) 계미년 별시 병과에 10위로 급제하여 벼슬이 호조좌랑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포로로 잡혀 항복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이를 거부하자 왜...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제헌국회 의원에 당선된 정치가. 송필만(宋必滿)[1887~1978]은 1887년 12월 3일 지금의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읍에서 태어났다. 호는 명고(鳴皐)이며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신학문을 배우고자 일본에 유학하여 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이승만과 함께 항일 운동을 하면서 사우스웨스...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에서 음력 정월 초이튿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제사. 수문골산신제는 진천 지역의 만뢰산 계곡의 크고 넓은 바위 밑을 제단으로 삼고 정월 초이튿날 저녁 7시쯤 구수리 수문골마을 성년들이 모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산제’, ‘산고사’, ‘동산제’ 등으로도 부른다. 수문마을은 험준한 산들로 싸여 있어 정...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회죽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해주오씨 문중의 사당. 중국 송나라 때 대학사(大學士)인 오인유(吳仁裕)는 984년(성종 3) 고려에 들어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역임하였는데, 오인유가 해주(海州)에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그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本貫)으로 삼았다. 수양사(首陽祠)는 오인유를 비롯한 해주오씨 25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위패를 모신 사당.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정사로 파견되었으며, 전 생애를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국도 21호선을 타고 진천교를 지나 성석사거리, 신성사거리를 거...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신척리에 있는 김상을 배향한 사당. 숭모사(崇慕祠)는 경주김씨 계림군의 후손이며 조선 인조 때 육부승지(六部承旨)와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강원도관찰사와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상(金尙)과 선조인 예조참의(禮曹參議) 신잡(申磼)의 위패를 모셔 놓고 매년 춘분일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진천군청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광혜원...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있던 조선 후기 사당 터. 본관이 순흥인 안동(安迵)은 1835년(헌종 1)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54세라는 고령으로 인해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을 덕산읍 두촌리에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여 70여 명의 제자를 두었다고 한다. 안동이 67세를 일기로 죽자 제자들이 1849년(헌종 15) 숭현사(崇賢祠)를 짓고 안동과 그의 할아버지인 농애(...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일반적으로 시장은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을 말한다. 상설 시장은 일정 지역 내 하나의 건물 안에서 영업자가 항시 물품의 매매 교환을 할 수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즉 시장은 상품 교환의 발생 빈도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느냐 연속적으로 매일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는 식물의 모든 종류. 식물 지리학자들은 식물 분포에 의거하여 전 세계를 37구계(區系)로 구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화일식물구계[華日植物區系]로 분류되고 그 중에서 한국구(韓國區)에 속해 있다. 충청북도는 식물 분포상으로 한반도 중부아구(中部亞區)에 속하고 군계(群系) 수준으로 보면 중부 한·온대림에 해당된다. 1. 식생의 개관...
-
조선 후기 최명길이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두건마을에 있는 식파정의 경치를 읊은 오연율시의 한시. 식파정(息波亭)은 진천 건송리에서 태어난 이득곤(李得坤)의 호이자, 이득곤이 조선 후기에 세운 정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은 물결과 같아 바람이 일면 욕랑이 이니 마음의 욕랑을 절제하며 잠재워야 한다.”라는 금언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식파정은 주변의 경관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두건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식파정은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두건마을 뒷산 백곡저수지 근처에 있다. 국도 34호선을 타고 가다가 백곡저수지 인근에서 사정리, 사송리 방향으로 접어든다. 그 길을 따라 400m 정도 가면 낚시터로 유명한 사정교가 나타나는데, 사정교를 건너기 바로 전 오른쪽에 ‘식파정 입구’라고 쓰여 있는 작은 안...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신리(新里)의 ‘신(新)’자와 쌍계리(雙溪里)의 ‘계(溪)’자를 따서 신계리(新溪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석리와 만승면 상분토리·상신리·하신리·화산리·쌍계리·어두양리를 병합하여 신계리라 하고 이곡면과 월촌면의 이름을 딴 이월...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평산(平山).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평천부원군(平川府院君)에 봉해진 충헌공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의 6세손이다. 신대기(申大驥)는 낙향하여 향학 발전에 노력했던 신잡의 영향으로 그 역시 지방의 향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신잡이 진천으로 낙향하여 향학 발전에 힘쓰고부터 집안에서 대대로 이에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뉴스, 정보, 오락, 광고 등을 제공하는 정기 간행물. 신문은 통상적으로는 신문사라 불리는 전문 기업이 일간 또는 주간으로 뉴스 보도를 중심으로 하여 발행하는 일반지(一般紙)를 가리키며, 매스커뮤니케이션 미디어[媒體]의 일종이다. 그러나 신문은 일반지 외에도 기사의 내용과 그 신문이 대상으로 삼는 독자 또는 발행 형태에 따라 여러 종류의 신문으로...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영희(申英熙)는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치옥(致玉), 호는 고송(孤松)으로 ‘신영희(申瑛熙)’라고도 쓴다. 1882년(고종 19) 지금의 진천군 이월면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면서 진천군에서도 3월 15일과 4월 2일~3일에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신영희는 여기에 적...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며 생긴 지명으로, 신월리(新月里)는 신리(新里)의 신(新)과 상월리(上月里)의 월(月)을 따서 만든 지명이다. 신월리는 본래 이곡면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외신리·하신리·마흘리·상원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신월리라 하고, 이곡면과 월촌면의 이름을 딴 이...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생활 유적지. 신월리 유적은 2003년 중앙문화재연구원의 발굴 조사 이후 청동기시대 주거지 9기, 원삼국시대 주거지 9기, 토광묘 2기, 수혈유구 6기, 고려시대 이후 토광묘 9기, 조선시대 기와가마 2기, 고상유구(高床遺構) 5기, 생활 유적 1기가 조사되었다. 9기의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미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몽계(夢溪) 한희적(韓希迪)의 후손인 한정준(韓廷儁)이다. 남편은 신의양(申義養)으로 1795년(정조 19)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선전관에 올랐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의 9세손이다. 신의양 처 청주한씨[1778~1804]는 남편이 죽자 장례를 마친 뒤 남편의 허리끈...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백준(伯峻), 호는 독송(獨松). 고려의 개국 공신인 신숭겸(申崇謙)의 19세손이다. 아버지는 신화국(申華國)이며,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첫째 동생은 신급이고, 둘째 동생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결사항전하다 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이며, 셋째 동생은 임진강 전투에서 추격해 오는 적을 막다 전사한 신갈(申硈)이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신대리의 ‘신(新)’자와 옹정리의 ‘정(井)’자를 따서 신정리(新井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남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대리·김금리·옹정리·원앙리·검실리·월교리, 덕문면의 상덕리, 북변면의 지석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정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한국에서 종교는 무속 등 민간 신앙으로 부터 시작하여 유교·불교·도교·천주교 그리고 근대의 개신교와 민족 신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신종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기성 제도 종교와 비교하여 성립 시기가 오래지 않은 새로운 종교를 말한다. 신종교의 발생 원인으로는 아노미(anomie), 상대적...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신대리(新垈里)의 ‘신(新)’자와 가척리(加尺里)의 ‘척(尺)’자를 따서 신척리(新尺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소답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척리·가신리·신대리, 음성군 맹동면 상동리·신촌의 일부를 병합하여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이후 덕산면이 읍으로 승격하...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신평리(新坪里)의 ‘신(新)’자와 상통리(上通里)의 ‘통(通)’자를 따서 신통리(新通里)라 하였다. 신평은 새들에 대응하는 한자 지명으로, 둔던들 위에 새로 조성된 들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상통은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通洞里)와 이웃하고 있어 붙은 이름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기 진천군 초평면에 속했던...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동천(東川), 자는 윤수(允壽)이다. 전통적인 무반 가문의 후예로서 구한말 시위대에서 근무하였다. 군대해산 뒤 만주와 북경, 상해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신흥무관학교 교관이었으며,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신팔균(申八均)[1882~1924]은 판중추부사 신헌(申櫶)의 손자이며 한성부판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신현구(申鉉九)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뜻을 따랐고, 언제나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애썼다. 또한 한 푼의 돈이나 한 말의 쌀이라도 반드시 어버이에게 여쭌 뒤 허락을 받고 사용했으며,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대접함으로써 극진하게 봉양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시묘를 했으며, 아침저녁으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묵정재(墨靜齋). 아버지는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지낸 신한장(申漢章)이다. 신협(申俠)은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부모가 병이 나시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이고, 다리의 살을 베어 먹이기도 하였다. 좌승지(左承旨)에 증직되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신화국의 행적을 적은 묘지(墓誌). 신화국(申華國)[1517~1578]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덕부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아들 신잡(申磼)과 신립(申砬)의 공으로 평주부원군(平洲府院君)에 추증되었다. 신화국 묘지가 소장된 곳으로 가려면 진천읍에서 이월면 방면으로 7㎞쯤 가면 이...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대실리(大實里)의 ‘실(實)’자와 동주원리(東柱院里)의 ‘원(院)’자를 따서 실원리(実院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만승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실리·소실리, 경기도 죽산군 남면 동주원리 일부를 병합하여 실원리라 하고 만승면에 편입하였다. 2000년 1월...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 새텟말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대평리 대산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싸리재는 싸리고개와 더불어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는 지명으로, 싸리와 재로 나뉜다. 싸리는 몇 가지로 달리 풀이된다. 첫째, 싸리나무로 보는 견해이다. 그렇다면 싸리재는 ‘싸리나무가 많은 고개’로 풀이된다. 둘째, 사리의 된소리 어형으로 보는 견해이다. 여기서 사리...
-
조선 후기 박제형이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쌍오정에 올라 주변의 경관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쌍오정(雙梧亭)은 조선 후기 문신 회와(晦窩) 이인엽(李寅燁)[1656~1710]이 벼슬길을 버리고 초평으로 낙향하여 지은 정자로,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이인엽은 이시발(李時發)의 손자로, 숙종이 중전 민씨를 폐하려 하자 재야 서인 인사들과 더불어 반대소를 올...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쌍오정의 터. 쌍오정(雙梧亭)은 조선 중기의 문신 경주이씨 이시발(李時發)[1569~1626]의 후손인 이인엽(李寅燁)[1656~1710]이 지은 정자이다. 쌍오정이란 이름은 이인엽의 할아버지인 이시발의 호 벽오(碧梧)와 증조부 이대건(李大建)[1550~1574]의 호 오촌(梧村)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정월 열 나흗날에 9라는 숫자를 매개로 하여 모든 행위를 아홉 번씩 하던 풍속. 아홉 번 행동하기는 음력 1월 14일에 ‘오곡밥 아홉 그릇 먹기’, ‘나무 아홉 짐 해오기’ 등 9라는 숫자에 관련된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이를 ‘나무 아홉 짐하고 밥 아홉 번 먹기’라고도 한다. 속담에 ‘정월 열 나흗날에는 나무 아홉 짐 하고 밥 아홉 그...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낙경(洛卿), 호는 악포(樂圃). 진사 안형(安泂)의 8세손이다. 안기중(安驥中)[1865~?]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아침저녁으로 부모님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은 떨어지지 않게 하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어버이의 뜻에 따라 행동하며 거스르는 법이 없었...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이자 현모. 민씨의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민경상(閔景祥)이다. 남편은 본관이 순흥(順興)인 안기중(安驥中)[1865~1892]으로, 안형(安逈)의 8세손이다. 아들은 안상욱(安商郁)으로 도회의원과 소수서원장·운곡서원장·묵정서원장·백진서원장과 군유도회장을 역임하였다. 민씨는 남편 안기중이 27세에 별세하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있는 안동김씨 일가의 충의를 기린 정려각. 안동김씨 사충문은 1728년(영조 4)에 김천주·김천장 형제와 그의 아들, 조카인 김성추·김성옥이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맞서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뜻을 기린 충신문으로 안동김씨 문중의 충의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진천 길상사(吉祥祠)...
-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문삼(文三), 호는 가산(可山). 진사(進士) 안형(安泂)의 9세손이다. 안상욱(安商郁)은 상중에 유복자로 태어나 할아버지 슬하에서 장성하였다. 할아버지가 병중에 누워 계실 때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병간하면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지어 왔고, 약을 달일 때는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병간했으며, 어머니가 다...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낙규(洛圭), 호는 다전(茶田). 진사 안형(安泂)의 8세손이다. 안철중(安徹中)[1869~?]은 성품이 온순하고 과묵하나, 과감하였고 재주가 뛰어났다. 12세에 “새들이 저 먼 봉우리에서 지저귀니 산 그림자가 사리지고, 지나는 길손이 다리를 밟으니 물소리가 들리는구나[原峀鳥穿山影去 短橋客踏水聲來]”라는 시...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성종대 전국을 10도(道)로 나누었다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여 5도로 개편하였다. 이때 양주와 광주 소속의 기존 군현과 청주·충주 소속의 군현들을 합하거나 나누어 편성하면서 명칭의 변경이 있었으나, 충숙왕 때는 양광도로 만들었다. 『고려사(高麗史)』권 56, 지(志) 제10 양...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상백리(上白里)와 하백리(下白理) 등을 통합하여 양백리(兩白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백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백리·하백리·이티리를 병합하여 양백리라 하고 백곡면에 편입하였다. 북동쪽으로 서운산(瑞雲山)[547m], 남서쪽으로 장군산(將軍山)[436m...
-
이수광을 시조로 하고, 이수보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양성이씨(陽城李氏)의 시조 이수광(李秀匡)은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와서 문종 때 벼슬에 올라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에 이르렀고, 양성군(陽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양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선 연산군 때 이수보(李秀寶)가 경기도 양성에서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로 이주...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해조류·패류·어류 등을 인공적으로 길러서 채포(採捕)하는 어업. 어업이란 행해지는 수계에 따라 내수면어업, 연역어업, 근해어업, 원해어업 등으로 나누어진다. 충청북도 진천군의 경우 호수, 늪, 하천 등의 지역에서 행해지는 내수면어업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진천군의 어업은 백곡저수지를 비롯한 가두리 양식시설이 있어 어민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으며, 초...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양주문(楊周文)은 부모를 섬기는 데 효도를 다하였다. 부모를 뵙기 위해 비바람을 무릅쓰고 밤마다 10여 리를 걸어 다녔다. 밤에 눈길을 걸을 때는 호랑이가 따르며 지켜 주었다. 양주문이 세상을 떠나자 호랑이가 앞뜰에 와서 앉아 있었으며, 호랑이의 눈빛이 하늘에 비쳐 집안이 환하였다. 새벽녘에 닭이 울자 밤새 집안을 환하게 비추던 호...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은탄리·사양리에 걸쳐 있는 산. 양천산(凉泉山)은 ‘찬물이 솟는 샘이 있는 산’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양천을 양천(良泉)으로 보아, 산 정상에 좋은 샘이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양을 양씨(梁氏)의 양으로 보아, 양씨 성을 가진 사람 1,000명이 피난한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한 양천(養千)으로 보아, 임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가산리 가암마을에서 지관과 명당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어느 지관 이야기」는 하신 부락에 머물고 있는 지관과 부모님의 묏자리로 명당을 찾는 젊은이의 욕심이 만들어낸 마을 사람들의 흥망에 관한 풍수담이다. 「어느 지관의 이야기」라고도 한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아주 먼 옛날 하...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 체계. 충청북도의 언어는 크게 단양 방언권, 청주 방언권, 영동 방언권으로 구분되며, 진천의 언어는 음성, 괴산, 청주, 청원과 함께 청주 방언권에 속한다. 진천은 지리적으로 충청북도의 중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서쪽은 경기도와, 남서쪽은 충청남도와 인접해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경기도 방언 및 충청남도 방언과 유사한 면...
-
민칭도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여흥민씨(驪興閔氏)의 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공자의 10제자 중 한 사람인 민손(閔損)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여흥(驪興)에 정착하여 민씨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 인종 때 민칭도의 증손 민영모(閔令謨)는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태자태사(...
-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진천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백제는 일찍이 한성시대에 진천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백제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방진출의 교두보로서 진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신라 역시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진천을 장악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보련리(宝蓮里)의 ‘연(蓮)’자와 상곡리(上谷里)의 ‘곡(谷)’자를 따서 연곡리(蓮谷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서암면(西岩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곡리·보련리·비립리를 병합하여 연곡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
용몽리 몽촌마을 입구에서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 보면 정자가 보이는데, 바로 그 앞으로 신기할 만큼 아름다운 연꽃이 하나 가득 핀 연꽃 방죽이 펼쳐져 있다. 조선 후기 채진형 선생이 마을을 일구면서 만들었다는 두 개의 방죽 중 하나이다. 몽촌마을이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이 연꽃 방죽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연꽃이 수놓은 방죽의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몽...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음력 정월 초부터 대보름까지 바람을 이용하여 연을 하늘에 띄우며 즐기는 놀이.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오는 민족 전래의 기예(技藝)의 하나로서, 음력 정초가 되면 해마다 장관을 이루었던 민속놀이이다. 연날리기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즐겼으며, 연줄을 서로 닿게 하여 다른 사람의 연줄을 끊는 연싸움도 즐겼다. 정월 초하...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생긴 이름으로, 연담리(蓮潭里)는 연화(蓮花)와 우담(牛潭)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연화는 지형이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서 붙여진 이름이고, 우담은 ‘반여울’ 서북쪽에 있는 큰 못으로 ‘소두머니’라고도 한다. 못이 ‘소 대가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소가 누워 있는 형상...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신라시대 우물 터. 연보정(蓮寶井)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원형 우물로서, 김유신(金庾信)[595~673]이 사용했던 우물이라 전한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은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金舒鉉)이 만노군태수로 부임하여 살던 곳으로, 큰 담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후대에 담안밭이라고도 불렸다. 이외에 김유신...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벽암리·행정리에 걸쳐 있는 논. 전하는 말에 따르면 조선 초기 기름진 넓은 평야를 지주(地主) 세 사람이 거의 소유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연삼을 연삼(連三)으로 보아 들이 읍내리·벽암리·행정리 등 3개 마을에 걸쳐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서 ‘연삼아들’에 ‘연삼하평...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연실을 마주 걸어 상대편의 연실을 끊어 버리는 민속놀이. 연싸움은 백곡면 명암리에서 정월 초에 방패연을 만들어 날리면서 서로의 연줄을 끊는 싸움을 통해 어느 연이 더 세고 강한 지를 가리는 놀이이다. 연날리기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놀이이다. 다만 우리나라 고유 풍속에서는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만 날...
