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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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文翼 |
영어음역 | Jeong Munik |
이칭/별칭 | 위도,송죽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윤모 |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위도(衛道), 호는 송죽당(松竹堂). 할아버지는 유학(幼學) 정경륜(鄭景倫)이며, 아버지는 첨정을 지낸 정응탁(鄭應鐸)이다.
[활동사항]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었으며, 1611년(광해군 3) 별시(別試)에서 갑과(甲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과 이조좌랑(吏曹佐郞)을 거쳐 홍문관교리(弘文館敎理)를 역임하는 등 주로 청요직(淸要職)을 많이 거쳤다. 그러나 1616년에는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은 한찬남(韓纘男)의 상변사건(上變事件)[해주옥사(海州獄事)]에 연루되어 진도로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와 죽산부사로 재직하던 중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이 컸다. 1628년(인조 6) 회답사(回答使)로 심양(瀋陽)에 다녀와 충청감사를 지냈다. 말년까지 지방관을 지냈는데, 특히 1635년 7월 11일 부평부사(富平府使)로 임명되어 1636년 10월 17일까지 구로 지역을 관할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송죽당집(松竹堂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