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윤집(允執), 호는 송재(松齋). 고조할아버지는 강창위(姜昌渭)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강주환(姜周煥)이고 할아버지는 강재성(姜在成)이고 아버지는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강문규(姜文奎)이다. 외할아버지는 밀양 박씨 박영근(朴英根)이고, 장인은 김해 김씨 김영식(金永植)이다. 강제한(姜濟漢)[1842~1915]은 『진안지(鎭...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할아버지는 음죽 현감(陰竹縣監)을 역임한 김현택(金顯澤)이고 아버지는 효자로 정려되고 동몽교관에 증직된 김학배(金鶴培)이다. 김종관(金鍾觀)[?~?]은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돈독하여 밖에 나가 좋은 음식이 있으면 반드시 부모에게 바치는 등 봉양하는 데 충심을 다하였다. 일찍이 학문에 뜻을...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화(慶和), 호는 금소(琴巢). 할아버지는 김동식(金東植)이고 아버지는 음죽 현감(陰竹縣監)을 역임한 김현택(金顯澤)이다. 아들 김종관(金鍾觀) 역시 효자로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증직되었으며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김학배(金學培)[1836~1877]는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에서 태어났다....
-
근대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지강(芝岡). 문덕규(文德奎)[?~?]는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에서 태어났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정성껏 봉양하였고, 이웃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돈과 곡식을 나누어 주어 구휼하였다. 1895년(고종 32) 동학 농민 운동 때에는 많은 사람들을 모집하여 동학 운동에 가담하였으며, 군사들에게 군량을 대어 주기...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할아버지는 추국관(推鞫官) 박수현(朴秀賢)이다. 박성손(朴聖遜)[?~?]은 『진안지』에 의하면, 부모를 지극한 효로 섬겨 옆에서 떠나지 않고 모셨으며, 시묘할 때에는 호랑이가 앞에서 지키고 개가 뒤따르니 주위에서 모두 우러러 보았다고 한다.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贈職)되었으며, 1780년(정조 4) 정려(旌閭)를...
-
현대 진안 지역의 효부. 본관은 밀양(密陽). 유현(儒賢) 허채(許採)의 부인이며 아버지는 판관(判官)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종혁(朴宗赫)이다. 박연순(朴軟順)[1882~1968]은 총명하고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덕성 또한 풍후하고 인심 좋기로 진안군 내에서 정평이 있었다. 또한 시어머니에게 효성이 남달리 지극하여 효부로도 유명하다. 『원용담 군지(元龍潭郡誌)...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반곡(盤谷). 충정공 박심문(朴審問)의 후손이다. 박이풍(朴履豊)[?~?]은 『진안지』에 의하면, 아버지가 병이나 물고기를 원하니 얼음에서 고기를 낚았으며, 그 상을 당해 슬퍼하며 극진한 예를 다하였으니 기일에 꿩이 부엌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진안 군사』에 의하면, 아버지를 봉양함에 효성이 지극하였고, 제사에도...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독곡(獨谷) 성석린(成石潾)의 후손으로 통덕랑(通德郞) 성창하(成昌夏)의 아들이다. 성석태(成錫泰)[1799~1862]는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학업에도 열중하여 연익서를 저술하였다. 『진안지』에 의하면,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였다고 한...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고조할아버지는 손만화(孫萬和), 증조할아버지는 손택도(孫宅道)이다. 할아버지는 손석두(孫錫斗)이고 아버지는 손용서(孫龍瑞)이다. 장인은 수원(水原) 백영모(白永模)이다. 손동현(孫東賢)[1817~1881]은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태어났다. 『진안지』에 의하면,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친의 시묘 살이를 할 때...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낙원(洛源), 호는 송재(松齋). 대사성(大司成) 송광언(宋光彦)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송석관(宋錫寬)이다. 송성렴(宋性濂)[1830~1876]은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났다. 『진안지』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효를 행함에 열심이었고 자리를 살피고 맛있는 음식으로 섬기는데 지극하였다 한다. 또한 부친이 병이 나자...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의숙(宜叔), 호는 미계(美溪). 양렬공(襄烈公) 신이충(愼以衷)의 7대손이다. 신의련(愼義連)[1581~?]은 『진안지』에 의하면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릴 때부터 병든 아버지를 모셨다. 임진왜란 때에도 병든 아버지 곁에서 간호하고 있었다. 어느 날 왜적이 쳐들어와 아버지를 죽이려 하였다. 신의련은 자기 몸으로 아버...
-
현대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재민(才玟), 호는 미산(美山). 증조할아버지는 신종각(愼宗珏), 아버지는 신달성(愼達晟)이고 부인은 최만엽(崔萬燁)의 딸이다. 신학범(愼學範)[1901~1969]은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병환이 들자 온갖 탕약으로 간호를 하였으며, 아버지가 죽자 예의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으며 3년 동안 시묘하였다. 부...