-
김섬한을 시조로 하고, 김자남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연안김씨(延安金氏)의 시조는 고려 명종 때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낸 김섬한(金暹漢)이다. 김알지(金閼智)의 후예인 두 왕자가 왕에게 직간을 하다가 형은 북빈경(北濱京)[지금의 강릉]에, 아우는 시염성(豉鹽城)[연안(延安)의 옛 지명]에 유배되었는데, 아우의 후손이 바로 김섬한이라고 한다...
-
지백호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일정씨(延日鄭氏)는 영일정씨(迎日鄭氏) 혹은 오천정씨(烏川鄭氏)라고도 한다. 영일은 경상북도 포항시의 동해안 일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고려 초에는 연일이라 불렸다. 지금은 각각 포항시 연일읍과 오천읍이며, 본관을 각각 연일·영일·오천으로 쓰고 있다. 2000년 현재 연일정씨 21만 6,510명, 영일정씨 1만...
-
조선 전기 이승소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던 연정의 풍경을 읊은 한시. 이승소(李承召)[1442~1484]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성(陽城)이고, 자는 윤보(胤保), 호는 삼탄(三灘)이다. 1447년(세종 29)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집현전부수찬에 임명되었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1467년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이조판서와 형조판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곡산(谷山). 진사 연정희(延廷禧)의 8세손이다. 연정기(延廷夔)는 아흔 살의 아버지가 천식증이 생겼는데, 의원이 술이 좋다고 하자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매일처럼 술을 구해다 드렸다. 겨울에 아버지가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냇가에 나가 하늘에 빌어 잉어 세 마리를 구해다 드렸다. 또한 아버지가 꿩고기를 원하여 사방으로...
-
현담윤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연주현씨(延州玄氏) 시조 현담윤(玄覃胤)은 고려 의종 때 장군이 되었고, 명종 때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문하시랑평장사로서 연산군(燕山君)에 봉해졌다. 연주와 연산은 평안도 영변(寧邊)의 옛 이름으로, 이후 후손들이 현담윤을 시조로 하고 연주(延州)를 본관으로 삼았다. 현담윤의 세 아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열녀(烈女)는 한마디로 ‘절개가 굳은 여성’을 지칭한다.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편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절을 지켜낸 여성을 뜻한다. 대부분의 열녀들은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 죽으면 수절하거나 남편을 따라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러한 열녀들의 행적은 멀리는 순장...
-
조선 후기 이인덕이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있는 엽돈치에 올라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홍계남의 위업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협돈령[脇呑嶺] 또는 엽돈고개, 엽둔재라고도 하는 엽돈치는 백곡면 갈월리와 충청남도 천안시 경계에 있는 고개로 매우 험준한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안성 출신 홍계남(洪季男)이 의병 수천 명을 모아 접전하여 승전한 곳으로 전해진다. 간송...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서수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을 연결하는 고개. 엽둔재(葉屯재)[344m]는 엽둔과 재로 나뉜다. 엽둔은 엽돈의 변화형으로 엽전(葉錢)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도적 떼들이 들끓어 엽전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모두 털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엽둔고개·엽둔재고개·엽둔치·엽둔티·협탄티[脇呑티]·협돈령[脇돈嶺]으로도 불린...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서 엽전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엽전고개는 충청북도 진천군, 충청남도 천안시, 경기도 안성시의 경계 지역으로서 옛날부터 각 지역의 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았던 곳이다. 「엽전고개 전설」은 백곡면 엽전 고갯마루에서 주막을 하던 노랑이 박서방이 죽고 그 재산의 행방이 묘연했던 차에 나그네들이 묵어가면 죽음을 당한다는...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구리(永九里)는 영구물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약 500년 전에 노승이 마을을 지나다가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을 이름을 영구물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또는 지형이 거북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영구천(靈亀泉)이란 지명도 함께 쓰이는 것으로 미루어 영구물은...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원 터. 원(院)은 고려·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을 수 있도록 역과 역 사이에 설치했던 공공 여관이다. 영제원은 고려·조선시대 진천현 소속의 원이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천현 역원조에는 영제원(永濟院)이 진천현 동쪽 14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곳은 지금의 오갑리...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진천군 산청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무리·영신리·태하리·영주리·삼태리의 각 일부, 방동면 화성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갑리(五甲里)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초평면에 편입되었다. 알랑산[209m]이 북동 방향으로 뻗어 있고, 미호천(美湖川)과 한천천(閑川川)이...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먹는 절식 풍습. 오곡밥 먹기는 음력 1월 14일에 보통 때보다 이른 오후 3시경쯤 저녁을 오곡밥으로 장만하는 풍속이다. 오곡밥은 쌀·보리·조·콩·팥[기장] 등 5가지 곡식으로 밥을 짓고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 좋다고 한다. 또한 이 날에는 묵은 나물을 삶아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무쳐 복쌈으로 먹기도 한다. 복쌈은...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9년 신민회 계열의 항일비밀청년결사단체인 대동청년단을 조직,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또한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에도 노력하였다. 오상근(吳尙根)은 1909년에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항일 비밀청년결사 단체인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을 남형우(南亨祐)·안희제(安熙濟)·신팔균(申八均)·신채호(申采浩)·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참찬관(參贊官) 오대남(呉大男)의 고손자이다. 오형(吳珩)[1710~?]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봉양에 뜻을 두고 극진하게 모셨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시묘를 살았다. 마을 사람들이 오행의 효행에 감탄하여 마을의 인재로 천거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와 이월면 노원리 궁골마을에 걸쳐 있는 산. 옥녀봉(玉女峰)[457m]은 ‘옥녀가 금비녀를 꽂고 거문고를 타는 모습’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전국적으로 옥녀봉은 수백의 예가 있으며, 그중 어떤 것은 신선봉(神仙峯)과 병용되는 것도 있다. 유래 또한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의 명당인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 걱정을 하지 않아 옥 같은 쌀이 생산된다고 하여 옥동리(玉洞里)라 하였다. 마을 입구에 기름진 옥밭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진천군 산정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암을 병합하여 옥동리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이후 덕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덕산읍에 속하게...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옥산리(玉山里)의 ‘옥(玉)’자와 두성리(豆城里)의 ‘성(城)’자를 따서 옥성리(玉城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백락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능동리·두성리·판랑리·취라리·옥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옥성리라 하고 문백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으로 봉화산(烽火山)...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의병장 한봉수의 항일 전적지.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세교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부터 1910년까지 충청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34회에 걸쳐 일본군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의병장의 한 사람이다. 1910년 한봉수는 중국으로 망명하려다 서울 남대문역에서 체포되어...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 고갯새울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연결하는 고개. 옥정(玉井)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옥정현(玉井峴)은 ‘옥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이며, 달리 옥정리고개로도 부른다. 옥정은 전국적으로 발견되는 지명이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좋은 우물’로 풀이한다. 특히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보호 지역에서 서식하는 왜가리과에 속하는 조류. 몸길이는 90~100㎝, 날개길이는 42~48㎝, 꼬리길이는 16~18㎝이다. 몸무게는 1.1~1.3kg인데 다리와 부리가 길다. 정수리·목·가슴·배는 흰색, 등은 청회색을 띠며 머리에서 뒷목에 이르기까지 검은 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부리와 다리는 계절에 따라 노란색이나 분홍색을 띤...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전(龍田)의 ‘용(龍)’자와 신기(新基)의 ‘기(基)’자를 따서 용기리(龍基里)라 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기 청안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의리·조중리·신기리·대주리·칠암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용기리라 하고 청주군 북이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4월...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진리(龍津里)의 ‘용(龍)’자와 덕가리(德加里)의 ‘덕(德)’자를 따서 용덕리(龍徳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백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진리·덕가리·유곡리를 병합하여 용덕리라 하고 백곡면에 편입하였다. 북동쪽으로는 무제산(武帝山)[574m] 줄기인 백...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에 있는 산. 약 200년 전 도하리에 마음씨 착하고 인정 많은 삼천석꾼 유 부자가 살고 있었다. 유 부자는 집에 오는 손님들을 잘 대접하였으므로 항상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유 부자의 자손이 장성하여 며느리를 본 뒤로는 더욱 손님을 잘 대접하여 이웃 마을 사람은 물론 인근에 사는 사람들까지 밤낮으로 찾아들었다. 며느리는 몇 달이 지나도...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소리(龍沼里)의 ‘용(龍)’자와 몽촌리(夢村里) ‘몽(夢)’자를 따서 용몽리(龍夢里)라 하였다. 용소[일명 용소말]는 묘봉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용이 승천한 못이 있는 마을’로 풀이한다. 몽촌은 면소재지가 있는 마을로, 1914년 이전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구말로 나오며 몽...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대리(龍垈里)의 ‘용(龍)’자와 우산리(牛山里)의 ‘산(山)’자를 따서 용산리(龍山里)라 하였다. 용대는 용터의 한자 지명으로, 용이 승천한 곳이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우산은 소메·쇠매·소산 등의 한자 지명으로, 대체로 산의 형상이 와우형일 때 붙는다. 조선 말기 청안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소(龍沼)의 ‘용(龍)’자와 쌍오정(双悟亭)의 ‘정(亭)’자를 따서 용정리(龍亭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초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촌리·지전리·부창리·생석리·연촌리를 병합하여 용정리라 하고 초평면에 편입하였다. 동남쪽으로 두타산(頭陀山)[598m]이...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부창부락의 우물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용정리 정주제는 초평면 용정리 부창부락에 있는 옛날부터 사용되었던 동네 우물가에서 음력 정월 초 사흗날 정오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이를 샘고사, 정호제(井戶祭), 용왕제(龍王祭), 천제(泉祭)라고도 부른다. 우물에 제사를...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은탄리에서 소두머리(우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우담(牛潭)에는 모래사장과 산세 등 여러 지형들이 아우러져 있는데, 「우담 전설」은 그 중 태봉산에 왕의 태를 묻었다는 이야기와 민비가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여 산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지명유래담이다. 이를 「소두머니 전설」이라고도 한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원동(院洞)의 ‘원(院)’자와 덕배리(德培里)의 ‘덕(德)’자를 따서 원덕리(院德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남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동·현조동(玄鳥洞)·덕배리를 병합하여 원덕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1...
-
변안렬을 시조로 하고, 변상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원주변씨(原州邊氏)는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따라 입국한 무신 변안렬(邊安烈)을 시조로 하고, 조선 성종 때 변상(邊詳)이 진천군 진천읍 상신리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변안렬은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를 배종하고 귀국하여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을 격퇴시켜 이등공...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월굴리(月屈里)의 ‘월(月)’자와 검성리(倹城里)의 ‘성(城)’자를 따서 월성리(月城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만승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장리·강당리·월굴리와 광동리·광서리·검성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월성리라 하고 만승면에 편입하였다. 2000년 1...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유계열(柳癸烈)은 남편 이규창(李奎昌)이 전사하자 시부모를 위안하고 효성을 다하여 봉양하였다. 시어머니가 괴질에 걸리자 매일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늘에 기도하여 3개월이 지나자 차도를 보았다고 『진천군지』와 『진천향토지』 등에 기록이 전하고 있다. 1902년 군수로부터 표창을 받았으며, 1903년 2월 전국선행자표창위원회의 표창을 받았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유교는 공자(孔子), 맹자(孟子), 증자(曾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또한 유교는 불교 및 기독교와 함께 한국 3대 종교의 하나로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전통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문화 등 한국 사회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이씨의 남편은 본관이 문화(文化)이며, 이름은 유만엽(柳萬葉)이다. 문화유씨의 시조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게 한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다. 이 공로로 고향인 유주(儒州)를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으면서 유주, 즉 지금의 황해도 신천군 지역인 문화를 관향...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정수(静叟) 문정공(文貞公) 유인숙(柳仁淑)의 7세손이다. 유심(柳甚)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고, 집에 있을 때도 항상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단정하고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없어 군내 유림들이 고을의 효자라 하여 여러 차례 고을의 인재로 천거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언순의 정려 유언순은 7세 때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는데, 장례를 치르는 것이 어른과 같고 슬퍼함이 지나쳐 병을 얻을 정도였다고 한다. 계모 조씨(趙氏)에게도 효성으로 최선을 다했으며, 16세 때 아버지가 병이 나자 직접 약을 달여 드리고, 아버지의 신체가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유인영(柳寅暎)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가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지만, 병자년 그해 가뭄이 극심해 냇물이 모두 말라 물고기를 구할 수 없었다. 집을 떠나 멀리 큰물에 가면 물고기를 구할 수 있었겠지만, 병석의 아버지를 홀로 두고 멀리 갈 수 없어 하늘에 지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이튿날 집 앞 냇...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유재창(柳在昶)이다. 1924년 4월 12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두성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어 독립운동을 하였다. 유재복(柳在福)[1924~?]은 1943년 9월 진천에서 오상근(吳相根)과 같이 징집을 피해 도피하다가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산동성...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사헌부집의 유창국(柳昌国)의 6세손이다. 유진풍(柳鎮豊)[1773~?]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릴 때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그날 밤 꿈에 신령이 나타나 물고기를 구해 주었다. 유진풍은 이 물고기를 어머니에게 공양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 이에 유림에서 여러 차례 영읍에...
-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문학가. 유촌(柳村)은 1907년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355번지[봉죽길 76-11]에서 태어나 1961년에 세상을 떠났다. 유촌은 1927년 2월 청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진천군 이월면 서기 겸 기수로 근무하다가 1931년 8월 사임하였고, 1931년 9월부터는 제천군 농회 기수로 근무하다가 1934년 5월...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유인수의 후손이며, 효자 유희원(柳希源)[1769~?]의 동생이다. 유학원(柳学源)은 형 유희원처럼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를 잘 섬기고 형의 뜻에 잘 따라 주변 사람들이 일문쌍효(一門䉶孝)라 칭송하였다. 유림들이 영읍에 유학원의 효행에 대한 글을 올려 동몽교관(童蒙教官)이 증직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최준(崔濬)이고, 오빠는 최유연(崔有淵)이며, 남편은 유형국(柳亨國)이다. 유형국 처 해주최씨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살면서 1636년(인조 14) 한양에 있는 친정으로 근친을 갔다가 병자호란을 만나자, 승지를 지내던 오빠 최유연이 왕자와 비빈을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 갈 때 함께 행렬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진주군(晋州君) 유번지(柳藩之)의 후손이다. 유환익(柳煥益)은 집안이 곤궁하여 낮에는 품팔이를 하고 밤에는 집안일을 하며 부모 공양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혼자 거동할 수 없게 되자, 어머니를 부축하여 일으키고 음식을 직접 떠서 드시게 하였다. 병수발을 든 지 십여 년이 지나 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유인수의 후손이며, 유학원(柳学源)의 형이다. 유희원(柳希源)[1769~?]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책을 보면서 밤을 밝힌 채 잠시도 곁을 비우지 않고 간병을 하였다. 엄동설한에도 하늘에 기도하여 잉어를 구해다 봉양하였다. 상을 당해서는 죽과...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희원(柳希源)의 정려각. 유희원(柳希源)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달라 부모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고, 부모가 노환으로 병석이 눕자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뒷바라지를 하였다. 또한 엄동설한에도 앙천기도(仰天祈禱)하여 잉어를 구해 봉양하였다. 하지만 유희원(柳希源)을 모함하는 자들이 그가 불효막심하다고 관청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한국전쟁 당시 애국 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 한국전쟁 당시 후퇴 중이던 우리 국군은 북한군 을 맞아 진천의 문안산(文安山)과 봉화산(烽火山) 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적을 섬멸함으로써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6·25격전지 반공투사 위령비는 당시 진천지구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애국 용사들의 숭...
