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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신산리 신당 마을에서 가메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가메골과 포덕산」은 포덕산(飽德山) 정상에서 내려오는 능선이 마치 가마솥과 같이 생겼다는 뜻에서 골짜기 이름을 가메골[부곡(釜谷)]이라고 했다는 지명 전설이다. 이를 「가메골의 지명 유래」라고도 한다. 가메골은 포덕산에 있는 골짜기이다. 2010년 함안 문화원에서 간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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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에서 와룡정과 뜬늪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와룡정과 뜬늪」의 전반부는 헌종 때 스승과 함께 과거를 본 홍철태(洪哲泰)가 자신만이 급제하자 스승 황기익(黃基益)을 위해 와룡정(臥龍亭)를 지었다는 정자 유래담이고, 후반부는 남강의 긴 월촌 제방을 따라 굽어 흐르며 넓은 들판을 형성하였는데, 이를 뜬늪[부소(桴沼)]이라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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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에서 절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유목과 절부목」은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유방을 도려내도 마을 사람이 숨은 곳을 결코 발설하지 않았다는 처녀의 절부(節婦) 전설이고, 이후 처녀가 죽은 나무 양편에서 유방 같은 혹이 생기고, 젖 같은 흰 액체가 흘러내려 유목(乳木)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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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조임도의 시문집. 조임도(趙任道)[1585~1664]는 어릴 적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합천, 청송, 영주, 봉화, 의성, 인동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봉화에서 반천(槃泉)김중청(金中淸)에게 수학했으며, 의성에서는 두곡(杜谷)고응척(高應陟)에게 배웠다. 또한 인동으로 옮겨가서는 여헌(旅軒)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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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주도복의 시문집. 주도복(周道復)[1709~1784]의 자는 여강(汝剛), 호는 감은재(感恩齋)이며,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부인은 좌랑 강재후(姜載後)의 딸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며, 아들은 주봉조(周鳳朝)·주봉익(周鳳翊)·주봉양(周鳳陽) 등이다. 주도복은 1709년 10월 18일에 함안 칠원의 무기리(舞沂里)에 출생했다. 천성과 도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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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정재현의 시문집. 정재현(鄭再玄)[1765~1846]의 자는 화신(和信), 호는 강재(剛齋)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5대조 정문례(鄭問禮)가 처음으로 진주에서 함안 죽계로 이거하였으며, 백이산 아래 지두촌(池頭村)에 정자를 지었다. 아버지 장만교(鄭萬僑)는 이계(夷溪)황도익(黃道翼)[1678~1752]에게 수학하였으며, 황도익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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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조우식의 문집. 조우식(趙祐植)[1833~1867]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능(敬能), 호는 금계(琴溪)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조경림(趙景霖), 증조할아버지는 조백휘(趙伯輝), 할아버지는 조증린(趙增麟), 아버지는 조진탁(趙鎭卓)이다. 어머니는 박세기(朴世杞)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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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임도가 찬술한 향토 인물 문학 사전. 조임도(趙任道)[1585~1664]는 조선 후기 함안 지역을 대표하는 학자로 『간송집(澗松集)』,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 등을 편찬하였다. 사후에 함안의 송정 서원(松亭書院)에 제향되었다. 『금라전신록』은 조임도가 고려 말의 이방실(李芳實)을 비롯한 함안 지역이 배출한 인물들의 업적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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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종도의 문집. 조종도(趙宗道)[1537~1597]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院北里)에서 태어났다. 남명(南冥)조식(曺植)에게 수학하였다. 노진(盧禛), 임훈(林薰), 임운(林芸), 김성일(金誠一), 유성룡(柳成龍) 등과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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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방의 문집. 조방(趙垹)[1577~1638]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극정(克精), 호는 두암(斗巖) 또는 반구정(伴鷗亭)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서 태어났다. 생육신 조려(趙旅)의 현손이다. 인근에 거주했던 이칭(李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박제인(朴齊仁)·이길(李佶)과 교유하였다. 조방의 1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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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주세붕의 문집. 주세붕(周世鵬)[1495~1554]의 본관은 상주(尙州)이며,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상주 주씨 시조인 주유(周瑜)이고, 아버지는 주문보(周文俌), 어머니는 부호군을 지낸 황근중(黃謹中)의 딸인 창원 황씨(昌原黃氏)이다. 주세붕은 합천 천곡리(泉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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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려의 문집. 조려(趙旅)[1420~1489]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이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김시습(金時習)과 교유하였다. 