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기행」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946
한자 無等山紀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고성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903년 - 이은상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82년 - 이은상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938년연표보기 - 「무등산 기행」 『조선일보』에 연재
편찬|간행 시기/일시 1942년|1954년 - 영창서관 『노산문선』 간행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기행문
작가 이은상

[정의]

근대 시조 작가이면서 사학자인 이은상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등정하고 기록한 기행 수필.

[개설]

「무등산 기행(無等山紀行)」을 지은 이은상(李殷相)[1903~1982]은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192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수업하고 1925~1927년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부에서 청강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홍원경찰서와 함흥형무소에 구금되었으며, 1945년에는 사상범 예비검속으로 광양경찰서에 수감 중 광복으로 풀려났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몇 년간 지내며 호남신문사 사장을 지냈다.

「무등산 기행」은 이은상이 무등산을 등정하고 기록한 기행 수필이다. 이은상은 1938년 조선일보사 출판국 주간이었을 당시 '지령(紙齡) 6,000호 돌파'와 '혁신 5주년'을 기념하여 추진된 향토문화 조사사업 전남 지역 조사 책임자로 무등산에 올랐다. 증심사로 입산하여 충효리로 하산하였던 4박 5일간의 무등산 산행 기록은 『조선일보』에 「무등산 유기(無等山遊記)」라는 제목으로 1938년 3월 15일부터 29일까지 총 11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이후 「무등산 기행」은 1942년과 1954년에 영창서관(永昌書館)에서 간행한 『노산문선』에 10편의 수필로 실렸다.

[구성]

『노산문선』에 수록되어 있는 「무등산 기행」은 10편의 수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제목은 다음과 같다.

1. 증심사(證心寺)의 삼국보(三國寶)

2. 영장(靈場)의 천제(天帝)등

3. 초군(樵軍)의 민요(民謠) 일절(一節)

4. 서석(瑞石)의 수정병풍(水晶屛風)

5. 암해(岩海)의 보조석굴(普照石窟)

6. 규봉암(圭峰庵)의 광석대(廣石臺)

7. 와전(訛傳)된 지공(指空)너덜

8. 무등적(無等的) 최고지위(最高地位)

9. 원효성사(元曉聖師)의 유적(遺蹟)

10. 김장군(金將軍)의 충효리(忠孝里)

[내용]

「무등산 기행」은 산의 위치, 산에 오르게 된 동기, 매일의 이동 경로와 감회를 기록하고 있다.

작가는 1938년 3월 7일 무등산을 찾아 산 입구에 위치한 증심사에서 '철제 비로자나 불상' 등 세 가지의 국보를 보고 하룻밤을 보낸다. 3월 8일에는 약사암-천제등(천젯등)-상암절터-중머리재-물통골-용추(龍湫)폭포-서석대(瑞石臺)-장불재-입석대(立石臺)-지장암(地藏菴)-보조석굴(普照石窟)-광석대(廣石臺)-규봉암(圭峰庵)으로 이어지는 약 50리의 산행을 한다. 그리고 3월 9일 규봉암-지공(指空)너덜-나옹굴(懶翁窟)-상봉(上峰) 입석-함품이재-충장공 주검동-원효폭포-원효사(元曉寺)를 거치며 약 30리의 산행을 이어간다. 3월 10일에는 충효리(忠孝里)에서 하루를 머물고 이튿날 아침 죽촌을 돌아 취가정에 오른 후 지실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특징]

「무등산 기행」은 산의 위치부터 산에 오르게 된 동기를 밝히는 산기적(山記的) 서술로 시작한다. 이는 개인사부터 시작해 산에 오르는 동기를 밝히는 신변적 서술과 다르다. 또한, 이은상의 개인적인 산행 목적이 명시적으로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은상의 다른 산행 기행문과 차별성을 갖는다.

[의의와 평가]

「무등산 기행」은 전체적으로 사색적 성찰이나 서정적인 내용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천제등이나 입석대 등을 통해 천신을 투영하고 자신의 염원을 기원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러한 내용은 무등산 기행을 국토순례적 산행으로 규정하게 한다. 즉,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 이후 악화된 정세 속에서 천신 사상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지식인의 자의식과, 과거 역사에 의탁하여 현실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삼키고 있던 언론인이자 시인으로서의 유폐된 심경을 잘 드러낸 기행문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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