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1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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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會 |
영어공식명칭 | Jeosek Presbyterian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상제길 17[대붕암리 468-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재식 |
설립 시기/일시 | 190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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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4년![]() |
최초 설립지 | 제석교회 - 전라북도 익산군 웅포면 대붕암리 |
현 소재지 | 제석교회 -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상제길 17[대붕암리 468-2]![]() |
성격 | 교회 |
설립자 | 강두희|송원규|엄주환|강진희|강문희 |
전화 | 063-862-6364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개설]
제석교회는 1906년 익산시 웅포면에 설립되었다. 익산 지역의 초기 교회 중 하나로 일찍부터 부용학교를 세워 인재양성에 힘썼다. 부용학교 졸업생과 군산 영명학교로 진학한 교인들이 익산·군산·강경 지역의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며, 2014년 한국기독교사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변천]
제석교회는 1906년 12월 25일 제석리 엄주환의 사랑채에서 설립 예배를 열었다. 1908년 홍종필이 군산으로 이사하면서 14간 곱패집[ㄱ자 모양의 집]을 기증하였고, 곱패집에 십자가를 설치해 교회당으로 사용하였다. 1908년부터 윌리엄 해리슨(William B. Harrison)[하위렴] 선교사가 20년간 당회장을 맡았다. 1909년 부용학교[지금의 웅포초등학교]를 세웠다.
1948년 99㎡[30평] 규모의 목조건물 예배당을 준공·입당하였으며, 1957년 지금의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1955년 동산동교회를, 1986년 대임교회를 분립하였다. 2005년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2018년 초기 곱패집 교회 부지 1,322㎡[400평]를 매입하고, 2019년 현재 초기 교회의 복원을 계획 중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제석교회는 주일 낮 예배, 주일 오후 예배, 수요 기도 예배로 모인다. 익산시 웅포면 노인들을 위한 노인대학과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황]
제석교회는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 467-2에 위치하고 있다. 정경호 담임목사와 아동 포함 재적 교인이 130명이다. 제석교회 예배당 복도에는 익산 지역의 3.1운동 관련 역사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1906년 설립된 제석교회는 일제 강점기에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익산 지역의 3.1운동을 이끈 민족교회이다. 1906년 양반과 천민 구별없이 형제처럼 지내었다. 1908년 홍종필이 기증한 곱패집은 ㄱ자 모양으로 남녀가 분리되어 예배를 드린 초기 한국교회 중 하나이다. 1909년 홍종익과 홍종필은 부용학교를 세워 100명의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이들은 군산선교부가 운영하는 군산 영명학교와 멜본딘여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다.
제석교회는 1919년 3월 10일 웅포, 함라, 함열, 용안, 강경 일대의 만세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제석교회가 독립운동가들의 회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강경 3.1운동 시 제석교회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다. 엄중칠은 강경 3.1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형오는 함라·웅포 장날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엄창섭은 강경 장날 독립선언서를 읽었다. 제석교회 출신들이 3.1운동을 주도한 후 일본 경찰은 종탑을 부수고 교회종을 빼앗고, 성경을 불태웠으며, 부용학교를 강제 폐쇄하고 일본 소학교로 강제 수용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는 제석교회를 남전교회와 함께 ‘익산 지역 3.1운동 사적지’[한국기독교사적 제19호]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