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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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영어음역 | Cheongdonggisidae |
영어의미역 | Bronz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오계화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청동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개설]
청동기시대는 일반적으로 인류의 물질문화 발전 단계 중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를 만들어 쓰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오르도스 청동기와의 교차 편년에 의해 B.C. 7세기경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으나 최근에는 중국 요령성 남산근 유적과 의주 신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의 교차 편년을 통해 B.C. 10세기에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농경을 주로 하고 사냥과 고기잡이를 병행했으며, 일부는 목축도 하였다. 청동기는 의례적인 용구로 사용되었고 생활용구는 아직 대부분 간석기[마제 석기]를 이용하였다.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는 청동기 사용 외에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보인다. 고인돌·석관묘(石棺墓)라는 새로운 묘제 등장과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와는 다른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 문화의 시작이 그것이다. 또한 청동기시대에는 신석기시대에 시작된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정착 생활이 강화되었고, 그 결과 마을도 발달하였다. 낮은 구릉 남쪽 비탈면에 방형이나 장방형 수혈 주거 형태가 나타났고, 수십 내지 수백 가호의 취락이 형성되었으며, 환호 등을 두른 마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구로 지역의 청동기 유적]
한강 유역은 넓은 경작지와 풍부한 수량으로 대규모 취락이 발전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어, 청동기시대에 한강 변을 따라 취락이 분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강 유역에 청동기시대 주거지 및 대표적 묘제인 고인돌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한강 하중도의 하나인 여의도를 기준으로 서남부에 있는 구로구는 한강 지류인 안양천을 끼고 한강과 가까이 있는 지형 여건상 청동기시대 취락 존재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실제로 대규모 취락 유적은 아니지만 구로 지역 청동기시대 유적이 보고되기도 했다. 1998년 서울대학교 조사단은 고척동에서 남방식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을 발견하였다. 덮개돌은 가로 190㎝, 세로 105㎝, 높이 28㎝이고, 굄돌은 길이 50㎝, 폭 12㎝ 규모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무덤방이 확인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천왕동 유물산포지도 청동기시대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릉 남쪽으로는 농경지, 동남쪽으로는 안양천 지류인 목감천이 흐르고 있다. 일직선으로 길게 늘어선 연지마을 주택가 구릉 동쪽 비탈면과 주택가 북쪽 구릉 일대에서 청동기시대 민무늬 토기 조각이 수습되었고, 주택가 서쪽 맞은편 구릉 일대에서도 민무늬 토기 바닥 조각이 수습되었다. 입지 여건과 지형 및 수습 유물로 볼 때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이 분포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로구 인근인 시흥시 조남동과 광명시 가학동에서도 고인돌이 발견되었고,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에서는 청동기시대 취락 주거지 유적이 발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