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63
한자 鄕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이수경

[정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방 인재 교육을 위해 광주 지역에 세운 공립학교.

[교육 기관의 변천]

우리나라에서 학교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는데, 고구려의 태학(太學), 신라의 국학(國學)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학교는 중앙에 설치된 관학으로, 귀족의 자제를 교육하던 일종의 관리 양성 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의 경당(扃堂)에서는 서민의 자제를 교육한 것으로 보이지만 남아 있는 문헌 자료가 적어서 구체적인 실상을 확인할 수 없다.

각 지방에 학교가 생긴 것은 과거 제도가 시행된 고려시대부터이다. 그 뒤 조선시대에 이르면 지방 학교를 대표하는 관학인 향교와 사학인 서원(書院)은 설립 주체나 배향 인물, 설립 시기 등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형태나 기능면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다.

[향교의 설립과 확대]

향교는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이 제사를 지내면서 지방 자제를 교육한 관립학교로 인식되고 있다. 『고려사(高麗史)』 1142년(인종 20) 2월조 “시험에 응시하는 지방 학생들은 계수관 향교의 도회(都會)[고려시대 매년 여름에 지방의 인재를 뽑았던 모임]에서 증명을 주도록 하였다.”라는 기록에서 향교가 처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향교는 고려시대에 설립되었으나 무신 집권기, 몽골과 왜의 침입 등을 겪으면서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다가, 고려 말에 지방관과 유생들의 노력으로 점점 그 기능을 회복하고 숫자도 증가하였다. 그 뒤 조선이 건국되면서 향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즉, 국가의 지도 이념으로 채택된 성리학을 모든 백성에게 보급하기 위한 ‘1읍1교(一邑一敎)’의 원칙에 따라 전국의 모든 군현에 향교를 건립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는 당시 전국 329개 고을에 향교가 건립되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향교는 그 군현과 운명을 같이하였다. 즉, 군현이 없어지면 향교도 폐교되었고, 새로운 군현이 생기면 더불어 향교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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