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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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紺巖山城 |
영어음역 | Gamamsanseong |
영어의미역 | Gamamsan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산325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백종오 |
현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산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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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성곽 |
양식 | 석성 |
크기(높이, 길이, 둘레) | 1,188m[둘레]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봉리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 석축 산성.
[개설]
감암산성은 차령산맥의 한줄기에 솟은 치악산 남쪽 끝자락에 있는 감악산[해발 945m]과 그 가지 봉우리를 둘러싼 산성이다. 감악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제천현에서 북쪽으로 40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으며, 『대동지지(大東地志)』 성지(城池)에서 처음 산성의 존재가 언급되었는데, 둘레 3만 2,600척(尺)으로 아주 험하여 축성할 필요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감암산성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기록으로는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를 들 수 있다. 즉 근우면(近右面) 명암리 응봉(鷹峰) 감암산성이라 칭하는데 일부는 석축(石築)으로 붕괴된 부분이 많고 기타는 천연 암벽이라고 하였다. 아직까지 정밀한 학술 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백련사(白連寺) 계곡부를 감싸고 돌아가는 천연의 암벽과 석축된 성벽이 이어져 있다.
[건립 경위]
감암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조 시기가 불분명하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대동지지』에 비로소 고성(古城)으로 기록되고 있어 임진왜란 당시 축성되었다가 기능을 상실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위치]
제천시 봉양읍에서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5호선은 남한강으로 합류하는 제천천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제천과 원주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로 활용되었다. 국도 5호선에서 동쪽으로 난 중앙고속국도와 나란히 진행하는 군도를 따라가면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에 이른다.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북쪽으로 원주시와 경계를 이르는 감악산이 위치하고, 감악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의 감악바위 아래로 백련사가 있다. 감암산성은 백련사를 감싸고 축조되었다.
[형태]
감악산성은 백련사가 있는 계곡을 감싸고 돌아가는 천연의 암벽을 이용하여 축성하였다. 때문에 부정형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북쪽과 동쪽이 매우 험한 지세를 이루고 있다. 백련사 계곡을 통해 이르는 남쪽 출입이 가장 용이한 형태이다. 성벽은 자연 암벽 사이를 석축하였는데, 암반을 쪼개 축조를 하고 안팎으로 채운 겹축 형상을 하고 있다. 둘레는 1,188m이다.
[현황]
성안에서는 백련사를 비롯한 평지가 확인되지만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타 건물지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다만 성안에 금수탕, 은수탕 등 천연의 약수가 존재하여 식수가 풍부하고, 성안 입구에 연못도 자리하고 있다. 예부터 이 연못에서 말에게 물을 먹였고, 일대에 안미와 갈대를 심어 말의 먹이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감암산성이 있는 제천은 고구려 때 내토군(奈吐郡)이었고 신라가 점유한 이후에는 내제(奈堤郡)이었던 곳이다. 감암산성은 제천과 원주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에 인접하고 있어 고구려의 남진과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일 가능성도 있다. 규모 면에서는 제천 덕주산성과 비교되는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기록으로 볼 때 조선 후기가 되서야 처음 등장하는 등 아직까지 정확한 축조 시기나 사용 기간 등 구체적인 성격을 알 수 없다. 앞으로 발굴 조사를 포함한 학술 조사가 이루어지면 감암산성의 자세한 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