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완동 수문마을 기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428
한자 水莞洞水門-祈雨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혜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
의례 시기/일시 음력 5월 그믐에서 6월 초 사이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동 수문마을에서 가물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연원 및 변천]

수완동 수문마을 기우제는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해져 모내기를 하지 못하게 되면 마을 회의를 열어 기우제를 결의하게 된다. 늦어도 하지에서 소서까지는 모를 내야만 그 해 쌀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음력 5월 중순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마을 동편에 있는 무제등 혹은 시루봉이라 부르는 산 정상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된다. 일제강점기 말엽 이후 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낸 적은 없다고 한다. 1967년과 1968년에 심한 가뭄이 들었지만 시대의 변화와 인식의 변화로 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내지는 않았다. 다만 부인들이 연장을 들고 명산의 묘를 파는 일은 있었다고 한다.

[절차]

기우제를 하자는 의견이 나오면 이장과 반장을 중심으로 마을 총회를 소집하고, 집집마다 한 사람씩 참석한다. 대개 여름철에 회의가 열리기 때문에 마을의 시정(詩亭)에서 한다. 제일(祭日)을 정하고, 제비(祭費)를 책정하고, 제관(祭官)을 선정한다. 제관은 산고나 상고가 없어야 하며 심지어는 짐승의 산고도 없어야 한다. 제비는 한 집에 얼마씩 정해 이장과 반장들이 걷는다. 제관으로 삼헌관과 축관을 뽑고, 또 제물을 장만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집사 다섯 명을 따로 선정한다. 헌관과 축관은 마을의 노인 중 한학에 조예가 있는 유지로 선정한다. 집사들은 젊은 사람 위주로 뽑으며 특히 총각을 주로 뽑는다. 그 이유는 제사를 모시기 전까지 부부 동침을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기우제는 대개 음력 5월 그믐에서 6월 초 사이에 날을 잡는다. 그러나 육갑(六甲)으로 날을 가리며, 대개 비가 흔한 날로 나와 있는 진사(辰巳)나 술해일(戌亥日)로 날을 받는다. 기우제는 준비를 해야 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회의날로부터 10여 일 후로 잡는다. 제일을 일 주일 앞두고 마을에서는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간다. 이장과 반장은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10등급으로 나누어 제비를 걷고, 뒷일을 맡은 5명의 집사들은 제단을 만들고 샘을 청소한다. 시루봉 아래쪽에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샘인 '절골샘'을 집사들은 깨끗하게 청소하고, 새 물이 솟으면 그 물을 길어다가 제관이나 축관 중 한 집에서 제주(祭酒)를 담근다. 이날 집사들은 시루봉 정상에 제단을 만든다. 그것을 일러 '칠성단을 만든다.'고 하였다. 칠성단은 북쪽을 향해 삼단으로 만들었다. 맨 윗단에는 제상을 차리고, 둘째 단은 향을 피우고 여러 가지 필요한 물건이나 헌주(獻酒)에 필요한 모사(茅沙) 등을 놓게 되며, 아랫단은 제관들이 서서 절을 하였다. 당시는 나무가 거의 없는 벌거숭이 산이었기 때문에 계단을 만들 듯 세 개의 단을 넓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제단 주위에 왼새끼를 꼬고 백지를 끼워 금줄을 쳤다. 제단이 만들어지면 누구라도 그 근처에 가면 안 된다.

집사들은 목욕을 해야 한다. 목욕은 일 주일 전, 삼 일 전, 제사 모시는 날 모두 세 번을 한다. 헌관과 축관은 제사 당일만 목욕을 해도 된다. 샘 청소도 일 주일 전, 삼 일 전, 제삿날 이렇게 세 번을 한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들은 일 주일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여러 가지 금기 사항을 지켜야 한다. 부부관계 금지, 궂은 곳인 상가집, 산고 든 집, 제사집, 잔치집 등을 가서는 안 된다. 또한 추한 음식으로 간주된 개고기도 먹어서는 안 된다.