조려의 손자 조순(趙舜)[1467~1529] 형제가 1516년 강혼(姜渾)의 서문을 붙여 조부 조려의 유집을 판각하였고, 이를 관아재(觀我齋)조영석(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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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에 편찬된 경상남도 칠원현의 읍지. 칠원 지역은 신라 때 칠토현(漆吐縣)에서 시작하여 칠제(漆堤), 칠원, 구성(龜城), 무릉(武陵) 등으로 불려졌다. 1786년 칠원현은 현상리면(縣上里面)을 포함해 4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읍치에서 40리나 떨어진 구산면(龜山面)은 창원부(昌原府)의 경계를 넘어야 하는 월경지(越境地)이다. 1786년의 칠원현 원호(元戶)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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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오횡묵이 편찬한 경상남도 함안군에 관한 기록. 『함안 총쇄록(咸安叢鎖錄)』은 오횡묵(吳宖默)[?~?]이 함안 군수로 재직한 1889년 4월부터 1893년 2월까지의 각종 통치 업무, 지역 인사들과의 교류 등 부임지에서의 전반적 상황을 매일 자세하게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을 엮은 책이다. 2003년 함안 문화원에서 번역하여 『경상도 함안군 총쇄록(慶尙道咸安郡叢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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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경상남도 함안군을 대상으로 편찬한 종합 인문 지리서. 함안 지역에는 일찍이 변진안야국(弁辰安耶國), 아라가야(阿羅伽倻), 아시량군(阿尸良郡), 함안군(咸安郡), 함주현(咸州縣)과 함주군(咸州郡)이 설치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했다.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786]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은 병곡면(竝谷面)을 비롯한 18개 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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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경모재(敬慕齋)는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하림 마을 흠골에 위치한다. 경모재는 1798년에 건립되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단은 장대석을 2벌 쌓기 하였고, 초석은 비교적 평평한 자연석 돌을 사용하였다. 간살잡이는 중앙 2칸은 대청으로 두고 좌측 2칸,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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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구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묘비. 곽연(郭硏)에 대한 기록은 『칠원 읍지(漆原邑誌)』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인조 때에 문과 급제하여 벼슬이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에 이르고 문장(文章)이 뛰어나서 세상에 따를 사람이 없었다. 호는 구사당(久俟堂)”이라고 하였다. 수구재(守口齋)주맹헌(周孟獻)도 일찍이 곽연에게 수학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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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 건립되었던 서원. 기양 서원(沂陽書院)은 주세곤(周世鵾)·주선원(周善元)·주각(周珏)·주재성(周宰成)·주도복(周道復) 등 다섯 사람을 배향하기 위하여 1701년(숙종 27)에 창건되었다. 주세곤은 문무를 겸비한 학자이다. 주세곤은 신구(慎口), 신신(慎身), 신심(慎心)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좌우명을 성찰한다는 의미로 호를 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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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소포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서원. 남강 서원(南岡書院)은 조선 시대 서원으로서 고려 시대 함안 출신인 이방실(李芳實)[1298~1362] 장군을 배향(配享)하기 위해 설립한 서원이다. 남강 서원은 고려 후기 무신, 본관이 함안이며, 함안 이씨(咸安李氏)의 시조인 이방실 장군을 기리고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설립되었다. 18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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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건립되었던 서원. 덕암 서원(德巖書院)은 조순(趙純)[?~1398], 박한주(朴漢柱)[1459∼1504], 조종도(趙宗道)[1537~1597]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조순은 고려 말의 인물로 우왕(禑王)의 총애를 받았다. 조순은 왕명으로 요동을 공격할 때에 좌중군(佐中軍)에 임명되어 이성계(李成桂), 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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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덕암공의 휘(諱)는 조함복(趙咸復)이며 공의 아호(雅號)를 따서 재실은 덕암재(德巖齋)라는 현판을 걸고, 대문에는 염수(念修)라는 현판을 달았다. 덕암재는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 사촌 마을 동쪽 끝자락 도로변에 위치한다. 덕암재는 1837년 창건하였으나 화재로 소실되고 1978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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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건립되었던 서원. 도계 서원(道溪書院)은 이숙(李潚)[1550~1615], 이휴복(李休復)[1568∼1624], 박진영(朴震英)[1569∼1641], 조익도(趙益道)[1585~1624] 등 4명의 공신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이다. 이숙은 경상남도 함안 출생으로, 호는 갈촌(葛村)이다. 선조(宣祖) 때 무과(武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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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 창건되었던 서원. . 도림 서원(道林書院)은 1702년(숙종 28)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정구는 1586년(선조 19)에 부임하여 1588년(선조 21)까지 함안 수령(咸安守令)으로 재직하면서 조선 시대 최초의 지방지인『함주지(咸州誌)』를 발간하였다. 