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8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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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石山-高傅敏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민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77년 - 고부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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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42년 - 고부민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고부민| |
[정의]
조선시대 의병이자 문인인 고부민이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개설]
「서석산(瑞石山)」을 지은 고부민(高傅敏)[1577~1642]의 자는 무숙(務叔), 호는 탄음(灘陰), 본관은 장흥이다. 고성후(高成厚)의 아들이다. 강항(姜沆)에게 글을 배우고, 김장생(金長生) 밑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고부립(高傅立), 고부필(高傅弼) 등과 함께 의병장 고순후(高循厚)의 막하에 들어가 싸웠다. 병자호란 때도 의병 5,000여 명을 규합하여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청주에 이르러 강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탄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고부민의 시문은 아들 고두경(高斗經)의 시문과 함께 엮어서 『송학세고(松鶴世稿)』로 간행되었다. 『송학세고』 1권은 고부민의 시 97수와 제문 및 부록이 실려 있고, 2권은 고부민의 장남 고두경의 시 134수와 서 3편이 실려있다. 문집 이름을 ‘송학(松鶴)’이라고 한 이유는 고부민의 조상이 전라도 광주로 자리를 옮긴 이후 대대로 송학산 기슭에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구성]
고부민이 지은 「서석산」은 1구에 7자씩 모두 4구로 이루어진 칠언절구로 구성된 시 2수가 전해지고 있다.
[내용]
방박만근백리간(磅礡蹣根百里間)[광대하게 백리간을 뻗어 나가니]/ 궁륭흘립압군산(穹窿屹立壓群山)[우뚝하게 솟아나 뭇 산들 압도하네]/ 헌창조모공회망(軒窓朝暮空回望)[아침저녁으로 창문에서 되돌아보면]/ 소아진애미잠간(笑我塵埃未暫閒)[한순간도 못되는 티끌 같은 나를 비웃고 있구나]
반생귀계부자산(半生歸計負玆山)[반평생 이 산에 의지하려 했더니]/ 기탄운림단왕환(幾歎雲林斷往還)[구름 덮인 숲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얼마나 탄식했던고]/ 선군장대헌창하(羨君長對軒窓下)[그대를 흠모하여 행랑 창문 아래 오래도록 마주하여]/ 요망규봉금석간(遙望圭峰錦石間)[멀리 규봉의 아름다운 바위를 바라보네]
[특징]
「서석산」은 고부민과 아들 고두경의 문집을 엮어 만든 『송학세고』 1권에 수록되어 있다. 『송학세고』 1권이 고부민의 시문을 엮은 것이다. 서석산은 무등산의 별칭이다.
[의의와 평가]
「서석산」은 고부민의 시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문인들의 무등산 유람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