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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및 근대 비석군. 고령군청 내 비군의 13기 비석의 건립 연대 및 관련 인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후창시 청덕비(鄭侯昌詩淸德碑)는 1907년 4월에 건립되었다. 정창시(鄭昌詩)는 팔거인(八莒人)이며, 경상남도 거창군 강동 사람으로 1647~1649년에 고령현감을 거쳐 이조정랑에 오른 인물이다. 묘소는 대가야읍 외동 뒷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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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에 있는 오상옥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비석. 고령군 성산면 용기마을의 고창인 국포(菊圃) 오상옥(呉相玉)[1847~191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이다. 오상옥은 어머니 달성서씨가 1901년에 중환으로 병석에 계셨는데,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어 백약이 무효였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선조(先祖)가 나타나 말씀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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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는 김동수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김동수는 수리시설이 좋지 않던 시절의 보도감(補都監)으로서 헌신 노력하여 쾌빈리에서 고아리[치사리]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43년 5월 지역 주민들이 비를 건립하였다. 대가야읍에서 운수면 방향으로 난 국도 33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쾌빈교가 나오고 그곳에서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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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에 있는 김택령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일제강점기 비석. 대가야읍에서 우륵박물관을 지나 중화리 중마을 마을회관을 끼고 우회전해서 150m쯤 가면 좌측 길옆 산기슭에 세워져 있다. 비는 귀접이형으로 자연 암반인 화강암을 파서 비신을 세웠는데, 비의 높이 82㎝, 너비 33㎝, 폭 12㎝로 비신만 남아 있다. 비석 전면 중앙에 세로로 ‘고의성김공택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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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 답곡마을에 있는 비석. 비면 좌측 상단에서 하단으로 ‘숭정기원후오주갑세경자이월일구대손양거동(崇禎紀元後五周甲歳庚子二月日九代孫梁渠東)’이라 하여 1900년 2월 9세손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대가야읍 대가야박물관에서 12.4㎞ 떨어져 있는 산주리 속칭 논골마을에서 묘성암을 지나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300m 정도 경사로를 올라가면 길 우측에 자연 암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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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문연서원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문연서원 터의 문연서원은 1695년(숙종 21)에 학암(鶴巌) 박정번(朴廷璠)의 강학지소(講学之所)로 건립하여 죽연(竹淵) 박윤(朴潤), 낙락당(樂樂堂) 박택(朴澤), 월오(月塢) 윤규(尹奎), 학암(鶴巌) 박정번(朴廷璠), 매헌(梅軒) 최여설(崔汝楔)의 5현을 향사(享祀)하였으나 18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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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외리에 있는 박승수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비석. 박승수 영세불망비는 1787년 10월 현감 박승수(朴升壽)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원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외리 88고속도로변 산기슭 옛 물레방아 터에 있었으나, 고속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마을회관 앞으로 이전하였다. 비신과 한 돌로 된 비수(碑首)가 있다. 비수는 비신 최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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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가륜리에 있는 배수구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배수구 불망비는 성산인 배수구(裵壽九)가 흉년에 굶주린 주민을 도우며, 덕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자를 많이 보살피니 마을 사람들이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건립과 관련해서는 ‘상지즉위경인유학□□□(上之即位庚寅幼学□□□)’이라 새겨져 있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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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백산리에 있는 서창규와 김창현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서창규·김창현 비는 각각 탁호미산서공창규지호덕비(卓乎眉山徐公昌圭之好徳碑)와 전참봉김창현시혜비(前参奉金昌鉉施恵碑)라고 부른다. 이 비들은 서창규·김창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건립하였다. 서창규·김창현 비는 나란히 백산리 마을 민가 뒤 암반 위에 있다. 지금은 접근로조차 막혀 민가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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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에 있는 서필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달성인 효자 서필원(徐弼元)은 1750년(영조 26)에 태어나 5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간 풀과 칡뿌리로 연명하면서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고 홀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계절이 겨울인데도 쓴 냉이를 원하시므로 석자나 되는 눈 아래서 냉이를 구하여 어머니에게 드렸고, 또 병환으로 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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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및 일제강점기 비석군. 