도림 서원은 1702년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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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덕대리에 건립되었던 서원. 도암 서원(道巖書院)은 배여경(裵汝慶)[1622~1696], 조영득(趙靈得)[1666~1736], 조익성(趙益誠), 황후간(黃後幹)[1700~1773] 등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배여경의 자(字)는 선여(善餘)이고, 호(號)는 일성재(一誠齋)이다. 배여경은 성품이 온순하고 효성이 지극했다. 부모상뿐 아니라 국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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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에 있는 서원. 두릉 서원(杜陵書院)은 안민(安慜)[1539~1592], 안희(安憙)[1551~1613], 안신갑(安信甲)[1564~1597]을 배향하는 서원이며, 두릉(杜陵)은 현재의 음·양촌과 내곡을 일컬어 부르던 옛 지명이다. 안민은 선조(宣祖) 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로 재직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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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주세붕(周世鵬)[1495~1554]의 손자 주익창, 주필창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 휘하에서 전투를 치르다가 전사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그들의 아내 재령 이씨(載寧李氏)와 의성 김씨(義城金氏)는 지리산에 들어가 애통해하다 연못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선조가 쌍절의 정려를 명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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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일지(一之), 호는 쌍악(雙岳)·농은(農隱)·신독재(愼獨齋). 할아버지는 왕자사부(王子師傅)를 지낸 황암(篁嵒)박제인(朴齊仁)이다. 부인은 재령 이씨(載寧李氏)로, 슬하에 아들 넷을 두었다. 큰아들 박집(朴慹)은 아버지 박도원보다 먼저 죽었고, 둘째 아들 박임(朴恁)은 현령을 지냈으며, 셋째 아들은 박흠(朴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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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보(成甫), 호는 자고당(紫臯堂). 광서(匡西)박진영(朴震英) 장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완석당(浣石堂)박형용(朴亨龍)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박창조(朴昌兆)이다. 박상절(朴尙節)[1700~1774]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매우 두터웠다. 일찍이 과거에 응하지 않고 성호(星湖)이익(李瀷)의 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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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증조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에 추증된 박종수(朴宗秀)이고, 할아버지는 형조 판서에 추증된 박오(朴旿)이다. 아버지는 선무원종 2등 공신인 박진영(朴震英)이다. 박임룡(朴任龍)은 박진영의 서자로 태어났다. 1639년(인조 17) 군기시 주부로 재직하며 군기(軍器)와 성곽의 보수에 공을 세웠으며 화약 제조법에도 재주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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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실재(實哉), 호는 광서(匡西). 증조할아버지는 무안 현감(務安縣監)을 지낸 박유(朴榴)이고, 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으로 추증된 박종수(朴宗秀)이다. 아버지는 형조 판서(刑曹判書)로 추증된 박오(朴旿)이며, 어머니는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된 이경성(李景成)의 딸 경주 이씨(慶州李氏)이다. 부인은 어응해(魚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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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에 있는 박진영 장군의 불천묘 및 유품. 박진영(朴震英)[1569~1641]은 조선 인조(仁祖) 때의 장군으로 자(字)는 실재(實哉), 호(號)는 광서(匡西)이다. 아버지는 박오(朴旿)이다. 어려서부터 재주와 식견이 남달랐고 기개 또한 대단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수 유숭인(柳崇仁)과 함께 의병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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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훈경(薰卿), 호는 만성(晩醒). 7대조는 병조 참판을 지낸 박진영(朴震英)[1569~1641]이다. 아버지는 박준번(朴俊蕃)이고, 어머니는 최규찬(崔奎燦)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와 곽심춘(郭心春)의 딸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현빈(李賢賓)의 딸 고성 이씨(固城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강창범(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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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반구정(伴鷗亭)은 조선 중기 학자 조방(趙垹)[1557~1638]이 풍류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조방의 자는 극정(克精), 호는 두암(斗巖)·반구정(伴鷗亭)이다. 조방은 함안 출생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현손이며, 이황(李滉)의 『성학 십도(聖學十圖)』를 연구하였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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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 있는 서원. 상봉 서원(祥鳳書院)은 독오당(獨梧堂)황협(黃悏)[1606~1686], 퇴휴당(退休堂)황열(黃悅)[1616~1681] 등의 8현(賢)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한 서원이다. 황협은 고려회산 부원군(檜山府院君)황석기(黃石奇)의 12세손으로 자(字)는 낙부(樂夫)이며 본관(本貫)은 창원이다. 11세에 두견시(杜鵑詩)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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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에서 활동한 유학자. 