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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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桃津-牛谷面- |
영어음역 | Dojinnaruteo |
영어의미역 | Dojin Fer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
집필자 | 황상일 |
성격 | 나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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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던 나루터.
[개설]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는 고령박씨(高霊朴氏)의 세거지로 우곡면 소재지이다. 고려 말인 1350년(충정왕 2)대에 조산대부(朝散大夫) 사재감소윤(司宰監少尹)인 고령박씨 박경(朴景)[고령박씨 중조 환(還)의 8세손]이 개척하였는데, 모듬내[会川, 錦川]를 휘감아 흐르는 강변(江邊)의 아름다움이 도연명(陶淵明)[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과 흡사한 아름다움이라 하여 도원(桃源)이라 불려졌다. 복숭아나무가 무성하였던 곳은 현재 논밭으로 변하였다.
이후 마을을 이루면서 나루터가 생기니 도원나루로 부르다가 1500년(연산군 6)경부터 마을 이름을 ‘나루 진(津)’자를 사용한 도진(桃津)으로 표하면서 도진동, 도진리로 부르게 되었으며, 박경의 후손이 고령박씨 소윤공파(少尹公派)의 본향(本郷)을 이루면서 도진박씨(桃津朴氏)로 칭하여지는 집성촌(集姓村)을 형성하게 되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때인 1392년(공양왕 4) 고려의 조신(朝臣)인 몽계 한철충, 김유(金庾)[?~1386], 사관 권공, 박간, 박용수[입향조 박경의 제] 제씨들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이곳에 은거(隠居)할 때 도원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시(詩)인 ‘도화협진 궐어발발 무이어무릉도원(桃花狭津鱖魚潑潑無異於武陵桃源)[복숭아 꽃잎이 물위에 떠 흐르는 나루에 쏘가리 떼가 뛰어노니 어찌 무릉도원과 다를 바 있나]’이 전해지고 있다.
도진리 맞은편 야정1리에서 바라본 대장산은 여느 산과 같이 평범하게 보이지만 철탑이 세워진 아래쪽에 산성 터가 있다. 대장산 성터는 마을의 동북쪽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길이는 약 1㎞ 정도라고 한다. 1592년(선조 25) 곽재우(郭再祐)[1552~1617)와 김면이 축성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뚜렷한 기록은 없다.
산성의 동쪽은 석축이고 북서쪽은 토성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개경포 전투에서 왜병과 대항하기 위해 축성하였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산성의 안쪽에는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부레고개는 도진에서 부례를 거쳐 달성군 구지면과 연결된다.
[변천]
도진나루터는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와 대가야읍 야정리를 연결하는 나루로서, 낙동강의 지류 하천인 회천에 있었다. 우례재를 넘어 야정, 속동, 우곡을 거쳐 고령 방면으로 농산물을 실어서 고령장으로 운반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는데, 1992년 6월 도진교가 놓이면서 사라졌다.
[현황]
2010년 현재 도진나루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