-
1950년 발생한 남·북한 전쟁 시기에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개된 7월 7일~10일의 싸움. 좌익과 좌우 합작파의 반발 속에서 출범한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부는 경제난까지 겹쳐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게다가 1948년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까지 일어나고 지리산과 태백산 일대에는 1950년 봄까지 좌익 게릴라 활동이 계속되어 내전에 가까운 상태로 치달았다. 19...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칠원(漆原). 직제학을 지내고 청백리로 알려진 윤석보(尹碩輔)의 10세손이다. 윤범국(尹範國)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 조씨가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생선이 제일 좋다고 말하였다. 추운 겨울이라 냇가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물고기를 구할 길이 없자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윤병한(尹炳漢)은 본관은 칠원(漆原), 호는 중암(重岩)이며, 1873년(고종 10) 3월 20일 충청남도 당진군 순석면 갈산리에서 출생하여 1932년 10월 4일 사망하였다. 대한제국 육군 참위인 윤병한은 일제가 강제로 군대를 해산하자 의병 항일전에 참여하다가, 한일병합 후 고향인 진천으로 돌아와 농민 계몽운동...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의 교회. 한국침례회의 역사는 1889년 파송된 캐나다의 펜윅(Fenwick. M. C.) 독립 선교사로부터 시작된다. 1905년 교명을 대한기독교로 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일제의 강압으로 동아기독교로 개명하는 등 수난을 겪다가 1944년에 교단이 해체되었다. 광복 후인 1949년 충남강경총회에서 대한기독...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노은리(老隱里)의 ‘은(隱)’자와 소백암리(小白岩里)의 ‘암(岩)’자를 따서 은암리(隱岩里)라 하였다. 노은은 논[畓]에 대한 음차 표기로 여겨지며, 소백암은 진암리의 뱀골[일명 백암]보다 작아서 붙은 이름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기 청안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은진송씨의 정려. 은진송씨 열녀문(恩津宋氏 烈女門)은 조선 후기 호조참판이었던 임대철의 처인 은진송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은진송씨는 1845년(헌종 11) 남편이 죽자 장례를 치르기 전날 밤에 남편을 따르기 위해 30세의 나이로 죽음을 택하였다. 암행어사인 이승수(李昇洙)가 은진송씨의 열행을 듣고...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은탄리(銀灘里)는 은성(銀城)과 갈탄(葛灘)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은탄리는 본래 진천군 백락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은성리·갈탄리·취라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은탄리라 명명하였다. 양천산[350m]과 불당산[288m]으...
-
충청북도 진천군을 상징하는 군목(郡木). 공손수(公孫樹)·행자목(杏子木)이라 하며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한다. 연관종이 없는 특별한 종으로 은행나무문에 속하는 유일한 종이다. 열매가 살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살구 행(杏)자와 중과피가 희다 하여 은빛의 은(銀)자를 합하여 은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진천군은 군을 상징하는...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소리를 소재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부터 악(樂)·가(歌)·무(舞)의 총체적인 개념이 음악의 일반적인 형태로 인식되어 왔는데, 여기에서 악이란 기악 음악을, 가는 성악을, 무는 춤을 가리킨다. 한국 음악은 한국 민족의 음악이다. 즉 우리말과 글을 쓰면서 민족 문화의 기본적인 동질성을 함께 누려 온 한국 사람의 음악...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진천군 남변면(南邊面) 지역을 읍내(邑內)라 부른 데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리(上里)·하리(下里)의 각 일부와 남변면의 관문리·상장리를 병합하여 읍내리(邑內里)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1973년 진천면이 진천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진천읍 읍...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1269년(원종 10)에 진천임씨인 임연(林衍)이 김준(金俊)을 제거하고 최고 집정자가 되자, 왕이 임연의 고향인 진주[창의현(彰義縣)]을 고쳐 의령군(義寧郡)으로 승격시켰다. 지방관으로 지의녕군사(知義寧郡事)를 두었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양광도 진주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259년(고종...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의례를 거행할 때에 입는 전통 의복. 진천 지역에는 각종 의례복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각 지역민들은 비교적 관혼상제에서 활용한 의례복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으며, 현대에도 전통적인 의례복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혼례복과 상복·수의(壽衣) 등을 중심으로 진천군 의례복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른 지역에 비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몸에 걸치거나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평소 의복은 다른 지역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다양한 옷감을 사용하여 계절별로 의복을 구성하여 입었으며, 남자와 여자가 착용하는 의복의 구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진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복식에 사용된 옷감은 삼베, 무명, 명주 등...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있는 효자 이교영의 효자비. 이교영[1890~1976]은 어머니 달성서씨가 친가에 갔다가 병이 나 위급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가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다급해 왼쪽 장지를 끊어 어머니께 수혈하니 나았다. 그러나 그해 5월 다시 어머니가 병이 재발하자 왼쪽 무명지를 끊어 수혈하였으나 끝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전...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이씨의 나이 20세 때 남편 이근석(李根錫)이 죽었다. 그 후 이씨는 머리도 덥수룩하게 하고 옷도 좋은 옷은 입지 않는 등 몸단장에 신경 쓰지 않고 시부모만을 기쁘게 해드리며 극진히 효도하였다. 5~6년이 지나서 시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불과 3개월 만에 시어머니마저 죽었다. 이에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나서 시동생에게,...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대건의 신도비. 이대건(李大建)의 본관은 경주로, 고려 후기 유학자로 명성이 드높았던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25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아들이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된 이시발(李時發)이다. 이시발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춘무(朴春茂)를 따라 공을 세운 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이덕수(李德壽)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님이 병환 중에는 직접 변의 맛을 보아 병세를 살폈으며, 병이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낸 뒤 그 피를 먹여서 살려냈다고 전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가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이몽량(李夢良)은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두건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조 때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경상도병마우후에 이르렀다. 경상도병마우호로 근무하다가 선전관이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명의 신종(神宗)이 사신들의 공로를 치하하며 금은을 하사하였는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이민회(李敏會) 처 최씨(崔氏)는 23세에 남편을 잃었는데, 바로 남편을 따라가려 하였으나 늙은 시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있어서 목숨을 버리지 못하였다. 시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있는 4년동안 지성을 다하여 약을 달여 드렸으며 산나물을 먹고 싶다 하자 눈 쌓인 산에 들어가 나무의 눈을 얻어 국을 끓여드리고, 또 물고기가 생각난다고 하자...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육영 독지가. 이병화(李秉華)는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학으로 한학(漢學)을 익혀 칠서(七書)를 섭렵하는 한편, 일찍이 약관의 나이 때부터 상업에 종사하여 거금을 모았다.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었다. 성공회의 임인재(任寅宰) 신부가 학원을 개설하여 가난한 아이들을 대...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자릉(子陵), 호는 행원(杏園, 杏院). 증조할아버지는 부정(副正) 이신(李晨)이고, 아버지는 사과(司果) 이금(李嶔)이며, 어머니는 사맹(司猛) 최윤태(崔允泰)의 딸이다. 이부(李阜)[1482~1555]는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이사현(李思賢)은 어려서부터 효자라고 근동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 시묘를 살았으며, 효행으로 복호(復戶)[조선시대 충신, 효자, 군인 등 특정한 대상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를 받았다. 학문에도 뛰어났으며,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과도 가깝게 지냈다....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870년(고종 7) 12월 7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이행우(李行雨)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전 이조참판 이용우(李龍雨)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894년(고종 31) 이상설(李相卨)은 조선 왕조 마지막 과거인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춘방시독관에 제수되고...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을 기리는 유허비.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폐기를 상소하였고,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1917년 3월 니콜리스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광복장[현재의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순유(舜有) 또는 민정(民庭). 1878년(고종 15) 3월 29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38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이상직(李相稷)[1878~1947]은 백부 이용우(李用雨)의 손에서 자라다가 이교중(李敎重)에게 입양되었고, 이상설(李相卨) 또한 이용우에게 입양된 관계로 그는 이상설을 종형이라 부르면서 숙식과 수학을 같이하고 추종...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가헌(可軒). 할아버지는 만오공 이후연(李厚淵)이다. 이석하(李錫夏)는 18세 되던 해 할아버지 이후연의 뜻에 따라 청야(青野) 임익상(林翼常)의 문하에 들어갔다. 공부를 하면서 책에서 본 것이나 실제로 본 좋은 행동을 실천에 옮기려고 애썼으며, 선행이나 좋은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어진 일을 하는 데 전력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중어(仲魚) 이타(李鼉)의 후손이다. 이성문(李成文)[1703~1728]은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성품이 용맹하고 효성스러워 고을에 이름이 났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청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이 의병을 모집하여 방어하려는 계책을 세...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성문 부부의 정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반란 때 의병으로 참가했던 이성문이 죽은 후 아내 정씨가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달려가 시신을 찾았다. 그러나 운구할 길이 없어 울면서 목을 베어 치마에 싸서 귀향한 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 묻었다. 삼년상이 끝난 후에 남편의 무덤 앞에서 자결하여 남편을 뒤를 따라갔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경주(慶州). 남편은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킨 이성문(李成文)이다. 이성문의 처 경주정씨[1707~1731]는 어릴 때부터 천자(天姿)가 정숙하였고 혼인해서는 시어머니께 효를 다하여 봉양하고 남편을 예로서 섬기었다. 남편이 난을 막으러 나갈 때는 힘을 다하여 충성하라고 하였다. 남편이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으...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후(仲厚). 증조할아버지는 풍천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며, 할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이경회(李慶會)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이인형(李寅馨)이고,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진사 안여지(安汝止)의 딸이다. 부인으로는 김위(金煒)의 딸인 연안김씨와 진사 신필한(申弼漢)의 딸인 고령신씨(高靈申氏)가 있다. 형으로 이재곤(李載...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효백(孝伯), 호는 서암처사(西巖處士). 청허당(淸虛當) 이거이(李居易)의 8세손이다. 『청주이씨족보(淸州李氏族譜)』에 따르면 태사공 이능희(李能希) 이후에 본관을 청주로 정하였다고 한다. 이승종(李承宗)[1574~?]은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행과 문장이 탁월하...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 고조할아버지는 이원(李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발(李渤)이며,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 아버지는 진사 오촌(梧村) 이대건(李大建)이다.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부인은 여흥민씨이고, 아들로 이분이 있다. 이...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은탄리에서 이심이 소(沼)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심이 소 전설」은 은탄리 갈탄마을의 깊은 못에 살고 있던 뱀이 부정을 타서 용으로 승천하지 못하자 부근의 소와 처녀를 잡아먹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이무기의 승천실패담이자, 횡포담이기도 하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옥수같이 맑...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농한기의 긴 겨울밤에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는 놀이. 이야기 듣기는 진천군 일대에서 정초와 대보름 사이에 아이들이 사랑방에 모여 밤참을 먹으며 이야기를 듣는 놀이이다. 농사일을 주로 하던 옛날에는 봄에 농사일을 시작하여 곡식이 무르익는 여름을 지나 가을에 오곡백과(五穀百果)를 거두는 수확의 계절이 되고 김장을 담그면 겨우살이 준비가 끝나게 된다. 이...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긍확(肯穫), 호는 송애(松厓).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사(李思)이고, 할아버지는 이공순(李公淳)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인로(李仁老)이며, 외할아버지는 박지생(朴枝生)이다. 부인은 이안민(李安民)의 딸이다. 형으로 이치(李菑)가 있다. 이여(李畬)[1503~1544]는 일찍이...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士秀). 할아버지는 음죽현감(陰竹縣監)을 지낸 이계보(李季寶)이며, 아버지는 창신교위(彰信校尉)를 역임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영남(李英男)[1563~1598]은 1563년(명종 18) 지금의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22세인 1584년(선조 17) 별시(別試) 무과에서 병과(丙科) 제1...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진천군 광혜원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영호(李榮鎬)[1899~1974]는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자, 진천군 일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19년 4월 2일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서 윤병한(尹炳漢)·정관옥(鄭寬玉)·오은영(...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지역에 천주교의 복음을 전달하고 미사 집전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월성당은 진천성당이 관할하는 이월공소였다가 1995년 6월 24일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이월공소는 1956년 7월 9일 설립되어 이월 지역의 천주교 신자를 담당하였다. 이월성당의 건물은 19...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장양리·노원리·중산리에 걸쳐 있는 들. 이월들은 이월과 들로 나뉘며, 여기서 이월은 이월면(梨月面)을 가리킨다. 이월면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이곡면(梨谷面)의 ‘이’자와 월촌면(月村面)의 ‘월’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따라서 이월들은 ‘이월면에 있는 들’로 풀이된다. 진천읍 동부에 백곡천(栢谷川)이 서남류하면서 진...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이곡면(梨谷面)의 ‘이(梨)’자와 월촌면(月村面)의 ‘월(月)’자를 따서 이월면(梨月面)이라 하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곡면과 월촌면을 병합하여 이월면이라 하고 사곡리(沙谷里)·노원리(老院里)·중산리(中山里)·장양리(長楊里)·송림리(松林里)·신계리(新溪里)·송두리(松斗里)·가산리(佳山里)·동성리(東城里)...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이월면 관할 행정 기관. 이월면사무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5월 12일 이곡면과 월촌면을 병합하여 이월면이 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9일 만승면[현 광혜원면]의 신계리를 편입하였다. 1982년 8월 28일 현 위치에 청사를 신축하였...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서 매월 1일과 6일에 개시되는 오일장.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는 골말·굼티기·독지미·보뚝거리·송현·숫돈말·약방말[대말]·이월장터·큰골말·향림 등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그중 이월장터[일명 장양장터·주막거리]는 가장 규모가 큰 부락이다. 이월면 송림리의 이월장터에서 지명이 유래된 시장1리에는 125세대에 총인구 329명[남...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자장(子張). 행원(杏園) 이부(李阜)의 고손이다. 이인(李仁)은 지금의 진천군 이월면 송두리에서 태어났다. 『진천향토지』, 『진천군지』 등에 학문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향천(鄕薦)을 받아 참봉(參奉)과 주부(主溥)의 벼슬을 받았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장(仲章), 호는 매산(梅山).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판서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이경휘(李慶徽)이다. 생곡(生谷) 이인환(李仁煥)이 형이며, 동생으로는 이인욱(李璘煜)·이인찬(李寅燦)·이인희(李寅熹)·이인식(李寅烒)이 있다. 이인혁(李寅...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백(文伯), 호는 생곡(生谷).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이대건(李大建)이고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이며, 아버지는 지제교(知製敎)·이조판서를 지낸 이경휘(李慶徽)이고, 어머니는 심대복(沈大復)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경연(李慶衍)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으로 매산(梅山) 이인혁(...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춘길(春吉), 호는 사암(思庵). 문정공(文貞公) 이공승(李公升)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聰郞) 이창우(李昌祐)이고, 아버지는 낭성군(琅城君) 이계함(李季瑊)이며, 어머니는 도첨의참리(都僉議叅理) 김련(金聯)의 딸이다. 부인은 통례부사(通禮副使) 김계초(金繼貂)의 딸이다. 아들로 이거이(李居易)가 있다...
-
임진왜란시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양성(陽城). 호는 회헌(晦軒). 이정영(李廷英)[?~1592]은 1592년(선조 25) 음죽현감으로 재직 중에 임진왜란을 맞았다. 4월 일본이 15만 8000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하여 침범해 왔다. 왜군은 조총을 가지고 북상하며 4월 24일 상주에서 이일의 군을 격파하고, 16일에는 조령을 넘어 이튿날 충주로 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주(光州). 대사성 이중호(李仲虎)의 7세손이자, 이조참판 이발(李潑)의 6세손이다. 이정휘(李廷徽)는 어머니가 종기가 심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5~6개월 동안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뽑았으나 병세에 차도가 없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서 낸 피를 먹여 완쾌하게 하였다. 그 후 모친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지극정성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이종연(李鍾淵)의 처 박씨는 시아버지가 종기로 자리에 눕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서 낫게 하였으며, 담종이 생겨서 3개월 동안 거동을 못하자 곁을 떠나지 않고 간병을 하였다. 이후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상장제용(喪葬祭用)을 마련하여 무사히 장례를 치렀다. 얼마 후 남편이 죽자 따라 죽으려고 물 한 모금...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문(仲文), 호는 인재(麟齋). 증조할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이자성(李自成)이고, 할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낸 가정(稼亭) 이곡(李穀)이다. 외할아버지는 권중달(權仲達)이며, 아버지는 문하시중에 오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다.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으로 이종덕(李種德)이 있다. 부인은 이춘부(李春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치영(稚英). 진사(進士) 이몽길(李夢吉)의 후손이다. 양성이씨(陽城李氏)의 시조 이수광(李秀匡)은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와서 문종 대에 벼슬길에 올라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에 이르렀고, 양성군(陽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갑자보(甲子譜)』 세록(世錄) 편에 의하면 능란한 외교술로 거란[契丹]과 외교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증조할아버지는 행원(杏園) 이부(李阜)이다. 이집(李楫)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날을 보내어 효자로 소문이 났다. 커서는 부모의 대변 맛을 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죽만 먹고 날마다 묘소에서 슬프게 곡만...