성호정(成好正)[1589~1639]은 함안에서 활동한 학자이다. 과거 시험에 뜻을 두지 않고 일평생 학문을 탐구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남명(南冥)조식(曺植)의 제자인 황암(篁巖)박제인(朴齊仁), 내암(來庵)정인홍(鄭仁弘), 한강(寒岡)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남명학을 계승하였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상부(尙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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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송정리에 건립되었던 서원. 송정 서원(松亭書院)은 조선 후기인 1721년(경종 1)에 경상도 함안 출신인 조임도(趙任道)[1585∼1664]를 제향하기 위하여 도내의 사림들이 임금에게 상소하여 윤허를 얻어 건립된 서원이다. 조임도는 조선 후기의 학자로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5대손이다. 조임도는 학문이 뛰어나고 효심이 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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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있는 서원. 신암 서원(新巖書院)은 안관(安灌)[1491~1553]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안관은 경상남도 함안 출신으로,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크게 통탄하고 벼슬길을 멀리하였다.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己卯士禍)와 1521년(중종 16)의 신사무옥(辛巳誣獄)이 발생하자 1523년(중종 18)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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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 후기 간행한 『정충록』. 『정충록(精忠錄)』은 중국 남송(南宋) 초 금(金)나라와의 전쟁을 주장하다 30여 세 젊은 나이로 주화파(主和派)인 승상 진회(奏檜)에게 사사된 악비(岳飛)[1103~1141]의 사적과 저술 및 후인의 찬문(讚文)을 모아 1501년 명나라 진수 절강 태감(鎭守浙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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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순흥(順興). 할아버지는 안공진(安公軫)이다. 아버지는 감찰관을 지낸 안민(安慜)이며, 어머니는 최운철(崔雲喆)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안신갑(安信甲)[1544~1597]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 때 아버지 안민이 왜장 구로다 요시타카[黒田孝高]의 대병과 김해에서 전투를 치르다 전멸하자 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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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형(汝衡), 호는 도천(陶川)·삼수헌(三秀軒). 할아버지는 안정옥(安鼎鈺)이고, 아버지는 안효중(安孝中)이다. 첫 번째 부인은 강익흠(姜益欽)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조성섭(趙性燮)의 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3남 4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안철준(安哲濬), 둘째 아들은 안극준(安克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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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에 건립되었던 서원. 여양 서원(廬陽書院)은 이경번(李景藩)[1606~1673], 이경무(李景茂)[1609~1679], 안택(安宅), 조삼(趙參)[1473~?], 박오(朴旿), 이명호(李明怙)[1565~1624]를 향사하던 서원이다. 이경번은 함안 출신으로 본관은 여주(驪州)이다. 이경번은 과거에 나가지 않고 아우 이경무와 서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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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산성. 용성리 산성(龍城里山城)은 문헌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무명 성으로, 함안군·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함안군』[2006]을 작성하기 위한 조사 과정에서 새로이 확인되었다. 마을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장군 망우당(忘憂堂)곽재우(郭再祐)[1552~1617]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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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이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용호사(龍湖祠)는 함안군 칠서면 칠성로영광 교회 남동쪽 구릉 비탈에 위치한다. 용호사는 여평군(驪平君)수제(修齋)진극일(陳克一)을 기리기 위하여 1818년 창건하였다. 사당 앞에 용호 서당을 같이 세웠다. 1897년 진극일이 쓰던 서각(書閣)을 서당으로 개설하였으나 협소하고 낡아서 비바람을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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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강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응암재(鷹岩齋)는 함안군 법수면 강주리 음암 새터 마을에서 매바위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있다. 1779년(정조 3) 선대의 묘제를 위하여 후손들이 성금을 모아 세웠다. 수차례 보수를 거쳐 근래에 다시 중수하고 주변도 정비하였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 단층 건물이다. 대문은 솟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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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경무의 문집. 이경무(李景茂)[1609~1679]의 본관은 여주이며, 자는 여실(汝實), 호는 만묵당(晩默堂)이다. 함안 두곡촌[지금의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두곡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경무의 고조할아버지가 함안으로 이주하였고, 아버지 이익형(李益亨)[1573~1633]은 두곡촌에 정착하였는데, 당시 북인 세력을 피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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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수평(受平), 호는 모계(茅溪). 