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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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思容 |
이칭/별칭 | 노작(露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출생 시기/일시 | 1900년 5월 17일 - 홍사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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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16년 - 홍사용 휘문의숙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19년 - 홍사용 휘문의숙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홍사용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됨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홍사용 문예지 『문우(文友)』 창간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홍사용 문화사(文化社)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 홍사용 문예지 『백조』 창간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홍사용 극단 토월회(土月會) 문예부장 |
몰년 시기/일시 | 1947년 1월 5일 - 홍사용 사망 |
묘소 | 홍사용 묘 - 경기도 화성시 석우동 63-1 |
성격 | 문학가 |
성별 | 남 |
본관 | 남양(南陽) |
대표 경력 | 『백조』 창간|토월회(土月會) 문예부장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석우동에 묘소가 있는 일제 강점기 문학가.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대한제국 통정대부 육군헌병 부위를 지닌 홍철유(洪哲裕)이며, 어머니는 능성구씨(綾城具氏)이다. 백부 홍승유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활동 사항]
홍사용(洪思容)[1900~1947]은 1900년 5월 17일 경기도 용인군에서 외자로 출생하였다. 용인에서 태어났지만, 본적은 수원군 동탄면 석우리[현 화성시 동탄1동]로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 홍철유와 백부 홍승유(洪升裕)는 용인과 화성 일대에 많은 농토를 소유한 지주로 알려져 있다.
생후 100일 만에 서울 제동(齊洞)으로 이사하여 유년기를 보냈다. 190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본적지 석우리로 돌아와 한학을 수학하였다. 1916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여 1919년 졸업하였다. 그해 3·1 만세운동에 가담하여 체포되었다. 6월 석방되자, 화성 지역에 돌아와 고향 친구인 정백(鄭栢)과 함께 수필 「청산백운(靑山白雲)」, 시 「푸른 언덕으로」를 집필하였다.
1920년 정지헌·박종화 등과 함께 문예지 『문우(文友)』를 창간하였다. 1921년 재종형 홍사중(洪思仲)을 설득하여 '문화사(文化社)'를 설립하였고, 1922년 문예지 『백조(白潮)』를 창간하였다. 홍사용은 『백조』의 창간호를 계기로 본격적인 문예 활동을 시작하였다.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나는 왕(王)이로소이다」·「묘장(墓場)」·「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등을 『백조』에 수록하였다. 『백조』는 경영난으로 인하여 3화 만에 폐간되었지만, 이상화·박종화·박영희 등이 참여하여 낭만주의 시문학의 시작을 알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백조』의 폐간 이후에도 『개벽』·『삼천리』·『매일신보』·『불교』 등에 시·소설·희곡을 투고하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1923년 극단 ‘토월회(土月會)’에 참여하여 문예부장을 맡았으며, 재정적 지원과 함께 자신이 직접 희곡 작품을 써서 배우로 출연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1929년 부터 친구 박진의 집에 기거하는 등 방랑생활을 하였고, 1935년부터 창의문(彰義門) 밖 세검정 근처에서 한약방을 경영하였다. 1939년 희곡 「김옥균전」을 집필하다 일제의 검열로 집필을 중단하였는데, 이 일로 주거 제한 조치를 받기도 하였다. 광복 후에는 근국청년단에 가입하여 청년운동을 준비하였으나, 1947년 1월 5일 폐환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대표작으로 시 「백조는 흐르는데 별하나 나하나」[1922]·「푸른 강물에 물놀이 치는 것은」[1922]·「묘장」[1923]·「나는 왕이로소이다」[1923]가 있으며, 소설 「저승길」[1923]·「봉화가 켜질때」[1925]가 있고, 희곡 「할미꽃」[1928]·「흰젖」[1928]· 「귀향」[1928] 등이 있다.
[묘소]
노작 홍사용 문학관 뒤 노작공원에 홍사용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경기도 화성시 노작로에 홍사용의 호를 딴 노작 홍사용 문학관이 있다. 2021년부터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홍사용이 창간한 『백조』를 복간하여, 계간지로 출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