『고령군의 비』, 『향토사료집』, 『문화유적분포지도』 등 자료에는 4기의 비석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이후 성산면 박곡리 장터고개 방앗간 뒤에 있던 2기[관찰사정상국휘기선영세불망비, □□□후휘봉주영세불망비]가 이곳으로 옮겨와 지금은 6기의 비석이 일렬로 서 있다. 현감 한후덕필 청덕 선정비(県監韓侯徳弼清徳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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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 있는 성산이씨 6현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조선시대 비석. 성산이씨 육현비는 의재(義齋) 앞뜰에 위치해 있는데, 세종 때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을 지낸 송오(松塢) 이사징(李士澄), 옥산(玉山), 선조 때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낸 근재(謹齋) 이동례(李東礼)와 세 아들 죽포(竹圃) 이현용, 국포(菊圃) 이문용, 매포(梅圃) 이택용[이상 삼포(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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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에 있는 성풍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 비석. 성풍세(成豊世)의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영의정을 지낸 성석린(成石璘)의 후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주 노곡(魯谷)으로 피난을 간 성풍세는 전쟁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의병 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다. 어머니의 연세 83세 때 도끼로 얼음을 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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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최호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시대 비석. 송애(松崖) 최호문(崔虎文)은 조선 헌종 때 문과 을방에 제2인자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과 봉화현감을 지냈다. 천성이 순박하여 가난하고 천한 것을 구별하지 않고 너그러웠으며, 가난한 백성들을 잘 도와주어서 인심이 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문적으로는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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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유리에 있는 박이장과 박공구 부자의 조선시대 신도비와 묘비 및 비각. 순천박씨 신도비와 묘비 및 비각은 순천인(順天人) 용담(龍潭) 박이장(朴而章)[1547~1622]과 그의 둘째 아들인 기옹(畸翁) 박공구(朴羾衢)[1587~1658]와 관련 있다. 비각은 원래 운수면 유리 고승골마을 뒷산에 위치한 박공구의 묘소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1973년 4월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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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귀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군. 현감 정후기락 애민선정비(縣監鄭侯基洛愛民善政碑)와 현감 이후수겸 영세불망비(縣監李侯秀謙永世不忘碑)는 현감인 정기락(鄭基洛)과 이수겸(李秀謙)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건립한 것이다. 현감 이후수겸 영세불망비는 1871년(고종 8)에 세워졌으며, 현감 정후기락 애민선정비의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쌍림면사무소 앞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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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 마을 농협 창고 정면 출입문 좌측에 자리 잡고 있다. 왼편의 비석은 앞면에"사검관이공규진구폐시□□(査検官李公圭真捄弊施□□)"라고 쓰여있다. 귀접이형으로 기단석 없이 비신 하단을 땅에 묻어 세웠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98㎝, 너비 40㎝, 두께 13㎝이다. 오른편에 있는 비석은 앞 면에 "행군수심후택진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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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5현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 양천최씨 오현세적비는 박택(朴澤), 박정번(朴廷璠), 윤규(尹奎), 박윤(朴潤), 최여설(崔汝楔) 등 5현의 사적(事蹟)을 기록한 비석이다. 낙락당(樂樂堂) 박택은 고령인 박계조(朴継祖)[양산군수]의 아들로 남명(南冥) 조식(曺植), 배신(裴紳)과 교우하여 도의가 높고 효성과 덕행이 뛰어나며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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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사촌리 영연서원 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비석. 서원(書院)은 선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던 조선시대의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조선시대 최초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였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향사하기 위해 영주에 세운 백운동서원이었다. 