고조할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을 지낸 이이백(李而柏)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형(李炯)이며, 할아버지는 이몽종(李夢鍾)이다. 아버지는 이재종(李載宗)이며, 어머니는 성창우(成昌遇)의 딸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다. 부인은 김탕(金宕)의 딸 상산 김씨(商山金氏)로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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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군겸(君兼), 호는 흘봉(屹峯). 재령 이씨(載寧李氏)함안 입향조 모은(茅隱)이오(李午)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후덕옹(厚德翁)이재기(李載祺)이며, 아버지는 상우재(尙友齋)이경배(李慶培)이다. 이빈망(李贇望)[1694~1773]은 어려서 재종숙 모계(茅溪)이명배(李命培)에게 수학하였으며, 23세 때 밀암(密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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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공직(孔直), 호는 쌍봉(雙峯).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 이허겸(李許謙)이다. 이허겸의 17세손인 경상 도사(慶尙都事) 이계운(李啓耘)이 함안 평광(平廣)[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에 터를 정해 입향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관(李慣)이고, 할아버지는 이호맹(李虎孟)이다. 아버지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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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사장(士長), 호는 양졸정(養拙亭).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공도공(恭度公)이문화(李文和)의 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소고(嘯皐)이원성(李元盛)이며, 아버지는 인산군(仁山君)이인(李寅)이다. 이휴복(李休復)[1568~1624]은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외삼촌인 황암(篁巖)박제인(朴齋仁)에게 『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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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이휴복에게 내린 진무공신 3등 책훈 교서. 이휴복(李休復)[1568~162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사장(士長), 호는 양졸정(養拙亭)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망우당(忘憂堂)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순천 군수였던 이휴복이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논공행상(論功行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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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극정(克精), 호는 두암(斗巖)·반구정(伴鷗亭). 고조할아버지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이다. 아버지는 형조 참판으로 추증된 조정언(趙庭彦)이고, 어머니는 만호(萬戶)이희조(李希祖)의 딸인 성산 이씨(星山李氏)이다. 조방(趙垹)[1557~1638]은 이칭(李偁)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조목(趙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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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재안(在安), 호는 금계(錦溪).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조계호(趙啓浩)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조용표(趙龍標)이며, 할아버지는 조응규(趙應奎)이다. 아버지는 조용우(趙鏞祐)로,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어머니는 이승현(李承玹)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조석제(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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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화언(華彦), 호는 화강(華岡)·동애(東厓). 첫 번째 부인은 안효연(安孝淵)의 딸 광주 안씨(廣州安氏)로 자식이 없었다. 두 번째 부인은 전수록(全壽祿)의 딸 경산 전씨(慶山全氏)로 슬하에 아들 다섯 명을 두었다. 큰아들은 조성국(趙性國), 둘째 아들은 조성숙(趙性宿), 셋째 아들은 조성교(趙性敎), 넷째 아들은 조성집(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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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낙언(洛彦), 호는 심재(心齋).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도암공파(韜巖公派)의 종손으로, 할아버지는 덕암(德岩)조식(趙湜)이며, 아버지는 담와(澹窩)조맹식(趙孟植)이다. 조성렴(趙性濂)[1836~1886]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수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계당(溪堂)유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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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성윤(趙性胤)[1845~1904]은 함안에서 태어나 함안에서 활동한 학자이다. 과거 시험에는 응시하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학문을 탐구하며 생활 속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한 학자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영순(永純), 호는 광천(廣川). 어계(漁溪)조려(趙旅), 무진정(無盡亭)조삼(趙參)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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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태순(太淳), 호는 삼백당(參百堂). 할아버지는 참봉 조언(趙堰)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조종도(趙宗道)이고, 어머니는 참찬(參贊)이준민(李俊民)의 딸인 이씨(李氏)이다. 