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730
한자 尹仁厚
영어공식명칭 Yoon Inhu
분야 종교/유교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796년 - 동서리 효자각 건립
거주|이주지 경상도 하양현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동서리 효자각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동서리 산2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효자.

[개설]

윤인후(尹仁厚)[?~?]는 조선 태종 연간의 효자로 정려(旌閭)되었으며, 윤인후를 기리는 효자각(孝子閣)이 남아 있다.

[활동 사항]

윤인후는 태종 연간 경상도 하양현(河陽縣)에 살았다. 9세 때 부모상을 당하여 묘막을 지키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윤인후를 잡아먹으려 하였다. 이에 윤인후는 호랑이에게 자기는 이미 죄인이기 때문에 먹히는 것은 서운하지 않지만 깨끗이 죽기 위해 몸을 씻고 오겠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묘막을 잠시 비우고 돌아왔는데, 호랑이가 죽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윤인후의 지극한 효행이 호랑이를 물리쳤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효행이 조정에 알려지게 되어 윤인후는 정려(旌閭)를 받았으며, 마을에 정려가 세워지고 마을 이름은 ‘효자리(孝子里)’라 칭해졌다.

[상훈과 추모]

윤인후가 받은 정려는 세월의 흐름 속에 퇴락해져, 형태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하양현감(河陽縣監)으로 부임한 박명섭(朴命燮)이 윤인후의 효자비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던 또 다른 하양 지역의 효자 신휴(申休)·허중견(許仲堅)의 효자비를 함께 수습하여 1796년(정조 20) 지금의 경산시 하양읍 동서리에 효자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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