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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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德熙 |
영어공식명칭 | Yoon Deokhui |
이칭/별칭 | 경백(敬伯),낙서(駱西),연포(蓮圃),연옹(蓮翁),현옹(玄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윤섭 |
출생 시기/일시 | 1685년 - 윤덕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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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13년 - 윤덕희 서울에서 해남으로 귀항 |
활동 시기/일시 | 1719년 - 윤덕희 윤두서의 그림을 모아 『가전보회(家傳寶繪)』, 『윤씨가보(尹氏家寶)』 두 권의 화첩으로 꾸임 |
활동 시기/일시 | 1731년 - 윤덕희 상경 |
활동 시기/일시 | 1748년 - 윤덕희 감동(監董)으로 선발되어 어진 제작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749년 - 윤덕희 사옹원 주부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752년 - 윤덕희 해남 귀향 |
몰년 시기/일시 | 1766년 - 윤덕희 사망 |
출생지 | 경기도 과천시 |
거주|이주지 | 한성부 - 서울특별시 |
거주|이주지 |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
묘소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평호리 |
성격 | 문인화가 |
성별 | 남 |
본관 | 해남(海南) |
대표 경력 | 사옹원주부 |
[정의]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화가.
[가계]
윤덕희(尹德熙)[1685~1766]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경백(敬伯), 호는 낙서(駱西)·연포(蓮圃)·연옹(蓮翁)·현옹(玄翁)이다. 아버지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부인은 심채원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며, 문인화가 윤용(尹愹)이 아들이다.
[활동 사항]
윤덕희는 1685년(숙종 11) 경기도 과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윤두서에게서 화법을 익혀 그림을 스스로 터득하였다. 윤덕희는 서울에서 학문을 익히며 여러 인사들과 교유하다가 1713년 아버지 윤두서와 함께 해남으로 내려왔는데, 다시 상경하는 1731년까지 집안을 돌보면서 서화(書畫)도 수련하였다. 해남에 있는 동안에는 이서에게 서신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1715년 아버지 윤두서가 사망하자 1718년 선조들의 유묵을 모아 서화첩을 꾸미는 등 집안의 유물 정리와 보존에 힘을 쏟았다. 1719년에는 윤두서의 그림을 모아 『가전보회(家傳寶繪)』와 『윤씨가보(尹氏家寶)』 두 권의 화첩으로 꾸몄다.
윤덕희는 1731년(영조 7) 봄에 다시 상경하여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다. 1748년에는 그림의 재능을 인정받아 감동(監董)으로 선발되어 처음으로 관직을 얻게 되었다. 어진을 완성하고 도감이 해체되자 임금은 창경궁으로 돌아와 윤덕희와 조영석(趙榮祏)에게 공로를 인정하여 품계를 올려 주었다. 1749년 봄에 윤덕희는 6품직인 사옹원 주부를 제수받고 2년 동안 관직 생활을 하였으나 병으로 사임하였다.
윤덕희는 1752년 다시 해남으로 내려와 작품 활동에 몰두하다가 1766년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윤덕희의 저서로는 시, 제문, 발문 등 총 578편의 시문이 실린 『수발집(溲勃集)』이 있다. 작품으로는 「독서하는 여인」·「오누이」와 같은 풍속화를 비롯하여 「송하고사도(松下高士圖)」, 「마상부인도(馬上婦人圖)」, 「마도(馬圖)」, 「월야송하관폭도(月夜松下觀瀑圖)」, 「송하인물도(松下人物圖)」 등이 있다. 윤덕희는 윤두서의 화풍을 따르며 남종화풍을 수용하고 있는데, 실경산수화도 그려 도담의 실경을 그린 「도담절경도(島潭絶景圖)」를 남겼다. 또한 신선사상에 관심이 많아 『삼재도회(三才圖會)』, 『선불기종(仙佛奇蹤)』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많은 도석인물화를 그려 조선 후기 도석인물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묘소]
윤덕희의 묘소는 해남군 화산면 평호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