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1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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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桃津-絶壁白馬- |
영어의미역 | Tale of Baekmadeom Cliff in Dojinmaeul,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화숙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백마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도진마을의 절벽 백마덤 이야기」는 청룡산 끝자락에 있는 절벽이 햇빛을 받아 반사될 때 희게 보이는데 말의 형상을 띤다하여 백마덤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자 임진왜란 당시 참전으로 이별을 한 부부 사이의 증표담이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0년에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주민 박돈헌[남, 50]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를 둘러싸고 있는 청룡산은 용의 구불구불한 등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청룡산 끝부분에 있는 절벽이 백마덤이다. 마을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절벽이다. 옛날에는 백마덤을 흰덤이라고 했다. 절벽이 햇빛을 받으면 반사될 때 희게 보이면서 말의 모양을 띠게 된다 하여 백마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백마덤은 임진왜란 때 왜구와의 접전지로 역사적인 장소이다. 군사와 승려, 농민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구와 맞섰는데 도진리 사람들이 민군을 일으켜 청룡산으로 왜군들을 유인할 계획을 세웠다. 지휘를 맡았던 장군은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리따운 아내를 남겨 두고 출장을 하게 되었다. 장군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아내에게 “저 청룡산의 덤이 계속 하얗게 있으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이고, 만약 까맣게 변하면 내가 죽은 줄로 아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군사들과 전쟁터로 나갔다.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살아 돌아와 청룡산의 하얀 절벽은 변하지 않았고, 지금도 백마덤으로 불리고 있다.
[모티프 분석]
「도진마을의 절벽 백마덤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흰말의 형상을 띠는 절벽’, ‘남편이 살아 있다는 증표의 백마덤’ 등이다. 이 이야기는 지형적인 속성이 지명의 유래가 된 지명유래담이자 참전 부부의 증표담이다. 마을 주변의 절벽이 햇빛에 반사되어 희게 보일 뿐만 아니라 말의 형상을 띠는 것을 지명에 그대로 반영한 것을 통해 삶의 터전에 대한 민중들의 관심과 애착을 엿볼 수 있다. 고령 지역에는 임진왜란과 관련한 지명 혹은 자연물 명칭 유래담이 전하고 있는데 「법암 걸실의 유래」도 임진왜란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 지명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