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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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原郡 |
영어공식명칭 | Hwangwon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문내면|산이면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한정훈 |
제정 시기/일시 | 940년 - 황원현에서 황원군으로 승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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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409년 - 황원군 해진현에 통폐합 |
관할 지역 | 황원군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문내면|산이면 일대 |
[정의]
고려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개설]
통일신라 때까지 황원현(黃原縣)이던 고을이 고려에 들어와 황원군(黃原郡)으로 승격하였다. 이러한 고을의 읍격 변동은 왕건의 후삼국 통일전쟁에서 화원반도의 정치세력이 일정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백제 때에 황술현, 통일신라 때에 황원현 그리고 고려시대에 황원군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와서 현에서 군 단위의 고을로 읍격이 격상되었다.
[관련 기록]
“죽도(竹島)는 황원현에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7, 전라도 해남현 산천]
“황원(黃原) 폐현은 현의 서쪽 15리[약 5.89㎞]에 있다. 본래 백제의 황술현(黃述縣)이었는데, 신라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양무군에 딸린 현이 되었으며, 고려 때에는 영암군에 예속되었다가, 뒤에 본 현에 내속되었다. 목장이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7, 전라도 해남현 고적]
[내용]
황원군은 화원반도 화원면·문내면·산이면 일대의 고려시대 고을 명칭으로 백제 때에는 황술현, 통일신라시대에는 황원현(黃原縣)이었다. 황술에서 황원으로의 명칭 변경은 신라 경덕왕 대 군현 명칭을 아화(雅化)된 한자 이름으로 바꿀 때에 개칭된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에 황원군이 되었고 황원군 치소는 문내면 고당마을에 있었다. 고려 초에 황원현에서 황원군으로 승격하면서 양무군[현재의 강진군]에서 영암군으로 영속 고을이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군으로의 승격은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에 관여한 것이 이유일 것이라 추정한다. 해남지역 고을 중에서 황원현만이 군으로 승격한 것을 두고 화원반도의 자기 가마터와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또한 영속 관계가 영암군으로 변경된 것도 건국 과정에 기여한 영암 지역 정치세력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황원군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으로 지사군인 영암군에 파견된 관원의 관할 하에 있었고 지방행정은 황원군의 향리들이 도맡아 하였다.
[변천]
6세기인 백제 도무군의 속현 황술현, 757년 통일신라 양무군의 속현 황원현은 940년 황원군으로 읍격이 격상되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