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청송심씨 재실. 경모재는 김해부사를 지낸 청송심씨 삼암 심광헌(沈光憲)[1541~1592]의 재실이다. 심광헌은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주부를 역임한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막하에 들어가 옥포전에서 적선 30척을 격파한 후 다월포로 가서 전라도사 최철견과 힘을 합쳐 방어진을 구축하였으며, 노량전에 참전하여 사천까지 왜적을 추격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고려 말기 정지장군 사당. 경열사는 고려 말 무신 정지(鄭地)[1347~1391]를 비롯하여 정충신, 유사, 고중영 등 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사당 뒤쪽 언덕 위에는 정지의 묘가 있는데, 전형적인 고려시대 방식의 예장석묘(禮葬石墓)로서 '정지장군예장석묘'라는 명칭으로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정지는 본관 하동(河東), 시호는 경렬(景...
-
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의이씨 재각. 경장각은 조선 인조 대 문신인 이신의(李愼儀)[1551~1627]를 배양하는 곳이다. 이신의의 본관은 전의이며 자는 경칙이고 호는 석탄(石灘)이다. 1566년(명종 21)부터 민순의 문하에서 학업을 받아 문장을 배웠으며, 도학과 절의 문장을 모두 갖춘 학자로 『석탄집』을 남겼다. 정묘호란 때 왕을 대동하여 강화도로 가던 중...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오씨 사우. 광산사는 조선 중기 홍문관 우의정을 지낸 지족암 오겸(吳謙)[1496~1582]을 제향하기 위한 사우이다. 송산동 세동마을 뒤편 언덕에 자리하며 장방형의 대지에 전통기와 담장이고, 문간채와 사당 본채가 있다. 부지 인근에는 강당격인 금하재(錦霞齊)가 자리한다. 오겸은 오신중의 증손이며 조부는 오자치이고 오세훈이 부친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있는 일제강점기 광주노씨 재각. 구원재(九源齋)는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의 광주노씨(光州盧氏) 삼능단에 있는 재각이다. 광주노씨는 중국 제나라 강태공의 후손 노수(盧穗)가 755년에 안록산의 난을 피해 한반도에 건너와 정착하며 시작되었다. 노수의 큰아들인 노해(盧垓)는 광산을 봉작받아 광주에서 노수를 봉양하였으며, 이후 노해를 시조로 하여 광산을 본관으로 삼...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행주기씨 재실 겸 서당. 귀후재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행주기씨의 재실이자 서당이다. 행주기씨는 조선 중기까지 경기도에 거주하였으나 기묘사화 때 광주 지역으로 낙향하면서 현재의 광산구에 정착하였다. 귀후재는 고봉 기대승의 6대손인 기언복(奇彦復)[1713~1772]을 제향하는 재실이다. 정내의 현판 글씨를 구한말의 문신이자 명필인 석촌(石村...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문화류씨 사우. 대동사는 아사(鵝沙) 류차달(柳車達)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류차달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태조 때 군량수송에 공을 세워 대승(大丞)에 제수되고 삼한공신(三韓功臣)의 호를 받았다고 한다. 한편, 『파평윤씨족보(坡平尹氏族譜)』와 『문화류씨족보(文化柳氏族譜)』에 의하면 고려 태조 때의 개국2등...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화류씨 사우. 덕림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송산마을에 있는 문화류씨 문중 사우이다. 향사 인물은 류절(柳節)[1517~1580], 류희달(柳希達), 류시필(柳時必), 류인옥(柳寅玉) 등이 있다. 조선 중종 때 문신인 류절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호는 일당(逸堂)이다. 류희달은 호가 농포(農圃)이며 류절의 아들이고, 류시필은 호는...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행주기씨 재실. 두남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종산부락에 있는 행주기씨 문중 재실이다. 『행주기씨보(幸州奇氏譜)』에 따르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準王)[40대손]의 후손 우성(友誠), 우평(友平), 우량(友諒)의 3형제가 각각 기씨(奇氏), 선우씨(鮮于氏), 한씨(韓氏)가 되었다고 한다. 기대승의 아버지인 기진(奇進)[1487~...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평택임씨 사우. 등림사는 조선 명종대 문신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1514~1547]를 주벽으로 송파(松坡) 임식(林植)[1539~1589], 관해(觀海) 임회(林檜)[?~1624]를 제향하고 있는 평택임씨의 사우이다. 임형수는 나주 송월동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북병사를 지낸 임준(林畯)이다. 1531년 사마시에 입격하고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
고려 전기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자리한 탐진최씨 문중이 세운 서원. 무양서원은 1927년 탐진최씨 문중이 전국 유림들의 호응을 얻어 고려 인종대 인물인 최사전(崔思全)[1067~1139]을 주벽으로 최사전의 후손인 금남(錦南) 최부(崔溥)[1454~1504]와 손암(孫菴) 최윤덕(崔允德), 문절공 유희춘(柳希春)[1513~1577], 충렬공 나덕현(羅德憲)[1573~1640]을 배향...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어등산에 있는 조선 후기 청주한씨 재실. 봉강재는 한사기(韓謝奇)[1257~1314]를 주벽으로 제향하는 청주한씨의 재실로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 한사기는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간의대부(諫議大夫),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냈다. 충렬왕 때 뚤루게[禿魯花]로 가족과 함께 원나라로 갔는데, 아들이 하남부총관(河南府摠官)에 오르자 한림직학사 고양현후(高陽縣侯)...
