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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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克智 |
이칭/별칭 | 택중(擇仲),충숙(忠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병남 |
[정의]
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가계]
권극지(權克智)[1538~1592]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택중(擇仲),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공조참의 권령(權齡)이고, 할아버지는 개성유수를 지낸 권홍(權弘)이다. 아버지는 종묘서령 권덕유(權德裕)이고, 어머니는 우찬성 조계상(曺繼商)의 딸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부인은 경상도병마절도사 이이수(李頤壽)의 딸 완산이씨(完山李氏)이다.
[활동 사항]
권극지는 1538년(중종 33) 익산에서 태어났다. 1558년(명종 13) 진사시에 3등 21위로 합격하였고, 1567년(선조 즉위년) 식년문과 병과 18위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예조·형조·병조의 좌랑을 역임하였다. 이후 충청도도사를 거쳐 직장, 사예, 사성, 직제학, 지평 등의 관직을 거쳤다. 1589년 대사헌으로 있을 때 사은사로 지목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에 형조참판, 예조판서 등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4월 비변사 유사당상(有司堂上)을 맡고 있었는데, 격무에 시달리다가 사망하였다. 이정귀(李廷龜)의 시문집인 『월사집(月沙集)』에 따르면 선조의 어가가 도성을 떠나기 하루 전에 사망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