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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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德應 |
이칭/별칭 | 수당(守堂),추운(鄒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유호석 |
출생 시기/일시 | 1866년 - 이덕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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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2년 - 이덕응 13도 도순강장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이덕응 삼극사에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 이덕응 사망 |
수학|강학지 | 화양 도원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
묘소|단소 | 이덕응 묘소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 관직|경력 | 궁내부(宮內府) 판임관(判任官) |
[정의]
일제 강점기 진안군 주천면에 화양 도원을 건립한 학자.
[개설]
일찍이 궁내부(宮內府) 판임관(判任官)을 지냈으나, 1910년 일본의 강탈로 나라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진안으로 내려와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화양 도원(華陽道院)을 열고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22년 이후에는 전국의 7개소에 황단(皇壇)을 설치하여 삼극제(三極祭)를 지내면서 전통적인 유교 정신과 배일 사상을 기르는 데 앞장섰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수당(守堂)·추운(鄒雲).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의 11대손이며, 종실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 풍래군(豊萊君) 이번(李瀿)의 8대손이고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이인한(李仁漢)의 7대손이고 효행(孝行) 이세혁(李世赫)의 5대손이고 이형국(李亨國)의 증손이고 효자 증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이홍(李泓)[초명은 李泓稙, 李泓稹]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효자 증 동몽교관(童蒙敎官) 이희식(李希植)이며 어머니는 해주(海州) 오문기(吳文奇)의 딸로 효열(孝烈)로 이름이 높아 정려(旌閭)된 증 영인(令人) 해주 오씨(海州吳氏)이다. 부인은 사과(司果) 해주(海州) 오영풍(吳永豊)의 딸로 해주 오씨와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활동 사항]
이덕응(李德應)[1866~1949]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으로부터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학풍(學風)을 이어 받았으며, 간재(艮齋) 전우(田愚)와도 교유하였다.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점령하자 낙향하여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개화동에 터를 잡아 화양 도원(華陽道院)을 열고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다. 화양 도원은 지금의 대불 초등학교(大佛初等學校)의 전신이다. 1932년 순종에 의해 삼극사(三極使)에 임명되자 대불리 개화동(大佛里 開花洞) 화양산(華陽山) 정상(頂上)과 전국 6개 처에 황단(皇壇)을 설단(設壇)하였으며,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자주독립(自主獨立)을 염원(念願)하는 삼극제(三極祭)를 매년 음력 8월 그믐날 정오(正午)에 북(北)쪽을 향(向)하여 지냈다. 삼극(三極)이란 천극(天極), 지극(地極), 인극(木極)으로서 옥황상제(上天玉帝后皇極不), 공자(配天光聖子夫子極下), 고종 황제(統天光武皇帝極下) 등 3위(位)를 성인(聖人)의 예에 따라 삼극제(三極祭)를 엄숙히 봉행하며, 산신제는 별도로 지냈다.
1922년에는 유림건약(儒林建約) 십삼도(十三道) 도강원(都講院)으로부터 13도(道) 도순강장(都巡講長)에 임명되어 전국을 순방하면서 학문에 전념하는 인재를 구하여 전통적인 유교 정신과 배일사상을 기르고, 삼부(三府) 강의문(講義文)을 통하여 우국충정(憂國忠情)을 역설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덕응은 체계적인 저서는 남기지 않았다. 이덕응은 공부자 탄신을 기준으로 한 배천광성(配天光聖) 연호를 사용하였다.
[묘소]
묘는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