이후 1549년(명종 4) 풍기군수 이황(李滉)이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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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에 있는 선비 윤규의 유허비. 윤규의 휘(諱)[죽은 사람의 이름]는 규(奎)요, 자는 문노(文老)이다. 관향은 파평인으로 고려 시중 문숙공(文粛公) 윤관(尹瓘)의 15세손이다. 조선 선조 때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월오촌에 은거함에 마을 앞에 대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 언덕 위에 기암괴석이 심히 아름다워 평생 외루(畏塁)하였다. 조선시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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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에 있는 이수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비석. 이수겸 사창불망비는 1870년 현감 이수겸의 사창(社倉) 운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에 있다고 조사되었으나, 현지 확인 결과 주민들도 소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 자료를 통해 볼 때, 호패형으로 비석 전면이 마모되었다. 대자(大字)는 잘 보이지만 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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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이의상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비석. 당시 양전리 일대에는 수리시설이 좋지 못하여 작황이 나빠 주민들의 생활이 몹시 어려웠는데, 현감 이의상(李宜相)이 많은 주민들을 구제하였다. 이에 지역 주민들이 그의 공을 기리고 추모하고자 1800년 청덕애민비를 건립하였다. 개진면 양전마을과 하양전마을 도로변에 있다. 비신은 호패형으로 규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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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에 있는 조선시대 및 근대 비석군. 9기의 장기리 비군 가운데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136번지에 있는 5기 비석의 건립 시기를 살펴보면 현감 윤후정진 애민비(縣監尹侯定鎭愛民碑)는 1818년 3월에 건립되었고 현감 정기락 영세불망비(縣監鄭基洛永世不忘碑)는 1950년 11월에 건립되었다. 현감 심후의두 청덕 선정비(縣監沈侯宜斗淸德善政碑)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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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에 있는 전주이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효열비. 1936년 김해김씨 문중에서 전주이씨의 효열행을 기리기 위해서 건립하였다. 효열부 전주이씨는 김해인 김용도(金容道)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님 봉양과 남편을 정성으로 모셨으나 불행하게도 남편이 일찍 죽어 가정이 갑자기 몰락하게 되었다. 그도 남편의 뒤를 따르려고 하였으나 홀시아버지와 어린 남매 때문에 부득이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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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외리에 있는 정운한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정운한(鄭雲漢)이 홍수로 농경지 매몰 등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은 것에 대해 은혜를 입은 백성들이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1937년 7월 건립하였다. 대가야읍 대가야박물관에서 쌍림면 방향으로 직진한 후 외리 방향 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직진하다 우회전하여 다리를 건너면 고령농업기술센터 방향 삼거리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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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비석. 고아리 병마절도사비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정익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591년 2월 선조 대에 건립되었다. 연엽형 지붕돌을 갖춘 비교적 큰 규모의 비석이다. 비석 전면 중앙에 세로로 ‘경상우도병마절도사정익무혁군병청덕선정비(慶尙右道兵馬節度使鄭榏撫洫軍兵淸德善政碑)’라 새겼다. 대가야읍 고아리의 비석보들 농로 옆 산기슭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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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창녕조씨 정려비. 임진왜란 때 김면, 곽재우 등과 같이 왜병에 대항하여 공을 세운 정서(鄭序)의 부친 월담(月潭) 정사현(鄭師賢)의 부인인 창녕조씨의 정려 사실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건립과 관련해서는 “숭정기원후사기사삼월일구대종손유학진주정세권립생원경산이우세근찬구대손유학정민세근서(崇禎紀元後四己巳三月日九 代宗孫幼学晋州鄭世権立生員京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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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박경가의 업적을 기록한 조선 후기 비석. 학양(鶴陽) 박경가(朴慶家)는 조선시대 순조 때 사람으로 고령인 박문국(朴文国)의 아들이다. 7세 때 모친상을 당하였으나 장례를 잘 치렀다. 집이 가난하여 몸소 고기를 잡아 반찬을 장만하였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께 피를 먹이는 등 병환을 잘 간호하여 관찰사와 고을 원님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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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군. 합천에서 고령을 거쳐 서울로 가는 진상품을 인수인계하는 장소를 확정하고, 이 사실을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합천군수와 고령현감이 1841년 1월에 세운 비석이다.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속칭 개실마을[佳谷] 앞 도로변에 있던 것을 도로 확·포장 공사시 비석을 보존하기 위해 도로에서 마을 쪽으로 조금 들어가 있는...