조영혼(趙英混)[1571~1632]은 결성 현감을 지냈으며 1617년(광해군 9) 부령 부사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무신이라 해당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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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안(咸安). 단종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조곤(趙鵾)이다. 조응도(趙凝道)[1566~1597]는 무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이 발발할 당시 고성 현령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같은 해 10월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 목사 김시민(金時敏)을 도왔다. 조응도는 고성의 임시 현령으로, 복병장(伏兵將) 정유경(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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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조익도에게 내린 교지와 공신녹권. 조익도(趙益道)의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자는 여행(汝行), 호는 도곡(道谷)이다. 1614년(광해군 6), 1624년(인조 2) 두 차례 공신록에 녹훈되었으며, 1769년(영조 45)에는 정3품 병조 참의에 증직되었다. 「조익도 공신녹권 및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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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치원(致遠)·덕용(德勇), 호는 간송(澗松).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사도시 첨정(司䆃寺僉正)을 지낸 입암(立巖)조식(趙埴)이며, 어머니는 충의위(忠義衛) 유상린(柳祥麟)의 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대소헌(大笑軒)조종도(趙宗道)는 삼종형(三從兄)이다. 부인은 노파(蘆坡)이흘(李屹)의 딸 벽진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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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조임도의 『간송 문집』과 『금라전신록』 책판. 『간송 문집(澗松文集)』 책판 및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 책판은 조선 후기 유학자 조임도(趙任道)[1585~1664]의 저술인 『간송 문집』과 『금라전신록』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목판이다. 조임도는 조선 후기 함안을 대표하는 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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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임도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조임도(趙任道)[1585∼1664]는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덕용(德勇), 호는 간송당(澗松堂)이다. 1604년(선조 37) 향시에 합격하였고, 1605년 21세에 『관규 쇄록(管窺鎖錄)』을 저술하였다. 1608년 「거상 대절(居喪大節)」 10조(十條)를 써서 자손들이 교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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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함안 조씨(咸安趙氏)는 함안을 본관으로 하여 함안에 세거하며 오랫동안 함안을 대표하는 제일의 성족이 되어 왔다. 조선 전기에 이르러 어계(漁溪)조려(趙旅)의 손자 내헌(耐軒)조연(趙淵)이 청송으로 장가를 들어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청송에도 함안 조씨 일파가 세거하게 되었다. 조연은 1562년(명종 17) 함안으로 돌아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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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여택(汝宅), 호는 수구재(守口齋)인데 ‘수구여병(守口如甁)’의 의미로 자호하고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이조 참판에 추증된 주문보(周文俌) 때부터 함안군 칠원읍으로 이주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신재(愼齋)주세붕(周世鵬)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구봉(龜峯)주박(周博)이며,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연헌(蓮軒)주낙창(周樂昌)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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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성재(聖哉), 호는 국담(菊潭). 시조는 주유(周瑜)이고, 주세붕(周世鵬)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경재(敬齋)주각(周珏)이다. 어머니는 노한석(盧漢錫)의 딸 광주 노씨(光州盧氏)이다. 주재성(周宰成)[1681~1743]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서 태어났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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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통정대부 거제 도호부사 인천 이씨의 비. 통정대부 거제 도호부사 이공 묘비(通政大夫巨濟都護府使李公墓碑)는 1661년(현종 2) 거제 도호부사를 지낸 인천 이씨(仁川李氏)의 무덤에 세워졌다.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 인천 이씨 배향소인 봉남재가 위치한 배후 산 능선의 하단부에 위치한다. 봉남재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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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 건립되었던 서원. 평천 서원(坪川書院)은 조선 전기의 박희삼(朴希參)[1486-1570]을 주벽(主壁)으로, 두 아들인 박제현(朴齊賢)[1521-1575], 박제인(朴齊仁)[1536-1618]을 배향한 서원이다. 박희삼의 자는 노경(魯卿)이고, 호는 모암(茅菴)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평광리(平廣里)[현, 함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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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1677년(숙종 3) 효성이 지극한 한극검(韓克儉)은 병중에 있는 아버지가 겨울에 생 대추를 먹고 싶어하자 잎이 없는 대추나무 아래에서 3일간 기도한 끝에, 지극한 효심에 감동하여 대추가 열릴 만큼 효성이 깊었다고 한다. 