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286 |
---|---|
한자 | 始興 |
영어음역 | Siheu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윤대준 |
[정의]
고려시대 구로 지역을 포함했던 지명.
[개설]
오늘날 시흥시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부천군 소래면과 시흥군 군자면·수암면에 편제되었던 지역을 합쳐 만든 곳으로, 크게 소래권·군자권·수암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소래권은 인천, 군자와 수암권은 안산에 속하였던 지역이다.
[관련기록]
『고려사(高麗史)』 권94 강감찬전에 “강감찬의 옛 이름은 은천(殷川)인데 금주(衿州) 사람이다. 그의 5대조 강여청(姜餘請)이 신라조(新羅朝)부터 시흥군(始興郡)으로 옮겨와 사니 시흥(始興)은 즉 금주이다”라고 하였다. 즉 강여청이 살았던 신라 말, 고려 초 시기에 금주는 시흥이라고도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금천(衿川)의 별호를 시흥으로 하였다는 기사가 있다[高麗改爲衿川(一作黔) (중략) 本朝太宗十四年甲午 革果川 倂爲衿果縣 數月而罷 又革陽川縣 倂爲衿陽縣 一歲而罷 丙申復爲衿川縣監 別號始興]. 또 『경기도읍지(京畿道邑誌)』「시흥군읍지」 군명조(郡名條) 시흥 하단의 주(註)에 “어느 때 명칭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未詳知何代名]”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로써 살펴보면 고려시대에 사용되었던 시흥이라는 지명은 금주와 혼용되어 사용한 듯하나, 그 정확한 위치와 지명의 유래는 현재의 사료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내용]
시흥은 고려시대에 금주와 함께 오늘날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금천구, 시흥시와 광명시 일대를 지칭한 지명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