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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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穆陵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for Mokreung |
이칭/별칭 | 선조 목릉표(宣祖 穆陵表)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상기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목릉의 신도비.
[건립 연혁]
목릉 신도비(穆陵神道碑)는 1747년(영조 23)에 세워졌다. 『목릉 휘릉 혜릉 표석 영건청의궤(穆陵徽陵惠陵表石營建廳儀軌)』와 『영조실록(英祖實錄)』에 따르면 1746년(영조 22) 11월 19일 사헌부 장령 김한운(金翰運)이 혜릉(惠陵)[경종(景宗)의 비 단의 왕후(端懿王后)의 무덤]에 표석을 세울 것을 건의하자, 영조는 혜릉과 함께 목릉(穆陵) 등에도 표석을 세우라고 명했다. 그해 12월 1일 영건청(營建廳)의 설립을 시작으로 사업이 진행되어 이듬해인 1747년 3월 1일 건립이 마무리되었다.
[형태·구성]
목릉 신도비는 화강암 재질의 가첨석(加檐石)[지붕돌]·농대석(籠臺石)[비석 받침돌]과 오석(烏石) 재질의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높이는 250.9㎝이며 폭은 143.1㎝이다. 가첨석의 높이는 37.1㎝이고 폭은 133.1㎝이며, 한옥의 지붕 모양인데 지붕 용마루의 내림마루[용마루에서 추녀마루를 잇는 부분]가 상당히 낮게 처리되었고 처마선은 수평에 가깝다. 비신의 높이는 174.4㎝이고 폭은 72.5㎝이며,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앞면에는 전서(篆書)로 '조선국 선조대왕목릉의인왕후부중강인목왕후부좌강(朝鮮國 宣祖大王穆陵懿仁王后祔中岡仁穆王后祔左岡)'이라고 새겼는데 유척기(兪拓基)의 글씨이다. 선조(宣祖)·의인 왕후(懿仁 王后)·인목 왕후(仁穆 王后)의 생몰일·책봉일·장례일 등을 기록한 뒷면의 음기(蔭記)는 여선군(麗善君) 이학(李壆)이 썼고 해서(楷書)로 새겼다. 농대석은 1단인데 높이는 39.4㎝이고 폭은 143.1㎝이며, 문양을 새기지 않았다.
[가치 및 의미]
목릉 신도비는 1682년(숙종 8)에 건립된 영릉(寧陵)[효종(孝宗)과 효종의 비 인선 왕후(仁宣 王后)의 무덤]의 표석 이후 지속적으로 세워진 조선 왕실 무덤의 능표 중 하나이다. 능표의 양식은 점점 간략화되어 영조(英祖)·정조(正祖) 시기에 확립되었는데, 목릉 신도비는 정형화된 능표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