한극검 정려각(韓克儉旌閭閣)은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 윤외 마을 남쪽에 위치한 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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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 구고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 부도(浮屠)는 석탑과 마찬가지로 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세워진 석조 구조물로 사리가 안치되는 탑신부의 형태에 따라 팔각 원당형과 석종형 등이 있다. 석종형 부도는 외형이 범종과 유사하며 조선 후기부터 크게 유행한 양식이다. 석종형은 지역색이 강하고 시대 흐름에 따른 큰 변화가 없으며 형식에 구애를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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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능가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칠성 탱화. 「함안 능가사 칠성탱(咸安楞伽寺七星幀)」은 북두칠성을 도상화한 불교 회화로 본존인 치성광 여래(熾盛光如來)를 중심으로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 및 칠원성군(七元星君)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탱화의 가장자리 부분이 결실되어 액자 형태로 다시 표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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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고가. 함안 무기리 주씨 고가(咸安舞沂里周氏古家)는 상주 주씨(尙州周氏) 집성촌에 있는 국담(菊潭)주재성(周宰成)[1681~1743]의 생가로 현재 주씨 집안 종가이다. 주재성은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조선 후기 학자이다. 고가의 대문채인 충효 쌍정려문(忠孝雙旌閭門)에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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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 함안 무기연당(咸安舞沂蓮塘)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움으로써 양무 원종훈 일등 공신(揚武原從勳一等功臣)에 오른 국담(菊潭)주재성(周宰成)[1681~1743]의 덕을 칭송하고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난이 평정된 뒤 도내 사림의 공의로 주재성의 생가 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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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 박한주(朴漢柱)[1459∼1504]는 자(字)는 천지(天支), 호(號)는 오졸재(汚拙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485년 성종 때 문과에 급제, 정연 헌납(正筵獻納)을 거쳐 예천 태수(醴泉太守)가 되어 정치를 잘 살펴 그를 공경하고 복종하였다. 연산군 때 간관이 되어 왕의 실정을 극간(極諫)하여 평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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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악양루(岳陽樓)는 악양 마을악양교를 건너 ‘처녀 뱃사공 노래비’를 지나 함안천 하류에 남강과 합류하는 절벽 위에 위치한다. 1857년(철종 8) 건립된 누각이다. 현재의 건물은 6·25 전쟁 뒤 복원한 것이다. 1963년 중수하였으며 최근에 기둥 및 지붕을 수리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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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청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청계 서원(淸溪書院)은 경상남도 함안군무릉산(武陵山) 서쪽 10리[3.93㎞]의 칠서면 청계리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이삼로(李三老)[1560∼1645]와 이삼로의 조카인 이시분(李時馩)의 충정과 행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1670년(현종 11)에 창건된 서원이다. 장석영(張錫英)이 기록한 『청계 서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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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함안 검암리 충순당(咸安儉岩里忠順堂)은 충순당(忠順堂)이령(李伶)[1541~1592]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이령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평민을 주축으로 한 의병장으로 김해 읍성에서 전사하였다. 이후 나라에서 군역 및 요역의 면제를 명하고, 1869년(고종 6) 영남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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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합강정(合江亭)은 조선 후기 문관이며 학자인 간송(澗松)조임도(趙任道)[1585~1664]가 수학하던 정자이다. 조임도는 인조 때 공릉 참봉(恭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1647년 대군 사부(大君師傅)에 임명되어 창녕까지 가다 역시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그 뒤 공조 좌랑으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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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지역의 향권 장악을 둘러싼 재지 세력과 신흥 세력 간의 대립. 함안 지역에서 남당과 북당이 형성된 것은 북당의 영수 조윤수가 향권을 장악하려는 데서 기인한다. 본래 남당과 북당은 당파적 색깔에 의해서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조윤수가 함안 북쪽 내대산면에 거주하였고, 그의 반대파들 대부분이 남쪽에 거주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호방(戶房)을 중심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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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창원(昌原). 초명은 헌수(憲壽), 자는 명여(命汝), 호는 덕암(德庵). 증조할아버지는 황치문(黃致文)이고, 할아버지는 황정기(黃正基)이다. 외할아버지는 안석중(安碩重)이며, 아버지는 황용덕(黃龍德)이다. 부인은 상주 주씨(尙州周氏)로,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황도성(黃道性)이고, 사위는 이임현(李任鉉), 주경회(周璟會), 배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