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669
한자 全獻
영어공식명칭 Cheon Heorn
이칭/별칭 징지(徵之)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22년 - 전헌 문과 급제
거주|이주지 전헌 거주지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전헌 이주지 - 경상북도 합천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옥산
대표 관직 성균관 권지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문신.

[개설]

전헌(全獻)[?~?]은 1522년(중종 17) 문과에 급제하였다. 문과에 급제할 당시 작성한 대책문은 경제에 대한 정책의 모범 답안으로 평가되어 『동책정수(東策精粹)』에 수록되었다.

[가계]

전헌의 본관은 옥산(玉山)[경산(慶山)], 자는 징지(徵之)이다. 전헌은 고려 신호위 대장군을 지내고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진 전영령(全永齡)의 8대손으로 아버지는 삼가 훈도(三嘉訓導)를 지낸 전희(全禧),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 할아버지는 군자감 직장(軍資監直長)을 지낸 전은로(全殷輅), 증조할아버지는 사재감 소경(司宰監少卿)을 지낸 전을규(全乙奎)이다. 부인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동생은 양주목사(楊州牧使)를 지낸 전한(全翰)이다. 전헌·전한 형제는 경상도 하양현[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출신이나, 아버지가 삼가훈도로 부임함에 따라 삼가현[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으로 이거하였다.

[활동 사항]

전헌은 어려서부터 향리에서 행동을 삼가고 근신하여 조금의 허물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생원시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509년(중종 4)에는 성균관 유생들을 대표하여 국왕에게 기신재(忌晨齋)의 잘못을 논하는 상소를 두 차례 올렸다. 전헌은 부모상을 당해 6년 동안 예법을 따라 여묘(廬墓) 살이를 했는데, 1517년(중종 12)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金安國)은 전헌의 효행을 중앙에 보고하였다. 1522년(중종 17)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 권지(成均館權知) 등을 지냈다.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된 박상(朴祥)[1474~1530]과 우애가 깊었다. 이에 박상은 과거에 급제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전헌을 위해 송별시를 지어 주기도 했다.

[학문과 저술]

전헌이 문과에 응시하며 쓴 대책문이 모범 답안으로 평가되어 『동책정수(東策精粹)』에 수록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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