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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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너장수문,수문바라지,수문(水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언어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편성철 |
[정의]
경기도 화성시에서 수문을 가리키는 말.
[연원 및 변천]
간척지에는 수문이 있어 평소에는 물이 내려가다가 밀물 때 바닷물이 역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문을 닫았다. 화성 지역에서는 수문을 지역에 따라서 특별한 명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마도면 석교리의 선방죽에는 처음에는 수문이 하나 있었는데 농지정리를 하면서 19개까지 수문이 늘어났다. 원래 있던 수문을 '수문바라지'라고 불렀다. 문을 수시로 올리고 내릴 수 있었지만 과거에는 참죽나무를 켜켜이 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물길을 막았다. 이때 사용하는 나무들을 '바라지'라고 불렀다. 추수가 끝난 뒤에는 겨울동안 논에 물을 잡아두기 위해 수문을 막고 봄이 되어 모내기를 하기전에 수문을 터놓았다. 장마 때는 문을 터서 물을 빼고, 그 후에는 수문을 막아 저수지처럼 사용했다.
비봉읍 유포리 당곡말에서는 수문을 '내깔이'라고 부른다. 1961년에 만들었는데 그 이전에는 임시로 모래로 막았었다. 수문을 만들때는 수문을 설치할 수문자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방죽을 쌓을 때 수문자리를 우선시한다. 수문자리로 가장 좋은 곳은 바위가 있는 곳이다.
향남읍 상신리 손개에서는 물이 차는 것에 따라 수문이 걸리고 닫히게 되어 있었는데 이를 '너장수문'이라고 불렀다. 물이 내려갈 때는 문이 열려있지만 바닷물이 역류하면 문이 닫히는 구조이다. 그러나 문 사이에 돌이나 나무 같은 것이 끼면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수문 관리에 신경을 써야한다.
남양읍 신외리의 수문은 물의 흐름에 따라 수문이 열리고 닫히게 되어 있는데, 근처에 세워진 박창원 공덕비에 1947년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