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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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石山記[金鎬永]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07년 - 김호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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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84년 - 김호영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기행문 |
작가 | 김호영 |
[정의]
근대 학자 김호영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글.
[개설]
「서석산기(瑞石山記)」를 지은 김호영(金鎬永)[1907~1984]의 호는 신재(愼齋),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학문에 조예가 깊고 새로운 학문 습득도 빨라서 해박하였다. 문집으로 아들 김성수와 김득수가 간행한 『신재만록(愼齋漫錄)』 2권이 있다. 「서석산기」는 『신재만록』 권2에 실려 있다.
[구성]
「서석산기」는 무등산 설명과 유산 동기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1. 무등산 설명
김호영은 유산기의 첫 부분에서 무등산을 설명한다. 특이한 것은 무등산의 원줄기가 곤륜산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처음 무등산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산맥을 따라 말하고서 높이와 둘레 등을 언급하였다. 또한 무등산에 걸쳐 있는 구역 등을 말하며 그 위치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무등산의 산세를 말하는데, 마치 "바르고 큰 군자가 우뚝 서 있고 엄숙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望之若正大君子特然而立 儼然而坐]"고 언급하면서 명산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를 말한다. 아울러 상봉과 서석대 등을 말하면서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 주고 있다.
2. 유산 동기
김호영은 호남 사람으로서 무등산을 오르지 않는다면, 진정한 호남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유산의 동기를 밝혔다. 「서석산기」를 살펴보면 김호영이 50세 무렵에 무등산에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한 행선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너덜겅, 서석대, 입석대 등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특징]
「서석산기」는 비교적 짧은 길이의 유산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산에 관련한 내용이 그리 구체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글의 첫 부분에서 무등산을 소개하는 내용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글에서 영국, 미국,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를 언급함으로써 글의 개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석산기」의 제목인 '서석산'은 무등산을 이르는 별칭이다. 「서석산기」는 한문으로 제작된 무등산 관련 유산기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