-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중휘(仲輝), 호는 파서(琶西) 또는 구학(臞鶴)이다.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5대손이고 조부는 이석로(李錫老)이며, 감역 이진원(李進源)의 아들이고 부인은 권세모(權世模)의 딸이다.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나 거주하였다. 1774년[영조 50] 식년시를 통해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별시문...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이티(배티)마을에서 이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티 전설」은 이인좌(李麟佐)[? ~1728]가 당파 싸움에 불만을 가지고 반역을 꾀하였지만 이티에서 팔십 노인인 이순곤(李順坤)[1652~1729]에게 패하고 결국 관군에게 진압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또한 최양업(崔良業)[1821~1861] 신부가 이곳에서 교우들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다. 이필용(李必容)이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상을 당했는데, 갑자기 집 안에서 불이 나서 사당(祠堂)까지 불이 번지고 말았다. 이에 이필용이 큰소리로 천신(天神)을 부르자, 세찬 바람이 그치고 불꽃이 잦아들어 비록 사당은 불탔으나 신주(神主)는 온전하였다. 어느 날, 이필용이 볼일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장서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재대(載大)이며, 호는 담헌(澹軒)·소금산초(小金山樵)·무우자(無憂子)·금산병부(金山病夫)·담옹(澹翁)·담헌거사(澹軒居士)·담암(澹庵).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셋째 아들인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이며, 아버지는 문형(文衡)이었던 이인엽(李寅燁)이고,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로 인천부...
-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육영독지가.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찬서(纘書). 『청주이씨족보(淸州李氏族譜)』에 청주이씨는 태사공 이능희(李能希) 이후 본관을 청주로 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호신(李鎬臣)[1868~1943]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수성가하였으며, 많은 사회사업을 하였다. 특히 교육 부문에 힘썼는데, 처음 상산초등학교가 지금의 삼수초등...
-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양씨는 16세에 이호주(李鎬周)에게 시집을 갔다. 가난한 집안이었으나 양씨는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를 섬기고 남편에게 순종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시부모와 남편이 연이어 세상을 뜨면서 20세 때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씨가 절개를 지키며 아들 하나를 데리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웃 마을의 장씨(張氏)가 양씨가 과부로 사는 것...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졸재(拙齋).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13세손이다. 만오(晩悟) 이후연(李厚淵)이 중손(中孫)이다. 이호중(李昊中)이 공주 외가에 있을 때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는데, 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너의 모친 병이 위독하니 빨리 집으로 가서 잉어를 구해 드려라”고 말하였다. 그 길로 집으로 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만오(晩悟).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후손으로, 졸옹(拙翁) 이호중(李昊中)의 중손(中孫)이다. 이후연(李厚淵)은 신와 정재경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학문의 중심점을 캐어서 연구하였고 지식과 견문이 넓었다. 보고 들은 것이 많고 깨달은 바도 투철하여 정재경이 큰일을 맡을 만한 인물[大受...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행원(杏園) 이부(李阜)의 6세손이다.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이희(李熺)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근동에서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가난한 생활을 하였어도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을 떨어지지 않게 하였으며, 항상 부모의 모든 것을 친히 보살폈다. 부모의 상을 당하였...
-
장금용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인동장씨(仁同張氏)의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옥산(玉山)[인동의 별호] 사람으로 고려 때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인물로 태사공(太史公) 장정필(張貞弼)의 후손이다. 그러나 중간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소목(昭穆)을 가리지 못하므로 후손들이 장금용을 시조로 하고, 시조의 출생지이자 후손의...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중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대도시와 교통이 편리함에 따라 종래의 미작 농업은 고품질 상품 생산과 원예 농업으로 전환되었고 공업화가 촉진되었으며 풍부한 관광 자원과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이점 등으로 배후에 풍부한 관광 시장을 지니고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은 충청북도 중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옛 선인들이 마을 앞에서 고기를 낚아 먹어보니 맛이 일품이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 ‘어지미(魚池味)’라 하나, 신빙성은 떨어진다. ‘어지미’는 본래 ‘어진미’가 아니었을까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진미’ 혹은 ‘어지미’는 어진 모습의 산’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이를 한자화한 지명이 인산(仁山)이다. 이곳에서는 어진 사람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 있는 들. 일산들[日傘들]은 일산과 들로 나뉜다. 일산은 일산자리를 비롯하여 일산동·일산바우·일산봉·일산재·일산지 등에서 보듯 지명의 전부 요소로 매우 활발하게 쓰인다. 그리고 대부분은 일산(日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일산들 또한 지형이 일산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일 수도 있다. 조선시대 세종이 안질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백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희는 상산임씨(常山林氏)[진천임씨(鎭川林氏)]의 시조로 지금도 후손들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를 중심으로 많이 살고 있다. 임경언(林慶彦)[1761~?]은 아버지가 종기를 앓고 있을 때 침과 뜸이 효험이 없자 독혈을 빨아내고 밤에는 소금물로 씻기를 한 달여 동...
-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남편은 평택(平澤)이 본관인 임경운(林景雲)이다.임경운(林景雲) 처 이씨(李氏)는 20세에 남편이 사망하자 여러 날 음식을 먹지 않아서 사경을 헤매다가 시부모를 생각하여 눈물을 거두고 시부모를 위로하며 정성을 다하였다. 시부모께 음식을 드리고 조금도 슬픈 얼굴을 하지 않고 남편 장일에는 제사에 쓸 물건과 모든 예절을 스스로 돌보고 정성을 다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상산(常山). 아버지는 임봉의(林鳳儀)이다. 임경원(林慶源)은 도암(陶庵) 이재(李滓)와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공부에 독실(篤實)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양호(養浩)라는 당호를 써 주었다. 『진천군지』에 임경원에 관한 기록이 실려 전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슬하에 가문의 쌍효(雙孝)라 불리는 임호철(林昊喆)과 임우철(林禹喆) 형제를 두었다. 임광언(林光彦)[1794~?]은 어렸을 때부터 단정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침착하고 무게가 있었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등 남다른 점이 있었다. 9세 때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자 발을 구르며 통곡하다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임씨(常山林氏)의 시조인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광윤(林光潤)[1734~?]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섬기는 데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이 같은 효행이 알려져 고을에서 천거를 받았지만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 군(郡)의 유림들이 모두 안타까워하였다. 족보에 임광윤의 효행에 대한 이야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은진(恩津). 조선 후기 호조참판을 지낸 남편 임대철은 본관이 상산(常山)이며, 1845년(헌종 11)에 별세하였다. 임대철(林大喆) 처 은진송씨(恩津宋氏)[?~1845]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르기 전날 밤에 베 끈으로 목을 매어 향년 30세의 나이로 남편을 따라갔다. 감사 이승수가 은진송씨의 절개에 대한 글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득여(得汝), 호는 영서거사(穎西居士). 판서 임방(任埅)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 임종주(任宗周)이다. 임로(任魯)[1755~1828]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세상의 명리화색(名利貨色)에는 일절 욕심이 없었다. 1777년(정조 1) 음서로 관직에 나갔으나 아버지가 당대의 세도가 홍국영(洪...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증조할아버지는 충신 임현(林賢)이다. 임봉거(林鳳擧)는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박학하고 학문을 즐기었으며 효행이 지극하였다. 나라에서 벼슬을 주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도덕을 실천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모든 행동이 민첩하고 독실하였으며, 듣고 보는 것이 많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할아버지는 임유원(林有元)이고, 아버지는 임재(林榟)이다. 임봉래(林鳳來)는 어머니가 병이 들자 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였고, 상을 당하여서는 극진한 예를 다하였다. 할아버지, 아버지와 더불어 삼세효자(三世孝子)로 불렸다. 고을 사람들이 여러 번 관에 천거하였으나 정려는 내려지지 않았다....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수명(任壽命)[1894~1924]은 독립운동가 신팔균(申八均)의 아내로, 남편과 함께 만주에서 대한통의부단원으로 활약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였다. 남편 순국 후 자진하였다. 임수명은 1912년 서울 모병원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할 때 일본 경찰에 쫓겨 환자로 위장하여 입원했던 신팔균을 알게 되어, 2년 후 그와 결혼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상산(常山). 사헌부집의를 지낸 임수경(林秀卿)의 6세손이다. 아들로 임현(林賢)이 있다. 임수전(林秀筌)[?~1592]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기상이 늠름하고 재질이 비범하여 6세 때 ‘인생천지간(人生天地間) 충효이자선(忠孝二字先)’이라는 시를 지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임수전·임현 부자의 정려. 임수전(林秀荃)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아들 임현(林賢)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죽산(竹山) 봉성(鳳城)에서 격전을 벌이다 전사하였다. 아들 임현은 만주의 부차성 전투에서 명의 원군으로 나가 싸우다 전사하였다. 임수전 부자 충신문은 임수전 부자가 나...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권신. 본관은 상산(常山)[진주(鎭州), 현재의 진천]. 초명은 승주(承柱).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며, 어머니는 이씨로 진주(鎭州) 주리(州吏)의 딸이다. ‘상산’이라는 본관은 상산임씨의 시조인 임희가 상산백(常山伯)에 봉작된 것에서 유래한다. 후손들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임연(林衍)[?~...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 또는 상산(常山). 아버지는 효자 임광언(林光彦)이며, 임호철(林昊喆)의 동생이다. 임우철(林禹喆)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였다. 어버이를 모시는 데 형 임호철과 더불어 지극하여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을 섬기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상을 당해서는 예절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아들은 임재(林榟)이고, 손자는 임봉래(林鳳來)이다. 임유원(林有元)은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간병하였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하였다. 아들 임재와 손자 임봉래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삼대(三代)가 모두 효성스럽다고 불렸다. 고을 사람들이 효성에 감복하여 여러 차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진천임씨(鎭川林氏)[상산임씨(常山林氏)]의 시조인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을엽(林乙葉)은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 꿈속에서 천신(天神)이 얼음에 채운 물고기를 알려 주어 아버지를 봉양하였고,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도 숲 속에서 산신령을 만나 산돼지를 얻어 끓여 드렸다. 사람들은 지극한 효성이 영신(...
-
충청북도 진천으로 낙향한 후 도학을 연마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자는 치은(稚殷), 호는 현계(玄溪) 또는 청서(靑墅)이다. 녹문 임성주(任聖周)의 문인인 영서(穎西) 임로(任魯)의 아들이다. 1789년[정조 13]에 태어났으며, 1835년[헌종 원년] 음사(蔭仕)로 가감역(假監役)을 시작으로 벼슬에 나가 전라도 창평(昌平)현령·금천(金...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산(常山). 중시조 임연(林衍)의 16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유원(林有元)이고, 아들은 임봉래(任鳳來)이다. 임제(林梯)는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서 태어났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간병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다. 아버지 임유...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산(常山). 상산백(常山伯)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희는 상산임씨의 시조로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구산동]를 중심으로 많이 살고 있다. 임정석(林鼎錫)[1798~?]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병환이 갑자기 위독해져서 약을 쓸 수 없게 되어 목숨이 위태로웠다. 이에 자신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증조할아버지는 임광언(林光彦)이고, 할아버지는 효자로 이름 난 임우철(林禹喆)이다. 임정수(林正洙)는 일찍이 어버이를 섬기는 법도를 알아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법도에 맞게 행동했다. 어릴 때 도적이 집에 들어와 어버이를 위협하니 내실에서 그 소식을 듣고 나와, 칼날을 무릅쓰면서 어버이를 막...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진천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본과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음력 4월 13일 일본군의 제1번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산포 침략을 시작으로 1598년(선조 31) 11월 노량해전(露粱海戰)을 끝으로 사실상 종결될 때까지 무려 7년간 한반도를 전화(戰禍)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한 중세 동북아시아 세계의 국제전적 교전이었다. 전쟁의 전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백(常山伯)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채근(林彩根)은 아버지가 중병이 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고,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는 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고 손가락의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다. 결국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시묘를 하면서 상례에 어긋남이 없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상산(常山). 아버지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임수전(林秀筌)이다. 임현(林賢)[?~1619]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임수전이 임진왜란에 의병장으로 참전하여 비명에 돌아가신 것을 애통하게 여겨 남쪽을 향해 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가 전사한 경기도 죽산 봉성(鳳城)을 지날 때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백(常山伯)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호근(林浩根)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이 들자 손가락의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아버지는 효자로 이름 난 임광언(林光彦)이고, 동생으로 역시 효자인 임우철(林禹喆)이 있다. 임호철(林昊喆)은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또한 어버이를 모시는 데 지극하여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이 나자 근심하면서...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호족이자 권신. 본관은 진천(鎭川). 임희(林曦)는 진천임씨[진천은 상산 또는 진주]의 시조로 고려 2대 왕인 혜종의 장인이다. ‘상산’이라는 본관은 임희가 상산백(常山伯)에 봉작된 것에서 유래한다. 후손들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임희(林曦)는 신라 말기 진천 지방에 자리 잡았던 호족으로 일찍이 왕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충청북도 중앙 서단을 차지하고 있는 진천군은 중부 내륙의 분지 지형으로, 진천 편마암 복합체가 넓게 분포하며 대륙성 기후를 띠고 있다. 토지의 비옥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지형상의 제약도 있어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며, 곳곳에 있는 산악 지대의 주능선 비탈면에는 신갈나무 군락이 드넓게 발달해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고치를 생산하기 위해 뽕을 길러 누에를 치는 산업. 잠업은 오랜 고대로부터 의복을 생산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중요한 산업의 하나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 잠업의 역사는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미 이때부터 양잠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도 고관의 의복이 거의 비단으로 지어졌을 정도로 양잠이 크게...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구산리에서 어린아이들이 잠자리를 잡으면서 부르던 노래. 「잠자리 노래」는 덕산면 구산리에서 어린이들이 잠자리를 잡을 때 부르던 동요이다. 사설의 첫머리인 ‘나마리동동 싸리[파리]동동’에서 ‘나마리’를 차용하여 「나마리 노래」라고도 한다. 예전의 어린이들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동물들을 놀이의 대상으로 삼았다. 낮게 날아다니면서 주위...
-
조선시대 김기경이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행정리에 있는 잣고개에 올라 주변 풍경과 옛 성곽을 보며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잣고개는 봉화산(烽火山)과 문안산(文安山)의 중간을 통하는 고개이다. 작자인 김기경(金起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머리는 청색을 찌르고 발로는 구름을 밟으며 올라가 보니[頭觸靑天足躡雲] 막막한 이 고장 경계가 나뉘었구나[塵寰漠漠界相分] 우중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행정리 문안산과 진천읍 원덕리 봉화산의 중간을 연결하는 고개. 잣고개는 잣과 고개로 나뉜다. 잣은 대부분 잣나무로 보아, 잣고개는 ‘잣나무가 많은 고개’로 풀이하고, 백현(栢峴)이라는 한자 지명이 대응된다. 가까운 예로,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 백현2리를 들 수 있다. 한편 잣은 성(城)의 뜻도 있다. 잣은 정음 문헌에 처음으로 보이기...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금암리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덕성리 배성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장고개[場고개]는 장(場)과 고개로 나뉜다. 장은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장고개는 진천읍 금암리에 서는 ‘장을 정기적으로 보러 다니던 고개’로 풀이된다. 장고개는 배성고개로도 불린다. 지명에서 배...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성대리 두멍골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를 연결하는 고개. 장고개[場고개]는 장(場)과 고개로 나뉜다. 장은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장고개는 ‘정기적으로 장을 보러 다니던 고개’로 풀이된다. 장고개는 개미둑재로도 불리는데, 산이 높아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뒤에 오는...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사미 서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뒷동산의 모습이 긴 대나무와 같다고 하여 장관리(長管里)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 진천군 행정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봉리, 북변면 상리 일부와 사미리를 병합하여 장관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금암리 금성골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덕성리 벌터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장교현(長橋峴)은 장교티·장교다리고개로도 불린다. 1464년(세조 10) 2월 세조가 보은군 속리산(俗離山)으로 행차할 때 진천군 길상사(吉祥祠)에서 충청도 군사 4만여 명을 모아 큰 훈련을 하였는데, 목천 서쪽에 있는 각 고을의 장교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이 고개...
-
조선 후기 이인덕이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에 있는 장군봉을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의 기개에 빗대어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범이 으르렁대듯 용이 서리듯 벽공에 솟았는데[虎踞龍盤竦碧空] 장군님의 위풍을 어느 누가 당하리[將軍威武孰能同] 삼국을 통일하신 그 위업 천추에 빛나고[三韓彌久聲名壯] 오악에 울려 퍼지는 높은 기세 웅장도 하구나[五嶽爲高氣勢雄] 만노에 뻗친 커다...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와 용덕리에 걸쳐 있는 산. 옛날에 김유신 장군이 공부하고 무술을 연마하던 산이라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군산은 산의 형세가 장군처럼 크고 우람하여 붙여진 이름에 불과하다. 실제 이 산은 주변에서 가장 높고 웅장하다. 백곡면의 중앙부를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안성시와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칠현산, 칠장산의 두...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상산임씨 문중의 사당. 장렬사(將烈祠)는 고려 무신 집권기의 권신 임연(林衍)을 비롯한 상산임씨의 시조인 임희(林曦), 조선시대 호조참의(戶曹參議) 임구(林球)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상산임씨의 고려 무신 정권기 활동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유적이다.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상산로를 따라 농다리 방향으로 약...
