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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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兩司齋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220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만오 |
작성 시기/일시 | 1835년 - 한영식, 윤수인 「양사재기」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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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시기/일시 | 1872년 - 원필상 「양사재기」 작성 |
소장처 | 「양사재기」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2202 |
성격 | 문헌 |
관련 인물 | 한영식|윤수인|원필상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용담 향교 내 양사재에 대해 기록한 글.
[개설]
「양사재기」는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 위치한 용담 향교 내에 있는 양사재의 건립 과정과 기능 등을 서술한 글이다.
[제작 발급 경위]
「양사재기」에서는 양사재의 연원과 변천 과정을 정리하였다. 이 글은 진안 향교에서 1925년에 편찬한 『진안지』에 모두 세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은 별도로 붙여지지 않았다.
[구성/내용]
「양사재기」는 모두 세 편이 전해진다. 한 편은 1835년(헌종 1)에 매봉(梅峯) 한영식이 지었고 다른 한 편은 같은 해에 태화 산인(太華散人) 윤수인이 지었다. 마지막 글은 1872년(고종 9)에 당시 용담 현령이었던 원필상(元弼常)이 지었다. 세 편의 글은 작성 시기와 작성자가 다르므로 내용도 일부 다르지만, 중요 부분은 동일하다.
첫 번째는 양사재가 용담현에 있는 삼천 서원(三川書院)에서 처음 시작하였다는 부분이다. 윤수인이 용담 현령으로 부임한 때도 바로 1835년이었다. 두 번째는 양사재의 이전 관련 사항을 정리한 부분이다. 양사재는 어느 시점에 용담현 서쪽 태고정(太古亭) 아래에 지은 새 건물로 옮겼다. 하지만 시장이 인접하여 소란스럽고 공간도 협소하여 기능을 수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원필상이 현령으로 근무하던 1872년에 용담 향교 아래의 언덕에 새로 건물을 짓고 이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