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최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627
한자 永川 崔氏
영어공식명칭 Yeongcheon Cho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기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25년 - 최철견 출생
입향 시기/일시 16세기 중반 - 영천 최씨 최철견 입향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94년 - 최철견 사망
본관 영천 - 경상북도 영천시
입향지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원당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최한
입향 시조 최철견

[정의]

최한을 시조로 하고 최철견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경산시의 세거 성씨.

[개설]

영천 최씨(永川 崔氏)는 경상북도 영천시를 관향으로 하는 경산 지역의 세거 성씨로,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자인면 원당리에 집성촌이 있다.

[연원]

영천 최씨는 신라 사량부(沙梁部) 대인(大人) 최균일(崔畇一)의 후손 최한(崔漢)을 시조로 한다. 최한은 고려 의종·명종 시기에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神護衛) 상장군에 올랐으며, 공을 세워 연산부원군(燃山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연산(燃山)은 영천(永川)의 별호이다. 최한의 후손들은 식읍으로 받은 영천 삼산·대전마을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다가, 세대가 내려오면서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충청도, 전라도, 평안북도 일부 지역에까지 옮겨갔다.

[입향 경위]

영천 최씨 경산 입향조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영천, 경주 등지에서 활약한 난포(蘭圃) 최철견(崔鐵堅)[1525~1594]이다. 최철견은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를 지냈고, 임진왜란 때는 70세의 고령에 창의하여 손자 최인수(崔仁壽), 증손자 최준립(崔竣立)과 함께 영천의 권응수(權應銖) 의병과 합세하여 여러 전투에서 전적을 쌓았다.

[현황]

영천 최씨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 자인면 원당리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경산시에 거주하는 영천 최씨는 1,175명이다.

[관련 유적]

영천 최씨 관련 유적으로는 난포고택(蘭圃古宅), 용계서원(龍溪書院) 등이 경산 지역에 남아 있다. 용성면 곡란리에 소재한 난포고택최철견이 지었다고 전한다. 건축 양식이나 기법의 특징을 고려하면 대략 17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집으로 보인다. ‘가경 14년’(1809년)이라고 쓰인 막새기와가 발견되어, 순조 9년(1809년)에 보수한 것을 알 수 있다. 원래는 정침·아랫사랑·중사랑·방아실·행랑채와 마루 그리고 사당 등이 고루 갖추어진 집이었으나, 지금은 정침·행랑채·사당만 남아 있다.

자인면 원당리에 소재한 용계서원(龍溪書院)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최문병(崔文炳)을 제향하는 서원이다. 1700년(숙종 26)에 지방 유림들이 최문병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창의사(倡議祠)로 처음 창건하였으며, 1712년(숙종 38)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79년에 문화공보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복원하였다. 용계서원 내 유물관에는 보물 제747호인 ‘최문병 의병장 안장’ 1좌, 궁구(弓具) 2점, 책상 1개, 책장 1개, 병풍서 8매, 하사받은 벼루 1좌, 서화(書畵) 20매, 교지(敎旨) 5매, 『성재실기』 문집 책판 60매 등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경산시립박물관에서 위탁받아 전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 『경산시지』(경산시지 편찬위원회, 1997)
  • 「영천 최씨」(『성씨뉴스』, 2017. 5. 25.)
  • 국가통계포털(http://kosis.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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