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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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多沙郡 |
영어의미역 | Handasa-gun Administrative Distric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박용국 |
[정의]
685년경부터 757년까지 경상남도 하동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한다사군(韓多沙郡)은 757년(경덕왕 16) 한화 정책(漢化政策)에 의해서 하동군(河東郡)으로 개명되었다. 한화 정책은 중국의 제도를 수용하여 국내의 제반 제도를 정비해 왕권을 강화하는 하려는 목적에서 시행되었다.
[관련 기록]
하동의 고유 지명 다사(多沙)와 관련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 신라본기(新羅本紀) 유례이사금(儒禮尼師今) 11년(294)조에 “다사군(多沙郡)이 가화(嘉禾)[상서로운 벼 이삭]를 바쳤다”라는 내용이 처음이다. 그리고 『일본서기(日本書紀)』 권17, 계체기(繼體紀)에 다사진(多沙津)·대사(帶沙)·대사진(帶沙津)·체사(滯沙) 등의 지명이 나온다.
『삼국사기』 권34 잡지(雜志) 권3 하동군조(河東郡條)에 “본래 한다사군이었는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 영현이 셋인데, 성량현(省良縣)은 지금 금량부곡(金良部曲)이며, 악양현(岳陽縣)은 본래 소다사현(小多沙縣)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악양(岳陽)으로 쓰고 있으며, 하읍현(河邑縣)은 본래 포촌현(浦村縣)으로 경덕왕이 하읍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은 미상이다”라고 하였다.
이 외의 관련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地理)2 하동군조(河東郡條)와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진주도(晉州道) 하동현조(河東縣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상도 하동현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1 경상도 하동현 등에 보이는데, 내용은 『삼국사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한다사군 관련 내용은 『삼국사기』 잡지의 기록이 사실상 전부이다.
[내용]
하동군은 본래 한다사군이었는데, 경덕왕이 개명한 이후 그대로 쓰고 있다. 하동군은 영현이 셋인데, 성량현·악양현·하읍현이다. 성량현은 지금 금량부곡으로 현재의 하동군 금남면인 듯하다. 악양현은 본래 소다사현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악양으로 쓰고 있으며, 현재 하동군 악양면이다. 하읍현은 본래 포촌현으로 경덕왕이 하읍으로 개명하였는데, 현재의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일대인 것으로 추측되며 『삼국사기』 편찬 당시에 이미 그 위치를 미상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폐지된 듯하다.
[변천]
685년 9주(州) 가운데 하나인 청주(菁州)를 두었을 때 한다사군을 두었는가를 알 수 있는 문헌 자료는 없다. 그렇지만 757년 경덕왕이 한다사군을 하동군으로 개명하여 영속(領屬)하게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한다사군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9주를 설치할 때 청주에 속하였던 군명(郡名)이었다가, 757년 하동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던 것이다. 이후의 변천은 하동군의 변천에 해당한다.
[의의와 평가]
현재 한다사군은 지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동의 고유 지명인 한다사는 상호 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어 하동을 대표하는 고유 브랜드의 상징적 지명으로서 그 가치를 키워 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