-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박씨 재실. 봉산재는 눌재(訥齋) 박상(朴祥)[1473-1530]의 재실이다. 박상은 1473년 현재의 광주광역시 서구 방하동에서 태어나 1501년부터 1529년까지 관직에 재직하였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시비복위상소를 올린 일로 남평에 유배되었으며, 『눌재집(訥齋集)』과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을 남겼다. 봉...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평택임씨 재실. 봉산재는 평택임씨 재실로 과거 탑동부락이라 불리운 광산구에 자리하고 있다. 평택임씨는 경기도 평택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임팔급(林八及)이다. 봉산재에는 누가 배향되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해김씨 재각. 사경재는 김해김씨 문중 재각으로 광복 이후 재건되었으나 제향 인물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평택임씨 재실. 사경재는 평택임씨 사경재 종중의 재실로서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에 있다. 사경재 종중은 만죽 임득지를 중시조로 하며, 임득지가 사화와 난을 피하여 광주광역시 광산구 외등마을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사경재가 있는 산이 평택임씨 세장산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조선 전기 파평윤씨 사우. 서강사는 고려 태사공 윤신달(尹莘達)을 주벽으로 하고 윤관(尹瓘), 윤언이(尹彦頤), 윤위(尹威), 윤돈(尹暾), 윤보(尹珤) 등 6위를 배향한 사우이다. 윤신달은 고려 초의 공신으로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공신이 되었으며, 파평윤씨의 세계에는 시조로 되어 있다. 윤관은 고려시대 명장으로 여진을 정벌하는 전쟁에서 동북에 9성을...
-
조선시대 광주 지역에서 명현을 제사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세운 사설 기관. 서원(書院)은 조선시대에 향교와 더불어 지방에 있는 양대 교육기관의 하나였다. 관학(官學)인 향교에 비해 서원은 16세기 중반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先賢) 제사를 위하여 사림(士林)이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 기구였다. 서원은 사우(祠宇)와 거의 비슷한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엄밀한 의...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박씨 사우. 송호영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눌재(訥齊) 박상(朴祥)[1474~1530]과 사암(思庵) 박순(朴淳)[1523~1589]의 영정을 모신 사우로 영조 4년(1728)에 충주박씨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박상은 1501년(연산군 7)에 정시을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를 시작으로 1529년(중종 24) 나주목사를 마치기까지 약 29...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나주오씨 재실. 시기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 원당부락에 있는 상평공(喪平公) 오자치(吳自治)[1426~?]를 배향한 재실이다. 나주오씨 중시조라 할 오자치는 1467년[세조13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 2등에 책록된 인물이다. 오자치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기록은 『세종실록』과 『성종실록』에 약간의 내용이 있을 뿐 그 외...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내산동에 있는 광산김씨 재실. 영사재[내산동]는 광산구 내산동 망월마을에 자리한 광산김씨 문중 재실이다. 광산김씨 통정공 김성백(金成伯), 통훈 김장(金璋), 통훈 김수정(金守貞)을 봉향하고 있다. 김성백은 진사공 김사안(金師顔)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충장공 김덕령이 억울한 옥사를 당하자 가솔들을 이끌고 나주(羅州) 도림면에 시거(始居)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오씨 재실. 영사재(永思齋)[명도동]는 조선 중기 학자이자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에 참여한 생노당(生老堂) 오효석(吳孝錫)[1620~1697]이 은거하며 후진을 길렀던 곳으로, 사후에 오효석의 재실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오효석은 광해군 때 본량에서 출생하여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양란에 참여하였으며, 효종의 사망으로 북벌 계획이 좌절되자 고향으...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흥성장씨 재각. 영식재는 흥성장씨 향제소이며 효우공(孝友公) 장창우(張昌友)[1704~1774]의 제향을 위하여 흥성장씨 문중에서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 개산마을에 세운 재각이다. 