-
황경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장수황씨(長水黃氏) 시조 황경(黃瓊)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사위로 벼슬이 시중(侍中)에 이르렀다. 황경의 후손으로는 고려 명종 때 전중감(殿中監)을 지내다가 남원(南原)으로 이주하여 세거한 황공유(黃公有), 태학생으로 학문이 뛰어나 『동국명현록(東國名賢錄)』에 기록된 일재(逸齋) 황감평(黃鑑平)...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 장양역(長陽驛)이 있어 장양·장양역·역말·역촌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 말기 진천군 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일영리·화양리, 만승면 내당리·구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장양리라 하고 이곡면과 월촌면의 이름을 딴 이월면에 편입하였다. 이월면 평야 지대 중앙부의...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과 이월면 신계리 옥정현에서 발원하여 장양리에서 합수하는 하천. 장양천(長陽川)이 흐르는 장양리는 본래 진천군 이곡면(梨谷面)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 장양역(長陽驛)이 있어 장양·장양역·역말·역촌으로 불렀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일영리(日永里)·화양리(花陽里), 만승면(萬升面) 내당리(內堂里)·구암리(九岩里)...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장월리(長月里)는 장두(長頭)와 월호(月湖)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장두리·월호리·어룡리를 병합하여 장월리라 명명하였다. 양천산[350m] 구릉지대가 서남쪽을 감아 돌고, 백곡천은 남동쪽으로 흐른다. 양천산 계곡에 조성...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고려 고종 때 권신인 임연(林衍) 장군이 살던 곳으로, 장자방죽[일명 덕문이방죽] 가운데 바위에 울타리를 치고 덕망이 있고 나이가 든 장자(長者)가 살았다고 하여 장자울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어느 때인가 뒷산 능선의 봉우리가 자[尺]의 눈금 같다 하여 장척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장자울이라는...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인공 저수 시설. 저수지란 일반적으로 상수도용, 수력 발전용 또는 관개용의 물을 하천이나 계류에서 끌어들여 저장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커다란 못을 지칭한다. 하천 다음으로 중요한 지표수 용수원으로 하천에서 충분한 용수를 확보할 수 없을 때 중요하게 이용된다. 하천 용수보다 시설비가 비싸고 수질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으나 풍부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
-
조선 후기 한원진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백사장 암벽 위에 있는 정자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한원진(韓元震)[1682~1751]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덕소(德昭), 호는 남당(南塘)이다. 송시열(宋時烈)과 권상하(權尙夏)의 학통을 이어 정통 주자학의 입장을 충실히 계승·발전시켰으며, 권상하 문하의 강문8학사(江門八學士) 중...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옥천(沃川).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인 전승업(全承業)의 고손자이다. 유학자로 학문이 뛰어나고 경학(經學)에 몰두하여 여러 차례 향천(鄕薦)을 받았다. 이에 관한 내용이 『상산지(常山誌)』와 『진천군지』 등에 실려 전하고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서 전씨 부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전씨 부인의 효심」은 한 겨울에도 오이와 참새고기를 구하여 병든 시아버지를 구하려고 온갖 정성을 다한 전씨 부인의 효도로 인하여 효부문이 세워지고 그녀의 남편이 벼슬까지 받았다는 효행담이다. 「하늘도 감동한 전씨 부인의 효심」이라고도 한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
조선 전기의 유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옥천(沃川). 호는 쌍암(雙岩). 아버지는 상주목사를 지낸 전팽령(全彭齡)이다. 전엽(全燁)[1505~?]은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별세하자 60세 가까운 늙은 몸으로 3년간 시묘하면서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다. 시묘하는 도중에 산소 부근에서 샘물이 솟아오르고, 하얀색 제비...
-
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영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전의이씨(全義李氏)의 시조는 이도(李棹)이다.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삼한개국(三韓開國) 익찬이등공신(翊贊二等功臣)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책록되었고, 전산후(全山侯)에 봉해졌다. 전산은 전의(全義)의 옛 이름으로, 이도가 전산후에 책봉된 후 전의의 이성산(李城山) 아래에 정착한 후부터...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정자 터. 절정(節亭)은 강릉김씨 진천 입향조인 김사혁(金斯革)[1320~1385]이 지사곡마을에 세운 정자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김사혁의 호가 절정(節亭)이다. 1345년(충목왕 1) 음서로 태관서승(太官署丞)이 되어 관계에 입문한 이래 병부랑시중(兵部郎侍中)·계금위(戒禁衛) 등을 거쳐 동북면행영절제부사...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우경의 위패를 모신 사우. 정간사(貞簡祠)는 조선 선조의 4녀인 정인옹주(貞仁翁主)와 혼인한 홍우경(洪友敬)[1590~1625]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홍우경은 1603년(선조 36) 정인옹주와 혼인한 뒤 순의대부당원위(順義大夫唐原尉)에 봉해졌으며, 봉헌대부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1618년(광해군 10)에...
-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7세손이다. 정덕환(鄭德煥)은 삼환재(三患齋) 채지홍(蔡之洪)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행동에 무게가 있고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일평생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부족한 편이다. 그의 행적에 대해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와 『상산지(常山誌)』, 『진천군지』 등에 기...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시습재(時習齋).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6세손으로, 아들 정창환(鄭昌煥) 역시 효자이다. 정도(鄭棹)는 화재가 나서 불이 사당에까지 번지자 천신에게 기도를 올려 불이 꺼지게 하였고, 선대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가 병이 나서 꿩고기가 생각난다고 하여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홀연히 꿩이 떨어지는 등 여...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고산(孤山). 조선의 개국공신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7세손이며, 남대(南臺) 집의(執義) 정흠(鄭欽)의 현손이다. 정방광(鄭邦絖)[1471~1513]은 경기도 안성에서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 방동으로 이전한 입향조(入鄕祖)인데, 정봉남과 정황남이 그의 증손이다. 정봉남(鄭鳳男)[1560...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부 정선전씨의 정려각. 정선전씨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잘 지킨 인물로 부모를 효성으로 모시고 가정의 화목에 최선을 다하여 주변에 모범이 되었다. 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정선전씨는 다른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효성으로 부모가 장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효성을 기려 지방 유림들의 추천으로 1666...
-
조선 후기 송시열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로 송강 정철의 묘를 이장한 후에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본관은 은진이고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화양동주(華陽洞主)이다. 17세기 중엽 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 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하였다....
-
일제강점기와 현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안동김씨는 17세에 문성공(文成公) 정인지(鄭麟趾)의 16세손인 정순형(鄭淳亨)과 결혼하였다. 그 후 안동김씨는 효성으로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을 순종으로 받들었는데, 1년도 못 되어 시아버지가 죽고, 다시 2년 뒤에는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안동김씨는 즉시 남편을 따르려 했으나 시조부모와 시어머니가 손을 잡고...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일(延日). 본명은 정영택(鄭永澤), 호는 학주(學輈), 자는 성장(性長)이다. 1873년(고종 10) 12월 3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서 출생하였다.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을 하다 합방이 되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만주사변 뒤에는 상해에서 동아국제연맹을 조직,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광복후에도 남북통일기성회 회장으...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효자이자 유학자인 신와(愼窩) 정재경(鄭在褧)이다. 정우섭(鄭友燮)은 학문이 뛰어나고 지식이 풍부한 학자로서 1932년 『상산지(常山誌)』를 저술하였다. 상산(常山)은 진천의 다른 이름이니, 『상산지』는 곧 진천의 읍지(邑誌)이다. 현재 『상산지』는 1825년(순조...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교육가.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손으로, 죽계사 창건기를 쓰고 『상산지(常山誌)』를 서술한 송강의 8세손인 정재경(鄭在褧)의 고손이다. 정운하(鄭雲夏)는 고종 대에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서 태어났다. 경사(經史) 연구에 힘써 박학 통달하였다. 1910년 일제의 강점이 이루어지자 사설 서숙을 세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효자 정봉남(鄭鳳男)이고, 아버지는 정훈이다. 동생은 정익경(鄭益慶)이다. 정이경(鄭履慶)은 학문이 높고 문장이 뛰어나 세상에 알려졌고, 효행 또한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이 나자 밤에 천신(天神)에게 정성껏 기도를 올린 뒤 손가락의 피를 내어 병을 낫게 하였다. 진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지촌(芝村) 정흠(鄭欽)의 후손이다. 정익성(鄭益誠)은 경학을 깊이 연구하고,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러워 여러 번 고을에서 천거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공실(公實), 호는 신와(愼窩).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누항(陋巷) 정용환(鄭龍煥)이며, 조암(照庵) 정해필(鄭海弼)과 『상산지(常山誌)』를 쓴 정우섭(鄭友燮)이 그의 손자이다. 정재경(鄭在褧)[1780~?]의 아버지가 그림 속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꾸었...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청천당(聽天堂).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옥(鄭在玉)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자세로 나이가 들수록 더욱 독실하게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래서 정산(貞山) 김정묵(金正黙)은 “백수(白首)로 경서를 깊이 탐구하였으며, 집에 깊이 파묻혀 시정(市井)에 나오지 않았다”라고 칭찬하였다. 늙어서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잉수재(仍樹齋).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응(鄭在應)은 일찍부터 문경공(文敬公) 송환기(宋煥箕)의 제자로 들어가 유학을 깊이 공부하였다. 만년에는 쌍계산(雙溪山)에 들어가서 서재를 짓고 ‘잉수재(仍樹齋)’라는 편액을 걸어 놓았다. 그 때문에 잉수재라는 호가 붙었는데, 그곳에서 오로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소은(素隱).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형(鄭在衡)은 오로지 경학(經學)을 숭상하였으며,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품이 침착하고 효행이 지극하였다는 기록이 『진천향토지』, 『진천군지』 등에 전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학문에 더욱 힘써 여러 번 향공(鄕貢)에 천거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경주정씨(慶州鄭氏)의 시조인 지백호(智伯虎)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정봉남(鄭鳳男)이고, 할아버지는 정이경(鄭履慶)이다. 시조 지백호는 삼한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개국좌명공신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효자 정도(鄭棹)이다. 정창환(鄭昌煥)이 소년 시절 어느 날 마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호랑이가 마당으로 들어오자 이불로 어머니를 가리면서, “우리 어머니를 해치면 안 된다.”고 큰소리로 꾸짖으니 호랑이도 머리를 끄덕이고 물러갔다고 한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민주주의는 국가의 최고 의사가 국민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을 전제로 하며 국민 중의 능동적 국민이 직접 국가 의사를 결정하거나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국민의 대표를 의미하는 국가 기관으로 하여금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 의사를 결정하는 정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진천군에서...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육육당(六六堂). 증조할아버지는 정인환(鄭寅煥)이다. 정해용(鄭海容)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 글과 그림에도 매우 뛰어났다. 『진천군지』에 정해용에 관한 기록이 실려 전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조암(照庵). 할아버지는 효자이자 유학자인 신와(愼窩) 정재경(鄭在褧)이고, 아버지는 정선(鄭鍌)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 홍대욱(洪大勖)의 딸이다. 정해필(鄭海弼)[1831~1887]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에서 양육되었다. 효행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효자 정봉남(鄭鳳男)이다. 정혁경(鄭爀慶)은 10세 때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을 만나자 급히 어머니를 업어 보호하고 대신 자신이 죽기를 청하며 다투니, 왜군이 경외하여 차마 해치지 못하였다. 모친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시묘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혁경...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 상구부락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정호제(井戶祭)는 덕산읍 구산리 상구부락의 영천(靈泉)이라 불리는 동네 우물에서 정월 2일 밤 12시[子時]부터 3일 새벽 1시 사이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우물고사라고도 하며, 용왕을 신앙 대상으로 하는 마을 공동제(共同祭)로 『진천군지(鎭川郡誌)』에는 정...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회촌(晦村). 조선의 개국공신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7세손이며, 남대(南臺) 집의(執義) 정흠(鄭欽)의 현손이며, 입향조인 정방광(鄭邦絖)의 증손이다. 형은 정봉남(鄭鳳男)이다. 정황남(鄭凰男)은 백원서원(百源書院)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이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형 정봉남과 함께 어머니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산행와(山行窩).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손이다. 정회(鄭淮)[1805~?]는 일찍이 부친상을 당하고 어머니를 섬기기에 효성을 다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방안을 따뜻하게 하거나 서늘하게 하는 일까지 친히 보살폈다. 어머니의 비위에 맞는 음식을 장만하려고 애를 썼고, 아침저녁으로 드...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서 제비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제비 명당 이야기」는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소흘산에 있는 제비 명당에 석물을 해 놓으면 제비가 날아가지 못해 그 앞에 있는 구렁이 명당의 구렁이에게 제비가 잡아먹히게 되므로, 제비 명당자리에 묘를 쓴 집안이 화를 입게 된다는 지명설화이자 풍수설화이다. 1992년 진천문화원에서 간행...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제비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제비산 전설」은 천지개벽 때에 구곡리의 앞산이 제비꼬리 만큼만 남아 있어서 제비산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이 산이 홍수를 막아 주어 ‘지어미산’·‘지미산’ 등으로도 불린다는 지명유래담이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
충청북도 진천군의 산업 중 각종 원료를 가공하여 물품을 만드는 업종. 제조업이란 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가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전환시키는 산업 활동을 의미한다. 즉 농업, 수산업, 임업 등 제1차 산업에서 생산된 원료를 가공하여 제2차적 생산을 수행하는 산업으로서 광업, 건설업 등과 함께 제2차 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한국표준산업분류표에 의하면...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평양(平壤). 호는 백파(栢坡). 대제학 조정수(趙廷壽)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충청절도사를 지낸 조맹손(趙孟孫)이다. 조감(趙感)[1604~1689]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 19세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에 유폐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유배 보냈다가 죽인 이른바 폐모살제(...
-
개항기에 활동한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문학가. 조명희(趙明熙)는 본관은 양주(陽州)이고, 호는 포석(抱石)·목성(木星), 필명은 적로(笛蘆)이다. 시인이자 소설가, 희곡작가인 조명희는 1894년(고종 31) 8월 10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 수암부락[숫말]에서 조병행과 연일정씨와의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명희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소년기...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
구산동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초평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농다리 길이 증평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큰 길이었단다. 또한 신중희 할아버지는, 저수지 공사는 일제강점기에 시작했으나 완공되지 못하였고, 해방 후에도 계속 공사를 했지만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중단됐다가 3년 후에 완공이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게 왜정 때 시작하다가 마무리를 못 졌어, 그러고 해방이 됐어,...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양(平壤). 충청절도사를 지낸 조맹손(趙孟孫)의 후손이며, 손자로 조한욱(趙漢旭)을 두었다. 조재숙(趙載琡)은 철종 때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서 태어났다. 조선 후기 경사에 널리 통한 학자이자, 교육가였다. 늘 집안을 효(孝)와 우애로 다스리고 사람을 예로 대하였다. 또한 노계의숙(蘆溪義塾)을 세워 후진 양성에 힘...
-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문학가. 조중흡(趙重洽)은 본관은 양주(陽州)이다. 본명이 중흡이고 호가 벽암(碧岩)이나, 조벽암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1908년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 수암부락[숫말]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소설가·평론가이다. 조태희(趙兌熙)와 평산신씨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의 조카이다....
-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양(平壤). 평양조씨 시조 조춘(趙椿)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 의하면 고려 때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남송(南宋)에 가서 금(金)나라를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송나라 상장군(上將軍)이 된 인물이다. 조춘은 상원(祥原)에 정착하여 4세손까지 내려오다가 5세...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애니미즘(Animism)·토테미즘(Totemism)·샤머니즘(Shamamism) 등의 원시 신앙 이후 새롭게 등장한 것이 유교·불교·도교·기독교·이슬람교 등의 보편적인 종교였다. 이 종교들은 인간 중심의 원시 신앙보다는 더 발전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교·불교가 고대 사회와 중세 사회를 이끌었고, 근·현대에 들어...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주생활은 전통적인 양식과 구조를 가진 주거 건축 및 전반적인 주생활 행위를 의미한다.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주생활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전통적인 주거 형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진천 지역에 현존하는 주거 형태는 주로 19세기~20세기 초에 지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그 양식은 토담집과 일반적인 주거양식으로 구분된다. 먼저...
