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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귤림서원의 내력을 기록한 비. 귤림서원 묘정비는 1850년(철종 1) 제주목사 장인식이 귤림서원의 내력을 기록하여 세운 비이다. 그 후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귤림서원과 함께 철거되었다가 1892년 대원군이 실각하자 유림 김희정 등이 중심이 되어 귤림서원 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서원비라고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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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성균관의 이념과 목적을 실천하는 유교 단체인 성균관유도회의 제주 지부. 성균관유도회 총본부는 1945년 한국의 유림 대표들이 성균관에 모여 결성한 유림 단체로, 초대 위원장에는 김창숙(金昌淑)을 추대하고 부위원장에 김성규(金成圭)·이기원(李基元), 감찰위원장에 이재억(李載億)을 추대하였다. 성균관유도회에서는 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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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방어사 심영석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심영석 이건향교비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1826년 제주방어사로 부임했던 심영석이 당시 광양에 있던 향교를 현재의 향교 자리로 옮기기 위해 노력한 공을 치하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제주에는 심영석 이건향교비 외에 ‘심영석 청덕선정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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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통정대부첨추오위장 송민환(宋敏桓), 어머니는 여산 한씨 한응성(韓應性)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지조가 있었고 친정이 부호였으나 화려한 것을 즐기지 않았다. 양기석과 결혼하였는데, 남편이 종숙(從叔)에게 양자로 가게 되어 시집에 생가와 양가 두 어머니가 같이 계셔서 집안이 몹시 어려운 처지에 있었는데도 원망하지 않고 집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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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송씨 부인의 행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 열부 여산송씨 유허비는 조선 후기 봉개동에서 살았던 양기석의 처 송씨를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유허비이다. 송씨 부인은 남편이 괴질로 죽은 뒤에도 정성껏 시가 어른을 모시다가 아들이 죽자 목을 매어 죽었는데, 제주목사가 이 일을 전해 듣고, “사열(死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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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송시열의 제주 유배 때의 행적을 기리는 비.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은 기사환국으로 1689년 3월 제주로 유배를 왔다가 달포 만에 다시 한양으로 불려 가던 중 사약을 받고 죽었다. 송시열은 석 달이라는 짧은 기간 제주에 있으면서 『문의통고(問義通攷)』를 저술하고, 손자를 비롯하여 제주 유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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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대에 보급된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 조선왕조 5백여 년 동안 유교는 지배 이데올로기이자 생활 윤리로 자리 잡았지만, 제주 지역에서는 무속 신앙 때문에 좀처럼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이형상(李衡祥)[1653~1733] 같은 적극적인 제주목사들의 활동에 힘입어 지방 유림들은 점차 자신들의 위상을 확보해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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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행교를 기리는 비. 이행교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1827년(순조 27) 8월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제주에서 3년 정도 있으면서 이행교는 전임자인 심영석이 추진하던 제주향교 이전을 마무리 짓고 대일관과 홍화각 등을 중수하여 제주 지역의 사학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한 판관 이의겸이 여색을 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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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되었던 김정의 행적을 기리는 비. 김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중종 때 대사헌·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조광조와 함께 미신을 타파하고 향약을 시행하는 일 등에 힘썼으나 기묘사화 때 제주로 귀양 왔다가 1520년 사사되었다. 충암 김선생 적려유허비는 김정의 사후 3백여 년 뒤인 1852년에 세운 것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