장창우는 1750년경 남원에서 세하동 동하마을로 와서 만귀정이라는 초가 정자를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아버지상을 당하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효성에 감...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조선 전기 행주기씨 재실. 오남재는 고봉 기대승의 부친이며, 덕성군 물재(物齊) 기진(奇進)[1487~1555]을 제향하는 재실이다. 기진은 행주 사람으로 자는 자순(子順), 호는 물재이다. 동생 기준과 함께 성리학을 연구하다 1519년 기준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1521년에 사약을 받고 죽자 형 기원과 함께 광주로 낙향하여 여생을 보냈다. 기준의...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순천박씨 재각. 오성재(五星齋)는 박언성, 박충정, 박중항, 박성록(朴聖祿), 박성수(朴聖壽) 등이 제향된 재각이다. 재각 입구에는 성균진사 석촌박선생기적비가 있고, 좌측에는 후암정이 있다. 후암정은 후암 박섬동의 아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진곡동 일대는 진천사, 청원재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에 있는 개항기 은진송씨 재각. 오헌당은 일제강점기 초기 학구당을 지어 후학을 가르치던 은진송씨의 인물이 별세하자 그 건물이 재각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진송씨는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에 있는 조선 후기 금성범씨 재실. 용호재는 생용동에 있는 복애(伏厓) 범세동(范世東)을 주벽으로 하는 금성범씨 재실이다. 범세동은 고려 말엽 정충탁절(貞忠卓節)[충성심이 깊고 절조가 굳음]로 이름이 높은 인물이다. 조선 순조 때 범세동 및 범세동의 6세손 범가용(范可容), 학행이 높은 범천배(范天培)와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서 순국한 범기생(范起生), 범기봉...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송제민 등을 배향한 서원. 운암사(雲巖祠)는 운암서원이라고도 하며 1708년 지역 유림들의 청원으로 광주광역시 북구에 건립된 서원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이 배향되어 있다. 그 후 1709년(숙종 35)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제봉(霽峯) 고경명의 사촌동생이자 조선 선조 때의 유생인 창랑(滄浪) 고경리(高敬履)를...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광산김씨 재실. 원산재는 광산김씨의 재실로 배향 인물은 알려지지 않았다. 광산김씨는 신라 신무왕의 삼남인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한국의 대표 가문 중 하나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서원. 월봉서원은 고봉 기대승(奇大升)[1527~1572]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으로 한 지방 유림의 공의로 기대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광산군 비아면 산월리에 망천사(望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98년 임진왜란의 피해로 망월봉(望月峰) 밑 동천(桐川)으로 이건하였다가 1646년(인...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광산김씨 사우. 의열사는 광산김씨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을 주벽으로 지평공 김덕홍(金德弘), 풍암공 김덕보(金德普) 3형제 등을 배향한 사우이다. 『광주읍지』에 따르면 주(州)의 서쪽 25리[10㎞] 에 있다. 처음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을 향사(享祀)하다가 1678년(숙종 4)에 김덕령을 합사(合祀)하여 의열(義烈)이라 사액...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김해김씨의 재실. 이상재는 김해김씨 문중의 재실로 첨지(僉知) 취헌(翠軒) 김명택(金鳴澤)을 기렸으며, 구한말의 의병장 김원국(金元國)도 함께 배향되었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개항기 나주오씨 재실. 장사재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나주오씨의 재실이다. 나주오씨는 일설에 의하면 오숙규(吳淑珪)가 분적하여 나주오씨를 이루었다고 하나, 오숙규 이후 4대의 세계가 분명치 않아 오언을 기세조로 하고 있다. 나주오씨는 나주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이후 오언 묘역이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본량동, 평동 지역에 거...
-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해김씨 사당. 장열사는 광주광역시 두암동에 자리한 김해김씨 사당으로 김유신(金庾信)[595~673]을 배향하고 있다. 1850년에 지역 유림들이 우치동 죽방촌에 사우를 건립하여 향사하다가 훼철된 이후 1906년에 복원되었다. 본래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 김일손(金馹孫)[1464~1498]과 인조 때 안주목사와 황주목사를 지낸 망헌(望軒) 김...
