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등산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939
한자 遊無等山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고성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06년 - 조봉묵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883년 - 조봉묵 사망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기행문
작가 조봉묵

[정의]

개항기 때 학자인 조봉묵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개설]

「유무등산기(遊無等山記)」를 지은 화교(華郊) 조봉묵(曺鳳黙)[1805~1883]은 전라남도 능주[전라남도 화순의 옛 지명]에서 태어났다. 많은 글을 남겼다고 전해지지만, 1894년에 대부분 유실되었다. 저서로 『화하집(華下集)』, 『화교유고(華郊遺稿)』 등이 있다. 「유무등산기」는 조봉묵이 1828년 초여름에 용추계곡증심사계곡을 시작으로 무등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입석대서석대 등을 통해 뛰어난 경치를 형상화하여 무등산의 진면목을 보이는 작품이다. 「유무등산기」는 조봉묵이 남긴 다섯 편의 기행문 가운데 한 편이며, 『화교유고』에 실려 있다.

[구성]

「유무등산기」는 약 1,450자로 장편에 속하며, 그 구성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무등산의 위치와 형세

2. 산을 오르게 된 배경

3. 화순 만연사(萬淵寺)

4. 입석대

5. 서석대

6. 오언절구 시(1) - 주상절리

7. 오언절구 시(2) - 김덕령, 고경명과 같은 인물 등장의 염원

8. 칠언절구 시(1) - 천제단

9. 칠언절구 시(2) - 신선의 이미지 부여

10. 칠언절구 시(3) - 불교의 선

[내용]

1. 유산의 동기

조봉묵은 「유무등산기」의 처음 부분에서 무등산의 위치와 형세 등을 말하였다. 그리고 20세에 무등산에 오를 계획을 세웠지만 실현되지 않았는데, 4년 후인 24세 초여름에 드디어 산에 오르게 되었음을 적었다. 무등산을 오르게 된 동기는 구군(具君)으로 인해서였다. 구군이 의술 일 때문에 전라도 화순 만연사의 동쪽 암자에서 묵으면서 조봉묵에게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유산기 가운데 '관등(觀燈)'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보아 4월 13일에 산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2. 주상절리의 형상

조봉묵은 무등산입석대서석대에 오른다. 입석대서석대의 뛰어난 경치를 묘사하면서 바위들의 색깔과 모양, 형상 등을 기록하였다. 입석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마치 절구와 같은 돌구멍이 파여 있는데, 동행한 승려가 김덕령의 전설과 관련지어 설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서석대를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을 철옹성과 같다고 하며 위엄 있는 자태라고 표현하였다.

3. 시를 통한 소회 표출

조봉묵은 오언절구 시 두 편과 칠언절구 시 세 편 등 총 다섯 편의 작품을 나열한다. 첫 번째 시에서는 무등산의 주상절리를, 두 번째 시에서는 주상절리와 함께 김덕령고경명과 같은 인물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세 번째 시에서는 무등산천제단을, 네 번째 시에서는 무등산을 천상 세계의 옥경루와 비교하며 신선의 이미지를 부여하였다. 다섯 번째 시에서는 불교의 선을 말하면서 지공거사에 대한 이야기는 부질없음을 강조하였다.

[특징]

조봉묵은 용추계곡증심사계곡을 시작으로 무등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다른 등반자들과 마찬가지로 입석대서석대도 빼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경치를 놓치지 않고 특색 있게 형상화하여 무등산의 진면목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또한, 특이하게 북쪽 땅을 바라보면서 임금의 건강에 대한 바람을 적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유학자적인 생각이 이입된 부분이라고 하겠다. 글 말미에 올린 다섯 편의 시는 무등산의 특성을 잘 정리하여 표현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의의와 평가]

무등산 유산기로 분류되는 작품은 약 19편이다. 그중 제목에 서석(瑞石)이 아닌 무등(無等)이 들어간 것은 조봉묵의 「유무등산기」가 유일하다. 「유무등산기」는 작품 말미에 124자로 된 장시(長詩)를 삽입하여 마무리하였다는 점에서 그 형식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최초로 김덕령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 자신의 도불적 세계관을 무등산 산수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조봉묵이 가진 자연 인식을 연구하는 데 있어 자료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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