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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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潭鄕校碑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220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호석 |
건립 시기/일시 | 1990년 - 용담 향교 비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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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98년 - 용담 향교 비각 이전 |
현 소재지 | 용담 향교 비각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2202 |
원소재지 | 용담 향교 비각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358 |
성격 | 비각 |
양식 | 맞배지붕 |
크기(높이,너비,두께) | 1칸[정면]|1칸[측면]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에 있는 비각.
[개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용담 향교에 불이 났을 때 공자, 안자, 자사, 증자, 맹자 등 성현의 위패를 수습하여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구봉산 바위굴 속에 보존한 구순(具詢)과 고계춘(高啓春) 두 사람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왜란 이후 향교 앞에 비각을 세웠다.
[건립 경위]
왜란 후에 구순(具詢)과 고계춘(高啓春)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비를 세웠는데, 그 시기는 아마 1633년 용담 현령 오전(吳腆)이 용담 향교를 중건할 무렵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때 비각이 세워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의 비각은 1990년 건립된 것이며, 용담댐 건설로 수몰의 위험에 놓이게 되자 1998년 12월 25일 용담 향교와 함께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로 이전되었다.
[위치]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용담 향교의 북쪽 모퉁이, 중간 담장 벼랑 밑에 세워져 있다. 대야 사거리에서 안성, 동향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천향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외금 마을 방면으로 좌회전해서 외금 1길을 따라 300m 이동하면 진성로가 나온다. 진성로에서 700m 가면 용담 향교에 이른다.
[형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에 사방에 홍살을 세워 비석을 보관하고 있다. 구순(具詢)과 고계춘(高啓春)의 공을 기리는 2기의 비석이 각각 세워져 있다.
[금석문]
비각 안에 2기의 비석이 있는데, 오른쪽 1기의 비표(碑表)에는 ‘위 성건공구 학생 순 백세 기념비(衛 聖建功具學生詢百世紀念碑)’라고 새겨져 있고, 왼쪽 1기의 비표(碑表)에는 ‘위 성건 공고 학생 계 춘순 백세 기념비(衛 聖建功高學生啓春詢百世紀念碑)’라 새겨져 있다.
[현황]
비각은 현재 용담 향교와 함께 잘 관리되고 있으나 비석은 건립 연대가 오래되어 마모가 상당히 진행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전란으로 인하여 용담 향교에 화재가 나서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현의 위패를 수습하여 보존하였던 두 유생의 행적을 통해서 당시 진안 지역 사림들의 투철한 유교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