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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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汝立 |
이칭/별칭 | 인백(仁伯),대보(大輔),정적(鄭賊),죽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선아 |
출생 시기/일시 | 1546년 - 정여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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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67년 - 정여립 진사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70년 - 정여립 식년 문과 을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83년 - 정여립 예조 좌랑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84년 - 정여립 홍문관 수찬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589년 - 정여립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 정여립 장군 재조명 추진 위원회 설립 |
추모 시기/일시 | 1999년 11월 14일 - 정여립과 기축옥사 추모 해원굿 거행 |
출생지 | 정여립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월암리 |
거주|이주지 | 정여립 이주지 - 전라북도 상전면 수동리 죽도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동래(東萊) |
대표 관직 | 홍문관 수찬 |
[정의]
[개설]
정여립은 조선 시대의 인물 중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사람이다. 그렇게 된 핵심적 원인은 조선 시대 당쟁의 중심적 사건인 기축옥사(己丑獄事)[1589, 선조 22]를 불러온 장본인이었지만, 여러 의문을 남긴 채 진안 죽도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결과 기축옥사는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조작과 진실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인백(仁伯)·대보(大輔). 고조할아버지는 수의부의를 지낸 정준(鄭俊),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정극량(鄭克良)이고 할아버지는 정세완(鄭世玩)이다. 아버지는 청도 군수를 지낸 정희증(鄭希曾)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 박찬(朴纘)의 딸이다. 정여립의 선대는 대대로 전주 남문 밖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여립이 금구(金溝)에 장가들어 그곳에서 살게 됨으로써 사실상 금구 사람이 되었다. 후일 정여립의 집은 ‘금구 정수찬 댁’으로 불렸다.
[활동 사항]
정여립(鄭汝立)[1546~1589]은 1567년(명종 22)에 소과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고, 1570년(선조 3)에 식년시 을과 제2위로 대과에 급제하였다. 이어 성균관 학유, 예조 좌랑, 홍문과 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이이(李珥)[1536~1584], 성혼(成渾)[1535~1598] 등을 따랐으며, 정여립을 율곡, 우계의 문인으로 인식할 정도였다. 다시 말해서 정여립은 서인(西人)이었다. 이후 1583년에 예조 좌랑이 되었고, 이듬해는 홍문관 수찬에 올랐다. 정여립은 홍문관 수찬이 된 뒤 이이·성혼·박순(朴淳) 등 서인의 주요 인물을 비판하고 동인으로 돌아섰다. 1584년(선조 17)에 율곡 이이를 배반했다는 탄핵을 받고 선조의 진노를 사서 좌천되었다.
즉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뒤 정여립은 진안 죽도에 서실(書室)을 짓고 호를 죽도라고 하였다. 그곳에서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해 매달 활쏘기 모임을 열면서 세력을 확장하였다. 1589년에는 왜선들이 전라도 손죽도(損竹島)에 침입하자 전주 부윤 남언경(南彦經)의 부탁으로 왜적을 물리쳤다.
1589년 10월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죽도에서 관군과 대치하다 자결하였다. 정여립의 시체는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학문과 저술]
정여립은 관학인 주자학의 체계를 부정하고 원시 유학의 이념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그의 대동 사상도 원시 유학의 정신을 되살리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정여립의 반주자학적 학문 성향 내지 정치 사상은 성리학적 명분주의를 초월하여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이 조선 사회에서 쉽게 수용될 수 없었으므로 불온한 인물로 비쳐졌고, 마침내 사지로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묘소]
묘는 전라북도 김제시 원평면 동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7년 4월 전주에서 정여립 장군 재조명 추진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 단체의 첫 사업으로 정여립의 사상과 흔적을 찾아가는 답사 길인 역사 기행과 강연회가 열렸으며, 1999년 11월 14일에는 진안군 죽도에서 정여립과 기축옥사 추모 해원굿이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