-
광주광역시 관내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시조나 중시조, 직계 조상의 묘소 또는 사당 근처에 세운 건물. 재실(齋室)은 제사 지내기에 앞서 목욕재계하는 집으로, 보통 묘소 아래에 지어 놓는다. 이곳에서는 제사 전에 족속이 모여 재계하면서 제사를 준비하고, 때에 따라서는 제사를 지내기도 하며 살림집을 부설하여 묘소를 수호·관리하기도 한다. 재실의 본래 기능은 묘제를 지내는 것이었는데...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567번지에 있는 광주노씨 사우. 절효사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사우로 노준공(盧俊恭)[1340-1397], 노희서(盧希瑞)[1558-1592]가 배향되어 있다. 노준공은 고려 말 인물로 장례예법이 흔들렸던 시기에 3년간 여묘살이를 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에 나라에서 마을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 열전 효행편에 남아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천서씨 재실. 존숙재는 이천서씨 문중의 재실로 1940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존숙재는 연동마을의 재각집으로 불리는 곳으로 가정집을 겸하고 있는 재실이다. 어떤 인물이 배향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림동에 있는 광산김씨 재실. 종산재는 광산김씨 재실이다. 광산김씨는 광주광역시 광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인 신라 신무왕의 아들 흥광공이다. 광산김씨는 고려 초기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른 3세손 김길(金佶)로부터 8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를 배출하여 명문 가문의 기반을 이루었으며, 15세손으로 대광(大匡)에 오른 김정(金鼎)의...
-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에 있는 순천박씨 재실. 진양재는 광산구에 자리한 순천박씨의 재실이다. 1949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건립 연유는 알 수 없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진천마을에 있던 조선 후기의 사우. 진천사(眞泉祠)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진천마을에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1655~1723]을 배향하여 세워졌던 사우이다. 박광일은 본관 순천(順天), 자 사원(士元), 호 손재(遜齋), 시호 문숙(文肅). 송시열(宋時烈)에게 사사하였다. 숙종 때 천거되어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익위(翊衛)·왕자사부(王子師傳)...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동에 있는 광산김씨 비각. 창효각(彰孝閣)은 난계(蘭溪) 김태석(金泰錫)[1872~1933]의 행적을 기록하기 위하여 세워진 '중추원의관난계김공이상비(中樞院議官蘭溪金公彛常碑)'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이다. 창효각 내부에 있는 이 비문에 의하면 김태석의 자는 성언, 호는 난계이며 본관은 광산으로 1872년에 태어나 1933년에 죽었다. 김태석은 효행이 뛰어나 각향각...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 있는 충주박씨 재실. 추모재는 하촌(荷村) 박정(朴禎)[1467~1498]의 재실이다. 절골마을에는 눌재(訥齋) 박상(朴祥)의 봉산재가 있고, 박지흥(朴智興)의 추원재와 박정의 추모재가 나란히 있다. 박정은 중국 송나라 삼소[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삼부자를 이르는 말]에 견주어 동국(東國)에 형제 삼박(三朴)이 있다고 할 때 중심이 된 인...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장흥고씨 재각. 추원각(追遠閣)은 장흥고씨 재각으로 고경명(高敬命)[1533~1592]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장흥고씨는 전라남도 장흥을 본관으로 하는데 전라남도 담양 일대 제봉 고경명 후손이 유명하여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이 일문을 창평고씨라 하며 호남 사족의 하나로 꼽고 있다. 고경명은 광주 압보촌(鴨保村) 출생으로 1558년 식년문과에 장원...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오선동에 있던 개항기 순천박씨 문중 재각. 태산재는 순천박씨 문중 재각으로 조선 후기에 세워진 후 순천박씨의 제향 공간이자 문중 집회의 중심적 장소로 이어져왔으나 현재는 철거되었다. 순천박씨는 신라말기와 고려 초에 순천 지역의 호족이었던 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한다. 순천박씨는 15세기 중엽부터 순천 지역이 아닌 전국 각지로 분파되었다. 한편 순천 지역에 잔류한...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재실. 학림정사는 한말 때의 유학자 임상희(林相熙)[1858~1931]를 배향한 재실이다. 임상희의 본관은 평택이며, 호는 금우(錦愚)이다. 1858년 3월 16일에 임곡 등임부락에서 출생하였다. 학행이 빼어났으나 나라를 잃자 후학 양성에 전력하였다. 문인록에 의하면 양성된 후학이 300여 명이며, 『금우유고집』 상하권이 있다. 임상희가...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능성구씨 재실. 학송재는 능성구씨 문중의 재실로 어떤 인물이 배향되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능성구씨는 화순 능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고려 때 '벽상삼한삼중대광검교상장군(壁上三韓三重大匡檢校上將軍)'을 지낸 구존유(具存裕)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장흥고씨 재실. 황산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송설정공(松雪亭公) 고중영(高仲英), 고경조(髙敬祖), 고성후(髙成厚) 등을 배향하고 있다. 고중영은 1540년[중종 35년] 사마시에 입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다가 모함으로 진도로 귀향갔으며, 고중영의 아들 고경조는 1552년 진사시에 입격하고 1561년 문과에 급제하여 경주목사에 이르렀다. 고성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