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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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石山立石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성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46년 - 신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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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07년 - 신완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신완 |
[정의]
조선 후기 문신인 신완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개설]
「서석산입석(瑞石山立石)」을 지은 신완(申琓)[1646~1707]의 자는 공헌(公獻), 호는 경암(絅庵), 시호는 문장(文莊),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아버지는 신여식(申汝拭)이며, 어머니는 이기조(李基條)의 딸이다. 후에 삼촌 신여정(申汝挺)에게 입양되었다. 박세채(朴世采)에게 수학하였으며, 영의정을 지냈으나 1706년 세자 모해설에 휘말려 탄핵당하였다. 「서석산입석」에서 '서석산'은 무등산의 이칭(異稱)이며, '입석'은 서석대, 광석대와 함께 무등산의 대표적인 주상절리로 꼽히는 입석대를 말한다. 「서석산입석」은 『경암집(絅庵集)』 제1권에 실려 있다.
[구성]
「서석산입석」은 1구에 7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이다.
[내용]
촉촉정정기세존(矗矗亭亭氣勢尊)[위풍당당 우뚝한 그 기세 높으니]/ 고탱우주압산문(高撑宇宙壓山門)[우주를 떠받치며 암자를 둘러 있구나]/ 학비료곽주공립(鶴飛遼郭柱空立)[학이 떠난 요동 성곽에 기둥 서 있고]/ 양화금화석상존(羊化金華石尙存)[양이 변한 금화산에 아직 남은 돌처럼]/ 와부착성여기편(媧斧斲成餘幾片)[여신의 도끼로 깎다 남은 조각인가]/ 진편구출대유흔(秦鞭驅出帶遺痕)[진나라 채찍으로 몰다 남은 흔적인가]/ 타년정작경천용(他年定作擎天用)[훗날 반드시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쓰여]/ 돌올천추진후곤(突兀千秋鎭厚坤)[천 년 동안 솟구쳐서 대지를 수호할 것이네]
[특징]
「서석산입석」에는 무등산의 형세를 묘사하는 시어가 다수 등장한다. 높이 솟으면서 겹쳐진 모양인 "촉촉(矗矗)", 높이 솟으면서 아득한 모양인 "정정(亭亭)", 그 외에도 금화산의 돌과 여신의 도끼로 깎은 조각, 진나라 채찍으로 몰다 남은 흔적 등이 그것이다. 신완 자신의 정취를 그리는 데 집중한 서정적인 면모보다는, 무등산의 형세를 묘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석산입석」에는 무등산이 가지고 있는 주상절리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묘사하여 그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의 풍광을 묘사하고 자신의 정취로 마무리하는 형식과 달리 무등산 입석대에 관한 서술에 치중한 시이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당시 무등산 풍광의 아름다움과 독특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