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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증조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에 추증된 박종수(朴宗秀)이고, 할아버지는 형조 판서에 추증된 박오(朴旿)이다. 아버지는 선무원종 2등 공신인 박진영(朴震英)이다. 박임룡(朴任龍)은 박진영의 서자로 태어났다. 1639년(인조 17) 군기시 주부로 재직하며 군기(軍器)와 성곽의 보수에 공을 세웠으며 화약 제조법에도 재주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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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실재(實哉), 호는 광서(匡西). 증조할아버지는 무안 현감(務安縣監)을 지낸 박유(朴榴)이고, 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으로 추증된 박종수(朴宗秀)이다. 아버지는 형조 판서(刑曹判書)로 추증된 박오(朴旿)이며, 어머니는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된 이경성(李景成)의 딸 경주 이씨(慶州李氏)이다. 부인은 어응해(魚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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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순흥(順興). 할아버지는 안공진(安公軫)이다. 아버지는 감찰관을 지낸 안민(安慜)이며, 어머니는 최운철(崔雲喆)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안신갑(安信甲)[1544~1597]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 때 아버지 안민이 왜장 구로다 요시타카[黒田孝高]의 대병과 김해에서 전투를 치르다 전멸하자 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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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처인(處仁)‚ 호는 노천(老川)·도암(道庵)이다. 안정택[1842~1901]은 이돈우(李敦禹)[1807~1884]의 문인이다. 함안 지역에서 안유상(安有商)과 같은 후학을 양성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안정택의 문집인 『노천집(老川集)』은 1909년(순종 3) 족제(族弟)인 안정려(安鼎呂)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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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현규(鄭鉉奎)[1924~1995]는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1924년 1월 20일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서 태어났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가서 나고야[名古屋] 소재의 소화 정기 공업소(昭和精機工業所)의 철공 노동자로 일하였다. 1943년 2월 하순 전진(前津) 실업 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 후 일제의 식민 통치는 착취와 억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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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강제(趙崗濟)[1923~1952]는 1923년 2월 14일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서 태어났다. 교사가 되기 위해 대구 사범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본에 대항하는 비밀 결사 조직인 문예부(文藝部)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에 맞섰다. 당시 대구 사범 학교 문예부는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대항하여 국학 운동의 일환으로 결성된 비밀 결사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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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경규(趙璟奎)[1876~1950]는 1876년 6월 1일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군북의 유림은 동요하기 시작하였고, 3월 중순 조용대(趙鏞大)의 사랑채에 모여 의거를 계획하였다. 당시 모의에는 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조정래(趙正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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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경식(趙璟植)[1887~1950]은 1887년 12월 14일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평양 의학 전문 학원에 합격[『매일신보』, 1905년 8월 11일자]하였으며, 1906년에는 함안군사립 단명 학교(私立闡明學校) 보조 인원[『황성신문』 1906년 9월 27일자]으로 참여하였다. 학교 설립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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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계승(曺啓承)[1880~1943]은 1900년 옥천(沃川)송병선(宋秉璿)을 찾아가 교화를 받았고, 1905년 송병선이 순국한 후 복수를 다짐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안지호(安智鎬), 조성규(趙聖奎), 안재영(安在瑩) 등과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함안 장날에 의거하기로 모의하고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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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동규(趙銅奎)[1885~1959]는 자는 명칠(明七)이고, 호는 이봉(夷峯)이다. 조동규의 아들은 조용호(趙鏞昊)가 있고, 손자로는 조양제(趙良濟)와 조국제(趙國濟) 등이 있다. 조동규는 1885년 6월 2일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한학을 공부하였고 일제의 조선 강점을 한으로 여겼다. 함안군 대산면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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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극정(克精), 호는 두암(斗巖)·반구정(伴鷗亭). 고조할아버지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이다. 아버지는 형조 참판으로 추증된 조정언(趙庭彦)이고, 어머니는 만호(萬戶)이희조(李希祖)의 딸인 성산 이씨(星山李氏)이다. 조방(趙垹)[1557~1638]은 이칭(李偁)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조목(趙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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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성집(聖執), 호는 운오(雲塢)·황연(况淵)·취방(醉放). 