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46
한자 玉洞玉洞-堂山祭
이칭/별칭 옥동 옥동마을 동제,옥동 옥동마을 탑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옥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부유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옥동 옥동마을 마을회관 앞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할머니당산[석탑]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옥동 옥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옥동 옥동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옥동마을의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옥동마을은 나주 함평 방면으로 가는 갈림길에 있으며, 평동평야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원래 마을 이름은 '탑동(塔洞)' 또는 '옥밭거리'라 불렸다. 탑동은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 있어 불렸던 이름이고, 옥밭거리는 복룡현의 옥터밭이 있던 곳이라 하여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옥동 옥동마을 당산제는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지낸 것으로 보인다. 매년 정월 열나흗날이 되면 마을에 있는 석탑을 할머니당산으로 여기고 당산제를 지내고 있는데, 1990년대 이후 평동산업단지 개발로 인해 많이 축소되었다. 과거에는 할아버지당산으로 여기던 느티나무가 마을 앞에 있었으나, 1969년 농지정리 무렵 훼손되어 없어졌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옥동 마을회관 왼쪽에 있는 석탑을 할머니당산, 또는 탑할머니라 부르고 당산제를 모신다. 마을이 조성된 시기부터 이미 있었던 것으로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5층 석탑 중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1982년에 탑의 상층부를 만들어 얹어놓았다. 탑이 있는 마을회관 자리는 본래 절터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절차]

옥동 옥동마을 당산제는 정월 초이레가 되면 마을회의를 하여 축관 1명, 제관 3명, 집사 1명, 화주 1명을 뽑는다. 화주를 선정할 때는 그해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을 맞춰 깨끗한 사람으로 뽑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화주가 그해 부정이 없어야 하는데, 보통 상복을 입고 있거나, 가정에 산고가 있거나, 어린이가 있는 사람, 정월에 궂은 곳에 다녀온 사람, 개고기를 먹은 사람 등을 제외한다. 화주는 선정된 날부터 마을 앞 개울에서 물을 떠다 매일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는다. 대변을 봐도 다시 목욕을 해야 해서, 화주는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1984년부터 이러한 금기가 간소화되어 금기사항은 형식적으로 하고, 목욕도 시내 목욕탕을 이용하였다. 제비(祭費)는 남자를 중심으로 하는 인구전(人口錢)인데, 주로 쌀로 걷었는데 이를 공양미라고 불렀다. 자발적으로 냈기 때문에 제비를 마련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내서 복을 받으려 하였고, 특별히 공을 더 드리고 싶은 사람은 쌀을 더 내기도 하였다. 현재는 마을자금으로 그 비용을 충당하는데, 마을자금은 보통 마을회관 임대료, 마당밟이, 개인의 찬조금으로 마련된다. 제물(祭物)은 걷어진 쌀을 팔아 그 돈으로 장에 가서 준비하고, 제기(祭器)는 매년 구입하여 사용한 뒤 화주가 소유한다. 이때 제석(祭席)으로 돗자리와 당산제에 사용할 나무를 같이 구입한다. 제물을 구입할 때는 물건 값을 깎지 않으며, 깨끗한 것으로 골라 사용하는데, 제수(祭需)는 밤, 대추, 곶감, 배, 사과 등 삼실과, 마른 명태, 미역, 나물류, 돼지머리 등이다. 제물은 화주집에서 장만하고 장만을 따로 안 해도 되는 제물은 집에 가져가지 않고, 당산 앞에 놓아두고 그 자리에서 진설하였다고 한다. 금줄은 부정의 출입을 막기 위해 화주집 앞과 당산으로 통하는 모든 골목에 쳤으며, 금토는 골목 입구에서 당산까지 길 양쪽에 황토를 한 줌씩 놓아 두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탑 주변에만 금줄을 2줄 정도 감아 놓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또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기(農旗)와 청홍색의 영기(令旗)를 각각 당산 옆에 세워 두었다.

제일(祭日)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굿물을 손질하고, 화주집에서는 제물을 장만한다. 당산할머니가 생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떡이나 탕 등은 하지 않고, 심지어 진설하는 메도 생쌀을 그릇에 담아 놓는다. 초저녁이 되면 굿을 치며 당산제의 시작을 알리고, 동네의 골목마다 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당산으로 이동하는데, 당산할머니가 굿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사 당일 굿은 보통 초저녁, 제사 직전, 새벽으로 마을을 세 번 돈다. 제사는 집안 제사와 유사하게 지내는데, 보통 '분향→강신→초헌→독축→아헌→종헌→사신→소지→헌식'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축문이 끝난 뒤 화주, 축관의 순서로 소지를 올리고, 이후에 마을 사람들이 각자 소원을 빌며 소지를 올린다. 소지가 끝나면 진설한 제물을 조금씩 덜어내 각각 한지에 싸서 당산 옆에 파 놓은 헌식터에 묻고, 당산 앞에서 간단한 음복을 한 후 제사를 끝내고 마당밟이를 한다.

[축문]

維 / 歲次癸酉正月甲辰朔十四日丁巳 幼學姓名 敢昭告于 / 堂山尊靈恭修歲事于鄕里衆民維時保 / 佑實賴靈休謹以酒果敬伸尊獻 尙 / 響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면 화주집에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고 헤어지며, 그 다음날 마을회의를 열어 지난해에 대한 결산과 마을 일 전반을 논의한다. 예전에는 샘굿을 치고 화주집과 그밖의 제관집에서 마당밟이를 진행한 후,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당밟이를 하였다. 보통 20일까지 5일 정도 걸궁(乞窮)[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축원의 노래를 불러주는 일]을 쳤으나, 지금은 그런 풍속이 전부 사라지고 없다.

[현황]

옥동 옥동마을 당산제는 1990년대 이후 평동산업단지의 개발로 인해 많이 축소되었으며, 현재는 옥동 대보름축제의 세부 행사로 당산제가 지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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