-
근대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죽산(竹山). 아버지는 통정대부 안치기이다. 안수기(安壽基)[1918~?]는 『진안의 맥』 등에 의하면, 안수기는 집안이 가난하여 하루 세끼도 잇지 못하는 형편이었으나 아버지에게는 약주를 항상 봉양하였으며,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려 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3년간이나 생명을 연장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3년간 시묘 살이를...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죽산(竹山). 안유(安裕)의 19세손이고 안원현(安鎭賢)의 16세손이다. 아버지는 안진현(安鎭賢)이다. 안영효(安永孝)[1839~?]는 진안군 정천면에서 태어났다. 『진안 군지』 등에 의하면 안영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똥을 맛보아 차도를 살폈으며,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몇...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군약(君若), 호는 운재(雲齋). 숭록대부(崧祿大夫) 좌찬성(左贊成) 양원근(梁元瑾)의 후손이다. 양원하(梁源河)[?~?]는 『남원 양씨 양세 효행 문장 후서』와 『진안지』에 의하면, ‘아버지가 병들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3년 동안이나 생명을 연장시켰으므로 효자로 정려를 받았다.’라고 한다...
-
개항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성기(聖基), 호는 수승재(修承齋). 할아버지는 오명일(吳命一)이고 아버지는 오수원(吳守源)이다. 오성복(吳成福)[1795~?]은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났다. 『진안 군사』에 의하면, ‘친상(親喪)에 여묘(廬墓)했기에 마령면 평지리에 칠세조(七世祖) 오빈(吳玭)과 함께 정여(旌閭)했다.’ 라고 한다....
-
조선 후기 진안 출신 효자. 본관은 천녕(川寧). 자는 자익(子益), 호는 용강(龍岡). 사육신 유응부(兪應孚)의 8대손이다. 유대겸(兪大謙)[?~?]은 진안군 용담면에서 태어났다. 7세에 『효경』에 정통하였다. 『진안지』에 의하면, 아버지가 병들어 위독하자 하늘에 빌며 변을 맛보아 약을 택하고 손가락을 찍어 피를 먹이고 허벅지 살을 떼어 먹이니 5일간 연명하였다고 나와...
-
개항기 진안 출신의 효자. 성주(星州). 자는 덕인(德仁), 호는 원사재(源沙齋). 아버지는 이우춘(李佑春)이고 동곡(桐谷) 이조(李晁)의 9대손이다. 이광범(李光範)[1836~1902]은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위독하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아버지 입에 넣어 회생케 하여 수일간 목숨을 연명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또한 아버지가 죽자 묘에서 3년 동안 시묘 살...
-
조선 후기 진안 출신 효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선일(善日), 호는 소능(小能). 동곡(桐谷) 이조(李晁)의 10대손이며 경무공(景武公) 이제(李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광범(李光範)이다. 이도문(李道文)[1861~1930]은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지극하게 섬겼다. 글을 좋아하여 최흠재와 교유하면서 학문을 논하고 남의 집 비문 등...
-
근대 진안 출신 효자. 효행(孝行)으로 1870년(고종 7)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고 1873년(고종 10)에 정려(旌閭)가 내리었다. 정려(旌閭)는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에 있다....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경지(敬之), 호는 학계(鶴溪). 대호군 전극례(全克醴)의 후손이며 효자 전성대(全聖大)의 아들이다. 전경록(全景祿)[1716~1799]의 벼슬이 참봉,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진안지』에 의하면,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변을 맛보다 병증을 알아내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천수를 누리게 하였...
-
근현대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호는 송파(松波). 호조 판서 전극례(全克禮)의 16대손이다. 전인권(全麟權)[1890~1968]은 진안군 마령면 오동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학식이 두터웠으며 어머니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 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빠지지 않고 생전보다 정성을 더하여 시묘 살이를...
-
조선 전기 진안 출신 효자. 본관은 하남(河南). 증 병조 판서 정억강의 후손이다. 정연성(鄭連成)[?~?]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인자하고 후덕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며 가족 및 친족들과도 화목하였다. 아버지가 병들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3년이나 생명을 연장하였다. 그 후 아버지가 죽자 3년 동안 시묘 살이를 하였다. 효행은 『진안지』에...
-
조선 후기 진안 출신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졸헌(拙軒). 정재효(丁載孝)[?~?]는 일찍이 성담 송환기(宋煥箕)를 섬겼다. 문학과 효행이 탁월하여 선생이 졸헌(拙軒)이라는 호를 내렸다. 부모에 대한 효행(孝行)이 지극하였다. 1906년(고종 10년)에 명정되었다. 1906년 9품 종사랑(從仕郞)을 증직(贈職) 받았으며,이듬해에 정려(旌閭)를 받았다. 정려(旌...
-
조선 후기 진안 출신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재수(在樹), 호는 난파(蘭坡). 충렬공 정인조(鄭仁租)의 후손이다. 정태성(鄭泰成)[?~?]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정태성 효자비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자 물고기를 잡아서 부친을 정성껏 봉양하였다. 18세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10년 동안 고생하다가 위독하게 되자 손가...
-
개항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장수(長水). 호는 송재(松齋). 방촌(蔯村) 황희(黃喜)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교관 현령 황동규(黃東奎)이다. 황민찬(黃玟燦)[1876~1905]은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중리에서 태어났다. 「증 교관 황민찬 정려기(贈敎官黃玟燦旌閭記)」에 의하면 황민찬은 품성이 순하고 후덕하였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에 우애하고 배우기를 좋아 했다. 어머...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대규(大圭). 방촌희(哤村喜)의 후손이며 황인수(黃仁洙)의 아들이다. 황요(黃橈)[1843~1877]는 진안군 백운면 봉서리에서 태어났다. 『장수 황씨 족보 을해보(長水黃氏族譜乙亥譜)』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효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학문도 깊어 지역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아버지가 위중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