-
박기오를 시조로 하고, 박준산과 박명종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죽산박씨(竹山朴氏)의 시조 박기오(朴奇悟)는 신라 경명왕의 넷째 아들인 죽성대군(竹城大君) 박언립(朴彦立)의 아들이다. 그는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우고, 태조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삼중대광태보(三重大匡太保)에 올라 죽주백(竹州伯)에 봉해졌다. 후손들...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만죽리(晩竹里)의 ‘죽(竹)’자와 필현리(筆峴里)의 ‘현(峴)’자를 따서 죽현리(竹峴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만승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필현리·만죽리·성주동과 구암리·회안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죽현리라 하고 만승면에 편입하였다. 2000년 1월 1일...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죽현리에 있는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분묘 유적군. 죽현리 유적은 토광묘(土壙墓)·회곽묘·석곽묘(石槨墓) 등이 확인된 분묘 유적이다. 조성 시기를 알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된 유구는 토광묘[널무덤] 3기에 불과하여 다소 무리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조선 전기에서 근대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에 해당하는 것은...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죽현리에 있는 고려 중기 가마터. 죽현리 청자요지는 ‘고속도로 제40호선 안성~음성 간[8공구] 건설 공사’와 관련한 문화 유적 발굴 조사 중 발견되었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청자 가마 1기, 관련 폐기장 3개소, 석곽묘[돌덧널무덤] 1기, 토광묘[널무덤] 1기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1,500여 점으로 대접·발·접시·...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 있는 다리. 진천군 관내의 군도 교량은 26개소로서 총연장은 1.33㎞이며, 이월면의 군도 교량은 5개소로서 총연장 289m이다. 군도 11호선[진천~신월]의 이월면 동성리에는 동성교[연장 20m, 폭원 8m, 높이 3.5m]가 위치하고 있다. 중산교(中山橋)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중보리(中洑里)의 ‘중(中)’자와 도산리(刀山里)의 ‘산(山)’자를 따서 중산리(中山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보리와 도산리를 병합하여 중산리라 하고 이곡면과 월촌면의 이름을 딴 이월면에 편입하였다. 이월면 평야 지...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중석리(中石里)는 중리(中里)와 석탄(石灘)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중리는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장승배기와 앞말을 아우르는 마을이다. 석탄은 돌이 많은 여울이라는 뜻으로 ‘돌려울’의 한자 지명이다. 중리에서 1㎞ 떨어진 마을이다. 중석리는 본래 진천군 덕문...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상설시장. 중앙시장은 진천군 진천읍의 중심가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며, 각종 생활필수품을 구매하기에 알맞은 상설시장이다. 진천중앙시장이라고도 한다. 중앙시장은 1950년 1월에 개설되었으며 2005년 3월에 정식 시장으로 등록되었다. 1980년대 이후 중앙시장은 물론 진천 재래시장의 고객들이 인근의 청주시·충주...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이 소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중원도는 995년(성종 14)에 설치된 10도(道) 가운데 하나로, 고려시대 진천이 소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지방에 대한 체계적인 통제를 통하여 중앙 집권화를 굳히려는 목적에서 제정되었다. 고려는 후삼국 통일 이후 국가체제 정비에 나서게 되었고, 그 결과 983년(성종 2)에 12목(牧)을 설치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담당 기관. 중학교의 수업 연한은 3년이고 초등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71년 무시험 입학제가 실시되었으며 1994년부터 진천군 관내의 모든 중학교 교육은 의무 교육으로 전환되었다. 1951년 진천중학교가 개교한데 이어 1953년에는 광혜원중학교가, 1955년에는 덕산중학교...
-
충청북도 진천 군민들 스스로가 또는 주민의 대표자를 통해 행사하는 정치와 행정. 지방자치란 중앙 집권적 행정 체제의 지방 분권적 행정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방자치의 중요한 점은 중앙 집권의 폐해나 중앙 정부의 권력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이 지방 자치 단체의 여러 가지 시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데 참여하여 각각 그 지역의 특수한 사정을 살리면서...
-
조선 후기 박제형이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에 있던 지산서원과 최석정을 칭송하고 예찬하는 칠언절구의 한시. 지산서원(芝山書院)은 1722년(경종 2) 초평면 금곡리에 있는 현재의 초평초등학교 부지에 진사 이시진이 건의하여 건립한 곳으로, 이듬해 사액되었다. 여느 서원과 달리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 한 사람의 위패만을 모신 서원이다. 판교(板橋) 박제형(朴齊珩)...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지산서원의 터. 최석정(崔錫鼎)은 1671년(현종 12) 문과에 급제한 후 부제학·한성부판윤·이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697년(숙종 23) 우의정이 되어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 후 좌의정·영돈녕부사를 거쳐 1701년(숙종 27) 영의정에 올랐다. 만년에는 향리인 진천 초평면 금곡으로 물러나 태극...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선사시대의 지석묘 유적이 있었던 곳이어서 지석(支石)이라 하였다. 고인돌·괸돌·괸들이라고도 한다. 지석 북서쪽에 마장부리[800m]라는 산이 솟아 있고, 동남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물길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급수하는 가진계보가 있다. 북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는 들이 넓어 점심을 이고 가던 여자가 똥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지신(地神)을 위로하는 민속놀이. 지신밟기는 진천군의 각 마을에서 음력 정월 초이튿날부터 대보름 사이에 농악대를 조직하여 마을의 공동우물, 마을 어귀의 큰 나무 등 마을의 소중한 곳과 각 가정을 돌며 지신[땅을 맡은 신령]을 달래어 가정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민속놀이이다. 지신밟기 놀이가 가장 왕성하게 진행되는 시기는 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지장리(芝長里)의 ‘지(芝)’자와 가암리(加岩里)의 ‘암(岩)’자를 따서 지암리(芝岩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서암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장리·유점리·상가리·산직리·가암리·입장리·신리를 병합하여 지암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약 1987년에 한성 스님이 창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장암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산신각이 있으며, 이 밖에 요사채 1동과 노인 요양 시설로 사용되는 복지관 등의 시설이 있다. 정확한 신도 수는 알 수 없으며, 노인 요양 시설을 겸한 사찰이라 할 수 있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지각을 이루는 물질. 충청북도 중앙 서단에 자리 잡은 진천군은 진천도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진천도폭은 행정구역상으로 주로 진천군과 경기도 안성군에 걸쳐 있고, 충청남도 천안시와 충청북도 음성군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진천군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진천 편마암 복합체는 진천군·청원군 일부와 충청남도 천안시, 경기도 안성시 일...
-
충청북도 진천 지역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차령산맥이 진천군과 경기도 안성시의 경계를 이루며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고, 진천군은 차령산맥 남단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1. 북서부 지역 진천군 북서부는 변성암류가 분포하는 험준한 지역으로 광혜원면 구암리 북쪽으로 덕성산(德城山)[519m], 백곡면 양백리 서북쪽으로 서운산(瑞雲山)[...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진암리(陳岩里)는 진동(陳洞)과 대백암(大白岩)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진동은 옛날 난리가 났을 때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대백암은 이곳의 암석이 흰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소백암보다 규모가 크다 하여 대백암이라 하였다. 진암리는 본래 청...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고려 태조가 궁예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청주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진천에 군사를 파견하여 청주 세력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청주를 진압하였던 전초기지였다는 의미에서 진주(鎭州)라고 명칭을 변경하였다. 진주는 고려군이 청주세력을 ‘진압(鎭壓)한 곳’, 혹은 고려군이 ‘진수(鎭守)한 곳’이라...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백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진주강씨(晉州姜氏)는 고구려 때 도원수를 지낸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삼는다. 강씨가 진주에 세거한 것은 8세 강우덕(姜友德)이 이거한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렇지만 고구려 멸망 이후 강씨 집안이 북방에서 남쪽인 진주로 남하한 것은 신라의 삼국 통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통일신...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충청북도는 역사적·지리적으로 서울과 삼남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개신교 초창기부터 각 선교부의 선교 거점이 되었다. 1900년을 전후하여 충청북도 지역 특히 청주 지역에는 장로교를 비롯한 감리교·침례교 선교사들의 간헐적 왕래를 통한 순회방식의 전도가 추진되었다. 순회방식의 전도란 결국 도로망...
-
조선 후기 및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교 학파의 하나. 강화학파(江華學派)는 정제두(鄭齊斗) 이후 가학(家學)으로 양명학을 전수해간 일련의 관료 유학자들이며 하곡학파(霞谷學派)라고도 한다. ‘강화학(江華學)’이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양명학의 정립자인 하곡(霞谷) 정제두가 강화에서 가학으로 학문을 전수했던 것에 착안하여, 후대의 연구자들이 붙인 용어이다. 강화학파는...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고추. 진천고추는 진천군 전역에서 재배하며, 특히 문백면과 백곡면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다. 1981년 8,718,000㎡에서 약 1,136톤, 1985년 15,609,000㎡에서 2,455톤, 1990년 5,733,000㎡에서 약 1,014톤, 1995년 4,045,000㎡에서 1,257톤 2000년 3,095,000㎡에서 665톤, 2005...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금성대군의 사우. 금성대군(錦城大君)[1426~1457]은 세종의 여섯째 왕자로 이름은 이유(李瑜)이다. 1456년(세조 2) 사육신에 의한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지를 전전하다 경상도 순흥에 안치되었으며,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1457년(세조 3) 사사되었다. 이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 도당산에 있는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천현 산천조와 사묘조에 “신라진평왕시 만로군태수 김서현 처 만명 임신 20월생 자왈유진 상태어현15리 화위신 인위태령산 자신라시 치사우춘추강향축행제 고려잉지지 본조 태조 8년 시정지 영소재관치제”라 하여 신라 때부터 장군의 태가 묻힌 태령산 아래...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덕숭의 정려. 조선 세종 때 한산군수를 지낸 김덕숭은 효심이 대단했다. 엄동설한에 병환으로 고생하던 어머니가 잉어를 먹고 싶어 해서 지금의 백곡저수지 아래 여계소(女溪沼)에 내려가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며칠간 기도를 올렸는데, 무릎 자리가 녹아 생긴 구멍으로 잉어 2마리가 나와 1마리는 살려주고 다른 1...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의 생가와 태실.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은 김유신(金庾信)[595~673]이 태어난 곳과 그의 탯줄을 보관한 태실을 가리킨다. 김유신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후손으로 595년(진평왕 17)에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당나라군과 연합하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남지의 묘소 및 신도비. 남지(南智)[?~?]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지숙(智叔)이다. 세종~단종 대의 문신으로, 영의정 남재(南在)의 손자이다. 좌의정으로 있을 때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와 함께 문종으로부터 단종을 보필하라는 고명(顧命)을 받았으나 풍질로 낙향하였다가 병사하였다. 남지가 죽은...
-
1862년 충청도 진천현에서 발생한 농민항쟁. 1861년 7월에 부임한 전임 현감 이호신(李鎬臣)에 의해 과도하게 책정된 결가(結價) 20냥을 축소해 달라는 청원이 1862년 1월에 부임한 신임 현감 김병유(金炳儒)에 의해 거부당하고, 오히려 징수 집행에 들어가자 진천현의 군민들이 항거하여 일으킨 농민항쟁이다. 1862년(철종 13)에 일어난 농민항쟁, 이른바 1862년 농민항쟁[...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느타리버섯. 국내의 야생 버섯은 3,000여 종으로 추정되나 공식 집계된 것은 660여 종이며, 그중 인공적으로 재배되는 버섯은 양송이버섯·느타리버섯·표고버섯·영지버섯·팽이버섯 등이다. 충청북도에서 느타리버섯이 주로 생산되는 곳은 진천군을 비롯하여 옥천군, 보은군 등이다. 특히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진천느타리는 첨단 재배 시설과 저온 저장고 등...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공공도서관. 진천도서관은 각종 정보 매체를 통하여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 문화·교육센터로서의 기능을 다하여 진천 지역의 교육·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7년 11월 18일 「진천군 도서관 설치조례」(조례 제1023호)가 제정되고, 1988년 8월 1일 진천군 도서관으로 개관하였다. 1991년 3월 26일 진...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문학 동인지. 충청북도 진천군에서는 1962년 7월 ‘박꽃동인’이라는 문학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1980년 1월 25일 송재섭과 이내현이 박꽃동인의 맥을 잇는 진천문학동인회의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진천문학』의 창간을 계획하였다. 이후 7월 17일 회원들의 노력으로 창간호가 출간되었다. 판형은 신국판[가로 152㎜, 세로...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배. 1981년 337,000㎡에서 약 198톤, 1985년 104,000㎡에서 1,160,000톤, 1990년 9.5㎡에서 814,000톤, 1995년 429,000㎡에서 450톤, 2000년 927,000㎡에서 1,672톤, 2005년 646,000㎡에서 약 1,269톤, 2006년 638,000㎡에서 약 1,309톤, 2007년 510,...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사과. 1981년 4,672,000㎡에서 약 1,975톤, 1985년 1,914,000㎡에서 2,324톤, 1990년 1,724,000㎡에서 약 2,085톤, 1995년 1,866,000㎡에서 2,195톤, 2000년 947,000㎡에서 2,035톤, 2005년 573,000㎡에서 1,150톤, 2006년 613,000㎡에서 약 1,066톤,...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에 있는 백제시대 가마터. 진천 삼용리 백제 토기요지는 1986년에 시행된 중부고속도로 건설 구간의 문화 유적 발굴 조사 중 확인된 가마터로서 우리나라에서 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서기 3세기 이전의 것으로 알려진 두드림무늬토기, 즉 타날문토기(打捺紋土器)를 만들어 내던 백제 때의 대형 도요지이다. 지정 면적은 3,432㎡로 총 6기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상공인 권익 보호 단체. 진천상공회의소는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상공업 환경 개선 및 발전을 꾀하고, 회원 기업의 권익을 대변하여 상공업계의 어려움을 타개하며, 상공업 진흥 및 교류 확대와 각종 정보 제공을 통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2003년 11월 6일 진천상공회의소 발기인대회를 열고, 같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모임과 미사 및 공동체 묵상을 통해 하느님의 교리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6년 6월 1일 진천성당이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부지는 10,909㎡이었고 건물은 성당과 사제관 등 463㎡ 규모였다. 그 후 부지와 부속 건물들을 확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송인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진천송씨(鎭川宋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 때의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1126]으로, 벼슬은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고려 때 활동했던 진천 출신 인물로 송언기(宋彦琦)와 송국첨(宋國瞻)이 보인다. 송언기는 어려서부터 글을 읽었고, 고종 때 과거에 급제...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 송인의 묘소. 송인(宋仁)[?~1126]은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서 태어났으며, 이자겸(李資謙)의 난 때 인종을 호위하다가 척준경(拓俊京)이 이끄는 난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난이 평정된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추증되고 상산백에 봉해졌다. 진천읍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 금왕...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신헌의 가옥. 신헌(申櫶)[1810~1884]의 자는 국빈(國賓), 호는 위당(威堂)이다. 조선 후기 무신이며 외교가로 병자수호조약과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하는 등 조선의 개항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말년에는 고향인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로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 시호는 장숙(壯肅)이다. 진천읍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비. 진천 연곡리 석비(鎭川蓮谷里石碑)는 고려 전기인 10세기경에 세워진 비석이다. 비신에 아무런 명문이 새겨져 있지 않아 ‘연곡리 백비’라고도 부른다. 건립경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진천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방향으로 가다가 사석삼거리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 천안 방면으로 가다보...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영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괘불탱화. 「진천영수사영산회괘불탱」은 석가모니불이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로 1977년 12월 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3월 12일 보물 제155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진천영수사영산회괘불탱」은 17세기 영산회상도의...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오이. 1981년 136,000㎡에서약 251톤, 1985년 180,000㎡에서 409톤, 1990년 151,000㎡에서 약 354톤, 1995년 372,000㎡에서 약 843톤, 2000년 99,000㎡에서 255톤, 2005년 160,000㎡에서 1,869톤, 2006년 270,000㎡에서 3,050톤, 2007년 306,000㎡에서 4,...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거이의 묘소. 이거이(李居易)[1348~1412]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청허당(淸虛堂)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건국에 공이 있으며, 1398년(태조 7년)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공을 세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생가.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정사로 파견되었으며, 전 생애를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진천 이상설 생가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번지[이상설안길 10]에 있다. 중부고속도로를 이...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이영남의 묘소. 이영남(李英南)[1547~1598]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士秀)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1584년(선조 17)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옥포만호로서 원균(元均)을 도와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에게 왕래하며 군사를 요청하는 등 여러 해...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 있는 고려 후기 이정 부부의 묘소. 이정(李挺)[1297~1361]의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춘길이다. 부인은 통례부사 김계초의 딸이다. 이정은 1326년(충숙왕 13)에 병과2등으로 급제하여 봉거직장(奉車直長)·경상도찰방(慶尙道察訪)에 나갔다가 낙향하여 10년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은거하였다. 1353년(공민왕 2)...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집의 묘갈. 이집(李輯)[1670~1727]은 본관이 고성(固城)으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변을 맛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고 한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삼년상을 치르면서 날마다 죽만 먹고 슬프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힘써 순종하며, 신자들끼리 서로 가르치고 치유하고 선교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0년 5월 3일 이창언 목사의 헌신적 노력으로 설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구제 사업, 전도 사업, 자원 봉사 사업, 미 자립 교회 지원 사업, 선교...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장미. 장미는 장미과 장미속에 속하는 다년생 관목 또는 덩굴 식물로 품종은 세계적으로 약 15,000종에 이른다. 화훼 산업은 국민 소득 증가와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국민의 요구에 따라 농업인의 주요 소득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장미의 가시 돋친 줄기와 잎은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강한 투지력을 상징하며, 꽃의 고상한 품위와 아름답고 화사한...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위패를 모신 사당. 정철(鄭澈)[1536~1593]의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시인이다.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국문학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같은 가사 작품을 남겼다. 진천읍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묘소. 정철(鄭澈)[1536~1593]의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시인이다.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국문학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같은 가사 작품을 남겼다. 진천읍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방향으로 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공적비.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조선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며, 가사문학의 대가이다. 진천 정철 신도비는 정철의 공적을 적은 비석이다. 진천 정철 신도비는 정철의 사후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본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옛 지명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진천제일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열매 맺는 건강한 교회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예배의 열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영혼 구원의 열매, 예수의 마음을 닮아가는 진실한 섬김의 열매,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거룩한 소망을 이루는 형통의 열매를 마음속에 맺는 것을 목표로 삼아 실천하고 있다....
