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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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常墓 |
영어공식명칭 | Hong Sang Tomb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명희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남양 홍씨 묘역에 있는 조선 덕종의 부마 홍상 묘.
[개설]
홍상(洪常)[1457∼1513]은 조선 덕종(德宗)의 부마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강(子剛). 시호는 소이(昭夷)이다. 좌의정 충정공 홍응(洪應)의 아들이다. 1466년(세조12)에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의 딸 명숙 공주와 혼인하여 당양위(唐陽尉)에 봉해졌고, 1504년(연산군10)에 갑자사화에 연루, 함평으로 유배되었다가 가까운 안성으로 옮겨졌으며, 다시 제주로 이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조정에 돌아온 뒤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평소 도량이 넓고 성품이 온화하여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대하여 홍상이 부마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위치]
홍상의 묘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 남양 홍씨 묘역에 있다. 묘역 입구에 '남양 홍씨 익산군파 휴휴당계 선영' 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보인다.
[변천]
홍상 묘는 1513년(중종 8)에 조성되었고, 1514년 신도비(神道碑)가 건립되었는데, 성균관 사성 지제교(成均館司成知製敎) 이행(李荇)이 짓고,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김희수(金希壽)가 썼다. 남양 홍씨 묘역은 2012년 2월 23일 대대적인 사초 공사를 하였다.
[형태]
홍상 묘는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월두형 묘갈(墓碣)이 대좌 위에 있고 혼유석(魂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없이 상석(床石)[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만 있다. 상석 좌우로 장대석(長臺石)으로 단을 쌓고 고석(鼓石) 대신 장대석 위에 상석을 얹어 놓았다. 그 앞에 단을 달리하여 장명등(長明燈)이 있는데 하대석· 간주석· 상대석·화사석 모두가 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각 면에 연화문과 안상문이 새겨져 있으며 팔작지붕 형태의 지붕돌이 올려져 있다. 좀 더 앞으로 내려와서 묘 양옆으로 문인석(文人石) 한 쌍이 있다. 묘역 오른쪽 측면으로 세워진 신도비는 용의 형상을 한 이수형의 개석을 올렸으며 대좌에는 연화문과 안상문이 새겨져 있다.
[금석문]
홍상 묘의 비석 전면에는 '수록대부당양군증시소이홍공지묘(綏祿大夫唐陽君贈諡昭夷洪公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홍상 묘가 있는 남양 홍씨 묘역은 아차산 능선을 따라 종렬로 길게 정리하여 장대석으로 단을 만들어 단위 묘의 경계를 짓는다. 사초가 없는 헐벗은 산에 묘를 조성한 것 같은 형상이었으나 2012년 2월 23일 대대적인 사초 공사를 하였다.
[의의와 평가]
홍상의 묘와 신도비는 520년 동안 묘역에서 보존되고 관리되어 왔다. 토양이 안 좋아 사초가 헐벗었지만 단촐한 석물(石物)과 둘레돌 없는 봉토분과 품위 있는 장명등은 묘주의 인품을 대변해 준다. 석물은 분묘 당시 조성된 것으로, 장명등의 형태와 신도비의 재질은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