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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내산동에 있었던 쌍내마을에 있는 3기의 선돌. 내산동 쌍내마을 선돌은 원래 4기가 있었다. 그러나 1기의 선돌이 유실되어 3기가 남아 있다. 쌍내마을 사람들은 선돌이 마을에 들어오는 질병과 액을 방비해 준다고 믿어 선돌을 수호신으로 여겼다. 하지만 선돌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제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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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던 대야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이었던 선돌. 대야마을은 마을이 크다고 하여 '대몰', '댓말'이라고도 불렀다. 마을은 대(大) 자 모양을 띠고 있어 대야(大也)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대야마을은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일대의 도야마을에 살던 상산김씨(商山金氏) 김연선이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아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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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었던 세동마을에 있는 선돌. 송산동 세동마을 선돌은 원래 4기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마을 제각 옆에 1기만 남아 있다. 송산동 세동마을 선돌은 원래 전라도 나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이정표 구실을 하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세동마을에 높은 벼슬을 한 금향군이 살아서 말을 타고 마을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선돌 앞에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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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옛 죽산마을에 있는 2기의 선돌. 송산동 죽산마을 선돌은 마을회관 양쪽에 2기가 서 있다. 왼쪽 선돌은 암돌 또는 여자 선돌, 오른쪽 선돌은 숫돌 또는 남자 선돌이라고 불렀다. 원래 선돌은 기단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남자 선돌은 도로 포장을 하면서 기단이 아스팔트에 묻혀 버렸다. 여자 선돌은 본래 주차장 쪽에 있었는데, 마을회관을 지으면서 회관 왼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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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치동 금치마을에 있는 3기의 선돌. 선돌은 비보신앙(补救信仰)[사람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연환경을 인위적으로 보완하여 실한 곳으로 바꾸려고 하는 방법]에 따라 세워진 돌을 말한다. 송치동 금치마을 선돌은 총 3기가 있다. 2기의 선돌은 마을 입구 맞은편 길가에 있으며, 나머지 1기는 마을 안쪽에 있다. 과거에 경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선돌을 눕혀 놓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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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송학동의 옛 봉학마을에 있는 선돌. 봉학마을에는 3기의 선돌이 있었으나 마을 경지 정리를 하면서 2기는 매몰되어 사라지고 오늘날에는 1기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이 선돌을 '선독'이라 부르며, 농사의 풍요와 마을의 액막이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봉학마을에는 옛날에 바닷물이 들어와 '해등[바다등]', '황개들'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마을에는 지역 전승 민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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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에 있는 선돌. 1840년경 전라도 나주에 살던 선령남씨(宣寧南氏)가 서복마을로 이주해 평산신씨(平山申氏)와 혼인하고 정착하였다. 선령남씨가 들어오면서 마을 지형이 호랑이가 포효하는 형국이라 하여 '태굴'이라고 부르다가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서복으로 개칭되었다. 서복마을 입구에는 선돌 1기가 서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선돌에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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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용곡동에 있었던 기곡마을에서 마을 제사를 지내던 선돌. 기곡마을 우산각 옆에 1기의 선돌이 있는데, 예로부터 전해지는 특별한 명칭은 없다. 기곡마을은 마을 형국이 키[箕]와 비슷하다고 하여 '치실'이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기곡(己谷), 이후에는 기곡(箕谷)으로 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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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월전동에 있었던 원두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이었던 선돌. 원두마을[탑머리 또는 탑등]은 송정교에서 임곡동 간 철로변에 있었던 마을이다. 원두마을에는 여러 개의 돌을 쌓아올린 조탑(造塔) 형태의 선돌이 있었는데, 마을 경지 정리 때문에 선돌을 이전하면서 선돌의 모양이 바뀌었다고 한다. 원두마을에서는 선돌을 '처녀바우'라고 하여 마을 신앙의 대상물로 여겼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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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에 있었던 입석마을에 있는 1기의 선돌. 입석마을은 황룡강(黃龍江) 가장자리에 있었던 마을이다. 입석마을입석은 마을 주민의 주택 마당에 있다. 입석마을이라는 이름도 선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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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었던 능동마을의 판석 모양 선돌. 능동마을은 원래 '밖능동'과 '안능동'의 두 뜸[한동네 안에서 몇 집씩 따로 모여 있는 구역]이었는데 이를 합쳐 능동마을로 불렀다. 조선 중기에 상산김씨(商山金氏)가 남쪽으로 이주하여 정착, 개촌(開村)하였다고 전해진다. 지산동 능동마을 선돌은 농로에 세워져 있는 판석 모양의 선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