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동 개웅산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터. 전근대 시기 중요한 국방·통신 시설로 불이나 연기를 피워 정보를 전달하였던 봉수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전국의 봉수는 국토의 남북 변경에서 시작하여 서울의 목멱산[남산]에 집결하도록 구성되었다.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동 천신마을 뒷산인 개웅산에 있다. 봉수 제도가 사라지면서 다른 봉...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던 일제강점기의 단군전 터. 안순환(安淳煥)[1871~1942]은 1924년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에 안향(安珦)[1243~1306]을 봉향하는 녹동서원(鹿洞書院)을 만들고, 그곳에 명교학원을 연 뒤 조선유교회를 설립하였다. 한편 1910년 정훈모(鄭薰謨)에 의해 설립된 단군교(檀君敎)는 창립 20년이 넘도록 교당을 마련하지 못하고 정훈모의 사택 등을 대신...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던 개항기의 대원군 별장 터. 대원군 별장은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사용하던 별장으로서 1870년대에 건립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여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1873~1898년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 (주)현대에서 사원용 주택 120세대를 건립하면서 철거되었다. 원래 대원군 별장 터는 구로구에 소재하여...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동에 있던 조선시대 다리 터. 구로구 고척동은 현재의 경기도 부천시와 안양시, 강화 사람들이 안양천을 경계로 서울 지역 사람들과 생필품 및 농산물 등을 교환하거나 판매하던 곳이다. 이곳은 목동 신시가지 개발 이전에는 김포평야의 일부분이어서 방앗간이 많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상업이 번성하여 늘 방아 찧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방앗간 앞에는 안양천 지류...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일본인 고바야시[小林] 공장 직원의 숙소 터. 삼공구 사택은 구로구 고척동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곳인 덩어리[덕의리]에 있었다. 덕의초등학교 앞인 구로구 고척2동 168번지 일대, 즉 현재 서울남부교도소와 서울남부구치소의 옛자리에 위치하였었다. 삼공구 사택은 일제 때 일본인 고바야시가 자신의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해 건립하였다. 고...
조선시대 구로 지역에 있던 온수산의 봉수대 터. 봉수대는 전근대의 대표적인 통신 수단으로, 특히 적군의 침략 등 위급 상황 시 그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설치되었던 구조물이다. 조선시대 국방상의 통신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봉수 제도는 전근대의 중요한 통신 수단으로 그 기원은 이미 고대에서부터 찾을 수 있으나, 제도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려시대이다. 고려시대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유진오 별장 터. 유진오(兪鎭午)[1906~1987]는 서울 출생으로 호는 현민(玄民)이다. 아버지는 궁내부 제도국참사관을 지낸 유치형이다. 1924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1929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법학자로서 활동하였지만 문학에도 깊은 조예를 보여 동료들과 문우회(文友會)를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33년...
서울특별시 구로구 천왕동 굴봉산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천왕동 뒷산인 굴봉산 골짜기에 있었다고 전해 온다. 천왕동 고갯길 사거리에서 천왕마을로 가는 지방도 397호선을 따라 350m 가면 오른쪽에 천왕골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나온다. 이 길로 300m가량 올라가면 저수지 북동쪽 구릉 비탈면에 천왕동 유물산포지1이 있다. 이 일대에 천왕사 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천왕골이나...
과거 구로구에 속했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조선시대 행궁 터. 정조는 즉위 후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이름 지었다. 이는 아버지 장헌세자를 추모하고 억울한 죽음에 대한 신원(伸寃)의 목적과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정조는 자주 능행을 다녔는데 능행의 노선도 이러한 정치적 이유에서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