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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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南誌 |
영어공식명칭 | Haenamj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덕진 |
[정의]
조선 후기 해남에서 편찬한 읍지.
[개설]
『해남지(海南誌)』의 편찬 시기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해남지』의 선생안 마지막 두 번째 인물인 정간(鄭杆)[1733~1813]이 『정조실록(正祖實錄)』 1795년 5월 22일 자 기사에 해남현감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1795년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
[편찬/간행 경위]
『해남지』는 중앙정부의 요청에 의해 해남현에서 작성하여 올려 보냈다.
[형태/서지]
『해남지』의 규격은 가로 32.2㎝, 세로 20.5㎝이다.
[구성/내용]
『해남지』의 전체적인 내용과 형식은 이전의 『해남읍지』[1791년 무렵 편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를 따르고 있다. 「방리」 항목에는 12면이 있는 것으로, 「성지」 항목에는 읍성의 규모와 성문(동·서·남)이 기록되어 있다.
「산천」 항목에는 관내 나루와 포구가 열거되어 있다. 별진포는 상선이 정박하여 관에서 세금을 걷는다는 사실과 죽성포는 옛날에 전세를 수납하는 곳이었다는 전언이 수록되어 있다.
「교량」 항목에는 세 개의 교량이 소개되어 있는데, 읍성 남문 앞에 있는 남천교(南川橋)는 현감 김서구가 홍교로 개건하고서 청류정이라는 작은 정자를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남현 북쪽 20리에 있는 맹진교(孟津橋)는 바닷물에 의해 훼손되는 때가 잦아 그때마다 보수한다는 것으로 보아 나무다리였던 것 같다.
『해남지』는 조세와 관련된 통계 항목에 있어서는 이전 읍지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진공(進貢)·호구(戶口)·전총(田摠)의 수치는 『해남읍지』와 일치하나, 전세(田稅)·대동(大同)·균세(均稅)·조적(糶糴)·군기(軍器) 항목의 수치는 증가하여 변화가 있다. 「봉름(俸凜)」의 경우 『해남읍지』에는 관수미(官需米) 항목만 있는 반면에 『해남지』에는 현사미(縣司米)가 추가되어 있으며, 봉름 다음 항목으로 「창고(倉庫)」 항목이 새롭게 추가되어 있다. 대신에 『해남읍지』에 있는 「요역(徭役)」 항목이 『해남지』에는 빠져 있다.
[의의와 평가]
『해남지』는 해남이 바다와 맞닿은 읍이라 포구와 관련된 사실, 그리고 포구를 통한 세곡 운송에 관한 사실이 다른 읍지와 비교하여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해남지』는 조선시대 포구상업사 또는 세곡운송사 연구에 유익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