-
1950년 7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서 일어난 전투. 6·25전쟁을 도발한 북한군 주력부대는 6월 27일 파죽지세로 서울을 점령하여 7월 3일 한강 방어선을 뚫고, 경부국도를 따라 남진하는 한편 경부국도 동쪽으로는 북한군 제2사단이 국군 제6사단 제19연대를 밀어제치고 이천, 장호원, 진천을 향하여 남진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의 이른바 제3차 침공계획을 보면, 중부 서쪽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진천중앙교회는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성령이 충만한 교회, 말씀이 흥왕 하는 교회, 기도에 힘쓰는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와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4년 1월 17일 진천읍 교성리 1구 190번지 엄학용의 집에 가정 제단을 쌓고 첫 예배를 시작한데 이어 6월 5일...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호박. 호박은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풀이다. 덩굴 단면은 오각형이며 덩굴손으로 감으면서 자란다. 암수한그루로 6월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종 모양의 노란 꽃이 피고 열매는 장과(漿果)로 크고 둥글며 연한 노란색이다. 잎과 순, 열매는 식용하며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로 세계 각지에 분포한다. 최남선(崔南善)은 호박의 한자 이름인 남과(南瓜)는 남...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우경과 정인옹주 부부의 묘소. 홍우경(洪友敬)[1590~1625]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부(敬夫)이다. 1603년(선조 36) 선조와 정빈 민씨 사이에서 태어난 정인옹주(貞仁翁主)와 혼인하여 당원위(唐原尉)에 봉해졌다. 1618년(광해군 10)에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이첨(李爾瞻)의 음모를 성토하다 유...
-
충청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 진천군은 차령산맥이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달리고 있어 산악이 많고 동북부는 광혜원면과 백곡면의 경계를 흐르는 미호천 지류들이 남류하여 비교적 넓은 진천평야를 이루고 있다. 진천군은 충청북도 3시 10군 중의 하나로서 삼한시대에는 수지(首知) 또는 신지(新知)로, 고구려시대에는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신라 관할 이후로는...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있는 진천군 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보건소. 진천군 보건소는 진천군민은 물론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공공 보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강한 삶과 활기찬 생활 유지에 도움을 주고자 설립되었다. 1963년 「법률」 제1160호에 의거 보건소를 설치하였고, 1987년 읍내리 435-7번지로 이전하였다. 1992년 물리치료실을 갖추었고,...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서 발행하는 지역 주간 신문. 진천을 풍요롭게 활기찬 군으로 만들고, 진천군의 다양한 군정 소식뿐만 아니라 문화·교육·시사에 대한 내용을 진천군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1997년 12월 12일 『진천군민신문』을 창간하였다. 진천 지역에서 일어나는 정치·경제·생활·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시사 관련 내용을...
-
충청북도 진천군의 이야기를 담은 군민의 노래. 「진천군민의 노래」는 진천의 대표적인 자연경관인 만뢰산(萬賴山), 미호천(美湖川) 등의 정기를 이어 받아 역사와 전통을 지켜 자랑스러운 군민이 되자는 가요이다. 2절로 되어 있는 「진천군민의 노래」에는 진천의 역사의 소용돌이에 따라 자연지리와 다양한 인문지리 요인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다. 과거에는 「진천군민의 노...
-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진천군의 연혁·산천·고적·인물 등을 기록한 군지. 진천군은 1987년 중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새로운 산업 입지로 변모되면서 경제·사회·문화적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시대적 변화에 걸맞은 군지 발간의 필요성을 느껴, 1974년 발간된 군지를 밑그림 삼아 역사·지리·문화·사회·행정·풍속·언어 등 모든 자료를 새롭게 수집 정...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진천군 관할 행정 기관. 진천군청은 진천군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고구려시대에 금물노군(今勿奴郡), 만노군(萬弩郡), 수지(首知), 신지(新知)라 했으며 통일신라 때에는 흑양군(黑壤郡)이라 고치고 그 후 황양군(黃壤郡)이라 하였다. 고려 초에 이르러 강주(降州)라 한 후 다시 진주(鎭州)라 개칭하고 성종...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산척리·삼덕리에 걸쳐 있는 들. 진천들은 진천과 들로 나뉜다. 진천은 진천읍(鎭川邑)을 가리키므로 진천들은 ‘진천읍에 있는 들’로 풀이된다. 그러나 진천의 뜻은 내[川]와 관련된다는 점 외에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진천읍 동부에 백곡천(栢谷川)이 서남류하면서 진천들을 형성하고, 진천읍 북부에는 덕산들, 이월면 동부에는...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행정구역. 진천(鎭川)이라는 지명은 고려 태조 때 진주(鎭州)에서 비롯되었다. 진주는 고려 건국 초기 청주 호족 세력의 반란을 진압한 곳, 또는 고려군이 진수(鎭守)한 곳이라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조선이 건국한 뒤에는 고려 후기 이후에 무질서하게 승격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을 각 읍락의 호구(戶口)와 전결(田結) 수에 따라 재조정하고 부사...
-
1919년 3월과 4월에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전개된 3·1운동. 일제의 한국 강점과 무단 통치에 대항하여 1919년 3·1운동이 서울에서 시작하여 전국에 파급되었다. 충청북도 진천 출신 재경 조명희[중앙고보]와 홍순복은 서울에서, 박승하[청주농업학교]는 청주에서 각기 재학 중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일원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1919년 3월 15...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진천읍 관할 행정 기관. 진천읍사무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진천군의 남쪽에 위치하여 남면으로 칭하여 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중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17년 군중면을 다시 진천면으로 개칭하였으며 1930년 명...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서 매월 5일과 10일에 열리는 시장. 진천장(鎭川場)은 일제강점기에는 진천읍내장이라 하였는데 진천군에서 가장 큰 면적과 이용객 수를 자랑하는 중심시장이다. 읍내리 4구의 소전거리에는 군내에서 가장 큰 우시장도 있었다. 소전거리의 우시장은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 55-2번지[문화로 263-50]로 이전되어 부지 면적 4,910㎡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국립 교육 기관.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는 강학 장소인 동시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현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사당인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 그리고 강당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천향교(鎭川鄕校)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향교골에 있으며, 진천읍 동남쪽 급경사면에 위치하...
-
충청북도 진천군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칭. 진천현(鎭川縣)은 조선왕조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전국적으로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하면서 폐지되었다. 1413년의 전국적인 지방제도, 즉 군현제 개혁은 고려 후기 이래 무질서하게 승격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의 읍격(...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에서 집터를 다지면서 부르던 노래. 「집터 다지는 소리」는 집을 짓기 위한 땅을 잘 다지기 위해 부르는 토목노동요로서, 여러 사람이 무거운 돌덩이나 통나무를 줄에 묶어 함께 들어 올렸다 내려뜨리면서 부른다. 그러므로 「집터 다지는 소리」는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모아 동작을 통일하기 위한 신호의 기능을 가진다. 지역에 따라 「땅 다...
-
조선 후기 정기회가 충청북도 진천에 있는 창랑정에 올라 세상의 혼탁함에 대하여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창랑정(滄浪亭)」은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율산(栗山) 정기회(鄭基會)가 지은 한시이다. 창랑정에 올라 매화와 소나무 등 사군자와 물을 예로 들고, 혼탁한 세상에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살았던 옛 지인(知人)의 삶의 태도를 그리워하고 있다. 시정 깊어지니 이 마음 너그러워...
-
황충준·황석기·황양충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창원황씨(昌原黃氏)는 본관을 같이하면서도 계보를 달리하는 세 파가 있다. 고려조에서 문하시중을 지낸 황충준(黃忠俊)을 시조로 하고 후손 황신(黃信)을 1세조로 하는 이른바 토황(土黃)으로 일컬어지는 시중공파(侍中公派), 공희공(恭僖公) 황석기(黃石奇)를 시조로 하는 이른바 당황(唐黃)이라고 일컬어...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인 임연(林衍)이 김준(金俊)과 함께 최의를 제거하고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에 임연의 고향인 진주(鎭州)를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시켜 그의 공훈에 대해 포상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지 양광도 청주목 진주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종 46년 임연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강(平康). 순당(蓴塘) 채진형(蔡震亨)[1579~1659]의 후손이다. 채진형은 본래 서울에 살았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꿈속에서 피난가라는 계시를 받고 피신하여 진천 땅 어느 곳에 정착하고, 꿈속에서 계시를 받아 찾은 마을이므로 마을 이름을 몽촌(夢村)이라 했다고 한다. 현재 마을을 이룰 당시 심었던 은행나무는 수령 310년...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채경언의 정려. 채경언은 아버지가 병이 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살아나게 하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연못가에서 사흘간 빌어 잉어를 구해 어머니께 드려 병을 낫게 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각각 3년씩 총 6년간 시묘하여 주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에 인조 대에 정려(旌閭)를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鳳巖). 할아버지는 삼환재(三患齋) 채지홍(蔡之洪)[1683~1741]으로,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에서 태어났다. 인천채씨(仁川蔡氏) 시조 채선무(蔡先茂)는 고려 중엽 벼슬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使)에 이르렀는데 인천에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인천을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용구(用九), 호는 지비재(知非齋) 또는 지비자(知非子). 증조할아버지는 채흥선(蔡興先)이고, 할아버지는 채정간(蔡廷侃)이다. 아버지는 진사 채진형(蔡震亨)이며, 어머니는 김몽정(金夢禎)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아버지 채진형이 우거한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몽촌마을이 가문의 근거지이다....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강(平康). 1910년(순종 4) 10월 21일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서 출생하였다.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한 뒤 상해로 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 복역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경도신문사 기자로 독립운동을 하다 다시 체포,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채수복(蔡洙福)[1910~1945]은 1930년 1월 16일 서울 협성실업학...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채수복의 묘소 및 사적비. 채수복[1910~1945]은 1930년 서울의 협성실업학교 재학 중에 학생들을 동원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며 가두시위를 전개한 것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는데, 출옥 후에도 서울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鳳巖)·삼환재(三患齋)·봉계(鳳溪)·사장와(舍藏窩).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채영용(蔡領用)이다. 채지홍(蔡之洪)[1683~1741]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는데, 8세 때 “달이 동산 위에 떠오르니 그 모습이 태극과 같구나[月出...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로마 교구의 주교인 교황을 으뜸으로 삼는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 천주교는 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이다. 이를 ‘구교’, ‘가톨릭교회’ 등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1791년 신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으로 선교의 어려움을 겪다가 1882년 한미수호...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석기시대를 벗어나 청동을 이용하여 도구를 제작·사용한 시기의 역사와 문화. 청동기시대라는 명칭은 인류 선사문화의 발달을 석기-청동기-철기문화의 순서로 정리한 톰센[C. J. Thomsen, 1788~1865]의 삼시대법[Three Age System]에서 연원한다. 금속기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기술적 진보 외에도, 청동기시대가 되면 세계 몇몇 지역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조선 개국공신 이거이 일가의 공적비. 이거이(李居易)의 본관은 청주이고, 자는 낙천, 호는 청허당이다. 고려 말 문신 이정의 아들로,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1393년(태조 2) 우산기상시를 거쳐 판한성부사·문화좌정승에 오르고, 1402년(태종 2) 영사평부사로 서원부원군에 봉해졌으나 대간의 탄핵을 받고 아들 이저(李佇)...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청주한씨의 정려각. 한정준(韓庭儁)의 딸인 청주한씨는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의 9세손 신의양(申義養)과 혼인하여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청주한씨가 26세 되던 해에 남편인 신의양이 죽자 장례를 마친 뒤 자신도 남편의 허리띠로 목을 매어 따라 죽었다. 이에 1834년(순조 34) 9월 청주한씨의 열행...
-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행정구역. 조선 말기 진천군 초평면 지역으로, 통동리(通洞里)·이곡리·금한리(金閑里)·수문리(水門里)·양촌리(陽村里)·지전리(芝田里)·선암리(仙岩里)·신평리(新坪里)·상영리(上永里)·하영리(下永里)·농촌리(農村里)·부창리(扶昌里)·매산리(梅山里)·죽정리(竹亭里)·수문리(水門里)·구성리(九星里)·어은리(漁隱里)·삼봉리(三峯里)·봉암리(鳳岩里)·용동리...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초평면 관할 행정 기관. 초평면사무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초평면은 본래 진천군의 지역으로 통동, 이곡, 금한, 수문, 양촌, 지전, 선남, 신평, 상영, 하영, 농촌, 부창, 매산, 죽정, 수문, 구성, 어은, 삼봉, 봉암, 용동...
-
박제형이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 초평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은 한시. 「초평잡제」는 판교(板橋) 박제형(朴齊珩)이 지은 한시로 화산리의 초평저수지와 그 주변 일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노래한 시이다. 모두 6수가 전해 내려온다. 칠언절구와 칠언율시, 오언절구 등의 한시로 되어 있다. 1. 칠언절구1 화랑호수를 어찌 산에 비유하리오/ 파아란 물 담담한...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매월 2일과 7일에 열렸던 시장. 초평장(草坪場)은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에 있었는데 생곡(生谷)은 마을 형성 당시 경주이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었다. 경주이씨 9대조의 호가 생곡이므로 동명을 생곡이라 하였다. 생곡은 날터로 변하였고 초평장이 서게 되자 다시 장터로 변하였다. 초평장은 초평면 일대의 주민들에게...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보현산에서 발원하여 진천군 초평면 신통리에서 초평저수지에 유입되었다가 문백면 평산리 평사마을에서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초평천(草坪川)이 흐르는 초평면은 진천군의 동부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으로 괴산군, 서쪽으로 미호천을 사이에 두고 문백면·덕산면, 남쪽으로 청원군, 북쪽으로 음성군과 이웃하고 있다. 초평천은 초평과 천으...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화순(和順). 충절공(忠節公) 최영유(崔永濡)의 8세손이다. 화순최씨(和順崔氏)의 시조는 최세기(崔世基)이다. 고려시대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그가 화순의 옛 이름인 오산(烏山)에 봉해짐으로써 화순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최세기와 같이 몽골군의 침입 때 공을 세우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부(崔傅)를 함께 시조로 삼기도 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왕조 개국원종공신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9세손이며, 효자 최사립(崔斯立)의 증손이다. 최사립 이후 최면성에 이르기까지 자손이 모두 효행으로 이름을 얻었다. 최면성(崔勉誠)은 사마시(司馬試)의 양과, 즉 생원시·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대의 혼란기를 맞이하여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완산이다. 호는 복재(服齋)이다.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1811~1876]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平山里)에서 살면서 평생 유학 연구에 종사하였다. 사후(死後) 임헌회의 제문을 받았다....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6세손이다. 아들은 최덕순(崔德恂)이고, 손자는 최기(崔基)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은 전주최씨의 주요 세거지이다. 최사립(崔斯立)은 군수를 지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중종 때에 정문이 세워졌으며, 아들인 최덕순도 군수를 지냈고 효성이 지극하여 선조 때에 정문이 섰다. 손자 최기는...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1343~1413]의 여섯째 아들이다. 최유경은 1406년(태종 6) 참찬의정부사가 된 뒤 사임하고 진천군 초평면 죽정마을로 내려와 스스로 죽정(竹亭)이라 부르며 한가로이 여생을 보냈다. 최사흥(崔士興)은 효성이 지극하여, 충청도 대흥현감무로 있을 때 부친상을 당하자 벼슬을 버리...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석만(錫萬), 자는 여시(汝時)·여화(汝和), 호는 존와(存窩)·명곡(明谷). 증조할아버지는 최기남(崔起南)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崔鳴吉)이며, 아버지는 한성좌윤 완릉군(完陵君) 최후량(崔後亮)이다. 어머니는 안헌징(安獻徵)의 딸이다. 응교(應敎) 최후상(崔後尙)에게 입양되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연극인이자 기자. 최석하(崔錫夏)는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1935년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원앙골에서 최만석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최석하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상산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칠판 가득 채워진 문제와 답을 그 이튿날 전부 암기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최석하의 부모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못 배운...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에서 최씨 형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최씨 형제 이야기」는 가산리 개미저리[현재의 신계리 하신] 마을에 살던 최씨 집안의 형이 공부에 열중하여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던 도중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 것을 팔다리 한 짝이 없는 외쪽이동생의 지혜로 탈출하였다는 우애담이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천군지』에...
