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풀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1276
영어공식명칭 Seongjupuri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2003년 11월 1일 - 「성주풀이」 제보자 김방현에게 채록
채록 시기/일시 2010년 12월 29일 - 「성주풀이」 제보자 채남석에게 채록
채록 시기/일시 2010년 12월 31일 - 「성주풀이」 제보자 임복순에게 채록
채록 시기/일시 2011년 1월 6일 - 「성주풀이」 제보자 강분래에게 채록
채록 시기/일시 2011년 1월 20일 - 「성주풀이」 제보자 이인수에게 채록
채록지 전라북도 익산시 - 전라북도 익산시
채록지 제보자 채남석 자택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황금로 910[기양리 345-7]지도보기
채록지 상낭마을회관 -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지도보기
채록지 신촌마을회관 -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 지도보기
채록지 제보자 이인수 자택 -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 성당포구마을 지도보기
성격 남도민요
토리 남도경토리|성주풀이토리
기능 구분 의식요|가창유희요
형식 구분 유절 형식
박자 구조 굿거리장단
가창자/시연자 김방연|채남석|임복순|강분래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전하여 오는 남도민요.

[개설]

「성주풀이」는 처음에는 집안의 무사태평과 번영을 빌고자 벌이던 성주굿에서 무당이 부르던 무가(巫歌)였다가 민간에 퍼져 민요화된 남도민요이다. 원래 무가로서의 「성주풀이」는 집터를 관장하는 성주신의 근본을 푸는 본풀이 무가로,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를 하였을 때 성주받이를 하면서 불렀다. 민요화된 「성주풀이」도 성주받이의 내용이 담겨 있으며, 정초와 정월대보름 사이에 마을 풍물패가 각 집을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할 때도 불렀다. 나중에는 의식이나 행사와 무관하게 전문 소리꾼들이 부르면서 사설의 내용도 신(神)을 기리는 내용에서 벗어남으로써 의식요에서 가창유희요로 변화하였다.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전하여 오는 「성주풀이」는 성주받이 내용이 담긴 「성주풀이」와 가창유희요로서의 「성주풀이」가 모두 채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성주풀이」는 앞소리와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대활연으로 서리서리 내리소서.”라는 뒷소리로 구성되는데, 익산에서 채록된 「성주풀이」의 뒷소리에는 “대활연으로 서리서리 내리소서.”가 빠져 있다.

[채록/수집 상황]

익산 지역에서는 「성주풀이」가 2010년 12월 29일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의 제보자 채남석, 2010년 12월 31일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상낭마을의 제보자 임복순, 2011년 1월 6일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 신촌마을의 제보자 강분래, 2011년 1월 20일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 성당포구마을의 제보자 이인수에게서 채록되었다. 「성주풀이」 네 종의 가락과 노랫말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려 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웹서비스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성당포구마을의 「성주풀이」는 나머지 「성주풀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소리로, 사설의 내용에도 성주와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민요라기보다는 고사를 지낼 때 부르는 비나리를 ‘성주풀이’라는 이름으로 채록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03년 11월 1일 김방연에게서 채록된 「성주풀이」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웹서비스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성 및 형식]

「성주풀이」는 통절 형식의 서사무가였다가 민요화하면서 유절 형식으로 불린다. 음악적으로는 남도민요의 육자배기토리가 서울·경기 지역과 교류한 남도경토리, 또는 성주풀이토리로 구성된 선율을 굿거리장단에 얹어 꿋꿋하고 시원스럽게 부른다.

[내용]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상낭마을 「성주풀이」의 가사 내용은 채록된 곡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데, 다음과 같다.

“낙양송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멫멫이냐 절대가인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 모양이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저 건너 잔솔 밭에 솔솔 기는 저 포수야/ 저 산 비둘기 잡지 마라 저 비둘기 나와 같이/ 임을 잃고 밤새도록 임을 찾아 헤매노라//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한송정 솔을 비어 조그맣게 배를 지어/ 술렁 술렁 배 띄워 놓고 술이나 안주 가득 싣고/ 강릉 경포대 달구경 가세 두리둥실 달구경 가세//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신이야.”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 신촌마을 「성주풀이」의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낙양사 십리 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 몇 인가 절대 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그 저 모양 될 것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저 건너 잔 솔밭에 솔솔 기는 저 포수야/ 저 산 비둘기 잡지마라 저 산 기러기 나와 같이/ 임을 잃고 밤새도록 임을 찾아서 헤매노라//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성주풀이」의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낙양사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포수야 저 산 비둘기 잡지 마라/ 저 비둘기는 나와 같이 님을 잃고 밤새도록 님을 찾아 헤매노라//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김방연에게서 채록된 「성주풀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라만수 에라 대신이로고나// 성주근본이 어디멘가/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의 솔씨 받아/ 무주공산의 널룬 땅/ 소평대평 던졌더니/ 그 솔이 점점 자라나/ 낮이면은 인내 쐬고/ 밤이면은 이실 맞아/ 그 솔이 점점 자라나/ 소부동이 되았구나/ 대부됭이 되았네/ 이댁 성주 모실 적으/ 대들보가 되았으니/ 어찌 아니가 좋을소냐/ 성주 들고 가자/ 고살고살 고살이로다.”

한편,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 성당포구마을 「성주풀이」는 축원을 중심으로 사설이 구성되었으며 일반적인 「성주풀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 일 우리 전라북도 도민들 몸 건강하게 하여 주시고//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 여년 해해마다 농사 풍년 들게 하여 주시옵소서//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의의와 평가]

민요 「성주풀이」는 제의성이 강한 의식요로 출발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남도 소리꾼들이 음반과 미디어를 통해서 노래하면서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어 남도를 대표하는 통속민요, 남도잡가가 되었다. 익산에서는 의식요와 가창유희요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성격의 「성주풀이」가 모두 전하고 있어, 민요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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