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42015
한자 顯德王后
영어공식명칭 Hyeondeokwangh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6-3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18년연표보기 - 현덕왕후 홍주 합덕현 출생
혼인 시기/일시 1436년 - 현덕왕후 세자빈에 봉해짐
몰년 시기/일시 1441년연표보기 - 현덕왕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450년 - 현덕왕후 현덕빈(顯德嬪)에서 왕후로 추승
추모 시기/일시 1454년 - 현덕왕후 인효순혜현덕왕후(仁孝順惠顯德王后)라는 존호를 받음
특기 사항 시기/일시 1431년 - 현덕왕후 승휘(承徽)에 봉해짐
묘소|단소 현덕왕후 현릉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6-3지도보기
성격 왕비
성별
본관 안동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현릉에 묻힌 조선 전기의 왕비.

[개설]

현덕왕후(顯德王后)[1418~1441]는 조선의 제5대 왕 문종(文宗)의 왕비이다.

[가계]

현덕왕후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아버지는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전(權專)이고, 어머니는 문헌공(文憲公) 최충(崔冲)의 후손으로 서운부정(書雲副正) 최용(崔鄘)의 딸이다. 1418년에 홍주(洪州) 합덕현(合德縣)에서 출생했다. 문종과의 사이에 단종(端宗)과 경혜공주(敬惠公主)를 두었다.

[활동 사항]

현덕왕후는 1431년(세종 13) 1월 19일에 문종의 승휘(承徽)로 발탁되어 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승휘는 세자궁에 딸린 종4품 내명부(內命婦)의 내관이었다. 현덕왕후가 승휘로 발탁되기 전까지 문종의 세자빈 자리에는 문제가 많았다.

원래 문종의 세자 시절 세자빈은 휘빈 김씨(徽嬪金氏)가 있었으나 두어 해 만에 폐빈되었고, 다음으로 세자빈이 된 순빈 봉씨(純嬪奉氏)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세종은 순빈에게 허물이 많음을 알고 있었으나 두 번이나 세자빈을 폐출하는 것에 부담을 갖고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436년(세종 18)에 결국 순빈 봉씨가 궁녀와 잠자리를 한다는 추문이 퍼지자 안평대군(安平大君), 임영대군(臨瀛大君), 영의정 황희(黃喜), 우의정 노한(盧闬), 찬성 신개(申槪)를 불러 논의하고 마침내 폐출을 결정하였다.

세종은 순빈을 폐출한 이후 세 번째 세자빈은 승휘에서 양원(良媛)으로 승격된 권씨와 승휘(承徽) 홍씨(洪氏) 중에서 선택하기로 하였다. 양원 권씨는 이미 세자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은 적이 있었으므로[1433년에 딸을 낳았으나 한 살이 채 되지 않아 사망] 마땅히 세자빈으로 세워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지면서 1436년(세종 18) 12월 28일에 양원을 세자빈으로 삼는다는 교지가 내려졌다.

1437년(세종 19) 2월 28일에 양원 권씨를 세자빈으로 책봉하는 의식을 행했다. 1441년(세종 23) 7월 23일 동궁 자선당(東宮資善堂)에서 훗날 단종이 되는 원손을 낳았다. 세종은 세자의 나이가 장년이 되었음에도 후사가 없어 걱정이 많았는데 적손(嫡孫)을 보니 기쁘다며 대사면령을 내렸으나, 세자빈은 원손을 낳고 하루 만에 출산 후유증으로 눈을 감았다. 이때 나이 24세였다.

[묘소]

현덕왕후의 능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에 있는 현릉(顯陵)이다. 현덕왕후가 사망하자 시호를 현덕이라 하였다. 처음에는 안산읍 와리산(瓦里山)에 장사지냈다. 1450년에 문종이 즉위하고 현덕빈(顯德嬪)을 왕후로 추승하고 능호를 소릉(昭陵)이라고 하였다. 1454년(단종 2)에 의정부와 육조에서 현덕왕후의 존호를 더하기를 청하여 7월 1일 인효 순혜 현덕왕후(仁孝順惠顯德王后)로 추승하였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는 가운데 현덕왕후도 서인으로 폐해지고 소릉도 파헤쳐져 관이 해변의 모래사장에 버려지는 등 능이 무참히 파괴되었다. 1513년(중종 8) 4월 21일에 현덕왕후로 복위되고 소릉을 현재의 현릉으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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