-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할아버지는 선부전서 상호군을 지낸 최득평(崔得枰)이고, 아버지는 감찰대부 최재(崔宰)이며, 어머니는 무안군부인 박씨로 군부정랑을 지낸 박윤류(朴允鏐)의 딸이다.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1372년(공민왕 21) 판도사좌랑이 되어 각도의 의염(義鹽...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최유경·최사흥 부자의 정려각. 전주 출신인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공민왕 대에 사헌장령(司憲掌令), 우왕 대에 전법총랑(典法摠郞)·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 등을 거쳐 조선 왕조가 개창된 후에는 원종공신(原從功臣), 경기·충청도의 도체찰사를 거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판한성부사(判漢城府使...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할아버지는 지군사(知郡事) 최극함(崔克咸)이다. 최제두(崔濟斗)가 태어난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은 전주최씨의 주요 세거지이다. 최제두는 10세에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할머니가 마마를 앓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약과 함께 마시게 하였는데, 손가락을 끊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였다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할아버지는 효자 최주민(崔柱旻)이다. 최종운(崔宗運)이 태어난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은 전주최씨의 주요 세거지이다. 최종운은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너무 어려서 상을 치르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기다가 어머니의 사갑(死甲)을 맞던 해에 3년 복을 추복(追服)하였다. 또한 아버지의 병...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할아버지는 최기(崔基)이다. 최주민(崔柱旻)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작은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모셨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어 완쾌하게 하였고, 손수 약맛을 보아 봉양하였다. 숙종(肅宗) 때 정려가 내려졌다. 최주민의 할아버지 최기, 고조할아버지 최덕순, 증조할아버지 최사립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평산(平山). 남편 최혼(崔焜)은 지사(知事) 최극성(崔克誠)의 손자로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신씨는 남편 최혼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는 등 병간호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결국 남편이 죽자 만 1년 뒤 기제사를 마친 후 곡기를 끊고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1699년(숙종 25)...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출생하여 활동한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며 효자.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성습(聖習)이다. 조선왕조 개국원종공신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13세손으로 부친은 최수남(崔守南)이다. 진천에 거주하였으며 1852년(철종 3) 식년 생원시에 56세로 합격하였다. 학문이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이 어머니가 숙환을 앓게 되자 몇 해 동안...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이루어지는 가축을 사육하거나 그 생산물을 가공하는 산업 활동. 축산업은 토지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각종 가축을 사육하고 그 생산물을 가공하여 인간의 실생활에 필요한 물질을 생산·공급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여기서 축산업을 축산물의 생산은 물론 그 생산된 축산물을 가공 또는 처리하여 유통하는 전 과정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진천 출신 전몰군경들의 위패를 봉안한 탑. 본래 1945년 이후부터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진천 출신의 국군장병·경찰·군속 등의 호국영령 419위를 초평면 영구리 영수사(靈水寺)에 봉안하여 왔다. 이후 1965년 진천읍 읍내리 산3-2번지 정상에 충혼탑을 건립하고 458위의 영령을 봉안해 오다 1994년 6월 16일 현재 자리인 진천읍...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장산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월성리, 이월면 사당리를 거쳐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칠장천(七長川)은 칠장과 천으로 나뉜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장산(七長山)에서 발원하므로 붙은 이름인데 칠장리나 칠장산이란 지명의 어원은 알 수 없다. 다만 칠장산에 있는 칠장사(七長寺)는 고려 초 혜초국사가 창...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태랑리(台郞里)의 ‘태(台)’자와 거락리(巨洛里)의 ‘낙(洛)’자를 따서 태락리(台洛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서암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태랑리·역리·거락리·개찬리·목동을 병합하여 태락리라 하고 진천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3월 1일 진천면 태락리를...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의 원 터. 태락원 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진천현 관할의 옛 원(院)이 있던 자리이다. 원은 고려·조선시대에 역과 역 사이에 두어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던 공공 여관이다. 마을 노인의 말에 의하면 “옛날 장사꾼들이 청주장을 보고, 진천장으로 가다가 묵어가던 곳이었으며,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이 원...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산. 태령산(胎靈山)[421m]은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만노태수 김서현(金舒玄)과 아내 만명(萬明)의 아들인 김유신의 태(胎)를 산정에 매장하였다고 하여 붙은 명칭이다. 또한 길상사(吉祥寺)가 있었기에 길상산(吉祥山)이라고도 한다. 태령산 주위를 태령산성(胎靈山城)이 둘러싸고 있다. 태령산성은 둘레 216m...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이 풍화·분해되어 생성된 흙. 진천군의 토양은 내륙 평탄지의 토양, 하천 범람지의 토양, 낮은 구릉지와 산기슭, 낮은 구릉지 곡간지의 토양, 구릉지·산악 지대 토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토지의 비옥도가 떨어지고 지형상의 제약도 있어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내륙 평탄지의 토양은 39.60㎢로 군 전...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특색 있는 산물.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불리는 진천군은 천혜의 기후와 토양 조건 등의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다. 1980년대 중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대도시와 편리하게 연결되는 이점을 살려 특화 작물, 과일·채소·특용 작물 등의 재배가 성하고, 풍부한 생산물을 원료로 하는 먹을거리와 훌륭한 공예품이 생산된다. 진천군의 3대 특...
-
조선 후기 채지홍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백사장의 빼어난 경관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봉암(鳳巖) 채지홍(蔡之洪)[1683~1741]은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여 8세에 이미 한시를 지어 세인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성리학적 소양이 높았다. 한때 충청도사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당시의 당파 싸움에 혐오...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평산리(平山里)는 평사(平沙)와 통산(通山)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평산리는 본래 진천군 백락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이티리·평사리·통산리를 병합하여 평산리라 하고 문방면과 백락면을 통합한 문백면에 편입하였다. 서쪽에는 양천산[...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입었던 옷. 충청북도 진천 지역은 현대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평상복의 기본적인 형태는 특별한 점이 없다. 따라서 전통적·계절별로 지역에서 사용했던 옷감과 의복의 구성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써 평상복의 구성과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진천 지역에서 주로 평상복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전통적으로 바지·저고리·치마·속곳·두...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주민들이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평생의례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생활하다가 일생을 마칠 때까지 삶의 중요한 단계마다 치러야 하는 여러 가지 의식이다. 이를 통과의례(通過儀禮)·일생의례·생활의례 등이라고도 한다. 즉 관혼상제의 의례를 말하는데, 조선시대부터 숭상된 유교의 바탕 위에서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번잡스러운 면...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서 품목골 샘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강당부락에 품목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의 외딴 집에 샘이 하나 있었다. 이 우물은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샘이었다. 고을에서는 담배 농사가 한창이었는데, 이른 봄에 담배가 얼어 죽지 말라고...
-
홍지경을 시조로 하고 홍양호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풍산홍씨(豊山洪氏) 시조 홍지경(洪之慶)은 1242년(고종 29)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국학직학(國學直學)을 지낸 뒤 풍산(豊山)에 정착하였다. 이에 후손들이 풍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들어 풍산홍씨는 왕비 1명, 상신(相臣) 5명, 대제학 3명, 공신 1명, 장신(將臣) 3명...
-
임온을 시조로 하고, 임노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풍천임씨(豊川任氏)는 임온(任溫)을 시조로 하고, 진천으로 귀양 온 조선 순조 때의 학자 임노(任魯)[1755~1828]의 후손들이 진천에 정착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시조 임온은 중국 소흥부(紹興府) 자계현(慈溪縣)에서 고려로 건너와 정착해 시원을 이루었고, 6세손 임주(任澍)에 이르...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서 피서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문백면에 있는 피서대는 산의 용허리를 자르자 피와 살이 튀어 나왔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피서대 전설」은 베풀 줄 모르는 인심이 야박한 부자 마을 사람들이 탁발승에게 쇠똥을 주었기 때문에 재앙을 불러왔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또한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산허리를 잘라서 마을이 망했다고 하는 풍수...
-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행(景行), 호는 동우(東愚). 양절공(襄節公) 한확(韓確)의 15세손이다.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출생한 한경석(韓景錫)[1878~1945]은 부친상을 당하였을 때 묘소 아래에 여막을 짓고 지냈다. 농사를 짓고 산에서 나무를 하면서 모친 봉양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언제나 유순한 마음으로 모친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한국문인협회 산하 진천지부. 한국문인협회 진천지부는 충청북도 진천군의 향토 문학 발전과 회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문학인의 권익을 옹호하며 경향 각지의 문학인들과의 교류를 촉진하고자 설립되었다. 충청북도 진천군에서는 1962년 7월 일찍이 ‘박꽃동인’이라는 문학회가 조직된 바 있다. 이후 1980년 1월 2...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의병장 한봉수의 의거를 기념하는 비.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세교리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1910년까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강원도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의병장이다. 그는 고향인 세교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유격전을 벌여 번개장군으로 명성을 드높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덕산읍 중앙에서 남류하는 미호천(美湖川) 지류인 한천천(閑川川)[일명 한내]을 마을 이름으로 전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기 진천군 소답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목신리와 산정면 옥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한천리(閑川里)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덕산면이 덕산읍으로 승격되어 현재는...
-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에서 발원하여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백곡천과 합류하여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한천천(閑川川)의 본래 이름은 한내이다. 한은 ‘하-[大]’의 관형사형으로 한말·한우물·한뫼 등에 흔히 쓰이는 전부 요소이다. 따라서 한내는 ‘큰 내’로 풀이된다. 한천은 한내의 한을 음차(音借)하고 내를 훈차(訓借)한 이름인데, 한내의 뜻을 고려하면 대천...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서 명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신성한 우물 이야기. 「함샘 전설」은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의 묘소가 있는 봉죽리 은골의 어느 명산에 있는 함을 닮은 우물에 관련된 금기담이다. 함샘 주위에서 살생을 하면 천벌을 면하지 못하며, 살생을 해서 금기를 어긴 ‘쌍지팡’이라는 남자무당은 벌을 받아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
박언신을 시조로 하고, 박예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함양박씨(咸陽朴氏)는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30세손으로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셋째 아들인 박언신(朴彦信)의 정통 후손이다. 경명왕이 여덟 왕자에게 각기 분종할 때 셋째 박언신이 속함대군(速咸大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그를 중시조로 삼았다. 이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고려조에...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상목리와 하목리를 병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므로 합목리(合牧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소답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목리와 하목리를 병합하여 합목리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덕산면이 덕산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현재 덕산읍에 편입되어 있다. 합목리...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합목리에 있는 밀양박씨 동성 마을. 조선 초기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와 병조참의(兵曹參議)를 역임하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편찬에 참여한 박미(朴楣)의 여섯째 아들인 박우영(朴宇榮)이 연산군(燕山君)의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로 이주한 이래 후손들이 500여 년간 세거하고 있으며, 규정공파의 후손...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금한이마을과 오갑리 말머리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해넘어고개는 회내미고개·회너머고개·회너미고개·희내미고개로도 불린다. 부근 산과 골짜기에 전나무가 많아서 회나무고개라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회내미고개·회너머고개·회너미고개·희내미고개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여러 이름들은 전나무가 아니라 홰나무[일명 회화나무]와 관련되...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이루어지는 정치권력, 즉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행정은 국민 또는 주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 외에도 수도·전기·교통·통신 등 사회 간접 시설의 제공, 학교·도서관·공원 등 문화 시설의 확충...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에서 동북쪽으로 300m 지점에 있는 살구우물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살구우물은 ‘살구나무가 있는 우물’로 풀이할 수 있고, 행정(杏井)은 살구우물의 한자 표기이다. 조선 말기 진천군 행정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내동·하내동·중리·상리·하리·취적리·괴형리·장관리 일부, 북변면 사...
-
조선 후기 이후연이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무수동 근방의 복숭아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만오(晩梧) 이후연(李厚淵)[1798~1863]은 광평대군(廣平大君)의 14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의수(李義守)이다. 그는 학자로서도 명망이 있었지만, 특히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효행이 지극했다고 전해진다. 유고집으로 『만오집(晩梧集)』이 전한다...
-
조선시대 이채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던 향은정에 올라 주변 풍경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향은정(香隱亭)은 읍내리의 진천읍사무소 북쪽에 있던 정자로서, 진천읍내의 모든 지역을 바라볼 수 있는 일종의 망루(望樓)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한 향은정 주변에 삼수원(三秀園)이란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정원도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모두 흔적조차 찾을 수 없...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선정비군. 총 17개 비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현감 신현(申俔)의 선정비로 임진왜란 직후인 1589년에 건립되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산41-100번지 진천향토민속자료전시관 앞 화단에 전시되어 있다. 향토민속자료전시관 앞 선정비군은 총 17개이다. 9번째 비석은 가첨석[지붕돌]을 얹은 형태...
-
충청북도 진천 지역 사람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는 지역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전근대 시기 중앙 집권적 수취(收取) 체제의 기초로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도지·시지·군지, 마을지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사정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지역 연구자의 애향심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를 조사·연구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진천 지역 관...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액막이 풍속. 허수아비 버리기는 정초에 액운(厄運)이 있을 때 그 액을 쫓아 버리기 위해 허수아비[處容]를 만들어서 그 속에 사주(四柱)나 동전을 꽂아 넣어 버린 후, 아이들이 그 동전을 가지고 가면 액을 면한다고 하는 세시풍속이다. 이를 제웅치기, 허재비 버리기라고도 부른다. 특히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는 명암마...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활동 흔적이 남아 있는 조선 후기의 고위 문신. 조선후기 현종·숙종 대 온건파 남인세력인 탁남(濁南)의 영수로 활약한 고위 문신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여차(汝車)이고, 호는 묵재(默齋)·휴옹(休翁)이다. 허초(許礎)의 증손으로 조부는 허잠(許潛)이고, 아버지는 부사 허한(許僩)이다. 24세인 1633년(인조 11) 생원·진사시의...
-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패망으로 35년간의 일제 사슬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해방 후 국제정세는 우리민족의 자유로운 국가건설을 어렵게 만들어갔다. 일본을 패망시키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북을 분할 점령하고,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와 소련식 사회주의 국가를 세...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원 터.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협탄원(脇呑院)은 고려시대에 처음 설치되었던 원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천현 역원조에, 진천현 서쪽 36리에 협탄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원 제도가 점차 쇠퇴하면서 협탄원 역시 폐지되고 대신 이곳에 개인이 운영하는 서수원(西水院)...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1889년(고종 26) 8월 3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범바위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만주에서 한족회 간부로 독립운동을 하다, 서울에 대한통의부 지부를 설치해 독립운동을 하였다. 홍경식(洪景植)[1889~1961]은 1910년 일제가 나라를 강점하자 부친인 전 참판 홍승헌(洪承憲), 전 참판 정원하(...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홍정명의 묘에 묻은 판석. 홍정명(洪正明) 지석(誌石)의 주인공인 홍정명[1692~1748]은 선조의 부마(駙馬)인 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의 4대손으로 1692년(숙종 18)에 출생하여 1715년(숙종 41)에 성균관에 들어가고 1725년(영조 원년)에 정시 병과(庭試丙科)에 급제하였다. 1733...
-
진천은 예로부터 들이 넓고 수리 시설이 잘 갖추어져 농업이 발달하고 산물이 풍부하여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불리어 왔다. 이에 따라 역사 깊은 다양한 향토 문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생거진천의 향토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문화·예술을 통해 군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알차게 하며, 국내외 관광객에게 진천군의 향토 문화를 널리 알리고 함께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밝고 건전...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화산리(畵山里)는 화암(畵岩)과 사산(斜山)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화암은 ‘빗길미’ 서남쪽에 있던 마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4년 이전)에는 ‘두물둔지’로 나오고, ‘화암’이라는 한자 지명이 대응되어 있다. ‘사산’은 본래 ‘서남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화성리(花城里)의 ‘화(花)’자와 상고리(上古里)의 ‘상(上)’자를 따서 화상리(花上里)라 하였다. 화성은 습지 남쪽에 있는 마을로, 원래 이름인 곶재[일명 고재]의 ‘곶’을 화(花)로, ‘재’를 성(城)으로 훈차한 한자 지명이다. 1914년 이전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고’로...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와 초평면 금곡리에서 화투놀이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 「화투뒤풀이」는 광혜원면 실원리와 초평면 금곡리에서 채집된 노래로서, 12종류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화투 그림을 1년 열두 달에 비유하고 월별에 따라 해학적으로 풀이한 달거리식[月令體]의 토속민요이다. 이를 「화투 타령(花鬪打令)」, 「화투 노래」, 「화투푸리」라고도 한다. 「화...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산. 환희산(歡喜山)[402m]은 한자 뜻대로라면 ‘기쁨을 안겨주는 산’이라는 뜻이지만, 한편으로 하늘산이 한으산을 거쳐 환희산으로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역에 따라 지명의 선행 요소 ‘환희’가 ‘하느〈하늘’ 또는 ‘하누’와 대응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하늘산은 ‘높은 산’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으며, 실제로 환희...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회죽리 회안마을에서 반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선비 이야기. 「회안반석 이야기」는 회안마을에 사는 가난하지만 청빈한 선비가 은혜를 베푼 대가로 스님의 도움을 받아 뒷산의 반석에 올라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다는 보은담이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회안마을에 가난하면서도 청빈...
-
조선시대 해운(海耘) 홍종익이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회죽리 회안계곡에 있는 회안반석에서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지원 떠나 돌아오는 길에 회안반석 찾으려[祗園歸路約相尋] 신돌메하고 가도 가도 골짜기만 깊구나[蠟屐行行洞府深] 시냇가에 돌은 여기저기 흩어졌고 물은 얕은데[亂石當溪伋淺水] 떠다니는 구름 해가 지니 숲조차 서늘하구나[浮雲礙日又疎林] 새로 물든 단풍만이 저 혼자 청산 색을...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회안리(會安里)의 ‘회(會)’자와 죽동(竹洞)의 ‘죽(竹)’자를 따서 회죽리(會竹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만승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목리·죽동·회안리·중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회죽리라 하고 만승면에 편입하였다. 2000년 1월 1일 만승면이 광혜...
-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이거나 진천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우리나라의 효 사상은 뿌리가 깊다. 특히 유가(儒家)에서는 ‘효백행지본(孝百行之本)’이라 하여 효를 모든 행실의 근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가족제도 아래서는 가장 우선시되며 근원적인 것이 효 사상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