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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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亭洞遺蹟一 |
영어공식명칭 | Sanjeong-dong Sit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 전481 |
시대 | 선사/청동기,선사/철기,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정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1년 4월 27일~10월 24일 - 산정동 유적 1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지표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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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11월 22일~2005년 1월 20일 - 산정동 유적 1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3월 28일~2006년 7월 20일 - 산정동 유적 1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현 소재지 | 산정동 유적 1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 전481 일대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산83-3] |
성격 | 터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위치]
광주광역시 산정동 유적 1은 영산강[115.5㎞]의 지류인 풍영정천의 지류에 해당하는 장수천 수계에 있는데, 지형은 어등산[232.7m]의 동쪽 끝자락의 나지막한 구릉이 잘 발달된 곳이며 하남동 유적 북쪽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광주광역시 산정동 유적 1은 광주광역시 하남2지구 택지개발사업 구간에 속해 2001년 4월 27일부터 10월 24일까지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진행하였으며,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4년 11월 22일부터 2005년 1월 20일까지 시굴 조사와 2005년 3월 28일부터 2006년 7월 20일까지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의 분구묘, 집터, 지상 건물지, 방형 건물지, 구덩이[수혈(竪穴)], 구와 청동기시대의 집터 1기, 삼국시대의 집터 65기, 지상 건물지 35기, 방형 건물지 28기, 구덩이 29기, 구 50기, 요지 3기, 분구묘 3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발형토기, 아궁이틀, 주구토기, 호형토기, 뚜껑접시, 유공 광구소호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광주광역시 산정동 유적 1에서는 독립된 구릉의 사면 끝자락에서 청동기시대의 집터 1기가 확인되었는데,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 겹아가리토기 등이 출토된 전기 장방형 집터이다. 삼국시대 집터는 대부분 노지, 벽구, 배수구 등을 갖춘 형태이며, 중심 기둥구멍 유무에 따라 중심 기둥구멍 없는 집터와 4개의 기둥구멍이 있는 집터로 구분된다. 또한, 삼국시대의 분구묘는 원형분 3기가 조사되었는데 1호 분구묘는 움무덤으로 확인되었으며, 지상 건물지가 폐기된 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상 건물지는 다른 유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지형에 있는데 이러한 양상은 광주광역시 동림동 유적에서 조사된 지상 건물지의 분포 양상과 비슷한 점을 보이고 있다. 이 외에도 생산과 관련된 시설로 반지하식 가마터, 제의와 배수 관련 구 등이 조사되었으며, 일부 구는 열을 이룬 기둥구멍과 연계하여 공간이 분할된 것이 확인되었다. 산정동 유적은 광주 하남2지구 택지개발 이후 유구는 남아 있지 않으며, 출토된 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소장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광주광역시 산정동 유적 1은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걸쳐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된 대형 복합 유적이다. 유구들이 서로 군집을 이루면서 분포하고 있으며, 집터, 지상 건물지, 구, 분구묘 간, 집터 간의 관계가 여러 양상으로 확인된다. 산정동 유적의 중심 시대는 삼국시대로, 유적 내 넓은 범위에 자리한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분구묘와 집터는 당시 광주 지역에 자리한 정치체(政治體)의 규모와 세력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매우 의미 있는 자료로서 산정동 일대의 고대문화사를 체계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또한, 산정동 유적은 인접해 있는 하남동 유적과도 매우 비슷한 문화적 양상이 확인되고 있어 상호 비교·검토를 통해 산정동 일대의 고대문화를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