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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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宅煥 |
영어음역 | Yi Taekhwan |
이칭/별칭 | 형락(亨洛),회산(晦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전병철 |
[정의]
개항기 하동에서 활동한 문인.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형락(亨洛), 호는 회산(晦山).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인 동곡(桐谷) 이조(李晁)[1530~1580]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이도형(李道炯)이며, 어머니는 최씨(崔氏)이다. 부인은 권씨(權氏)·이씨(李氏)이며, 2남 4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이택환(李宅煥)[1854~1924]은 1882년(고종 19)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과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온화하며 도량이 넓었다고 전한다. 나라가 주권을 잃고 세태가 황망하자 세상을 떠나 화계(花溪)에서 숨어 살고자 하였다. 이에 최경병(崔瓊秉)[1865~1939] 등 뜻이 맞는 동지들 수십명과 함께 ‘화계십일(花溪十逸)’을 결사(結社)하여 매년 중양절에 국화를 막걸리에 띄우고 시가를 부르며 답답한 마음을 풀었다. 유학자 정봉기(鄭鳳基)[1861~1915]가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의 절명시(絶命詩)를 듣고서 비분한 마음으로 쓴 시를 이택환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학문은 정주학과 율곡학에 연원을 두었으며, 문장은 굴원(屈原)·송옥(宋玉)·이백(李白)·두보(杜甫) 등을 추구하였다. 문집으로 『회산집(晦山集)』 12권이 있다. 『회산집(晦山集)』에는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에 증직된 이정립(李廷立)의 묘지명을 비롯하여 시(詩)와 서(書), 묘갈명(墓碣銘), 묘표(墓表), 행장(行狀) 등 여러 글이 실려 있다. 이택환은 노백헌(老栢軒) 정재규(鄭載圭)의 문인으로 영남 노사학파(蘆沙學派)의 맥을 잇고 있다는 점에 그의 문집이 가지는 학술사적 의미가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곤양군 곤산의 선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