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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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蘇世讓-卦印亭 |
영어공식명칭 | Gwaeinjeong Built Because of So-ceya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남중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현대/현대 |
집필자 | 강윤미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1년 8월 17일 - 「소세양 때문에 생긴 괘인정」 소병창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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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1년 - 「소세양 때문에 생긴 괘인정」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괘인정[퇴휴당]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
채록지 | 남중동 - 전라북도 익산시 남중동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소세양 |
모티프 유형 | 마을 이름의 유래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전하여 오는 소세양과 괘인정에 관한 설화.
[개설]
「소세양 때문에 생긴 괘인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1486~1562]이 관직에서 물러나 전라북도 익산에 머무는 동안 지은 정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괘인정(卦印亭)은 ‘관인(官印)을 걸어 놓는 정자’라는 뜻을 지닌다.
[채록/수집 상황]
「소세양 때문에 생긴 괘인정」은 2011년 8월 17일 익산시 남중동에서 소병창[1944년생]에게 채록한 것이며, 2011년 펴낸 『한국구비문학대계』 설화편에 실려 있다.
[내용]
조선 전기의 문신 소세양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익산에 머무는 동안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행정마을에 태허정(太虛亭)이라는 정자를 지었고, 태허정 아래 쪽에 퇴휴당(退休堂)을 지었다. 평소 소세양은 율시(律詩)에 뛰어나고 송설체(松雪體)의 글씨를 잘 써서 필명 또한 높았다. 이에 익산 지역 부근으로 부임해 오는 관리들은 소세양을 찾아 인사를 드리곤 하였는데, 은행나무에 관인을 걸어 두고 인사를 하였다고 하여 퇴휴당을 ‘괘인정’이라 불렀다.
[모티프 분석]
「소세양 때문에 생긴 괘인정」에서 ‘괘인정’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조선 시대 문정공(文靖公)의 시호를 받은 소세양의 위상을 대변한다. 또한 괘인정은 ‘행정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유추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행정(杏亭)’은 소세양의 퇴휴당이 있던 곳에 큰 은행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