조려(趙旅)의 14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조진홍(趙鎭洪)이고, 할아버지는 조태순(趙泰淳)이다. 아버지는 조달직(趙達稙)이며, 어머니는 이유간(李有幹)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해주 정씨(海州鄭氏)와 혼인하였으나 사망하자 다시 이현주(李鉉周)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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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태순(太淳), 호는 삼백당(參百堂). 할아버지는 참봉 조언(趙堰)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조종도(趙宗道)이고, 어머니는 참찬(參贊)이준민(李俊民)의 딸인 이씨(李氏)이다. 조영혼(趙英混)[1571~1632]은 결성 현감을 지냈으며 1617년(광해군 9) 부령 부사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무신이라 해당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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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안(咸安). 단종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조곤(趙鵾)이다. 조응도(趙凝道)[1566~1597]는 무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이 발발할 당시 고성 현령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같은 해 10월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 목사 김시민(金時敏)을 도왔다. 조응도는 고성의 임시 현령으로, 복병장(伏兵將) 정유경(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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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함안 조씨(咸安趙氏)는 함안을 본관으로 하여 함안에 세거하며 오랫동안 함안을 대표하는 제일의 성족이 되어 왔다. 조선 전기에 이르러 어계(漁溪)조려(趙旅)의 손자 내헌(耐軒)조연(趙淵)이 청송으로 장가를 들어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청송에도 함안 조씨 일파가 세거하게 되었다. 조연은 1562년(명종 17) 함안으로 돌아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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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군 칠서면 이룡리 의거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함안군 칠서면 이룡리는 남강과 낙동강이 합수하는 지점으로 충적지가 발달해 있었다. 일본인들은 이곳의 충적지를 앞다투어 개발하고 소유자가 불명확한 토지를 침탈하여 사유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역 지주인 진영우(陳永祐)와 농민들은 일본인과 대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에서 3·1 운동이 발발하자, 진영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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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상운(河相運)[1898~1961]은 1898년 11월 함안군 칠서면 구포리에서 태어났다. 슬하에 하동수(河東秀)라는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함안군 칠서면 구성리에서 거주하였다.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3·1 운동에 참여한 함안 사람 조한휘(趙漢輝) 등은 귀향한 후 대산면에 사는 한문 교사 안지호(安知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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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관렬(韓灌烈)[1892~1950]은 1892년 12월 18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한종호(韓鍾鎬)가 있다. 한관렬은 고종의 장례에 참배하기 위해 이찬영(李讚榮)·한종순(韓鍾淳)·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 등과 함께 상경하였다. 서울에서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하여 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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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일동(韓一東)[1891~1934]은 1891년 1월 27일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함안 장날에 발생한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여하였다가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와 만세 시위를 경험한 이들이 귀향한 뒤, 함안에서 만세 운동을 기획하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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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종순(韓鍾淳)[1893~1932]은 1893년 11월 2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장례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조한휘(趙漢輝) 등이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뒤, 고향으로 귀향하여 함안면에서 만세 운동을 시도하였다. 이에 한종순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3월 19일 함안 장날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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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한종헌(韓鍾憲)[1898~1931]은 1898년 4월 3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한기중(韓基重)이 있다. 1919년 고종의 장례에 참배하기 위해 함안에서는 이찬영(李讚榮)·한종순(韓鍾淳)·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 등이 상경하였다. 그들은 서울에서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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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영환(黃英煥)[1899~?]은 1899년 11월 28일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황의규(黃議奎)·황효규(黃孝奎)·황무규(黃武奎)가 있고, 손자는 황선욱(黃善昱)·황선은(黃善垠)·황선정(黃善政)·황선영(黃善暎)을 두었다. 칠원면구성리 시장 만세 운동은 기독교 장로이자 지방 유지인 손종일(孫鐘一)과 지역 각 집안의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