제물은 기우제 당일 오전에 집사 세 명이 비아장에서 구입한다. 물건 값은 깎지 않고 구입한다. 돼지 한 마리, 대추, 밤, 곶감, 건태 한 마리, 포, 시루, 솥, 접시, 밥그릇 등 제기, 향, 백지, 양초, 초석 등도 샀다. 돼지를 고를 때는 특히 흰 털이 섞이지 않은 수퇘지로 고른다. 단, 쌀은 마을에서 사거나 부잣집에서 희사한 것으로 제주, 떡, 멧밥 등을 장만하였다. 제물을 사 오는대로 곧 칠성단 옆에 가져다 두고, 돼지도 잡아서 보관한다. 저녁밥을 일찍 먹은 후 집사들은 시루봉에 올라가 그날 밤 산에서 불을 피울 수 있는 만큼 많은 나무를 해 쌓아 둔 후 목욕을 한다. 제단 옆에 솥을 걸고 날이 어두워지면 제수를 장만한다. 돼지를 잡아 피는 제단 주변에 뿌리고, 고기는 삶고, 떡을 찌고, 밥을 한다. 물은 시루봉 밑 절골샘에서 길어 와 금줄 친 밖에서 터를 잡아 제물을 장만한다. 이때 맛을 보면 안 된다. 또 제물을 만들 때 소변을 보면 손을 씻고, 대변을 보면 목욕을 다시 해야 한다. 제물이 거의 준비될 무렵에 제관과 축관이 마을에서 올라온다.

기우제는 제관들만 참석해 지낸다. 제물이 다 준비되면 모두 힘을 모아 진설을 한다. 삼단의 제단 중 상단에 초석을 깔고 그 위에 진설한다. 제물은 정결해야 하며, 거기에 쓰이는 제기는 새로 장만한 것으로 해야 한다. 북향의 제상은 초석을 깔고 그 앞에 향대와 모사 그릇을 놓고 그 옆에 제주로 쓸 술병을 둔다. 제상에는 멥밥 한 그릇과 돼지머리, 떡시루를 올리고 그 앞에는 술잔과 정화수를 놓는다. 그 앞 네 군데로 나누어 돼지다리를 올리고 맨 앞쪽과 양쪽 끝에 양초를 두고 포, 초, 율, 시의 차례로 진설한다. 그리고 초석 뒤쪽에 다섯 자 높이의 대나무를 세우고 건태 한 마리를 매달아 둔다. 이렇게 진설이 모두 끝나면 11시경에 제사를 모신다.

제의 순서는 '분향 → 강신 →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소지 → 사신 → 헌식 → 음복'의 순이다. 소지를 할 때는 삼헌관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빈다. "해동조선 전라남도 광산군 비아면 수문리 시루봉에서 하느님에게 축사를 올리니 비를 어서 빨리 내려 줍소사. 많은 비를 내려 주십소사." 하면서 빈다. 소지가 끝나면 헌식을 한다. 제상에서 제물을 조금씩 떼어 금줄 밖에 뿌리고 또 제석을 깔았던 상단에서 초석을 걷어 낸 다음 건태, 돼지머리, 포를 각기 땅에 묻는다. 이들은 묻기 전에 깨끗한 백지에 싸며 그것들을 제상에 놓았던 바로 밑자리에 땅을 파고 묻는다. 이렇게 제사가 모두 끝나면 멧밥을 짓기 위해 걸어 두었던 솥에 다시 밥을 하고 돼지고기 등을 반찬으로 음복을 하면 끝이 나는데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이다. 음복 후 산을 내려오기 전 불을 끈다. 이 불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피운다고 하며, 산에서 불 피우는 걸 보고 인근에 기우제를 모시는 것을 안다고 한다.

[현황]

수완동 수문마을 기우제는 널리 알려져 있어 가뭄이 들면 다른 마을에서 제비를 준비해 기우제를 지내고자 이 마을을 찾아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담양댐이 생기면서 시루봉에서 기우제를 모시는 일은 없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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